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97] 큰딸이 차려준 아침밥
오월이 되니 쉬는 날이 길다. 작은딸이 차표를 못 끊었다. 아들은 시험이 남아 안 온다. 둘이 지내다가 큰딸 하나만 왔을 뿐인데 어린이가 있는 집처럼 다르다. 아빠는 딸을 챙기고 딸은 아빠한테 이것저것 시킨다. 일 마치고 오는 아빠한테 태우러 오라고 하질 않나, 잘 안 해 먹는 반찬을 해 달라 하고 피자도 먹는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침밥을 맡겠단다.
아빠가 밖에서 먹어 보지 못한 스파게티를 한단다. 얻어만 먹을까 하다가 어떻게 하는지 볼까 싶어 거들기로 한다. 냄비에 물을 붓고 불을 켜 놓는다. 불판 둘을 씻어 놓고 딸을 깨웠다. 딸은 식빵을 둘 구워서 접시에 담는다. 나는 딸이 시키는 대로 양상치를 씻고 토마토를 썰고 마늘 한 줌을 납작하게 썰고 쪽파를 총총 썰고 고추를 다져서 그릇에 담는다. 물이 끓는 사이 딸이 올리브기름을 붓고 내가 썰어 준 마늘을 넣고 끓이면서 스파게티 국수도 삶는다.
삶은 국수를 마늘 볶는 그릇에 돌돌 말아 넣고 골고루 섞으며 익힌다. 큰 접시를 꺼내주니 마늘 넣고 볶은 스파게티를 돌돌 말아 건져서 동그랗게 담는다. 여기에 다진 고추를 올리고 올리브기름을 곁들인다. 빛깔이 노란 스파게티가 되었다. 베이컨을 썰어서 익혀 주니 토마토양념 한 병을 통째로 붓고서 섞으며 볶다가 스파게티 국수를 넣어 뒤적뒤적 익혀 접시에 담는다. 쪽파를 곁들인다. 나는 빵을 작게 잘랐다. 빵은 올리브기름에 찍어 먹는단다.
아침 밥상이 이쁘다. 노랗고 빨간 스파게티에 빵을 곁들이고 양상치에 양념을 부었을 뿐인데 밥상이 가득찬다. “정아, 좀 안 적을라?” “아빠, 먹어 보면 안 적을 꺼예요.” 먹어 보니 딸래미 말대로 남는다. 저녁도 아닌 아침을 스파게티로 먹어 본 일도 처음이고 딸래미가 아침을 한 일도 처음이다. 아빠는 스파게티를 처음 먹는단다.
큰딸은 어제부터 스파게티를 한다면서 이것저것 사오자고 했다. 토마토나 마늘이나 고추는 집에 있었지만, 아침 한끼를 먹는데 들어간 밑감값이 오만 원이 넘는다. 이 돈 같으면 밖에서 사먹는 값인데 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그래도 양념이 좀 남아서 이튿날 더 해먹기로 했다.
딸이라서 싱싱한 밑감을 쓴다. 나라면 가게일을 하면서 손질하고 남긴 것을 쓰겠지. 딸은 가장 싱싱한 걸로만 하나하나 꼬집어서 산다. 밑천이 많이 든다. “여보, 정이가 오니 밑천이 많이 들어요. 좀 가볍게 해서 먹지?” “가만히 놔둬라. 이렇게 하는 것만 해도 어디고?” 곁님 말이 맞기도 하다. 큰딸이 혼자서 요고조고 해먹자고 부산대는 일이 갸륵하다.
서른 살이 넘은 큰딸이지만 큰어린이 같다. “어린이날인데 근이 용돈도 못 줬네.” “엄마, 나도 어린이야.” 하면서 혀짧은 소리를 내고 귀엽게 군다. 어버이날이라고 크든 작든 빈손으로 오지 않은 일만 해도 많이 컸다. 쫑알쫑알 쉬지 않고 떠드니 집에는 아이가 있어야 사는 냄새가 더 나는가 보다. 고만고만 보내는 잔잔한 하루에 돌멩이 하나 풍덩 던져 일어나는 물결이 치는 듯하다. 이튿날에는 앞산에 가자고 떼도 쓴다. 나보다 딸래미 아빠가 더 신났다. 아니다. 영화관에도 같이 가자 하니 나도 신났다.
2023. 05. 06.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