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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삶 104] 큰나무집 감나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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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104] 큰나무집 감나무집

 

작은딸이랑 새사람이 함께 살림을 차려 인천에서 산 뒤로, 대구에 첫나들이를 했다. 작은딸네하고 맛집에 가고 싶어 ‘큰나무집’이란 데를 가려고 한다. 그런데 차를 몰아 다 왔구나 싶은데 더 들어가라고 알린다. 담벼락 따라 모퉁이로 꺾는다. 아직 열두 시가 되려면 멀었으나 줄이 길다. 어제 미리 자리를 잡았다고 말하는데, 우리 이름은 예약에 없단다. 왜 그런가 하고 갸우뚱하다가, ‘큰나무집’이 아닌 ‘감나무집’이란 데에 자리를 잡았다고 떠오른다. 밥집 이름을 잘못 알고서 다른 곳에 자리를 잡았구나.

 

어떡해야 하나 헤매다가 ‘감나무집’에는 자리를 잡았으니 그리 가면 되리라 생각한다. 다시 차를 몰아 감나무집으로 간다. 감나무집도 큰나무집 못잖게 붐빈다. 그래도 용케 자리를 찾아서 앉는다.

 

이곳 감나무집은 골짜기 안쪽으로 한참 들어온 큰 밥집이다. 비가 많이 온 터라 물소리가 힘차다. 물소리를 들으면서 먹으면 좋을까 싶은데, 작은딸은 방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방으로 오니 바닥이 지저분하고 발바닥에 온갖 찌꺼기가 달라붙는다. 드나드는 손님이 꽤 많은데 이곳은 안 치우고 손님받이만 하나. 그렇지만 내가 밥집 이름을 엉뚱하게 알아서 자리를 잘못 잡았으니 뭐라 하기도 그렇다.

 

자리에 앉아 한참 기다린다. 드디어 능이버섯 백숙이 나온다. 그런데 고기가 큰나무집보다 덜 풀어졌고, 닭껍질이 많다. 살점도 적다. 넷이 먹기에 적다. 곁님이 죽을 더 달라고 시킨다. 그러나 죽이 더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곁님은 “넷이 먹기에 너무 적지 않느냐?”고 따지다가 닭불고기를 더 시킨다.

 

나는 닭죽을 먹고서 벽에 기대어 쉰다. 어제는 통 잠을 못 자서 눈꺼풀이 내려와 견딜 수가 없다. “좀만 쉴게. 어제 잠을 못 잤다 아이가.” 눈을 감고서 가만히 쉬면서 생각한다. 모처럼 작은딸이랑 새사람까지 이끌고서 맛집이라는 데에 오려고 했는데, 가려던 곳은 못 가고, 엉뚱한 곳에 왔고, 엉뚱한 곳은 비싸기만 하고 잘 나오지도 않고, 바닥도 지저분하고, 차라리 집 가까운 횟집에서 회 한 접시를 사서 집에서 집반찬이랑 먹으면 수고도 덜고 훨씬 나았겠구나 싶다.

 

살짝이지만 눈을 붙이니 좀 기운이 난다. 모처럼 온 작은딸은 몸이 야윈 듯싶다. 엄마인 나는 날로 살이 붙는데 딸은 어쩐지 앙상해 보인다. 여린몸에 일이 늦게까지 많고, 일터에서는 앉을 틈이 없다고 하니, 게다가 잔일이 끝없이 이어지는 듯하니, 자꾸자꾸 마르는구나 싶다.

 

건너에 앉은 곁님하고 눈짓으로 손가락을 둘 펼친다. 이러고서 새사람한테는 봉투에 돈을 담아서 건네고, 작은딸한테는 아예 지갑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서 따로 건넨다.

 

밥을 먹고서 짝은딸네는 인천으로 돌아간다. 저녁에 작은딸이 전화를 한다. “엄마, 우리 다 왔어. 택시 타고 가는 길이야. 근데 돈을 너무 많이 쓰지 않았나?” “엄마는, 네 아빠랑 새사람 옷도 사주려고 했는데, 둘이서 옷 좀 사러 다녀오라고 얘기할 짬도 없었네. 잘 챙겨 먹고 살부터 좀 찌우렴. 그럼 되지.”

 

실컷 자거나 쉬지도 못 하는 작은딸. 조금 마련해 주는 반찬도 집에서 밥을 차려먹을 틈이 없다면서 버리고야 마는, 소꿉놀이 같은 살림을 하는 작은딸. 그래도 잘 살아가렴. 일하느라 바쁜 날이 있으면, 머잖아 느긋한 날도 맞이한단다.

 

 

2023. 07. 16.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