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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삶 75] 우리 딸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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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75] 우리 딸이 가요

 

“엄마 언제 도착해?”

“2시에 나설게.”

“그 사람은 3시쯤 닿을 듯한데 못 보겠네. 아빠가 할아버지한테 인사하러 갔다 오래.”

“아빠는 늘 할아버지뿐이네. 딸이 가는데 엄마인 나를 만나야지, 할아버지가 먼저가?”

 

파를 다듬으면 일을 마무리지으려고 했다. 손길이 바쁘다. 곁님이 쌀을 싣고 얼음가방을 찾는 동안 다 다듬고 반찬집으로 달려갔다. 며칠 앞서 우리 딸한테 줄 반찬 몇 가지를 맡겼다. 고디국이 한창 끓는다. 저걸 담아서 가려면 늦겠지. 잘 먹던데. 나지막한 내 목소리를 듣던 아주머니가 부추를 넣는다. 한 냄비 담더니 큰 선풍기를 틀고 식힌다.

 

돈으로 치자면 얼마 되지 않는데 반찬집 일꾼을 힘들게 하는가 안절부절못했다. 미리 말을 해서 그런지 기꺼이 해준다. 나물 반찬도 곁들이고 싶지만, 제때 꺼내 먹는 일도 아직은 서툰 우리 딸을 생각하다가 멈춘다. 비닐에 담아 온 반찬을 유리그릇에 담고 얼음가방에 꾹꾹 눌러 넣는다. 엄마 마음이 꾹꾹 이렇게 담기는 줄 예전에는 몰랐다.

 

마늘과 매운고추와 양파를 들었다가 이레는 해먹지 못할지 모른다는 딸 말에 다시 뺀다. 작은 고추장 식용유 진간장 국간장 맛소금 가장 작은 걸로 골랐다. 가장 긴 날짜로 골랐다. 몇 가지를 집었다가 날짜가 몇 달 안 남아서 내려놓았다. 달걀도 들었다 놓는다. 두 이레 남은 걸 갖고 가면 그 사이에 먹지 못해 버릴 일이 눈에 선했다. 우리 딸이 짐을 푼 뒤 하나씩 갖추자고 한다.

 

열두 시가 지나간다. 밥을 먹지 못해도 서둘렀다. 커피를 하나 사야 되는데 혼잣말을 중얼거렸더니, 곁님 차에 있는 커피와 차를 준다. 뚜껑을 따고 몇 모금 마신 뒤 달렸다. 딸이 또 전화 왔다.

 

“엄마 몇 시에 와?”

“응, 달려간다. 2시쯤이면 가겠네.”

“그래.”

 

딸 목소리가 일곱 살 아이 같다. 신나서 대꾸하는 목소리 끝에 따라오는 엄마를 기다리는 목소리가 밝다. 엄마가 가는 일이 좋은지, 반찬을 갖고 간다는 말이 좋은지. 차분한 우리 딸 목소리가 이렇게 달라진 일을 참 오랜만에 듣는다.

 

시골에서 찧은 쌀을 자루에 담아 보내면 두기가 마땅찮지 싶어 물병에 담았다. 물병에 담아 두면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 싣고 가야 할 짐도 많기에 쌀은 여섯 통만 담았다. 살림나는 아이한테 쌀을 물통에 담아 주는 일도 싱긋 웃는다. 이 여섯 통이 얼마 안 되지만 두 아이한테는 퍽이나 먹을 부피이다. 집을 치우면 더 보내기로 하는데, 어찌 살림나는 아이 짐꾸러미가 혼자 사는 아들 짐만큼이나 가볍네. 반찬보다 갖고 가는 엄마 마음이 좋아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기 같다. 엄마와 딸이 어린 날 다음으로 다시 가까워지는 때를 작은딸하고 내가 건너가는구나. 자랄 적에 늘 자리를 비껴주던 우리 작은딸, 그때 못해 준 사랑 다시 주고 싶다.

 

“엄마 이제 집앞에서 신호 기다린다.”

“엄마 밥 안 먹었지? 밥 먼저 먹자. 나 내려갈게.”

 

우리 작은딸이 이제 삶자리를 찾아 가요. 나무야 너도 봄빛에 파릇파릇 물들이는구나. 둥지를 트려고 곧 떠나려는 작은딸처럼.

 

2023 .02. 18.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