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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삶 72] 안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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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72] 안아 보자

 

작은딸네가 나를 바래다준다. 둘이서 창살문을 뒷자리에 싣는다. 함지박도 뒷자리에 싣고 닫는다.

“엄마, 잘 가.” “장모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 하고 말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싱겁다.

 

“함 안아 보자.”

 

두 팔을 벌렸다. 둘을 품에 안았다. 왼팔은 새사람을 안고, 오른팔은 작은딸을 안는다. 딸이 아까부터 삐진 사람처럼 뾰로퉁하게 있더니 속으로 울었구나. 등을 토닥거리면서 우리 딸 눈을 보니 반짝인다. 눈물이 맺혔네. 콧소리를 내네. 쑥스러워 이런 모습 잘 드러내지 않던 아이인데, 울었네. 바라보는 나도 눈물이 차올랐다.

 

나무 사이로 불빛이 비친다. 딸 얼굴이 어릿거린다. 살짝 안았는데 꽤 길었다. 딸아이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또 말하려는데 저쪽에서 다른 차 한 대가 올라온다. 부르릉 하며 다른 차가 저쪽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창문을 내린다. 이젠 헤어지네. 작은딸이 숨기려고 해도 눈물이 찬 얼굴은 티가 났다. 엄마는 알지. 손을 흔들었다.

 

엄마와 딸을 좁혀 주는 눈물 같다. 꾹 참는 마음은 훅훅 흐를 테지. 딸을 보니 가녀린 몸으로 일을 다니고 집안일을 하고 앞으로 스스로 삶에 풍덩 뛰어들어야 하는 자리가 그림처럼 지나간다. 딸은 다 크고 나서 제 일자리를 찾아간다면서 한참 엄마와 떨어져 살았지만, 이제 사위랑 인천으로 옛짐을 꾸려서 다시 떠나가는 길은 예전에 딸아이가 혼자 일을 찾아 떠나던 날과는 다른 오늘이겠지. 무덤덤한 새사람을 따라서 가지만, 그 먼데서 어떻게 살까. 엄마가 짐을 꾸려주고 간다니깐 더 애틋했으려나. 내 마음이 네 마음일 테고. 우리는 새롭게 태어나는 듯했다.

 

예전에 못다한 말 가운데 ‘사랑해’라는 말을 이제는 스스럼없이 말하려고 한다. 말에 따라붙는 기운이 있듯이 좋은 말을 해주고 사랑한다는 말을 아낌없이 하고 싶다. 딸아이는 엄마가 저한테 “사랑해.” 하고 처음 말할 적에는 익살스럽게 “우엨!” 하면서 마치 못 볼걸 본 사람처럼 장난스레 굴더니, 이제는 엄마가 “사랑해.” 하고 말하면 예전처럼 장난스런 말씨도 몸짓도 없이 귀로 마음으로 착착 받아들이는 듯하다.

 

작은딸을 꼭 안아 본 일이 언제였던가. 다 크고 나서는 처음인가. 눈물겹던 마음도 처음인가. 처음으로 한마음으로 안고 울어 본 날인가. 글썽이는 눈물에는 말로 드러낼 수 없는 마음끼리 하는 말이 있었다. 새사람을 껴안고 작은딸을 껴안던 그림을 또렷하게 마음에 새기고 싶다. 눈을 감아도 떠올릴 그림으로 품고 싶다.

 

앞으로 기나긴 나날이 흘러서 오늘 이 하루가 가물거리더라도 우리 작은딸이 시집가는 마음을, 엄마가 보내는 마음을, 눈에 담고 마음에 꾹꾹 눌러서 담는다. 어린 날 이래저래 치이면서 내 눈에 좀처럼 들어오지 않던 아이, 엄마아빠 집을 떠나 새 보금자리로 가면 네 마음도 보드라이 다 풀어지길 빈다. 너와 내가 함께한 나날이 문득 안고 토닥이며 우리 품으로 녹아들기를 빈다. 내가 스물여덟에 낳은, 어느새 스물여덟이 된 딸을, 어깨동무로 껴안았다. 사랑이 이렇구나. 둥글게 둥글게. 우리 이렇게 둥근 마음으로 살자. 안으면서 살자꾸나. 갈 가쇼, 사랑해.

 

2023. 02. 18.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