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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삶 58] 드디어 책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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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58] 드디어 책이 왔다

 

책이 온다는 쪽글을 받고 책맞이를 한다. 책 낼 적에 살피고 모아둔 종이를 버리고 책상을 닦았다. 책상 밑도 물걸레도 닦고 책꽂이에 올려둘 자리에 쌓인 먼지도 닦는다. 두 시가 훌쩍 넘자 문을 열어 봤다. 네 시가 되자 또 열어 보았다. 아저씨한테 전화하니, 삼십 분이나 한 시간 더 걸린단다. 어제 새벽에는 ㅎ 신문에 새책 알림글이 뜬다고 잠 설치면서 보고, 보고 나니 누리책집(인터넷서점)에 책이 안 떴다. 뜨기까지 얼마나 더디게 가는지, 이제는 책이 오는데 하루가 길다.

 

상자를 뜯어 책을 꺼냈다. 막상 펼치려니 또 떨렸다. 가슴에 꼭 안았다. 오돌토돌한 겉표지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냄새도 맡았다. 가운데 적힌 책이름을 만지니 도톰하다. 먹빛으로 살짝 솟은 글씨가 있으니 결이 살고 겉그림도 겉종이도 나무를 만지는 듯하다.

 

우리 집 수국이 새로 꽃을 피웠다. 자그마하지만 벌써 네 송이째. 책을 가까이 놓고 찍었다. 아스파라거스가 푸르게 수북하게 자란 잎을 당기고 봄부터 한 해 내내 꽃을 피우는 작은 보랏빛 꽃줄기를 당겨 책이랑 또 찍었다. 해가 넘어가느라 어둡다. 밝은 날 다시 꽃이랑 풀잎을 얹어야지. 다시 책을 쌓고 이리저리 틀면서 담아 본다. 그런데 책 하나는 시커멓다. 걸레로 닦다가 보니 끝종이가 밀린다. 이 책은 내게 주어야지. 나는 첫 장을 펼쳐서 ‘숲하루 작가님께’라 적고, “2022 가을 숲하루(김정화) 드림”이라 적은 뒤 도장을 찍었다. 시집도 내게 가장 먼저 주었다.

 

새로 낸 책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은 시집하고 비슷한 크기이다. 시집이 조금 좁고 높다. 글씨는 시집에 적힌 글씨보다 작다. 미리 여러 벌 되읽으며 손질했기에 책이 낯설지는 않다. 여는말을 읽고 뒤쪽을 넘겼다.

 

이제는 책을 냈다는 발간통보서와 책을 세 권을 보내야 한다. 꼭 책을 드려야 할 사람을 죽 적어 본다. 봉투에 주소를 먼저 적고 책에 이름을 적는다. 도장도 찍는다. 도장을 찍고 덮으니 도장밥이 발갛게 얼룩이 지네. 그래서 예전 책에는 도장을 찍은 자리에 기름종이를 덧대었구나. 얼룩지지 않게 쪽종이를 덧대고 뽁뽁이가 들어간 봉투에 담아 한자리에 모았다.

 

책을 줄 사람이 꽤 되지만 모두한테 줄 수 없다. 시집을 처음 내놓을 적에는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보냈지만, 이 책은 둘레에서 ‘사서 읽어 주세요’ 하고 여쭈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나도 내가 읽을 책은 사서 읽지 않는가. 서로 책을 주고받아도 좋으나, 서로 즐겁게 사서 즐겁게 읽을 적에 서로한테 이바지하고, 앞으로 새로 쓸 이야기를 담아낼 책한테도 낫겠지.

 

앞으로 누가 내 책을 사서 읽어 줄까. 내 책을 사서 읽어 주는 분들은 내 책에서 무엇을 얻고 누리고 받고 찾으려나. 날마다 숱하게 쏟아지는 책물결이라는데, 내 작은 《풀꽃》 책은 너른 책바다에서 잘 헤엄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책으로 묶은 글을 쓰는 동안 스스로 마음을 씻고서 어린 나날로 돌아가는 하루를 보냈다. 어릴 적 숲에서 살아간 하루가 어른인 오늘을 살림하는 바탕이 되었다.

 

대구에도 부산에도 서울에도 사람들이 참 많은데, 이 많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대구나 부산이나 서울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리라. 나처럼 멧골에서 나고자란 사람도 많으리라. 도시에서 살아가는 모두를 버티는 힘은 어쩌면 작은 풀꽃이 피어나고 나무가 서로 어깨동무하는 숲빛일 수 있다고 본다.

 

 

 

2022. 12. 10.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