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90] 명이나물
길바닥 틈으로 질경이가 뿌리를 내렸다. 사람이 드나드는 문 앞이라 뽑으려다 멈춘다. 한때는 틈마다 난 풀을 뽑았다. 이제는 비좁은 틈에 살아난 풀이 멋스럽다. 만날 적마다 내 눈을 빤히 쳐다보고 “나 뽑지 마요.”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래, 걱정 말아, 뽑지 않을게.” 마음으로 말한다. 풀이 설 땅이 사람길이 되니 함께 누리기로 한다.
내가 본 질경이잎하고 명이나물이 닮았다. 질경이풀은 이름처럼 힘줄이 돋아 질겨 보이고 명이나물잎은 좁고 길다. 지난달 울릉도 명이나물지를 한 통 사왔다. 한끼 먹다가 다음날시골집에 갈 적에 부지깽이지하고 갖고 갔다. 지를 담아도 나물이 질겨서 남을 줄 알았는데 맛있다면서 다 드신다. 마침 어제 짝이 모임에서 한 상자 받았다. 명이나물지는 먹어 보았으나 날나물을 처음 보았다. 처음으로 명이나물지를 담는다.
양파를 하나 썰고 무말랭이 한 줌에 파뿌리를 깨끗하게 씻고 제사 쓰고 둔 황태포를 잘라서 주머니에 담았다. 물 여덟 컵을 붓고 끓이고 불을 끄고 주머니를 꺼냈다. 끓인 물에 진간장 네 컵 국간장 한 컵 설탕 한 컵 매실청 두 컵을 넣고 팔팔 끓였다. 불을 끄고 소주 한 병 붓고 식초 두 컵 부어서 그릇에 물을 붓고 냄비를 넣어 식힌다.
빈 통에 명이나물을 깔고 빨간 고추를 얹고서, 거꾸로 명이나물을 놓고 말린 고추를 얹고 또 또 얹는다. 씻어 둔 돌을 비닐에 담아 꽁꽁 묶고 차곡차곡 쌓은 명이나물를 누른다. 끓인 간장이 다 식어 물을 붓는다. 물이 적은지 나물이 덜 잠긴다. 뚜껑을 닫으면 눌릴까 싶더니 잎이 뜬다. 물잔을 비닐에 담아 잎에 얹었다. 뚜껑에 꾹 눌린다. 잎이 숨죽이면 국물이 딱 맞을 듯하다. 담그고 보니 쉽다. 짝한테 쫑알쫑알 담근 이야기를 들려주니 “다른 반찬도 자꾸 해봐.” 한다. 그럴까, 시골에서 갖고 온 쪽파가 넉넉한데 담글까.
모처럼 밑반찬을 했다. 내가 맡은 일이 힘들어 짝이 내 짐을 덜어 준다. 두끼를 가게서 먹는데 스스로 한다. 앞집 반찬 가게에서 사기도 하고 옆집 고기를 사서 끓인다. 나는 집에서 거의 끼니를 챙기고, 손질한 나물로 때운다. 요즘은 아침만 같이 먹는 셈이다. 명이나물이 맛이 들면 덜고, 이튿날 쪽파를 담그고 작은 무 하나 사서 깍두기도 해야지. 담그는 길을 미리 살핀다. 자꾸 보니 반찬 하고 싶어진다.
하면 뭐라도 늘어나는가. 그제 날짜를 추스르느라 몸살을 앓아도 오늘 못다 본 날짜를 다시 보고 무거운 걸 옮기고 한꺼번에 물건을 돌려준다. ‘내친김에 한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가. 이쪽 일을 하느라 저쪽 일을 잊다가 저쪽 일을 하니 자꾸 저쪽 일에 눈길이 가고 손이 가듯이 반찬도 그렇다.
모르면 엄마한테 묻고 이웃한테 묻다가 요리책을 사서 반찬을 하곤 했는데 요즘은 영상이 잘 나온다. 뭐든지 볼 수 있고 이곳저곳에서 반찬을 잘 알려준다. 쓱쓱 넘기다가 오징어채무침 순두부볶음이 나와서 살펴본다. 얻어 놓은 순두부가 둘 있으니 달걀 넣고 따라 해서 아침 반찬으로 먹어야지. 곁님한테 진간장하고 식초와 소주 한 병 사오라고 하니, 영 내 솜씨를 덜 미덥다고 하더니, 말없이 살짝 해 놓으면 깜짝 놀라겠지. 잔소리도 멀어지겠지. 힘이 들어도 가게일도 집안일도 조금만 부지런 떨면 짝이 좋아하는데. 가게 눈 못 돌린 묵은 걸 한꺼번에 확 다스리니 귀염받는 듯하다. 그래도 허리 아프다고 엄살을 좀 부려야겠다.
2023. 04. 17.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