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63] 따스하다
문 앞에서 작은딸을 보내고 들어오는데 신발 벗던 아들이 ‘따뜻하네’ 하고 폴짝 뛰면서 방으로 간다. 작은딸이 짝을 맺고 첫 설을 우리 집에서 쇠고 갔다. 하룻밤 자고 갔지만 남겨놓은 따뜻함은 크다. 우리는 둘이 있다가 애들이 오면 잠자리가 뒤죽박죽이다. 나야 책마루(서재)가 있어서 누가 오든 안 오든 아무렇지 않다만, 곁님이 늘 비켜준다.
작은딸이 짝을 맺은 한 달이 조금 넘는데 새사람을 마루에 재우는 일은 내키지 않았다. 우리 딸도 시집에 가면 잠자는 일을 걱정하는데, 사위도 우리 집에 오면 마찬가지이다. 아직 화장실 쓰기가 버거울 테니 큰방을 내준다. 큰방을 쓰던 큰딸은 아들 방으로, 아들하고 곁님은 마루로 하기로 했다. 어서 이불을 바꾸고 방을 치우려고 널어놓은 큰딸 짐을 닫는데 한바탕 날선 말이 오갔다.
큰딸이 불쑥 투덜거렸다. 곁님은 작은딸하고 사위가 왜 큰방을 써야 하는지 못마땅해 했다. 이 꼴을 보자, 갑자기 내 안에서 확 터졌다. 지난 섭섭한 일들이 한꺼번에 스쳤다. 곁님이 애들 앞에서 나를 깔보는 듯한 말은 안 하면 좋겠는데, 나를 깎아내리는 말이 언뜻 나왔다. 큰딸은 짐을 옮기면서 “빨리 가 줄게” 했다. 큰딸은 설에 대구 왔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표를 올 적에 미리 끊어놓곤 할 테지만, 마침 이럴 때 이렇게 말하니 얄밉다. 한바탕 내 목소리가 집안을 휩쓸었다.
딱 꼬집어 못마땅한 일이 아닌데 말 한마디에 셋이 나란히 뒤틀렸다. 곁님은 곁님대로 큰딸은 큰딸대로 나는 나대로 삐치느라 일이 크다. 작은딸이 곧 우리 집에 온다는데, 절을 받아야 하는데, 곁님이 잔뜩 뿔이 나서 절을 안 받겠단다. “뿔나도 나한테 내야지, 저녁 먹으러 오소. 오늘 절 안 받으면 이튿날 애들이 늦잠 자기 글찮아요.” “나는 이랬다 저랬다 못해. 몹시 언짢아 못 가.” 한숨을 쉬고서, 아들한테 “너희 아버지한테 살살 말해 봐” 하고 말했다.
나중에 얼핏 듣자니 ‘누나하고 둘이 풀었다’ 한다. 애들이 막 들어왔는데 속은 탔다. 애들이 갖고 온 짐을 받아 치우는 사이, 곁님도 차를 몰고서 이제 막 집 앞에 닿은 듯하다. 속으로 빙그레 웃었다. 아마 내가 속이 터진 까닭을 어림은 한 듯했다.
큰바람이 지나간 자리에서 새해 절을 한다. 우리가 먼저 받고, 언니와 동생하고 서로 맞절을 시켰다. 이제 모두 자리에 앉았다. ‘잘 살아’라는 한마디를 건네고, 뒷주머니에 미리 꽂아 둔 세뱃돈을 둘한테 따로따로 건넨다. 곁님은 처음이라고 사위한테 따로 하나 더 건넨다. 밥을 먹고 곁님이 가게에 일을 하러 나가자 애들끼리 재밌게 잘 논다. 이러다가 저희끼리 노래방을 간다. 큰딸하고 아들이 새사람(사위) 노래를 할 적에 입이 쩍 벌어졌다고 했다. 아, 오늘도 나는 새사람 노래를 듣지 못하네.
방을 어떻게 가르느냐 때문에 한바탕 일이 터지기도 하고, 또 이모저모 뭉치기도 한다. 애들은 놀면서 뭉치고 큰딸이 꼭두라고 따르네. 나는 큰딸을 다그친 일로 울렸지만, 그동안 쌓아 둔 짓눌린 마음을 둘 다 서로를 보며 풀기로 했다. 나는 큰딸을 보면서 고치고, 큰딸은 모난 엄마를 거울 삼아 고치자고 손을 잡고 ‘잘 하자, 잘 할게’ 하고 거듭 얘기했다. 처음과 끝은 아들 말처럼 따뜻했다. 아까 큰딸한테 큰소리를 칠 적에 큰딸은 작게 “저번 북토크에서는 고상하게 말하더니” 하고 혼잣말을 했다. 아, 그날 큰딸이 엄마를 잘 보았구나. 소리 꽥 지르며 한바탕 뒤흔든 일이 더 부끄럽다.
2023. 01. 25.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