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76] 잘가쏘?
“우리 이제 갈게.”
“짐 가득 실어 뒤가 막혔으니 쉼터마다 쉬었다 가렴.”
“엄마는 안 힘드나?”
“늦잠 잤지. 어제 집으로 큰 선물이 왔어. 어느 이웃님이 엄마 시집 한 권을 다 붓글씨로 써서 보내왔어. 좋아서 힘든 줄 몰랐네. 또 어디 넣을 글 걱정에 잠이 달아나 새벽 3시에 일어나 쓰고 잤어. 그래, 너희들도 애썼다. 김 서방도 잘 가고 우리 딸 잘 돌보렴.”
말하는 내 목소리가 떨린다. 작은 거품이 뽀글뽀글 끓듯 끊어질 듯 이어가는 목소리는 떨었다. 작은딸 목소리도 떨린다. 염소처럼 밝게 웃어도 목소리가 떨렸다. 울음을 꾹꾹 누르는 떨림이었다.
잔치(결혼식)를 할 적에도 떨리지 않았는데, 이제는 참말로 짝 곁으로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따라가니 우리 곁에 머물던 마음도 가는 듯했다. 아니 어쩌면 더 짙게 마음 귀퉁이에 머무는지 모른다. 저 가녀린 아이가 사랑을 찾아가는 길인데 곱고 가냘픈 손으로 밥을 짓고 빨래하고 쓸고 닦는 일에 얽매인다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목소리에 맺힌 듯했다.
며칠 쉬었다 일을 나가면 좋을 텐데, 옮기자 바로 나가야 하는 딸아이 어깨를 누르는 짐이 그 나이를 지나던 나를 보는 듯했다. 이 아이도 나처럼 맞벌이에 뛰어들었다. 그렇다고 일을 안 하고도 안 될 살림이지. 둘 힘으로 얻은 보금자리를 꾸려가려면 얼마나 저를 뒷전에 몰아야 할까. 집값을 갚아 가려는 마음이 훤히 보인다.
우리 때는 두 집안에 얽매이는 마음이 컸지만, 요즘은 둘을 마음에 두고 꾸려가니 어쩌면 한결 짐이 던 셈이지 싶다. 그래도 이래도 엄마가 되는 길을 걷노라면 부딪치는 일을 내가 걸어왔듯이 미리 와 본 길을 보는 듯해서 눈물이 목에 턱 걸렸는지 모른다.
나와 떨어져 살아도 느끼지 못한 목소리였다. 저도 나처럼 우리 곁을 떠나는 줄 보따리마다 옷을 가득 싣고 가는 마음 같을 테지. 우리 어머니한테 가장 기댄 날이 우리 보금자리를 꾸릴 무렵이었다. 엄마라는 한 손길을 느끼는 날이었으리라. 어린 날 꾸중만 듣던 멍든 마음도 다 녹여주는 떨리는 목소리였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짝뿐인 곳, 인천에서 둥지 트는 한 쌍으로 가장 깊은 두 마음이 싹튼다. 봄처럼 파릇파릇한 사랑 보따리 가득 싣고가는 두 마음이 벅차다. 두 마음 오늘처럼 이대로 이어가길 바라는 어미 마음이 말이 되지 못하고 목소리에서 갸르릉갸르릉 끓는다. 쉬었다 달리고 또 쉬었다 달려 다섯 시간은 달려야 닿는 참으로 멀고도 먼 곳으로 가는 우리 작은딸, 너도 잘가쏘? 사랑해.
2023. 02. 18.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