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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삶 51] 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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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51] 공해

 

어떤 모둠누리칸(단체 카톡방)에 몇 사람이 그림(이모티콘)을 올린다. 그런데 그곳에 올라온 글은 거의 안 본다. 나와 뚝 떨어진 이야기라 그런지 읽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그곳에서 빠져나오지는 못하겠고, 빨간 숫자만 지우려고 열어본다. 모둠칸(단체방)은 어쩐지 새로운 ‘공해’라고 느낀다.

 

작은딸이 꽃잔치(결혼)를 열기에 모둠누리칸에 카톡을 보낸 일이 있다. 작은딸 꽃잔치를 기뻐해 주는 이야기를 처음 볼 적에는 반갑더니, 어느새 이것저것 파는 알림글을 나한테 아침저녁으로 몇씩 보내는 언니가 있다. 며칠 꾹 참았다. 읽어 보지 않고 알림숫자가 거슬려서 열어 보는데 밤에 또 온다. 언니는 예전에 화장품을 하다가 이제는 몸에 좋다며 다른 것도 판다. 너무 달라붙듯 사라고 하니깐 싫다.

 

“언니, 내가 사야 할 적에 살 테니깐, 자꾸 보내지 마세요. 버거워요. 일하다가 알림소리가 나서 열어 보기도 벅차요. 좀 봐주세요.”

 

언니는 이 글월을 본 뒤로는 알림 카톡을 보내지 않는다. 마음이 좀 무겁지만, 말을 해야 하는 쪽이 나을 듯했다. 한쪽이 어떻게 버거운지 모를 수 있다. 어쩌다가 보내면 덜 할까 모르지만, 번거롭게 보내는 일은 그 언니 속만 드러난다.

 

카톡도 사람마다 다르다고 느낀다. 어떤 사람한테는 카톡으로 무엇을 알리려면 버릇없는 듯하다. 적어도 손전화 쪽글로는 보내야 할 때가 있다. 이제는 다들 손전화를 쓰지만, 다들 와이파이를 쓰지는 않으니, 카톡으로 보내면 모르거나 못 받는 분들이 있다. 카톡은 쉽게 보내고 쉽게 받는다고 하지만, 그만큼 무언가 없는 듯하다.

 

우리 큰오빠는 친형제 이야기를 알리는 카톡방으로 부르면 나가고 또 나가고 한다. 아마 이런 마음일까. 조금 다르지 싶어도, 큰오빠는 카톡 공해를 나보다 견디기 더 힘들어하는 듯싶다. 우리가 쓰는 하루에 자잘한 수다가 나쁘지는 않을 테지만, 이보다는 넌지시 알리고 작게 나누는 말 한 마디가 한결 이바지하리라 본다. 조용히 있고 싶은 마음이랄까. 좀더 참한 말을 하고 싶은 셈이랄까.

 

내 모둠누리칸(단체 카톡방)을 헤아려 본다. 우리 집부터 친구나 글동무로 나눈 자리가 열세 곳이다. 나는 이 많은 곳에서 우리 집 자리만 마음놓고 쓴다. 열두 곳은 알림소리만 받는다. 한꺼번에 여럿이 알리기에 좋은 자리일 테지만 무엇을 그렇게 자주 자꾸 알려야 할까 모르겠다. 좀 느리더라도 손으로 종이에 글을 적어서 알릴 수 있을 텐데.

 

2022. 11. 26.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