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44] 짜장면
몸이 말한다. 생각이 움직인다. 어떤 말이 맞을지 모르나 둘을 몸으로 느낀다. 몸이 말할 적에는 생각이 꾸물할 틈 없이 말했다.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내 안에서 자꾸 말하라고 떠밀리듯 했다. 내가 받아들일 틈도 없이 몸이 먼저 입밖으로 내지만, 몸은 뭔가 눈치를 챘다.
신을 신으면서 나도 모르게 “오늘은 자꾸만 짜장면이 먹고 싶지.” 하고 뱉었다. 마침 볼일을 보고 나오는데 아는 분이 “버스 타는 데까지 좀 태워 줄 수 있어요?” 하고 묻는다. 버스 타는 곳에 내리고 건널목을 건너면 지하철 타는 곳에 한 분을 내리기로 했다. 차를 타고 “오늘 짜장면이 자꾸 먹고 싶어요. 괜찮으시면 우리 먹을래요?” 했더니 좋아한다. 차를 몰고 나왔다. 넓은 이층 창가에 앉았다. 햇살이 들어 따뜻하다. 창가에 닿을 듯한 나뭇잎이 노랗고 붉게 물을 들인다.
짜장면을 먹으러 왔으니 나는 짜장면을 시켰다. 나이가 여든이 훌쩍 넘으신 분은 곱빼기를 시킨다. 종지 그릇에 두 숟가락쯤 담긴 밥이 나왔다. “밥 나올 줄 알았으면 곱빼기 시키는 게 아닌데.” 하신다. 나는 그릇을 싹 비웠다. 짜장면에 소고기가 들었대서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어르신은 국수만 건져 먹는다. 나무젓가락이면 덜 미끄러울 텐데 건더기가 잘 뜨이질 않았다. 그릇을 비우고 창밖을 보는데 어르신이 자리에 없다. 밥을 먹다 말고 밥값을 내러 갔다. 내가 살려고 가자고 했는데. “다음에는 제가 밥 살게요, 밥 먹은 김에 차도 마셔요. 제가 살게요.” 했다. 밖으로 나와 건널목 건너 찻집에 갔다.
며칠 앞서 마신 생강차는 뒤끝이 매워 목이 따끔했다. 오늘은 대추차를 마신다. 달고 짙은 물을 몸이 찾는가. 또 몸이 하는 말에 따랐다. 어르신인 임 선생은 올해 나이가 여든일곱쯤 된다.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 나한테 전화기 ‘용량’을 묻길래 ‘내 파일’을 찾아보니 다 찼다. 곧 사진도 안 찍힐 판이다. 휴지통을 지우고 카톡으로 받은 영상을 몇만 지웠는데도 15% 내려갔다. 다른 카톡도 ‘나가기’ 안 하고 ‘설정’에서 ‘대화내용 삭제하기’를 일러준다. 내가 알려주면 몇 개 골라서 ‘삭제’를 하고 다시 자리를 넓힌다. 내 자리와 나란히 두고 보니 ‘문서, 오디오 파일, 이미지’가 많다. 담은 사진보다 받아서 다 찼다. 단톡을 보여주는데 한참 찾는다. 딸아들방, 딸방, 모임방 이렇게 셋이 흩어졌기에, 찾기 좋게 앞자리에 [단톡]이라 넣어 주고 위에 놓았다.
건널목을 건너는데 손을 꼭 잡고 아들딸 단톡방을 보여준다. “오늘 내 생일이라고 아들딸 한테 축하 받았지만, 그냥 집에 갔으면 섭섭할 낀데, 정화 샘이 밥 먹자 해서 얼마나 반갑던지. 안 그랫으면 많이 쓸쓸했지 싶어요.” 한다. “서샘, 임샘이 오늘 생신이래요. 우리 진짜 짜장면 잘 먹었어요. 어쩐지 오늘따라 짜장면이 그렇게 먹고 싶더니, 생신이었대요.” 나는 앞서가는 서샘한테 큰소리로 말했다.
뒤늦게 배우면서 참 젊게 사신다.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기운이 돌아 나는 볼 적마다 배우는 일이 사람을 이렇게 몸을 새롭게 하는 줄 느낀다. 카톡 정리로 밥값을 더 했다고 좋아하시던 임 선생님. 다른 사람한테 ‘용량’, 그러니까 ‘자리’를 내주듯 마음 씀씀이가 넉넉하다. 나이 많다며 물러나고 아버지 같다. 아흔을 코앞에 바라본다지만, 나이가 많아도 배움과 깨끗한 마음은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비슷한 듯하다. 몸은 이 마음을 알고 느닷없이 ‘짜장면’을 먹자고 했구나. 세 사람만 따로 밥 먹은 적도 없는데 말이다. 돌아보면 내 뜻과 다르게 알고 움직이는 바람 덩어리가 있거나 내 몸이 오롯이 느끼는지 모른다.
2022.10. 25.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