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85] 벌레
맨손으로 꽃나물을 뜯으려는데 벌레가 한 마리 웅크리고 나를 본다. 깜짝 놀란다. 솜털이 노란지 하얀지 노란 벌레인지 하얀 벌레인지 가만히 본다. 어린 날에 쏘인 풀새미(쐐기벌레) 같다. 쏘이면 살갗이 벙글벙글 일어나고 가렵다. 마른 풀가지로 옮겼다. 벌레가 먹은 나물을 둘까 하다가 뜯었다. 벌레 먹은 나물을 삶으니 끝이 조금 노랗다. 구멍도 나고 자국이 남는다.
벌레는 나뭇잎을 갉아 먹고 풀을 갉아 먹어서 좋지 않다고 여겼다. 우리가 밥을 먹듯이 벌레도 풀잎을 먹을 뿐인데 자꾸 나쁜벌레로 가른다. 나비가 되기까지 매미가 되기까지 모든 벌레가 제 몸을 거듭 벗고서 나왔을 텐데, 가랑잎이나 풀잎에 숨은 몸을 생각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예쁘게 나는 모습만 떠올리면서 꺼려 버릇한다. 벌레가 자라기에 우리한테 나쁠 수 있고 이바지할 수 있지만, 어쩐지 벌레라는 이름에 갇혀서 안 좋게 바라본다.
참 그렇다. 둘레에서 뭐라 하기 앞서, 나부터 벌레를 안 좋게 본다. 그래서인지 사람끼리 서로 깔보거나 얕볼 적에 벌레라고 하기도 한다. 그제 누리글집(인스타)에 아는 분이 글을 남겼다. 이웃삼기를 한 뒤 벌레들이 자꾸 온다. 누구인가 하고 가 보니 둘 빼고는 누리벌레(사이버 해충)들이다. 갓 들어온 사람한테 달라붙는가. 그분 집을 타고서 벌레들이 내 방에 왔다. 막고 또 막아도 자꾸 온다. 아는 분한테 쪽글을 보냈다. ‘아는 사람 빼고는 모두 막으세요. 벌레집이 되어가요’ 하더라. 아마 이분은 어리둥절하거나 언짢을는지 모른다. 의사나 잘 생긴 남자 외국인 얼굴은 누리글집(페이스북)에도 돌아다니는 벌레이다.
누리글집(페이스북)에 이웃(팔로워)을 들이지 않다가 지난달에 백 사람쯤을 들였다. 새로운 사람을 들일 적마다 벌레들이 빌붙어 오더라. 막고 막아도 끝이 없다. 같은 얼굴 다른 사진으로 들어오거나 이름을 바꾸어 들어온다. 내가 막는 줄 알고는, 뭔가 꿈틀거린다 싶으니 오고 또 온다. 어떤 벌레는 사백 사람이 이웃(페친)이던데 모두가 벌레였다. 이 꼴을 보고 그만 막고는 그냥 지운다. 같은 얼굴일 적에는 또 막는다.
이 ‘사람벌레’는 거짓 이름(계정)이다. 올린 글을 보면 한꺼번에 올리거나 갓 올렸다. 내가 막은 벌레만 해도 삼백 사람이 넘는다. 이젠 척 보면 낌새를 알아차린다. 페북은 내가 받지 않으면 되기는 하지만 인스타는 걷잡을 수 없다. 알고 가만두어도 되지만, 나를 아는 사람들한테 벌레가 옮겨간다. 알 만한 사람은 알지만 내가 벌레 징검다리가 되고 싶진 않다. 내 글에 벌레들이 발을 못 디디게 막고 싶다. 벌레는 콱 물면 끝까지 따라온다.
벌레들이 끝없이 들어오니 지우는 일도 보는 일도 마음이 시달린다. 사람 벌레는 나비가 될 싹이 아니다. 발조차 들이지 못하도록 함께 막아야 한다. 어떻게 남 사진으로 엉뚱한 이름으로 몇 가지 길을 트는지. 이들이 쓰는 말씨는 티가 난다. 소개 글만 봐도 게시글 하나만 봐도 알아차릴 텐데, 숫자를 부풀리기에 그냥 두는가. 의사 옷을 입어 끌리는가. 벌레를 잡는 일이 짜증 난다. 벌레한테 보금자리를 빼앗긴 사람도 꽤 있을 테지. 사람 벌레가 멀쩡한 사람을 흉내내지 못하게 눈에 띄면 막아야지. 애벌레를 거쳐서 예쁜 모습으로 태어나는 벌레를 갉아먹는 사람 벌레로 애꿎은 벌레를 흉본다. 누구나 스스로 제 이름대로 살아가니 말뜻에 담긴 이름이 참 얄궂다.
2023. 04. 06.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