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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삶 67] 액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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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67] 액시야

 

아침에 늦잠을 잤다. 시계를 보다가 쪽글을 본다. 눈도 떨어지지 않는다.

 

“액시야 힘내라.”

“그래. 고마워. 오늘 늦잠 잤네. 그제 제사 지내고 어제 몸살 했더니, 눈 뜨니 8시다. 아, 늦었뿟다.”

“약 먹어라, 그냥 있지 말고. 우리 어제 영덕에 바다낚시 하러 왔다. 1박2일 하고 식당에 밥먹으러 왔다.”

“우와 좋으네. 재밌게 놀고 맛난 거 먹고 겨울바다 잔뜩 보고 와.”

“그래. 재밌다. 고기도 많이 잡았다.”

 

‘액시야’를 모처럼 들어 본다. ‘액시’는 경북 의성에서 시누이를 부르는 말이다. 내겐 언니인데 나는 말을 놓는다. 액시라고 부르는 언니는 나와 초등학교를 같이 나왔다. 다 어려울 적이지만 다른 사람보다 더 어려웠다. 반 아이들이 도시락을 한 숟가락씩 담아 나누어 주었다. 이때는 내가 작기도 했지만, 언니는 또래보다 키도 크고 얼굴이 참 예뻤다. 내가 고등학교 때 우리 사촌 오빠와 사귀더니 오빠가 졸업하자 바로 살림을 차리고 애를 낳았다. 어떤 때는 언니라고 부르지만 그냥 말 놓는다.

 

그 곱던 얼굴이 참 많이 바뀌었다. 우리가 고등학교에 다닐 적에 이 언니는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살림이 어려워 배우지도 못하고 잘 사는 고모네 집에 며느리가 되었다. 일찍 애를 낳아 어느덧 짝을 다 맺어 주었다. 잘나가던 일을 두고 시골에 들어와 이제는 농사를 짓는다. 어린 날 떠올리면 사촌 오빠가 건달쯤 되었던가. 우리 오빠하고 또래와 저지레를 해서 좋게 안 봤다. 잘못 보았다. 사촌 오빠가 참 멋있었다.

 

언니가 아이들을 낳고 마음앓이에 시달리면서 약을 먹은 뒤로 몸집이 불어났다. 나와 나이가 같지만 언뜻 보면 엄마처럼 몸집이 굵다. 오빠하고 나란히 보면 이모쯤 될 듯이 몸이 확 달라졌는데, 사촌 오빠가 언니를 바라보는 눈빛이 혀짧은 소리로 곁에서 쫑알쫑알하는 언니를 무척 떠받든다.

 

“내 옆에 있어 줄 사람은 마누라뿐이더라.”

 

사촌 오빠가 한 이 말에는 사랑이 듬뿍 들었다. 요즘 마을에 젊은 농사꾼이 없는데 둘이 내내 밭에서 일한다. 명절이든 고향에 벗들이 오든 따로 만나지 않겠다고 언니와 손가락 걸고 다짐했다고, 시골에 온 뒤로 여태 어기지 않았단다. 겉모습은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둘이 곁고 트는 마음이 곱다.

 

“액시야!” 하고 내게 처음 불러 준 새언니이다. 말할 적에 침을 튀겨도 든든한 몸집만큼이나 뚝심으로 따뜻하게 어른을 우러러보고 아이를 품는 마음이 말처럼 곱다. 겨울 바다에서 고기 잡으며 둘이 느긋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곧 새싹이 깨어나면 흙에서 도란도란 사촌 오빠가 심심하지 않게 쫑알쫑알할 테지. 잘 살아 줘서 고마운 벗이자 언니이다.

 

 

2022. 01. 12.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