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48] 나뭇잎
여름내 푸르던 나뭇잎이 울긋불긋 물들었다. 꽃처럼 나뭇잎도 며칠 확 물들고는 찬바람에 후드득 떨어진다. 떨켜는 잎을 놓아 버리고 나무에 가지가 앙상하다. 우러러보면 힘줄처럼 파란 하늘에 뻗었다. 떨어진 잎은 멀리 갈 생각이 없는지 바닥에 떨어져 차곡차곡 쌓인다. 갓 떨어진 잎이 빨갛고 노랗고 주황빛으로 물감을 바른 듯 곱다. 나는 몸을 구부리고 잎을 줍는다.
은행잎 다섯 왕버들잎 열쯤 주웠다. 너무 고와서 돌에 얹어 보았다. 햇빛에 두니 더 붉고 노랗다. 벌레가 갉아먹은 잎줄기가 보이는 나뭇잎을 책에 끼워 두었는데, 이 고운 잎도 끼우려고 종이에 싸서 가방에 넣어 집에 왔다. 두꺼운 책을 꺼내 끼우려고 꺼내니 낮에 보았던 나뭇잎이 아니다. 그 붉던 잎은 우중충한 나무빛을 띠고 노랗던 빛도 어디 가고 나무빛 금이 뚜렷하다. 가장 곱게 떨어져 숨결이 아직 붙었는데 내가 이 빛을 빼앗았다.
나뭇잎은 나무 밑에 떨어져 마른 몸으로 나무를 또 돌본다. 그 자리에 떨어져도 바람과 해를 받아 물을 깊이 들이는 틈일 텐데, 자리를 옮기니 빛을 잃었다. 단풍나뭇잎은 그 빛 그대로 있지만 아직 곱기만 한 촉촉한 잎이 그 자리를 떠나니 빛이 죽었다. 생생하던 나뭇잎을 내가 주워 오지 않았더라면 며칠은 고울 텐데, 말라도 이만큼 어둡지는 않을 텐데. 빛을 내가 앗아버린 듯해서 잎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뭇잎을 잡고 빙글빙글 돌리고 냄새만 맡는다.
이 가녀린 나뭇잎이 뜨거운 여름 햇볕을 견디다니. 하루만 버티어도 땀이 배는 우리는 몇 벌이나 입었는지. 비바람도 거뜬히 견디면서 바지런히 나무를 돕던 잎이 이제 나무가 떨구면서 준 빛일 텐데. 내가 그 짧은 빛을 훔쳐버렸다. 피고 지고 말없이 일을 마치고 떨어질 때를 아는 나뭇잎이 아닌가. 먼먼 나날 처음 우리 몸을 가려주던 고마운 잎이 겨울을 맞이하는 나무만 생각하기로 마음을 돌리듯 떠나는 생각이 깊다.
가지에 매달려 바람과 춤추고 일하다가 이제는 뿌리를 따뜻하게 덮고 풀벌레 보금자리가 되어 준다. 바람이 내려앉고 햇빛이 내려앉아 반짝거리며 흔들던 나뭇잎에 깃든 숨결은 또 어디로 갔을까. 바람처럼 살다가 땅에 살려고 곱게 물들일까. 나무가 물들였는지 가지가 물들였는건지 잎은 말이 없다.
흙빛으로 바뀌어 버린 잎을 건들면 부서진다. 너무나 쉽게 흙으로 돌아간다. 흙은 쉬었다가 새싹으로 눈을 트고, 봄이 깨우면 햇빛을 쫓으며 거듭나는 그림을, 가을이면 나뭇잎이 움직이는 그림을 그린다. 떠날 때 가장 곱게 빛을 품고 가는 나뭇잎처럼 그날이 내 삶에 으뜸이 되는 날이 때이면서, 또 다른 삶으로 건너간다는 줄 나뭇잎을 보면서 새삼 느낀다.
다 다른 빛으로 다 다른 모습으로 숲에 깃든 나무 나무로 우거진 숲이 우리를 보고 말한다. 가을이 남기는 가는 말을 귀로 본다. 잎새에 일던 바람은 그동안 어디에 갈까. 맴맴 돌면서 눈을 뜨라 할 테지.
2022. 11. 02.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