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74] 도시락
차를 세우고 밥집에 갔다. 도시락집이네. 여기서 우리 딸이 밥을 사먹는구나. 딸은 라면을 먹으려 하네. 짐을 꾸리려면 힘을 내야 하니 고기반찬이 나오는 밥을 하나 더 시켰다. 짐은 다 쌌을까. 집에 올라오니, 저녁에 짐을 차에 실어야 한다는데, 아직 짐은 반도 꾸리지 못했네.
“너는 갖고 갈 것만 챙겨, 버릴 거는 다 두면 나중에 우리가 치울게.”
가만 보니 버릴 걸 버려야 갖고 갈 짐이 보인다. “엄마가 부엌 좀 맡아 줘?” 한다. 짐이 적은 작은방부터 치운다. 컴퓨터와 밥솥 커피포트를 모으고는 방에 둔 버릴 이불보따리며 옷보따리를 꺼내 문밖으로 냈다. 이제 부엌을 뒤진다. 밥을 해먹은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자국이 없다. 온통 도시락뿐이네.
비닐을 세 군데 펼쳐놓았다. 찌꺼기를 담고 플라스틱을 담고 비닐을 담는다. 냉장고에 버릴 반찬을 꽁꽁 올려두었네. 아빠가 시켰구나. 음식이 썩으니깐 냉동실에 얼려 두었다가 버리라고 늘 말했는데 냉장고와 냉동실이 쓰레기를 얼리고 놓는 자리가 되었네. 다 꺼내서 물기를 빼고 비닐에 담았다. 콜라를 버리려고 뚜껑을 열다가 얼굴에 뿜는다. 콜라로 얼굴을 씻었다. 마시던 음료수를 다 쏟아붓고 담았다. 빈 도시락 담은 비닐이 꽉 찼다. 보따리를 들고 문밖에 두었다. 버릴 그릇도 몇 안 되지만 도시락통을 비우는 일이 부엌을 치우는 일이었다.
도시락만 먹었으니, 집에 올 적마다 집밥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김치찌개 먹고 싶다, 된장찌개 먹고 싶다, 고기반찬 먹고 싶다고 할 적에는 내 몸도 귀찮았는데, 내가 우리 어머니 왔을 적에 국수 먹고 싶다고 삶아 달라고 하듯이, 우리 딸도 엄마한테 저 먹고 싶은 걸 해 달라고 한 걸 다 해주지 못했다.
이러는 동안 우리 딸 짝이 다섯 시간 차를 몰고 왔다. 오자마자 쉬지도 않고 문밖에 내놓은 쓰레기를 버린다. 짐을 싸면서 버릴 것도 내놓으니 짐 싸는 일이 더디었구나. 밥도 안 해 먹고 혼자 살아도 살림은 다 갖추니 버릴 짐이 많다. 우리가 버리면 되는데 딸은 바쁜 우리 손길 덜어 주려고 뒷정리를 다 하려고 하네.
작은 물건은 스스로 담고 버리고 해야 하는데, 더디기만 한 우리 딸을 지켜보는 딸아이 짝도 나도 “이거 버릴까?” “이거 쓰나?” 하면서 물으니 우리 딸이 머리를 흔든다. 차분히 치우고 싶은데 느릿느릿한다. 우리 딸이 꾸물꾸물 느린 줄은 알지만 이렇게까지 느린 줄 몰랐다. 우리 등쌀에 떠밀려 드디어 짐을 다 꾸렸다.
“엄마 안 왔으면 이 많은 짐을 싸지도 못 했어.”
이제는 도시락을 먹어도 같이 먹을 짝이 있어 나을 테지. 하나는 미루고 하나는 치우고 손발이 척척 맞겠네. 아이고, 어리기만 한 딸아이가 살림을 난다니, 꿈을 꾸는 듯하다.
2023. 02. 18.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