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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삶 57] 부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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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57] 부조금

 

꽃잔치(결혼식)를 마쳤다. 딸은 괌으로 떠났다. 괌에서 보내는 하루를 사진으로 보내온다. 딸아이 눈과 손을 거쳐서 저 너머 모습을 본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바닷가가 그림 같다. 구름이 물결치는 듯하다. 사람들이 헤엄치는 바닷물이 맑다. 물속으로 모래가 훤히 보이는 곳에서 놀면 참 신나겠다. 두 사람이 여기에 오기까지 숱한 사람들이 기뻐해 주었다.

 

꼭 올 만한 사람한테 모심글(청첩장)을 먼저 뿌렸다. 그리고 한때 만나 차도 마시고 밥도 먹은 사람한테 보내 보았다. 글동무한테도 보냈다. 누리마당에도 띄웠다. 우리 아이 꽃잔치(결혼)를 누가 말하면 고마웠다. 막상 날이 다가오니 못 오는 사람들이 돈을 보낸다. 이 꽃돈을 받지만 마음이 무겁다. 도리어 가라앉고 슬프다.

 

차라리 벌써 보낸 모심글을 까먹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들어오는 돈이 그동안 내가 쌓은 살가운 값일까. 꼭 오리라 꼭 하리라 여긴 사람은 안 하고, 뜻밖이라 여길 사람이 성큼 내고 온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나를 찾아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고맙다. 눈물이 글썽했다. 물이 닿으면 곱게 꾸민 얼굴이 망가진다기에 눈물을 꾹 참는다.

 

친척이 가장 크게 보탠다. 멀리서 달려와서 반기고 보탠다. 서로서로 형제가 가장 가까운 친척이더라. 큰일에 나서서 오는 사람도 형제인 줄 배운다. 어린 날 같이 놀고 함께한 일이 많았던 동무들도 버금간다. 친척이 더 많이 오는 잔칫날인 줄 알기나 한 듯 몸이 아파서 못 오거나, 일이 겹쳐서 못 오거나, 멀리 가서 못 오는 동무가 많다. 동무들이 사는 곳이라서 얼굴 볼 줄 알았는데, 동무들은 더 멀리 가버리거나 일로 못 온다. 한마을에서 뛰놀던 소꿉친구, 이제까지 함께 걸어온 벗들만 왔다.

 

집에 와서 받은 돈을 헤아려 본다. 적힌 이름하고 번호는 맞는데 돈이 삼십만 원이 많다. 딸아이 앞으로 온 이름을 따로 적어 보내니, 일터에서 보태는 봉투가 없다. 돈을 뺀 봉투가 사라진 셈이랄까. 온 사람이기에 안 적혀서 쉽게 찾았다.

 

가장 낮은 돈이 오만 원이다. 가장 큰돈이 백만 원이랑 오십만 원씩 했다. 쭉 훑어보니 올 사람들이 안 왔다. 따로 보내지도 않았다. 내가 한 사람인데 하지 않았다. 도움돈(부조)은 주고받는 거니까, 안 주고 안 받으면 될 테지. 그렇지만 내가 초대장을 했는데 없으니 마음이 얄궂다. 한때 몇 해씩 알고 지내던 사람도 그 끈이 다 되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잊어버렸을지 모르거나 요즘 너도나도 어렵다 하니 아끼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큰일을 치르고 보니, 내게 베푼 마음을 알 듯하다. 작은 돈으로도 내 마음을 사고 네 마음을 산다면 얼마나 싼값일까. 한꺼번에 일이 몰리면 한달살이가 휘청이겠지. 이제 우리가 이렇게 서로 나누며 함께 걸어가는 때이지 싶다. 마지 못해 보냈으면 어쩌나 싶던 미안한 마음이 한결 가볍다. 이 일로 더 가까워지는 벗도 있으니 큰일을 치르면서 이모저모 배운다. 앞으로 갚으면서 살아야지. 때를 놓치지 말고 마음을 보태야지.

 

2022. 12. 04.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