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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삶 66] 서울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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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66] 서울 가는 길

 

2022년 12월 첫머리에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을 내고서 처음으로 서울에 간다. 책수다를 열기로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며칠 끙끙했다. 몸은 나보다 더 떨었는지 밥숟가락도 잘 들지 못했다. 더군다나 몸살이 나서 나들이에 마음을 쓰지 못했다. 머리가 다 풀어진 줄도 모르고 이틀 앞두고 머리손질을 했다. 딸한테 어떤 옷을 입고 갈까 묻느라 지쳤다. 얌전한 차림새를 하려고 하다가, 하루를 버티려면 등산화를 신어야겠구나 싶고, 옷하고 신이 안 맞는 듯하고, 가방을 메고 낯선 서울을 다니기엔 거추장스러울 듯싶고, 두툼한 겉옷과 등산화를 신는다.

 

세 시간 미리 가서 마음 추스르면 한결 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모 말에 서울이 춥다는데 너무 일찍 가서 떨면 어쩌나 한 시간만 늦추자고 차표를 보다가 가슴이 철렁했다. 대구서 서울 가는 표를 끊어야 하는데, 거꾸로 서울서 대구 오는 표를 살폈다. 마침 자리가 있어 표를 다시 끊었지만 까딱했으면 기차를 타고 들과 산에 쌓인 눈도 못 볼 뻔했다.

 

4호선을 타고 7호선을 갈아탄다. 갈아타는 곳을 헤매다가 지나가는 사람한테 여쭙고 다시 내려와 푸른띠를 따라 한참을 가고 또 가서 탄다. 미리 길을 보고 찻집도 봐 두었다. 건널목을 건너 찻집에 갔다. 위로 올라가니 자리가 꽉 찼다. 큰 책상 옆에 자리가 하나 났다. 짐을 풀고 늦은 점심을 빵하고 커피로 먹는다. 화장실에 가서 이를 닦고 머리를 매만진 뒤 자리에 앉아 내 책을 펼쳤다.

 

글이 눈에 잘 안 들어온다. 불빛이 붉어 마음이 흩어진다. 창쪽으로 보니 어떤 나이드신 두 분이 나란히 밖만 내다보고 아무 말이 없이 앉았다. 저쪽으로는 아줌마들이 여럿 모였다. 내 앞에는 노트북을 펼치고 책을 보는 사람도 있다. 시끄럽지만 조용하다. 갑자기 코가 나와 풀었다. 풀고 풀어도 코가 나온다. 검은 피까지 나온다. 이번 감기는 코가 목으로 안 나오고 어디에 숨었다가 나오는지 코가 많이 나온다. 아무튼 코를 풀고 나니 머리가 맑다.

 

아침에 오늘 책수다에 오지 못한다고 때를 놓치지 않고 말을 해야겠다면서 글월을 보내 주신 분이 있다. 긴 글월에 나를 드러내는 말을 빼고 그분 마음이 담긴 글자락에 밑줄을 그었다. 때를 봐서 사람들 앞에서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줄을 긋고 나니, 친구한테서 글월이 왔다. “네가 쓴 책 사서 천천히 잘 봤다. 이렇게 수수하게 쓴 글을 오랜만에 만나 즐거웠다. 쓰느라 애썼다.”고 하면서 오늘 책수다 자리를 잘 하라고 알린다.

 

처음으로 해보는 책수다인데, 두 분이 보낸 글월을 읽고서 마음이 조금 녹는다. 한결 푸근하다. 서울에서 일하는 어느 글벗은 내가 먹을 도시락을 챙겨 온다고 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못 온다는 큰딸이 늦어도 온다는 쪽글이 온다. 큰딸이 와 주는구나. 누구보다 큰딸이 온다니 기쁘다.

 

서울에서 마련하는 책수다에는 어느 누구보다 우리 큰딸한테 들려주고 보여주고 싶다. 엄마 노릇이 모자랐을 지난날이 마음에 걸렸다. 글을 쓰면서 우리 아이한테 부디 봐달라고 빌고 싶었다. 이제 손전화로 길그림을 켠다. 방배동에 있는 마을책집 〈메종인디아〉로 간다. 가볍게 걷는다.

 

2022. 12. 29.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