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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삶 68] 견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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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68] 견디기

 

시골밭에서 흙을 담아 왔다. 동백에 조금 뿌리고 조그마한 텃밭에 살살 뿌렸다. 꽃이나 잎이 떨어지면 잘게 뜯어서 흙에 묻었다. 잎이 작고 여려서 이내 흙으로 돌아갔다. 작은 동백나무가 우리 집에 올 적에는 흙에도 나무에도 잎에도 이끼가 끼었다. 비닐집에서 살 적에는 촉촉해 보였는데, 우리 집에 오니 흙이 빨리 마른다.

 

물을 주어도 하룻밤 자고 나면 흙이 마른다. 손가락으로 살살 파 보고 긁어 보다가 물을 한 벌 준다. 물을 주다가 자꾸 마음이 쓰인다. 물을 주면 밖에 내놔야지 생각하다가 물을 주어서 얼면 또 어쩌나 걱정하고, 밑에 깔아 놓은 수건을 끌고 다니다가 한추위가 지나면 밖에 내어 튼튼하게 키우자 생각하다가, 아니지 밤새 추우면 어쩌나 싶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안으로 들였다. 벌써 다섯여섯 송이가 꽃잎을 연다. 아무래도 따뜻해. 동백은 추운 날 꽃을 피울 만큼 추위를 견디지. 시골서 갖고 온 흙을 꽃삽에 담아 여리고 작은 풀이 넘어지지 않게 살살 뿌렸다. 받침대에 깔아 놓은 수건을 당겨서 밖에 두었다.

 

이제는 안에 들이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바람을 알맞게 견뎌야 꽃이 차츰차츰 필 테고 오래 볼 테지. 꽃을 보고 싶으면서 빨리 필까 봐 걱정한다. 빨리 피면 일찍 질까 봐 걱정하더니, 이제 다시 천천히 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흙을 뿌리는 나를 보던 곁님이 수국을 뿌리만 두고 자르자고 한다. 시월에 핀 꽃잎이 아직 마르지 않고 풋풋한데, 잎은 얼마나 싱싱한데, 이래저래 혼잣말을 하고 미루다가 톡 자른다. 자른 잎을 손으로 뜯어서 덮어 준다. 수건을 끌고 동백보다 더 밖에 냈다. ‘그래, 너도 찬 바람을 견뎌야 꽃을 잘 피울 테지.’ 그동안 가지를 자르지 않고 우리 집에서 따뜻하게 보낸 수국이 갑자기 된서리를 맞는 셈이다. 더 견뎌 보렴. 뿌리가 바쁘겠지만 바깥바람을 쐬어 보렴.

 

불룩하게 올라온 마른잎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작은돌로 눌렀다. 마른잎 밑에 또 마른잎이 있어 견딜 만할지 모르겠다. 나는 꽃다발을 받으면 그대로 두는데, 꽃잎이 시들면 가위로 잘게 잘라서 수국 꽃그릇에 거름으로 놓았다. 시든 꽃잎이어도 풀어헤치면 낱낱 꽃잎이 참 많다. 고와서 거름으로 좋다. 흙에 찔러 넣기도 한다. 수국이 꽃을 한결 잘 피우라고 마른꽃이란 마른꽃은 속에 다 넣었다.

 

이제 동백하고 수국이 겨울나기를 잘 마칠 무렵이다. 동백은 천천히 꽃이 피어 오래 보고 싶은 마음에 자꾸만 손길이 간다. 두 꽃은 어느덧 마루에서 쫓겨나 바깥으로 나간 셈이지만, 마루가 아닌 해바람을 머금는 바깥이 처음부터 있어야 할 자리인지 모른다. 수국은 땅속으로 뿌리를 움켜쥐고 견뎌야 할 겨울일 테고, 동백은 찬바람을 온 가지와 잎으로 받아내어 꽃을 피우려고 힘을 모을 테지. 올해에도 다음해에도 새로 헤어지고 만나고 싶은 꽃이다.

 

이 겨울에 피어나는 동백은 동백대로, 줄기가 잘린 수국은 수국대로 오늘을 살아간다. 나를 부른 꽃, 내가 부른 꽃을 오랫동안 피고 지고 가는 뒷모습을 고스란히 보고 싶다. 이렇게 내 앞에서 피고 지면서 남긴 말을, 꽃이 써 놓은 글을, 꽃이 쓰는 삶을 들여다보고 싶다. 잘 견디자, 수국아. 동백아.

 

2023. 01. 29.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