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38] 아직 모르는구나
목요일이 가장 조용한데 바쁘다. 이틀치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점심때가 지나도 끝내지 못했다. 도서관 강의를 듣기로 한 날인데, 지난주는 첫날인데도 깜빡했다. 오늘은 벼르지만, 마음이 바뀐다. 밥을 안 먹고 간다면 늦지 않게 닿는데 한 통 받은 전화로 찜찜했다.
어느 곳에 내 글이 두 꼭지 실릴 차례다. 마감날이 지난달 끝인 줄 알았는데 이틀 지났다. 내 셈은 끝날이니깐 닷새 당겨서 일요일쯤 보내려고 달력에 별을 셋이나 그려 놨는데 처음부터 마감을 잘못 알았다. 누리글(메일)로 청탁서가 왔다. 누가 ‘제때 안 보내면 다음에는 청탁 안 한다’는 말을 얼핏 들었다. 끝날까지 틈을 준다지만 저녁에 보낸다고 말했다. 도서관엘 갔다가 네 시에 마치고 보내도 넉넉하다. 그렇지만 말을 안 지키는 사람이 되어 마음이 무거웠다.
이런 일이 있을까 봐 미리 보내려 했다. 시집에 실린 글을 보냈더니, 새로 쓴 시를 보내야 한단다. 게다가 나처럼 바로 보내지 않는다고 했다. 마감 며칠 앞서 낸다는 말을 듣고 영글게 한다고 한 일이 이 노릇이 되었다. 보낸 뒤 아는 분한테 날짜를 넘겨서 죄송하다고 했다. 그러다가 시집에 실릴 글 몇 골라 보낼 곳이 있다는 내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아직 모르는구나, 시집에 실린 글은 신작시로 내면 큰 결례”가 된단다. 한 번도 내놓지 않고 시집을 꾸려도 시집이 나오면 그 글을 보내주는 일이 어디 있냐고 한다. 시집에 실린 글을 내어도 되는지 물어보고 냈지만, 그건 아니라니. 내 생각은 그 모임에는 딱 한 분께만 드려서 다들 모른다. 책에 실리면 그 책을 받는 분이 처음 읽을 뿐이라고 생각만 했다.
아, 이래서 시집을 내고 다음 글을 낼 글이 있어야 하는구나. 공모전에 크게 뽑히면 이곳저곳에서 청탁이 들어와도 글이 없어 내지 못하고, 내더라도 작품보다 떨어지면 청탁이 안 온다는 말을 하는구나. 실컷 써서 내놓은 다음에 시집으로 엮어도 되겠구나 싶고, 시집을 낸 뒤에 쓴 시는 다음 시집을 엮을 때까지 어디이든 내놓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깨진다. 책으로 내려면 고치고 또 고치는데 틀린 글이 떠돌아다니지 않게 할 생각이었다.
이 일로 걱정하는데 쪽글이 왔다. 어느 잡지에서 청탁이 때마침 왔다. 이 일을 어쩌나. 또 ‘신작시’를 보내라고 적었는데, 시집에 낸 시도 되냐고 여쭈고 싶지만, 꾹 참았다. 아까 그분 말처럼 잡지사를 우습게 생각하는 줄 알려나. 한 군데 더 내야 하는데, 물어보았다. “정 낼 시가 없으면 시집에 실린 글 내도 되지만 이참에 시를 한 편 쓰니깐‘ 써 보란다. 그러면서 누구는 청탁이 들어오면 다 받아들이니깐 청탁이 많이 들어온단다.
어쩐지 몰리니 바쁜 시인이 된 듯하다. 시집을 한 권 내어도 이제부터 제대로 배우고 써야 한다. 아직 다듬지도 않고 모두 어설프니, 다듬어도 그렇고 첫 시집에 나간 글보다 훨씬 나아지고 달라야 하고 달라지려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써 보고 책을 읽고 글힘을 길러서 쉽게 읽히면서 깊이가 있고 밝고 맑아 읽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글을 쓰고 싶은데 걱정이다. 오늘 잠 또 다 잤다.
2022. 09. 22.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