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36] 나흘만에 손질
한가위로 며칠 쉰다. 시골에서 어머니하고 시동생이 온다. 나물을 볶고 저녁을 했다. 한가위날 제사를 지내고 일터로 가서 나물을 손질하려고 했는데 가지 않았다. 일요일이라도 꼭 가서 손질해야지 생각했는데 작은딸이 아버지하고 동생 옷을 산다고 돌아다니다가 못 갔다. 밤에 잠을 자다 가도 가게 나물만 떠오른다. 쉬다가 나흘째 되는 아침, 도매시장도 논다. 일찍 나가서 나물을 손질한다.
과일을 앞으로 당기고 나물을 본다. 깻잎은 다 나가서 자리가 휑하다. 실파 하나는 누렇게 떠서 뿌리 쪽을 조금 남기고 잘라 버렸다. 쑥갓은 누렇게 말라서 모두 버린다. 부추는 몇이 물렀다. 뭉개진 것을 고르는데 장갑에 달라붙는다. 걸레로 장갑을 닦고 다시 담았다. 양상추는 껍데기를 벗기니 알이 아주 작다. 비싸게 들어왔는데 크게 잃는다. 표고버섯은 물기를 먹어 곰팡이가 피었다. 골라 버리고 하나에 모아 담았다. 깐양파가 다 나갔다. 열 알을 까서 담았다. 대파는 세 단 까고, 묶인 대파를 비닐에 담아 세워둔다. 묵은 꽈리고추 하나는 무른 걸 골라내고 뒤에 둔다. 양배추는 어제 곁님이 잘라놓아서 넘어간다. 당근 자리도 휑하다. 콩나물은 다 나가서 텅텅 빈다.
빠진 물건이 들어와야 하는데, 명절 뒤에는 시장도 쉬고 가게는 조용하다. 매장을 돌며 빠진 물건을 당기고 일을 끝냈다. 집에서 가게 나물 손질 걱정만 하기보다는 나와서 손질을 하니 마음이 개운하다.
해마다 명절에는 바빴다. 일꾼도 명절 음식 준비로 쉬지 못했는데 올해처럼 곁일꾼한테 맡기고 사흘 달아서 놀기는 처음이다. 아마 한가위는 풀을 베면서 잔을 치고 절을 했다고 집에서 제사를 안 지내는 집이 많은가. 예전에는 선물세트도 솔솔 팔았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오고 가는 사람이 덜한가. 어쩌면 깔끔하게 돈으로 주는 일이 늘어나지 싶다.
날것은 다 팔아야 남는데 손질하고 줄어든 만큼하고 버린 만큼은 잃은 몫이다. 포장지가 들고 내가 손질하는 품도 있는데, 남는 장사인지 가끔은 셈이 안 된다. 다달이 나가는 가겟삯만 좀 깎아주면 짐이 주는데, 시간이 흐르는 만큼 사람을 써야 쓰니 품삯만 볼 적에는 크지 않은데 처음 왔을 적보다 장사가 덜 되니 갈수록 버겁다. 앞으로 한가위를 몇 철이나 보낼까. 나물이 무르듯이 우리 일도 무르고 곪지는 않는지. 나아지기나 할까. 나물도 운다. 나온 김에 내 머리도 손질한다. 머리끝을 조금 손질했는데 개운하다. 처지지 말고 하늘을 보고 자꾸자꾸 마음을 끌어 올리자.
2022. 09. 12.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