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69] 잘 걷지
“엄마, 금요일 언제쯤 오나?”
“10시쯤 나설게. 일찍으면 너 집 치울게.”
“여수 가면 좀 걷는데 잘 걷제?”
“그래 내 잘 걷는다. 그런데 일요일이 보름인데 마을잔치를 열면 못 가지 싶다.”
“아, 보름이가?”
“둘이가 밥 당번인데 나도 나이가 들어가, 오십만 원 받아 밥 당번 맡는데, 내가 가면 혼자 한다고 말 나잖아. 일요일에는 교회 나가는 사람들이 있어 어쩔지, 알아보고 말할게.”
“그러면 못 가겠네. 다음에 가면 되니 잔치 하면 오지 마요.”
“세 해씩이나 놀러 못 댕겼는데, 나도 가고 싶지.”
엄마랑 같이 못 가도 나는 여수 오동도에 갈 생각이다. 여수 바닷가에서 저녁에 해넘이를 보고서, 아침에 해돋이도 보고 싶다. 붉게 물들인 하늘하고 바닷물이 무척 보고 싶다. 몇 군데 돌고서 순천으로 넘어가 선암사와 송광사에 갈 생각이다. 이렇게 지나는 길에 낙안읍성과 순천만도 볼까 싶다. 청산도까지 가고 싶지만, 청산도는 꽃이 활짝 피어날 무렵으로 미룬다.
길그림을 펼쳐 놓는다. 엄마랑 같이 간다면 더 좋을 텐데, 아무튼 가고 싶은 곳을 더 적어 넣는다. 주소도 옆에 적는다. 이렇게 길그림을 펼치고 여기 갈까 저기 갈까 고르면서 좁혀 놓고는 다른 곳으로 갈지도 모른다. 길그림을 보니 오동도를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고 나온다. 숲길이 있겠네. 여기로 가야겠다. 나오는 길에 돌산섬으로 돌아서 향일암도 보고, 또 틈이 나면 장도라는 섬도 가야지. 갈 곳이 많아 벌써 좋아서 벅차다. 우리 엄마도 몹시 가고 싶겠지.
나는 우리 엄마하고 나들이를 다닌 적이 딱 하루였지 싶다. 그때도 엄마한테 구경을 시켜 주겠다고 다짐을 해놓고는 나 혼자 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간 셈이었다. 이 나들이도 예전하고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렇지만 엄마가 걸어낼 수 있을 적에 함께 다니고 싶다. 엄마가 없는 명자 언니는 엄마하고 같이 나들이를 가면 참 좋겠다고 부러워한다. 그 언니 말이 아니더라도, 이제까지 살면서 엄마도 나도 일을 좀 쉬고서 나들이를 다닌 적이 거의 없다고 새삼스레 느낀다. 우리는 서로 얼마나 바쁘게 살아왔을까? 이렇게 바쁘게 살다가 엄마가 다릿심이 빠져서 걷지 못 하면 나들이는 엄두도 못 내리라.
알뜰하게 다녀야지. 하루 보태서 이틀을 쓰는데, 덜 먹고 덜 자더라도 바지런히 움직이자고 생각한다. 엄마 시골집에서 마을잔치를 다른 날로 미루면 좋겠다. 나는 가고 싶은 곳으로 바람 쐬는데 동무가 되어서 좋고, 엄마도 딸을 벗으로 삼으면 좋겠지.
엄마는 다른 때에는 다리가 아파 걷지를 못한다고 푸념을 했는데, 같이 놀러가자고 하니 갑자기 말을 바꾸어 “나 잘 걷는다” 하고 거듭거듭 말한다. 엄마가 들려준 말에 조금 웃었다. 엄마도 나만큼이나 무척 가고 싶구나.
2023. 01. 31.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