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71] 우산
우리 집 문앞에 우산이 한 보따리 있다. 이렇게 많이 있었나. 아이들이 예전에 쓰던 우산을 다 들고 왔나. 그저 웃으며 집으로 들어와서 묵은 짐을 치운다. 이제 버리기만 하면 끝난다. 버릴 살림으로는 옷이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우산 같다. 신발장 손잡이에 우산 또 둘 걸렸다.
이 가운데 말끔한 우산은 따로 꾸려 놓는다. 그런데 우산이 또 셋이 더 나온다. 신발장에 또 하나 나온다. 잔뜩 나온 우산을 들고 나와서 버리자니 경비 아저씨들도 놀란다. “아저씨, 우산이 좀 많죠? 못 쓰는 건 버리지만, 쓸 수 있는 우산은 저기 앞에 두셔서 비 오는 날에 우산 없어서 비 맞는 사람이 있으면 나눠 주세요.”
우산을 버리려고 비닐을 벗기고 살만 모은다. 큰 뭉치로 나오는 우산살을 보니 어쩐지 낯이 뜨겁다. 집에서 한 사람이 제금을 나는데 버리는 것이 너무 많다.
우리 딸은 우산을 왜 이리 많이 모았을까. 문득 밖에서 비를 만나 우산을 사기도 하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또 비를 만나 또 새로 우산을 사고 했을 테지. 이미 사 놓은 우산을 자꾸 잊으면서 또 사고 새로 산 탓이지.
나는 그동안 어떠했을까. 곁님은 또 어떠했을까. 나도 보슬비는 맞고 다니다가 주룩주룩 빗방울이 굵으면 이래저래 또 사고 하다가 일터에 남아도는 우산이며, 차에 두고 쌓이는 우산이 열도 넘는다. 곁님은 우리 가게에 손님이 놓고 갔다가 안 찾아가는 우산을 한 곳에 모아둔다. 이 우산은 비가 오는 날 누구한테든 그냥 내어준다. 가게일꾼도 비가 오는 날에 쓰고 가지만, 가져왔다가 비가 멎으면 그대로 놓다 보니 여기저기에 우산이 쌓였다. 우리도 그렇지만, 손님으로 드나드는 분들은 왜 우산을 안 찾아갈까. 예쁘고 값진 우산을 끝내 찾아가지 않아 우리 가게에도 임자 없는 우산이 수북하다.
내가 자랄 적에는 우산이 찢어지거나 휘어지거나 꺾인 우산이 고작이었다. 그 우산이라도 서로 가지려고 앞다투어 가지려고 오빠와 동생하고 티격태격했다. 벌써 마흔 해도 훌쩍 넘은 옛날 이야기라지만, 오늘 우리 딸은 어린 날 나처럼 우산이 없던 날을 보내지는 않았다. 내가 어른이 되어 딸아들을 낳을 즈음에는 식구도 많고 우산도 많았다. 우리 아이들은 내가 어릴 때처럼 우산 하나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며 서로 쓰려고 다툰 일이 없다.
2023. 02. 18.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