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작은삶 41] 해바라기

URL복사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41] 해바라기

 

꽃 가운데 가장 큰 꽃이 해바라기 같다. 낮에는 따가운 햇살을 받아도 해만 바라본다. 캄캄한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되면 또 해를 보며 활짝 펼치고 하나같이 한쪽으로 꼿꼿이 섰다. 노란 해가 풀에 내려앉은 듯하다. 해바라기꽃이 노랗지 않고 빨갛다면 어떨까. 모든 꽃이 그러하듯이 유난히 커서 해바라기하고 이글거리는 불타는 붉은 해를 오롯이 닮았다면 우리 마음을 사로잡을까. 이 많은 해바라기꽃이 저를 보러 오라고 해를 보며 외치고 심부름하는 바람이 가슴팍에 문을 두드린다.

 

멧골에 들에 저절로 피어난 꽃을 나는 좋아한다. 이쁘거나 못나거나 절로 자란 풀꽃이 곱다. 이 한 철 가꾸어 놓은 해바라기꽃 또한 곱다. 숨이 턱턱 막히고 팔이 따가운데 꽃잎은 싱싱하기만 하다. 잎으로 감싼 몸을 이제 막 펼치려는 꽃도 있고 한껏 어깨를 둥글게 펼친 꽃이 있다. 해를 좋아해서 둥근가. 햇살이 닿은 곱던 수술이 딱딱하게 씨앗으로 둥글게 가지런히 여문다. 가운데부터 둥글게 별을 그리고 차츰차츰 더 넓게 피다가 여문다. 나비가 꽃에 앉았다. 찾아 든 나비는 해바라기와 닮은 옷빛이다. 나무도 아닌 풀이 이렇게 높이 자라고 넓은 잎이 온마음을 모아 꽃한테 잎손을 모은다.

 

꽃가루가 이파리에 쌓였다. 곁을 지나는 내 옷에도 노랗게 묻었다. 털어도 털리지 않는 꽃가루가 채로 친 듯 곱다. 구름이 끼고 비바람이 괴롭히며 밤새 오지 않아도 기다린다. 맑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이 내려오고 은빛 달님도 보면서 긴 밤을 보냈으랴. 바람을 따라온 사람 숨결을 마시며 풀벌레 노래에 새 노래를 들으며 아이들처럼 무럭무럭 자랄 테지.

 

배고픈 지난날에는 알알이 박힌 씨앗이 우리 입을 즐겁게 해주었다. 묵직한 씨앗이 여물어 무거우면 고개만 숙일 뿐 해를 바라볼 때와 고개를 숙일 때를 아는 해바라기도 생각이 다 있다고 느낀다. 사람만큼 자라 고개를 빼고 꼭 누굴 찾는 듯하다. 하나같이 한쪽으로 본다. 꽃잎으로 감싼 몸을 활짝 보이는 해바라기가 우리를 보는지 사람이 보러 왔는지, 우리는 이 꽃을 보며 기쁘고 내가 내쉰 즐겁던 숨이 해바라기가 마시고 단단히 여물어 간다.

 

오늘도 홀리듯 오기를 잘했다. 꽃이 내 마음을 톡톡 두드리고 나오고 싶어할 때를 이제는 놓치고 싶지 않다. 한 열흘 머물다 간다지만 내 마음이 맞을 적에 들꽃을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가을 단풍꽃이 피기까지 꽃이 부르면 걸음을 하고 싶다. 가을을 물들이고 떠나는 풀꽃 마음을, 꽃이 말하는 이야기를 올가을에는 제대로 듣고 싶다. 아니 받아쓰고 싶다.

 

먼지가 펄펄 나는 마른자리를 탓하지 않고 해님 하나만 믿고 따르면 바람이 돕고 구름이 돕고 하늘에 별과 달이 한마음으로 꽃을 낳는 이 놀라운 일을 본다. 해마다 보이고 사라진 듯 사라지지 않는 이 목숨처럼 먼저 떠난 것들 사이에서 태어나는 꽃이 하는 말을 듣는다. 땅에 뿌리를 내려 흙을 붙잡아 주고 버티어 준 새싹이 하늘을 믿고 줄기를 올리고 많은 잎을 불러 일해서 작은 씨앗을 남긴다. 한삶을 씨앗 하나에 꼬박 바치는 꽃이 흙에서 와서 흙으로 왔다가는 자취를 작은 씨앗에 다 담는다. 이름처럼 해를 가장 사랑하는 꽃은 해님이 땅을 간질이면 또 고개를 내밀려고 깨어나는 꿈을 품고 있을 테지.

 

2022. 10. 01.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