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작은삶 54] 남동생

URL복사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54] 남동생

 

금값이 스무 해 앞서보다 여섯 곱이나 올랐다. 막내네 두 아이가 돌인데 반지 하나 못 받았다길래 한 돈 장만했다. 둘을 한꺼번에 치르자니 짐이 크지만 우리는 따로 이십만 원 더 넣는다. 하룻밤 묵을지도 몰라서 짐을 챙겼더니 가방이 무겁다. 그만 긴 끈이 뚝 떨어진다. 손잡이를 팔에 걸고 들기로 하고 서울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거꾸로 보는 자리에 앉는다. 앞으로 달리는데 뒤로 지나가는 모습을 본다. 도심을 빠져나가는 동안 천천히 달리지만 빠르다. 붉게 물든 담쟁이가 타고 올라간 높다란 담벼락을 본다. 캄캄한 굴을 지나는가 싶더니 호수가 나온다. 가까운 나무보다 멀리 있는 가을물이 든 나무가 잘 보인다. 칸칸이 물고 달리는 기차는 아늑한 쉼터 같다. 창밖을 보는 사람은 적다. 다들 고단한 몸을 쉬는 듯하다. 바퀴가 빠르게 굴러가는 쇠소리와 덜커덩 흔들리는 소리에 이따금 귀가 먹먹하다. 동생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기차가 가운데 달리고 해와 달은 마주한다. 두 시간 달리는 기차에서 책을 읽으려 했는데, 길을 나서다가 가방 끈이 떨어지는 바람에 책을 빼놓고 나왔다. 쪽잠을 자다가 멍을 때린다. 서울길이 멀다고 여겼는데 어느새 서울에 닿는다. 바로 밑 동생이 이 기차에 탔을까, 쪽글을 넣어 보니 동생은 9호 차에 있다. 나는 15차에 있었다. 덜컹거리는 칸을 건너간다. 어두운 옷차림이 많고 다들 입가리개를 하고 앉았으니 알아보기 쉽지 않다. 동생을 불러도 못 들었는지, 아무 대답이 없어 지나갔다. 좌석번호를 묻고 다시 돌아오니 조금 앞서 내가 물어본 사람이 동생이다. 둘은 한 칸 건너 빈자리에 같이 앉는다. 서울길에 나란히 앉으니 이제서야 마음이 놓인다.

 

동생을 놓칠세라 팔짱을 낀다. 우리 남매가 이렇게 살가웠던가. 너무나 살갑게 팔짱을 끼고서, 마치 길을 모르는 아이처럼 동생을 꼭 붙잡고 간다. 혼자 왔더라면 내려서 나가는 길이며 지하철 타는 일이 서툴어서 헤맸을지 모르는데, 마침 같은 기차를 타서 기뻤다. 우리가 오는 줄 아는 둘째 오빠는 갑자기 못 온다. 일이 늦고 깐깐한 사장이 눈을 부라린다며 틈을 내지 못한다. 안 그러면 올 사람인데.

 

인천 가는 지하철을 탄다. 갈아타야 할 때까지 동생은 인천 가는 길을 알려준다. 버스를 타고 가는 일보다 서울로 와서 지하철을 타는 일이 시간이 적게 들고 덜 힘들지 싶다. 버스를 타면 멀미가 나고 일을 본 뒤 돌아오는 차도 없지만, 서울로 전철을 타고 돌아오면 시간마다 대구로 가는 기차가 있다. 동생은 꼭 오빠처럼 가르쳐 준다. 누나인 내가 처음 서울역에 왔다는 말에 웃기도 한다. 처음은 아닌 듯하지만, 예전엔 온 듯도 하지만, 처음인 듯도 하고 나도 모르겠다.

 

막내네 집 앞에서 살짝 쉰다. 많이 걷는 길이 아닌데, 예전에 삔 무릎이 또 찔끔한다. 동생이 내 가방도 들어준다. 다시 팔짱을 끼고 걷는다. 어린 날 아버지 물을 심부름하고 서로 앞서려고 옷을 잡아당기던 일이 떠올랐다. 우리가 어느덧 쉰을 넘어가지만, 마음은 어린 날 모습이 그대로 같다. 머리가 허옇게 세고 나이만 들 뿐이지, 마음은 맑게 뛰놀던 어린 날처럼 동생은 낯선 길을 오빠처럼 길라잡이한다.

 

세 살 터울인 동생과 팔짱을 끼고 걷는데 남들은 우리가 남매인 줄 알까. 밖에서 만난 사람인 줄 알거나, 부부로 보거나 딴눈으로 볼지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동생 어깨에 떨어진 비듬을 툭툭 털어 준다. 어린 날 다투기도 많이 했지만, 수학여행 가는 날에는 둘이 손잡고 다니던 일이 떠오른다.

 

이제는 서로 집안을 꾸리고 바쁘게 살다 보니 멀어졌지 싶다. 가까이서 살갑게 팔짱을 끼고 막내네 가는 길이, 또 돌아오는 길이 즐거웠다. 홀가분하게 오빠와 두 동생과 함께 나들이도 하면 참 좋겠다. 오늘 동생 모습이 참하면서 새롭다. 어린 날에 티격태격하며 지낸 일이 다 녹고 이렇게 살갑다니. 오래오래 이렇게 서로 챙겨주며 지내기로 마음속으로 빈다.

 

2022. 11. 06.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