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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삶 101] 이랑 삐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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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101] 이랑 삐대기

 

맨밥을 세 사람 먹을 만큼 그릇에 담아 한 김을 빼고 얼음자루에 담았다. 오늘은 집안사람 다섯이 숲을 오른다. 나는 밥을 맡았고, 같이 가지는 않는다. 같이 안 가면 홀가분해야 할 텐데,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는지 몰라 헤맨다. 혼자 가고 싶은 곳이 없었는데 문득 엄마한테 간다. 엄마가 밭매기를 한다니, 고랑 하나나 이랑 둘은 거들 듯하다.

 

햇볕은 바지런하다. 벼랑 그물에 장미꽃이 활짝 피었다. 길가에는 노란 금계국꽃이 한창이다. 못둑을 걸어 본다. 보랏빛 꽃이 수북하다. 칡덩굴이 휘감은 곁을 걷는데 못둑 풀더미로 뭐가 휙 지나간다. 송아지 빛깔 같은 고라니가 나를 보았는지 몸을 숨긴다. 숨어도 쫑긋한 귀가 보인다. 새싹을 먹으러 내려왔거나 도랑에 물을 먹으러 나왔을까. 밤에는 어디에서 지낼까. 아카시나무 둑 위로는 찻길이다. 고라니는 노란 털빛이라서 풀덤불에 숨어도 눈에 띈다. 얼마 앞서는 땅미에서 보고 오늘은 못둑에서 만나네.

 

금계국 둘레로 찔레꽃이 바람에 춤춘다. 토끼풀도 키재기하고 함박꽃도 흐드러진다. 진갓골 길가에서 숲으로 걸어간다. 두 이레 앞서 심은 파가 일어나고 들깨 싹이 올라왔다. 밭 저 끝에서 엉덩이를 치켜들고 엄마가 김을 맨다. 호미질에 흙과 돌이 부딪치는 찰랑거리는 소리가 개울물 소리 같다. 살금살금 엄마 쪽으로 갔다. 가만히 호미 소리를 듣다가 엄마를 불렀다. “엄마!” 불러도 말이 없어 “엄마!” 또 부른다. “아이고 깜짝이야!” 한다. 호미질 소리에 내 발소리를 듣지 못해도 이 밭에는 혼자뿐인데 기척을 느끼지 못하네.

 

오늘은 작정하고 풀을 다 솎아낼 참인가. 풀인지 남새인지 몰라 물었더니 풀이다. 뿌리가 굵고 길다. 나도 풀을 뽑는다. 뜯기면 흙을 파서 뿌리를 뽑는다. 두 이랑을 하고 나니 힘들다. 밭깃새로 나와 참외 하나를 깎고 다시 솎는다. 나는 엄마 앞에 가면서 풀을 뽑고 갈라진 흙을 부순다. 골이 도톰하게 올라왔으니 오른발이 쑥쑥 미끄러진다. 뒤꿈치를 부딪치며 잰걸음으로 흙을 부수다가 떨어지는 아래쪽을 되돌아와서 밟다가 이제는 아래쪽에서는 오르막으로 달리기하듯 발을 다다다 잰걸음으로 짓밟고 오른다. 위쪽에서는 두 발을 비비듯 잰걸음으로 걸으며 굳은 흙을 부수고 들깨 둘레는 왼발로 탁탁 치면서 흙을 깨고 손으로 깼다.

 

“엄마, 나 잘하지?”

“니가 풀 뽑고 흙 부수니, 난 가위로 들깨만 솎으니깐 훨씬 빠르다.”

 

엄마가 좋대서 신나게 이랑을 삐댄다. 발목에 흙먼지가 수북하게 앉는다.

 

“엄마, 이제 밥 먹으러 가자.”

“탑리까지 가지 말고 가음 가서 국수 먹자.”

 

국숫집은 오늘 닫았고 함밥집에 사람이 복닥거린다. 갈치밥을 먹는다. 오다가 팥빙수와 얼음과자를 몇 산다. 진갓골 들어가는 숲길 바닥에 앉아 얼음을 먹는다.

 

“엄마 이제 시원하제?”

“길에 앉아 얼음 처음 먹어 본다.”

 

오늘 하루를 오빠한테 알렸다.

“잘하네! 효녀다.” 한다.

“엄마, 오빠가 나보고 효녀래.”

“니가 갑자기 와서 밥도 사주고 길에 앉아 얼음도 먹고 나는 좋다.”

 

엄마, 나도 좋아.

 

 

2023 .05. 21.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