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30 끈 《인연이야기》 법정 문학의숲 2009.7.5.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시끄러워서 읽던 책을 덮는다. 다른 책을 펼쳤다가 또 덮고 《인연 이야기》를 집는다. 열세 해 앞서 만난 이 책은 다시 읽을 때면 언제나 마음을 쉴 수 있다. 아까까지는 책을 읽어도 글씨가 튕겨나가는 듯하더니 어느새 술술 익힌다. 첫째 글인 ‘오늘의 나는 무엇인가’와 ‘시 반 구절과 바꾼 목숨’을 읽는다. 여태 시끄럽던 마음을 살살 다독인다. 대구에서 가게를 열기 앞서 점집에 가서 물은 적이 있다. 점집에는 아들 낳으려고 답답한 마음에 처음 가고 더 안 갔는데, 짝하고 둘이서 우리 가게를 내려고 한참 헤맬 적에 다시 가 보았다. 가게를 어느 날에 열어야 할지 묻고 싶어서 가 보았다. 점집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 좋게 나왔다. 나는 점을 보는 사람한테 내가 예전에 어떤 일을 하는 삶이었는지 슬쩍 물어보았다. 점집지기는 태어난 날을 묻는다. 이래저래 헤아리는 듯하더니, 내가 예전에는 서당에서 가르친 사람이었다고 알려준다. 그런가? 이 이야기를 듣고 보니 마음이 한결 차분했다. 오늘 내가 살아가는 모습은 모두 예전에 뿌린 씨앗이 그대로 돌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29 느끼는 몸을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7.20 다섯 해 앞서 벚꽃이 필 무렵에 송해공원 옥연못을 걸었다. 그날 나란히 걷던 분이 《감각의 박물학》이라는 책을 읽으면 글쓰기에 이바지할 만하다고 얘기했다. 그날 덥석 이 책을 장만했다. 이 책에는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시각, 공감각’이 나온다. 하나마다 여러 이야기를 담는다. 한 꼭지에도 온갖 이야기가 흐른다. 숱한 사람들이 여러 느낌(감각)을 놓고서 쓴 글을 꽤 많이 따서 실었다. 냄새(후각)를 떠올려 본다. 맡기 싫으면 숨을 살짝 멈춘다. 우리 일터 지하실에 들어가야 할 적에는 숨을 훅 참지만, 오 초만 지나도 숨을 쉬어야 한다. 땅밑에 고인 여러 냄새로 어질어질하다. 나이든 어머니한테서 나온 지린내도 떠오른다. 나이든 어머니가 오줌을 조금씩 지리셨는데, 옷에도 몸에도 집안에도 가득한 적이 있다. 옷을 갈아입히고 씻기고 문을 다 열자고 말했더니 갑자기 집안이 싸늘했다. 만지고 맛보고 듣고 보는 일은 혼자서 느끼면 그만이지만, 냄새는 숨을 쉬듯 마신다. 우리 몸은 움직이는 작은 바다인데, 맡기 싫은 냄새도 바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28 이웃한테 《우리 마을 이야기 1》 오제 아키라 지음 이기진 옮김 길찾기 2012.03.20. ‘코로나19’라는 돌림앓이에 걸리고 낫던 하루가 한참 오래된 이야기 같다. 처음 《우리 마을 이야기 1》를 읽던 즈음에는 드디어 돌림앓이가 나았다고 여겨서 풀려났다. 막내아들하고 끙끙거리듯 서로 갇혀서 힘겹게 혼자 지내야 했는데, 그때 이 만화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라기도 했고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우리 마을 이야기》는 일본에서 ‘나리타 공항’을 닦으려 하면서, 일본 정부가 ‘나리타 시골마을’을 어떻게 갈라놓으면서 사람들끼리 다투도록 불씨를 심다가 땅을 빼앗았는가 하는 줄거리를 들려준다. 우리는 쌀밥을 먹고, 무와 배추를 먹고, 수박과 참외를 먹는다. 모든 먹을거리는 땅한테서 얻는다. ‘땅’이라고 했지만, 그냥 땅이 아닌 ‘논밭’이다. 논밭이 있기에 우리가 서울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밥을 먹고 몸을 살찌운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일본에 공항을 늘려야 한다면서 ‘경제발전’과 ‘관광수입’을 내세워 갑작스레 시골마을을 큼지막하게 통째로 밀어서 없애려 했단다. ‘나리타 공항’을 일본 정부가 마구잡이로 지으려 할 적에 시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27 책이름에 낚였지만 《날씨의 맛》 알랭 코르뱅 외 김혜연 옮김 책세상 2016.3.30. 《날씨의 맛》을 장만해서 읽던, 세 해 앞서 겨울을 떠올린다. 2020년 겨울,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도 덮으면서도 머리가 휑했다. 마음도 휑했다. 글밭(문장)을 넓히려고 온누리(우주)를 알고 싶었다. 날씨가 내 마음을 어떻게 열어 줄까 궁금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2023년 가을에 이 책을 다시 읽자니 아무래도 책이름(제목)에 낚였구나 싶다. 책이름에 이끌려서 책을 산 지난날이란, 허울이 좋아 보이면 덥석 집어무는 어리석은 마음이리라. 하늘을 다스리는 해와 비와 바람과 눈과 안개와 천둥 번개를 한 갈래씩 다루면 꽉 찰 듯한데, 《날씨의 맛》은 역사학자 같은 분들이 쓴 글을 모았다. “영원히 내릴 것처럼 계속되는 질척하고 고약하고 밉살스러운 비” 같은 대목을 읽다가 놀랐다. 스탕달이 쓴 글에서 뽑았다는데, 비를 싫어하며 이렇게 적었단다. 《날씨의 맛》을 엮은 사람은 스스로 해나 비나 바람을 느낀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 자꾸자꾸 다른 이름난 사람들 말을 따온다. 해를 나쁘게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인간들 건강이나 열정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26 한때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에크하르트 톨레 노혜숙·유영일 옮김 양문 2018.10.30. 첫 아이가 태어나면서 늘 앞길을 걱정했다. 스물다섯에 이미 마흔을 챙기려고 앞만 보고 달렸다. 그날이 오면 다 이룰 듯한 생각에 버티기도 했다. 한 푼을 더 모아야 우리 아이 하나 더 가르친다는 생각뿐이었다. 컴퓨터를 배우러 갔다가 이 돈을 아껴서 우리 아이 가르쳐야지 하고 마음을 돌렸다. 꽃꽂이를 하다가도 이 돈 아껴서 우리 아이들 한 달 학원을 보내야지 하면서 그만두었다. 흙을 빚다가도 우리 아이 예쁜 옷 사줄 수 있는데 하고 멈추었다. 나는 돈을 모으려는 마음으로 하루를 그냥 써버린 듯하다. 늘 모레에 모레에 모레만 챙기려던 셈이다. 어떤 사람을 보면, 하루에 몇 가지 삶으로 쪼개며 달린다. 일 초도 오 초도 무턱대고 기다리지 않고 이쪽저쪽 몇 사람 몫으로 일을 하면서 틈새를 아끼는 사람도 있다. 이 몇 초로 한삶을 더 누린다는 마음인지 모른다. 나도 대구에 와서 처음 세 해는 일이 바빴다. 아주 바빴다. 가게에 손님이 많아서 바쁘다기보다는 낯선 일을 맡느라 일이 서툴러서 몇 곱절이나 바빴던 나날을 건너왔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25 귀청을 찢는 소리 《떨림과 울림》 김상욱 지음 동아시아 2018.10.30. 지지난 십이월에 귀에 소리가 나서 애를 먹었다. 잠이 들려고 하면 귀에서 챙챙거리는 소리가 터지고 잠을 못 이루었다. 약을 먹고 좀 나아지는 듯하더니 요즘 들어 또 말썽이다. 귀에 바람이 꽉 차는 듯하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찌릿찌릿 흐르는 듯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귀가 터지려는 듯싶다. 하품을 하면 뭔가 확 뚫리고, 자면서 귓바퀴를 돌아가며 쭉쭉 잡아당기면 한결 낫다. 바닥에 눕거나 자리에 누워 잠들려고 가만히 있으면 집이 흔들린다. 나뭇가지가 바람에 휘청이다가 제자리로 온 듯하다. 늦은밤에는 길에 차도 많이 다니지 않는데 집이 흔들린다. 어느 날은, 이렇게 흔들린다고 생각하면 집이 무너질까 걱정스러웠다. 짝한테 말을 하니 헛소리로 듣는다. 어떤 날은 글을 쓰는데 책상도 흔들린다. 아주 여리게 팔로 느낀다. 지하도 건너 기차가 달리거나 지하철이 세게 달려서 우리 집이 살짝 떨리는 줄 알았다. 지난해 봄에 장만한 《떨림과 울림》을 다시 읽었다. 멈추었다고 여기지만, 알고 보면 다 떤다고 한다. 이집트 피라미드도 떨고, 집도 떨고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24 이 나이에 만화를 《붓다 1》 테즈카 오사무 지음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2011.4.25. 만화책 《붓다 1》를 읽는다. ‘붓다’라는 이름을 붙인 비슷한 책이 많지만, 이 만화책은 글하고 그림이 나란하다. 어찌 보면, 그림이 덤으로 있으니 글에 나오는 ‘붓다’ 삶을 헤아리는 길을 살며서 돕는 듯하다. 《붓다 1》는 싯다르타 또는 석가모니라는 이름으로 태어나는 왕자를 다룬다. 히말리야산맥 기슭 인더스강 둘레에서 가뭄과 싸우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어떤 하루인지를 먼저 보여준다. 브라만이 온나라를 다스린다. 다스리는 사람들은 겉치레로 헤프다고 한다. 신분차별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학벌로 나누고 직업으로 나눈다. 벌이도 틈이 난다.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창작반을 나왔는지 따지고, 이름있는 잡지에 글을 실었는지 묻는다. 이름을 드날린 사람만 받아들일 뿐 아니라, 문조차 좁다. 언론에서 책이나 글을 소개해 주어 힘을 받은 몇몇 사람들은 여러모로 인맥에 학맥에 여러 줄을 대더라. 다들 우루루 줄서기를 한다. 줄을 잘 서야 빨리 이름을 낼 수 있다. 그러나 나도 그런 줄에 닿고 싶었고, 그런 모임에 이름을 끼워 보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23 살리는 바탕 《흙-문명을 앗아간 지구의 살갗》 데이비드 몽고메리 이수영 옮김 삼천리 2010.11.26. 밭에 지렁이가 살면 흙이 보드랍다. 지렁이가 땅속으로 다니면 흙이 부슬부슬 일어나 숨을 쉬고, 지렁이똥으로 흙이 기름지다. 흙에는 작은 숨결이 살면서 흙을 붙잡는다. 흙이 날아가지 않는다. 흙은 지렁이에 숱한 숨결을 동무로 삼고, 마른 가랑잎을 덮고, 풀과 꽃과 나무를 이웃으로 삼아서 땅을 지킨다. 살아숨쉬는 흙은 모두 씨앗을 키운다. 풀이 뿌리를 내리는 켜는 내 살갗보다 겉흙이 더 얇다고 한다. 이 얇은 흙이 우리를 먹여살리고, 더 깊은 흙에서는 작은 벌레가 먹고살고, 더욱 깊은 흙에서는 더 작은 숨결이 보금자리로 삼아서 어우러진단다. 흙이 늘 새롭게 숨을 쉬도록 이바지하는 모든 숨결이라고 느낀다. 우리가 화학비료나 농약을 치면 풀도 죽고 풀벌레도 죽고 지렁이도 죽는다. 이때에 우리 사람은 안 죽을 수 있을까? 우리도 똑같이 죽는 셈 아닐까? 흙에 깃들던 작은 숨결이 다 죽는데 사람만 안 죽을 수 있을까? 서로 얽히니, 흙에서 먹고 흙으로 돌아가면서 흙이 살아난다. 흙이 풀꽃나무가 될 씨앗을 키우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22 길들인다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 이원두 옮김 생각이큰나무 1999.11.1 큰딸이 어릴 적에 읽던 《어린 왕자》는 큰딸도 작은딸도 막내아들도 다 크고 나서 안 버렸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아이들만 보았고, 나도 나중에 언젠가 보리라 마음먹으면서 그대로 두었다. 이제 스물다섯 해 만에 펴 본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아이는, 뭐든 한 가지를 물으면 끝없이 다른 여러 가지를 묻고 또 묻는다. 곰곰이 생각하면, 우리 아이들도 늘 묻고 또 물으며 끝없이 물었다. 아마 온누리 아이들은 무엇이든 자꾸자꾸 물어보고 또 물어보다가 스스로 생각하는 틈을 누리지 않을까? 다 큰 막내아들이지만, 아직 어리던 무렵, 초등학교를 마치면 꼭 집에 전화를 했다. 어느 날은 느닷없이 “집에 내 장난감 언제 와? 빨리 보내 줘!” 하며 징징댔다. 그때에는 아이가 하는 말도 징징대는 마음도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바빠서 “학원 선생님 전화 왔어! 얼른 끊어.” 했다. 그날 아이는 씩씩거렸고, 실을 끊는 작은 가위를 손에 쥐더니, 내 노트북 이음줄을 가위로 끊는 흉내를 냈다. 작은 가위를 손에 쥐고서 씩씩거리는 아이를 살살 달래면서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21 애벌레처럼 《곤충·책》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윤효진 옮김 양문 2004.10.15. 오늘 숲에서 애벌레를 만났다. 길 가운데를 기어가더라. 밟히지 말라고 가랑잎이 쌓인 쪽으로 옮겨 주었다. “나비로 곧 태어나렴.” 하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크고 작은 나비가 팔랑이는 모습을 새삼스레 바라본다. 《곤충·책》을 두 해 만에 다시 읽는다. 처음 읽을 적에는 뭐가 좋은지 몰랐다. 벌레를 다룬 책이잖은가. 우리 아들은 개미만 보아도 무서워하는데, 나는 바퀴벌레를 보기만 해도 무섭다. 처음 본 바퀴벌레는 손가락 두 마디 크기였다. 도시로 나와서 살던 3층 집이었는데, 밖에서 가스줄이나 전깃줄을 타고서 들어오는 듯했다. 12층 집으로 옮기고 나서는 더 안 보는가 싶더니, 몇 달 지나지 않아 바퀴벌레가 또 나왔다. 개수대에도 옷칸에도 나왔다. 어디로 들어왔을까? 왜 들어올까? 《곤충·책》을 읽으면, 파인애플잎에 알을 낳아 태어나는 바퀴벌레 이야기가 있다. 바퀴벌레가 파인애플을 먹으면서 산다고? 우리나라 바퀴벌레는 무엇을 먹으면서 살까? 시골에서는 바퀴벌레를 볼 일이 없다시피 하지만, 도시에서는 바퀴벌레가 아주 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