[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35] 심장
차를 세우고 걸어오면서 시어머니를 바라본다. 작은 몸집이 더 작다. 기둥에 서서 나를 기다린다. 멀리서 보니 착한 아이가 두리번거리면서 엄마가 오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어머니 팔을 잡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휠체어가 있다. 종이에 이름을 적고 하나 빌렸다. 어머니를 태우고 가방을 뒤에 걸고 민다.
한 층 내려가서 심장내과에 갔다. 주민증이 없다고 하니 원무과 가서 접수증 떼오란다. 밀고 가기에는 번거롭다. 이름으로 봐 달라고 여쭈었다. 종이를 뽑아서 준다. 돈을 먼저 내고 옆방에서 심전도 검사를 한다. 바로 누워야 하는데 등이 굽어서 다리를 세우고 베개를 등까지 괴었다. 옷을 걷어 올린다. 어머니 배가 등에 붙은 듯 쑥 들어갔다. 젖꼭지는 콩알보다 더 작다. 앙상한 몸집이 안쓰럽다고 여기니 눈물이 몰려오더라. 누우니 시할머니가 숨이 멎을 때를 보는 듯했다. 고개를 저으며 떠오른 생각을 지운다.
이제 한 층 더 내려가서 가슴 사진을 찍는다. 하늘빛 겉옷을 벗고 팔이 긴 티를 벗고 속옷바람으로 찍는다. 휠체어를 가슴 사진판 바로 밑에 세운다. 힘이 떨어지면 그대로 앉을 수 있게 했다. 두 팔 벌러 판을 껴안고 턱을 괴는데, 몸이 줄어든 어머니는 턱을 괴는 곳에 머리도 닿지 않는다. 아홉 살 아이 몸집 같다. 몸을 돌려 줄을 붙잡고 옆사진을 찍었다. 옷을 입고 혈관센터로 올라간다. 아직 검사할 사람이 오지 않아 문 앞에서 기다린다. 받아 온 종이뭉치를 건넨다. 다니는 사람이 걸리지 않게 휠체어를 빈자리 옆에 세운다. 안에서 거드는 일꾼이 다섯이고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열쯤 된다. 할배도 있고 할매도 있다. 따라온 할매도 있고 아들도 있다.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한테 어디에 기계를 넣었는지 물었다. 단추를 하나 푼다. 쇠골 바로 밑 갈비뼈에 가로세로 오 센티미터 되는 네모로 딱딱하다. 처음 기계를 넣었을 적에 살갗이 무척 가려웠겠구나. 몸을 씻을 적에 걸리겠구나. 보는데 내 살갗이 아프다. 건너편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기계 자국이 다 드러났네요? 우리 집 양반은 하나도 티 안 나요” 해서 보니 몸집이 크고 살집도 크다. 뼈밖에 안 남은 어머니가 “살이 없어서 드러나네요” 했다. 두 번째로 어머니 이름을 부른다. 제발 아무 탈 없어라. 나는 속으로 기도했다.
종이를 받아 이제 심장내과에 결과를 보러 갔다. 의사는 종이를 보고 한참을 보고 말했다.
“바꿔야 하네”
“언제쯤요?”
“곧 날 잡아야 하는데, 박동기가 다 닳았어. 아 참 많이 닳았네. 여덟 해밖에 안 되는데, 전기를 갈아 끼워야 한다고 나오네. 기계를 꺼내서 안에 든 건전지를 바꾸는데, 이레는 입원해야 하니 날짜를 잡아야겠는데. 건전지가 두 개 모드에서 한 개로 바뀌었어요. 한 달 안에 해야해요”
여름 휴가철로 넷째 주에만 날짜를 잡을 수 있다는데, 너무 늦다. 바로 갈아야 한다는데, 아무래도 건전지가 다 닳은 듯하다. 사흘 뒤에 돌림앓이 검사를 받고 음성이 나오면 다음날 들어가기로 날을 잡았다.
쪽지를 하나 받고 돈을 내고 일층 주사실로 내려간다. 기다리는 동안 곁님한테 알리니 “엄마는 만날 시간이 되지 뭐” 한다. 끊자마자 시아버지 전화가 들어왔다. “병원에서 뭐라카더노?” 힘찬 목소리로 물었다. “건전지 바꿔야 한대요” 말했더니 “알았다” 하시는데 목소리가 여리다. 여린 목소리에는 생각이 많은 듯했다. 저 몸에 또 칼을 대야 한다는 마음이 일지도 모른다. 잘못되지나 않을까. 말씀은 하시지 않았지만, 울음을 삼키는 듯했다.
들판을 달리면서 어머니께 물었다. “어머니 살면서 어떤 일이 심장을 뛰게 했어요?” 여쭈었더니 “그케 말이다” 딴말 하신다. 돈 썼다고 십만 원 등 뒤에서 내미신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쓸지도 모르는데 받아라” “괜찮아요, 도로 넣어 두세요” “안 받아도 괴안을라” 어머니 목소리가 참 쓸쓸하다.
가만히 몸을 생각한다. 머리는 둥글고 몸은 네모났네. 머리는 몸을 다스리는 뇌가 있고 몸 맨 위에는 심장이 있고 그다음 아랫도리가 있는데 심장이 우리 몸 딱 가운데이네. 눈물을 보내고 기쁘고 슬프고 즐겁고 사랑하던 마음이 있는 심장이 잘 뛰지 않으니 몸이 천천히 가라앉는가. 생각을 잃어가는 머리에서 쉬를 지려 아랫도리조차 건사하지 못하는가.
아이 다섯을 낳고 또 몇 잃는다고 쏟은 피, 시동생까지 젖 먹이느라 다 빠져버려 몸조차 둥글다. 시집살이와 어려운 살림을 일군다고 다 써버린 삶이 아쉽지는 않으실까. 밥을 하리라 여기지도 못한 시아버지, 늘그막에 서로 주름을 바라보는 마음, 알뜰히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아도 다 오가는 마음, 이제야 사랑다운 사랑을 누리는데 심장은 저 혼자서 뛰지 않으니 뭔가 멈추어 간다는 줄. 뭔가 간다는 줄. 아득한 걸 본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심장내과 벽에 걸린 말처럼 멎을 때까지 온몸을 깨우는 두루 품는 사랑이 으뜸 같다.
2022. 07. 23.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