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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삶 49] 매천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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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49] 매천시장

 

“거기 불났따고 TV에 난리 났는데 너 집은 괴안나?”

“어디에 불 났대요?”

“모르는구나. 시장이라는데 불길이 어마해. 함 봐라.”

 

손언니 전화를 받고 TV를 켰다. ‘매천시장’이라는 글씨가 지나갔다. 누리글을 찾으니 불이 엄청나다. 곁님은 바쁜지 아직 모른다. 밤새 날벼락으로 뜬눈으로 보냈을 텐데, 우리가 가는 가게는 괜찮을까, 시장이 멈추면 어쩌지, 발을 동동거릴 사람보다 이 생각이 먼저 지나갔다.

 

사흘 뒤에 ‘시사’를 지낸다. 문중 살림을 이 사람이 맡기에 해마다 장을 보는데 오늘 미리 본다. 어제 불난 자리가 어떤지 궁금해서 나도 따라갔다. 시장이 워낙 커서 아무 일 없는 듯했다. 차가 빼곡하다. 비좁은 틈을 빠져나가는 사람도 많다. 우리는 8번과 52번 가게 앞에 차를 세우고 들어갔다.

 

바닥이 반질반질하고 넓다. 여기서 경매를 하고 한쪽으로 가게가 가득하다. 넓은 경매장 기둥과 기둥 사이로 맞은켠을 보았다. 가게는 타다 만 살림이 뒤범벅이다. 가게마다 과일이 새까맣게 타다 말았다. ‘119’라는 간판을 걸어둔 바깥쪽 한 군데만 불에 그을리지 않았다. 불이 붙었던 지붕은 떨어지거나 너덜너덜하다. 달랑달랑 붙었고 뚫린 천장으로 뿌연 빛이 비스듬히 밝힌다.

 

띠를 쳐 놓고 들어가지 못하게 사람이 막는다. 어쩌다 불이 났는지 알고 싶었다. 건너에 ‘과학수사’를 하는 하얀 옷을 입은 사람 둘이 건너온다. 이 넓은 자리에 사람들 목소리가 없다. 경매는 끝나고 물건을 옮기고 할 뿐 사람들 목소리가 나지 않는다. 한 아저씨한테 물었더니 ‘불난 사람한테 할 말’이냐고 한다. 저쪽 사람은 속까지 다 타고 이쪽 사람은 예전처럼 물건을 들이고 파니깐 물었다. 불탄 곳을 바로 보기에 마음이 쓰여 걸어가면서 곁눈으로 보면서 경매장이 너무 조용하다고 생각하고도 물었으니 부끄럽다.

 

탄내가 거의 나지 않았다. 다닥다닥 붙은 가게 지붕이 불에 잘 타는 물질 같은데 불을 빨리 끈 듯했다. 바람이 불길을 퍼뜨리더니 냄새는 빨리 걷어갔나. 우리가 산 감하고 사과하고 귤을 수레에 싣고 온 아저씨가 ‘가스가 터져서 불이 났’다는 말을 설핏 들었단다. 날이 추우니 가게마다 물건을 쌓아 놓고 쉬는 자리가 좁다. 자리에 전기를 깔거나 가스로 데울 철이다. 다닥다닥 붙으니 한 군데가 터지면 같이 붙는다. 까만 재를 보는 주인 마음은 어떨까. 받을 돈도 줄 돈도 다 타버려서 알 길이 없을 텐데. 막 나오는 과일을 잔뜩 들여 지게차에 쌓아 놓았을 텐데. 잃는 마음이 불이 남기고 간 자국에 고스란히 묻었다.

 

하늘은 아무 일 없듯이 먹구름 하나 없다. 기둥을 사이에 두고 타버린 자리와 안 탄 자리가 삶과 죽음을 보여주는 듯하고 천국과 지옥 같은 그림을 보여주는 듯하고 타는 일도 한때 사라지는 일도 한때 같다. 저 높은 곳에서 해가 빛으로 어루만져 주고 잘 키워 낸 과일도 목숨같다. 사람 기운으로 가득찼던 가게도 숨빛이 멈춘다. 다 다른 모습으로 자라고 숨을 쉬었던 가게에 왔던 것들이 재라는 그림자로 매천시장에 얘기를 남긴다. 물이 불을 껐지만 뜨거운 불을 끈 물은 또 어느 곳에서 불씨를 남길까.

 

2022. 10. 26.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