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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삶 42] 수국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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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42] 수국 피다

 

아침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밖마루(베란다)에 갔다. 드르륵 열고 수국을 본다. 큰그릇에 옮기고 흙을 바꾸었다. 새싹이 올라오니 올해도 수국이 필 철이 다 지나갔다. 올해는 가지를 치고 야무지게 키우자고 생각한다.

 

우리 집에 진작 키우는 수국이 있기에, 얻어 온 수국을 나란히 심었다. 같이 놓으니 새로 싹이 올라온 수국은 잎이 탱글탱글한데, 옮겨심은 수국은 키는 크고 잎은 크지만 어쩐지 시들하다. 볼 적마다 물을 뿌렸다. 수국이 물을 좋아하니 자꾸 뿌려도 썪지는 않으리라 여겼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시들해 보이면 뿌린다.

 

어쩌면 그동안 꽃을 피우지 않더니 늦게 온 수국을 기다렸을까. 줄기 마디가 낮아 그릇에 턱이 닿는데 저보다 큰 수국 뿌리를 만난 뒤로는 잎이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어제 봤을 적에도 이만큼 컸던가. 밤새 컸나. 작은잎이 자꾸 나네. 가까이서 작은 알갱이를 보니, 꽃망울이다. 뒤쪽을 보니 꽃망울에 잎이 겹으로 났다. 잎끝에서 발갛게 물든다. 이가운데 꽃잎같은 큰잎 하나는 분홍빛이다. 아, 꽃이었다. 꽃이 피었다. “여보, 수국이 꽃이 피었어요.” 나는 소리를 질렀다.

 

수국은 흙에 따라 꽃빛이 다르다는데, 무슨 꽃을 피울까 무척 궁금했다. 분홍빛 수국은 꽃말이 뭘까. 찾아보니 ‘참다운 사랑’이라고 한다. 아, 두 나무가 만났기에 피운 꽃이니, 수국 꽃빛은 꽃말을 알고서 피어난 듯했다. 그동안 수국이 꽃을 피우지 않은 까닭을 알 듯했다.

 

집안에 갇혀서 피우지 못했구나 싶다. 바람이 마음껏 오지 못했다. 새소리를 듣지 못했다. 달빛 별빛을 만나지 못해서 피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이 꽃을 보기 앞서 새똥을 먼저 보았다. 새똥이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귀퉁이 바닥에는 언제 똥이 쌓였지. 까치가 밤마다 쉬어가는구나. 누구네 집인지는 모르나 옆집 창살에도 똥이 있고 틈으로 아랫집을 보니 벽을 타고 새똥이 범벅이다. 새들 소리를 듣고 풀벌레 소리를 듣고 뿌리는 물소리도 들어야 얘들이 마음을 여는구나.

 

흙에 심어만 놓았다고 꽃이 저절로 피지는 않았다. 나와 몸이 다른 수국을 키우자면 바람이 밤낮없이 찾아와서 쓰다듬어야 했다. 좁은 그릇에 담긴 흙에서 뿌리가 말없이 햇살을 받고 달빛을 먹고 별빛을 머금을 적마다 잎이 좋아서 맞장구로 춤추었겠지. 뒤늦게 온 수국 잎그늘에 기대며 깨어났겠지. 참 오랜 잠에 들던 수국이 내 앞에 고개를 내밀고 바람을 함께 마신다. 밝은 빛으로 나오기까지 먼 길이었을 테지. 빛에 스민 사랑이 눈뜨게 했겠지. 우리 집에서 가을을 만나 바람마저 떨고 갈 내음과 해님이 눈이 멀 만큼 눈부신 꽃 피워 보렴. 나는 누구를 기쁘게 한 일이 있는가. 앞으로 있어야지. 네가 말하는 듯하다. 수국이 꽃을 피웠어. 꽃을 피웠어. 아, 꽃을 피우고 나를 불렀구나. 내가 벌떡 일어나게 한 수국 너였구나.

 

2022. 09. 29.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