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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삶 39] 짜증이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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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39] 짜증이 사라지다

 

어제는 온통 먹구름으로 무겁고 까만 마음이더니 조금 갠다. 어제 큰딸한테 “영어를 모르네, 냄새가 나네.”’ 같은 온갖소리를 들었다. 그저 지나가며 한 말이라지만, 좀 아니라고 느꼈다. 곁님이 “할머니한테 냄새가 나도 모두 냄새난다는 말은 안 하잖아.” “그렇게 말하면 그때 바로잡아 주어야죠. 언니, 그러면 안 된다 하고, 당신도 따끔하게 말해야지.” 때를 놓쳤지만 마침 뛰러 간 사이 우리끼리 흉을 보았다.

 

“나도 돈이 있어야 한다, 우리 사위한테 점수도 따야지.” 하고 말한 탓인지, “자 용돈이다.”하면서 곁님이 돈을 준다. 얼씨구 좋다 싶어 싹 닦아 넣는다. 모아서 딴 통장에 넣으려고 아무도 모르는 자리에 치워 두었다. 작은딸이 이제 안동으로 간다. 이 돈 십만 원을 꺼내서 주니 “엄마 돈 없잖아, 엄마 써.” “그래도 받아.” 끝내 안 받는다. 갸륵하고 고맙고 사랑스럽다.

 

이제 큰딸과 둘이 남는다. 작은딸을 역에 태워 주고 머리를 손질하고 오니 큰딸이 집에 왔다. 문을 여니 파스 냄새가 훅 난다. “웬 파스 냄새지.” “아, 오늘 많이 뛰어서 다리에 뿌렸어. 냄새가 그렇게 많이 나?” “문 여니가 확 나는걸.” “내가 문밖에서 뿌리고 들어왔는데 나네. 창문 열까?” 큰딸이 어쩐지 나긋나긋하다.

 

저도 어제는 말을 잘못한 줄 느낀 듯하다. 그럴 때면 작은딸한테 찰싹 달라붙더라. 이제 가고 없으니 나한테 부드럽게 말을 거는구나. 슬며시 웃음이 난다. 또 내가 애한테 넘어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큰 녀석이 귀엽게 군다. “꽈리 고추 갖고 왔는데 먹을래?” “응.” 나는 어제 있던 일을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니 된장찌개 먹고 싶다더니, 저녁에 끓일까?” “그래. 엄마.” “소고기 좀 넣을까?” “아니, 두부하고 파하고 버섯만 넣어서 끓여 줘.” 마침 아침에 나물을 손질하고 실파, 표고버섯, 홍고추, 청양고추를 갖고 와서 씻어 놓는다. “몇 시에 저녁 먹을래?” “6시쯤 먹자.” 된장 끓일 나물을 씻어 놓는다.

 

아까 우리끼리 있을 적에 한 말이 걸린다. “자는 기가 좀 죽어야 돼. 기운은 좋은데 너무 똑똑한 척하잖아.” 하고 곁님 앞에서 한 말을 지우고 싶다. 우리 엄마 말처럼 앞으로 아이들한테 섭섭한 일이 자꾸 일어나는데, 이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그래도 내가 손을 먼저 내밀고 품어야지.

 

어서 짝을 만나 시집을 갔으면 싶지만, 내 마음대로 할 일이 아니다. 그나마 달리기에 푹 빠져서, 또 마음이 밝아서 좋다. 초등학교 다닐 적에는 달리기를 늘 꼴찌를 하던 아이인데, 하루에 육칠 킬로미터를 달린다. 사람 일은 알다가도 모른다. 삐쭉거리는 말이 제 짝을 만나고 제 아이를 낳으면 달라질지 모른다. 길들기도 하고, 철이 늦게 드는 마음이거니 여긴다. 이다음에 내가 사라질 때면 어쩌면 이 아이가 나를 더 떠올려 줄는지도 모른다. 그래, 내가 품어야지.

 

가깝게 지내던 동생이 떠나가고 어제까지 엄마 가슴 찌르는 말을 해서 하룻밤을 어떻게 같이 지낼까 하고 생각했다. 큰딸도 이런 생각을 했을까. 막상 둘이 있으면 귀엽고 참으로 똑똑한 아이인데 가끔 밖에 나가면 톡톡 침을 놓는 버릇은 고치라고 틈 봐서 말해야겠지. 그래. 자꾸 가르쳐야지. 내가 한 말을 바로 받아서 써먹지 않도록 나도 말을 삼가야지. 나이가 찼는데도 보는 대로 듣는 대로 따라하는 듯하다. 내가 더 글길이 나아져서 다시는 엄마한테 함부로 말하지 않게 더 애써야지. 밝게 웃고 말하니 짜증이 사라진다. 짜증이 발을 못 붙이도록 웃음을 불려야겠다. 된장을 끓인다. 큰딸은 꽈리고추를 볶고 표고버섯을 볶는다. 부엌에서 반찬을 하면서 어젯일은 말끔히 씻는다.

 

2022. 09. 12.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