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46] 해뜨는 새벽
이레가 지나도록 절룩거린다. 발을 디디면 무릎이 기우뚱 쏠린다. 이대로 숲을 오르기엔 안 되겠고 숲은 가고 싶다. 930미터 감악산에 해돋이를 보러 간다. 차로 올라 가면 조금만 걸으면 된다. 새벽 네 시에 나섰다. 새해도 아닌데 해돋이를 보려고 차에서 자는 사람도 있다니 차가 밀리지 않게 서두른다.
새벽길이 캄캄하다. 앞차 꽁무리 불빛하고 앞을 밝히는 불빛이 어둠을 뚫는다. 안개가 자욱하다. 달릴수록 바깥이 춥다. 7도이다. 여섯 시에 닿았다. 어둑하지만 맑은 하늘이다. 구름띠 너머 발간 빛이 살짝 비치니 곧 해가 솟아오를 듯하다. 차를 세우는 동안 구름띠가 곱게 물든다. 바다인지 산인지 헷갈리는 너머는 샛노란 빛이다. 바람이 찬데 놓치지 않으려고 빨리 걸었다. 무릎이 덜컹한다. 겨우 꼭대기에 올랐는데, 이곳이 아니란다. 돌계단을 내려와 숲으로 간다. 벌써 저만치 따라갈 걸음인데 오늘은 무릎이 말썽이다.
이러다가 해뜨기를 못 보겠다 싶어 마음이 탄다. “먼저 가서 사진 찍어요.” 아무래도 오르기를 그만둘까. 섰다가 폭 쌓인 산을 뒤덮은 구름바다를 본다. 저 구름 밑에는 우리가 지나온 안개가 자욱할 테지. 더 빨리 걸어야 하는데 구름이나 구경한다. 곁님 팔에 꽉 잡고 기댄다. 높이 올라가면 탁 트일 듯한데 걸음을 멈춘다. 여기도 해맞이하는 곳이다. 수평선을 이루는 빛깔을 뚫고 하얀 해가 올라온다. 붉고 바알간 빛에 노란빛이 겹겹이 올라오는 해가 눈부시다. 저 멀리 저 작게 보이는 해가 뿜는 빛이 이렇게 세다니. 눈이 멀 듯하다. 까만해가 겹겹으로 보인다.
하얗게 뜨는 작은 해가 수평선처럼 긴 띠를 이룰까. 아침 구름옷을 곧 물들이는데, 구슬처럼 작게 보이는 해와 내가 선 자리가 얼마나 먼데 저렇게 눈부실까. 지나간 봄에도 멧골에 떠오르는 해를 보았지만 컸다. 해넘이처럼 붉었는데 더 높은 자리라서 그런가. 하얗게 빛난다. 떠오르면서 찬찬히 걷히는 반반한 아침노을은 어디로 갔을까. 밑으로 펼쳐넣은 구름도 골짜기를 고르게 채우고 아침노을도 고르게 흐르는 일이 새삼스럽다.
자로 잰 듯 반듯한 아침노을, 구름에 올라서서 썰매를 타고 싶은 하얀바다, 바람이 깨어나기 앞서 그림을 그렸다가 천천히 가는 것들. 멈춘 풍력발전기 세 날개가 우두커니 구름바다를 뚫고 나온 꼭대기를 바라보는 듯하다. 밤을 밝히듯 달은 저쪽 하늘에 하얗게 있는데 날은 새고 해는 어느새 껑충 나온다. 이 넓은 하늘에 달랑 하나 떠서 풀꽃나무에 아침밥을 준다. 막 떠오르자마자 따뜻하다고 느낀다. 풀꽃이 아침이슬에 촉촉이 목을 축이고 해를 받으려고 한다. 저 멀리 해가 뭐라고 했길래 이슬은 사라지고 구름바다도 물러갈까. 자국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구름바다는 또 만나자고 헤어지면서 말할까. 둥근 것들은 돌고, 당기고, 안개와 구름은 모였다 흩어지면서 우리한테 똑같은 말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보여줄까.
힘차게 떠오르는 해를 보니 기운이 해처럼 솟는다. 저 불타는 해님이 참 많이 나누어 주네. 나도 이 기운을 몸으로 보내 다스려야지 싶다. 삐걱거리는 무릎이 자리를 바로 찾으면 곁님 말대로 자전거도 타야겠다.
2022. 10. 16.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