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글님 ] 우리말 12 겨울나기 겨울을 앞두면, 우리 어머니는 으레 빨간김치 하얀김치를 독에 담습니다. 처마 밑에는 무잎과 배춧잎을 널어서 시래기로 말려요. 아버지는 여름에 나무를 베어 말려요. 톱으로도 도끼로도 땔나무를 쪼개요. 멧골짝 겨울은 더 일찍 오고 더 춥습니다. 어릴 적에는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엄마아빠가 장작을 피워서 밥을 짓고 물을 데우고 소죽을 끓이고 메주를 쑤고 조청을 고고 두부를 찌고 팥죽을 끓이고 호밤벅벅을 했어요. 나는 이 곁에서 말랑감에 고욤에 배추뿌리에 고구마를 겨우내 주전부리로 삼으면서 산수유를 바수었습니다. 문득 돌아보면, 오늘 나는 대구라는 큰고장에서 딱히 대수로이 겨울나기를 하지는 않습니다. 장작을 안 패도 겨울 걱정이 없어요. 매운바람에도 꽃눈이 부푸는 겨울 끝에 겨울나기를 돌아봅니다. 이미 겨울은 저물어 가지만, 어떤 살림으로 새해를 맞이했는지 되새깁니다. 2024. 2. 4.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80 고비 《아침의 피아노》 김진영 한겨레출판 2018.10.5. 《아침의 피아노》를 여섯 달 앞서 처음 읽을 적에는 깜짝 놀랐다. 글쓴이는 롤랑 바르트가 쓴 《애도일기》를 옮겼는데 두 책이 비슷한 글감이다. 《애도일기》는 옮긴 말씨가 썩 안 좋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의 피아노》는 좀 다르다. 죽은 어머니를 슬퍼하는 옮김책은 슬프고 슬프다는 말만 헛되이 맴도는 알맹이 없는 멧울림으로 읽었다면, 《아침의 피아노》는 글쓴이가 죽기 사흘 앞서까지 적은 글이다. 이제 몸을 내려놓고서 떠난 글쓴이는 ‘물가에 앉았다. … 생이 음악이라는 것도 알겠다’ 하고 적는다. 어쩐지 이 말에 뭉클했다. 삶이 노래라는 말이 왜 내 마음에 와닿았을까 하고 돌아본다. 노래는 즐거운 노래도 있지만, 슬프거나 아픈 노래도 있다. 활짝 웃고 춤추는 노래고 있지만, 눈물에 젖으면서 처지는 노래도 있다. 요즘 우리 집은 웃음노래가 아닌 눈물노래를 닮았다. 아니, 요 몇 달은 눈물노래를 잇는다. 열한 해를 이어온 가겟일을 접는 마지막판인데, 일도 더 많고, 마음을 쓸 곳도 너무 많고, 지치고 힘든 일은 그야말로 넘친다. 우리 엄마가 언젠가 한 말이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ㄱ. 문장의 종류 의미 문장(文章) : 1. = 문장가 2. 한 나라의 문명을 이룬 예악(禮樂)과 제도. 또는 그것을 적어 놓은 글 3. [언어] 생각이나 감정을 말과 글로 표현할 때 완결된 내용을 나타내는 최소의 단위 ≒ 문(文)·월·통사(統辭) 종류(種類) : 1. 사물의 부문을 나누는 갈래 2. 갈래의 수를 세는 단위 글은 갈래를 지을 수 있습니다. 뜻에 따라 넷으로든 다섯으로든 나눕니다. 가르니 갈래요, 나누어도 갈래예요. 어떻게 보고 나누고 가늠하느냐에 따라 글눈길을 북돋울 수 있고, 글눈빛을 살릴 만합니다. ㅅㄴㄹ 문장의 종류는 의미에 따라 다음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다 → 글갈래는 뜻에 따라 다음 넷이 있다 → 글은 뜻에 따라 넷으로 나눌 수 있다 《英語敎授法의 理論과 實踐》(김태환·김태한, 한신문화사, 1978) 95쪽 ㄴ. 존재함이란 어떤 것인가를 직접 존재(存在) : 1. 현실에 실제로 있음 2. 다른 사람의 주목을 끌 만한 두드러진 품위나 처지 3. [철학] 의식으로부터 독립하여 외계(外界)에 객관적으로 실재함 ≒ 자인 4. [철학] 형이상학적 의미로, 현상…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ㄱ. 요컨대 타인에 대한 증오 요컨대(要-) : 1. 중요한 점을 말하자면 2. 여러 말 할 것 없이 타인(他人) : 다른 사람 대하다(對-) : 1. 마주 향하여 있다 2. 어떤 태도로 상대하다 3. 대상이나 상대로 삼다 4. 작품 따위를 직접 읽거나 감상하다 증오(憎惡) : 아주 사무치게 미워함. 또는 그런 마음 ‘말하자면’을 외마디 한자말로 ‘요컨대’로 쓰기도 하지만, “다시 말해”나 ‘그래서·그러니까’나 ‘뭐’나 ‘따라서·모름지기·무릇’처럼 다 다른 자리에 다 다른 뜻과 넋으로 쓸 적에 어울립니다. “타인에 대한 증오로”는 옮김말씨에 일본말씨입니다. 우리말씨로는 “남을 미워하기”나 “이웃을 미워하기”입니다. ㅅㄴㄹ 요컨대 타인에 대한 증오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 이른바 남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 이웃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잇기 때문입니다 《고종석의 유럽통신》(고종석, 문학동네, 1995) 27쪽 ㄴ. 그 -의 사실 그 포개지며 그것 확산 사실(事實) : 1.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 2.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한 일을 솔직하게 말할 때 쓰는 말 3. 자신의 말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ㄱ. 태산준령 일행들의 얼굴 -게 되었지만 태산준령(泰山峻嶺) : 큰 산과 험한 고개 번(番) : 1. 일의 차례를 나타내는 말 2. 일의 횟수를 세는 단위 3. 어떤 범주에 속한 사람이나 사물의 차례를 나타내는 단위 일행(一行) : 1. 함께 길을 가는 사람들의 무리 2. 함께 길을 가는 사람 높다란 멧자락을 넘습니다. 함께 길을 가는 사람들은 햇볕에 그을립니다. 그을린 빛깔은 검습니다. 높은 멧길이라면 ‘높메’처럼 새말을 여밀 만하고, ‘고개·고갯길’이나 ‘재·잿길’처럼 수수하게 나타낼 수 있어요. 보기글은 “그을리고 검게 되었지만”이라 적는데, 겹말입니다. ‘-게 되다’는 옮김말씨이니 털어내고, “얼굴은 그을렸지만”으로 다듬습니다. ㅅㄴㄹ 태산준령을 그 몇 번이나 넘어오기에 일행들의 얼굴은 그을리고 검게 되었지만 → 고갯길을 몇 판이나 넘어오기에 다들 얼굴은 그을렸지만 → 높메를 숱하게 넘어오기에 모두 얼굴은 그을렸지만 《제시의 일기》(양우조·최선화, 우리나비, 2019) 78쪽 ㄴ. 그럼에도 탐조 -게 되 선사 것 자신 탐조(探鳥) : 조류(鳥類)의 생태, 서식지 따위를…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우리말 11 설거지 나는 밥을 짓습니다. 눌은 판을 불에 올립니다. 짝은 옆에서 무를 갈다가, 어느새 눌은 찌꺼기를 벗겨 놓습니다. 이밖에 다른 설거지를 옆에서 뚝딱뚝딱 하는군요. 집에서 큰일을 치르고 나면 개수대가 수북합니다. 언제 이 설거지를 다 하느냐 싶지만, 곁에서 거드는 손길이 있으니 하나둘 사라집니다. 국을 담던 나무그릇도, 지짐이를 올린 나무접시도, 술을 올리던 그릇도, 하나하나 비누 거품을 내고서 헹구고는 마른행주까지 써서 반들반들 닦아 놓습니다. 나는 밥을 짓다가 흘금흘금 구경합니다. 설거지뿐 아니라 비질에 걸레질도, 빨래에 옷개기도, 살림을 치우고 돌보는 모든 일도, 혼자보다는 둘이서 거뜬히 가볍게 후딱 할 만합니다. 예전에 울 엄마는 쌀뜨물로 그릇을 부셨어요. 구정물을 버리고 맑은물로 한두 벌 헹구고서 마당에 나비물을 뿌렸지요. 오늘 나는 둘이서 짓는 부엌살림을 누립니다. 2024. 1. 31.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79 어린나무는 《나무를 심는 사람》 장 지오노 마이클 매커디 판화 김경은 옮김 두레 1995.7.1. 되살림쓰레기를 내놓다가, 헌책을 묶은 꾸러미에 있는 《나무를 심는 사람》을 보았다. 아직 읽어 보지 않은 책이다. 책은 멀쩡하다. 고맙게 건사해서 읽어 보았다. 어느 날 어느 사람이 나무 한 그루를 심고는 오랜 나날을 돌보고 아낀다. 긴긴 나날이 흐른 끝에 푸르게 우거진 숲을 이룬다. 작은 책에 담긴 작은 줄거리는 투박하다. 그러나 숲을 이루기까지 흐른 나날은 짧지 않으리라. 메마르고 거친 벌판에 나무를 심으려는 마음이 먼저 있고, 이 나무를 돌보려는 마음이 차츰 자라고, 어느새 잎그늘이 퍼지면서 풀도 돋고 풀꽃도 피어날 수 있다. 내가 일하는 가게 곁에 그늘진 모퉁이가 있다. 이곳에 어느 날 단풍 새싹이 올랐더라. 추운 날씨에 그늘진 모퉁이 단풍 새싹은 잘 견딜 수 있을까. 어린 나무싹이 걱정스러워서 따뜻하고 볕이 잘 드는 곳으로 옮겨 주었는데, 오히려 시들시들하다가 죽었다. 싹나무는 내 걱정과 달리 겨울 추위를 잘 견디었을는지 모른다. 겨울에 추위를 견디는 힘으로 뿌리도 줄기도 곧게 뻗었으리라. 《나무를…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책숲마실 길, 메, 내 ― 구례 〈봉서리책방〉 00시에 하루를 엽니다. 05시 30분에 택시를 불러 고흥읍으로 갑니다. 06시 20분 첫 시외버스로 여수로 건너가고, 09시부터 여수 어린배움터에서 글읽눈(문해력)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겉으로 적힌 글씨만 훑을 적에는 ‘읽기 아닌 훑기’입니다. 둘레에서는 그냥 일본말 ‘문해력’을 쓰지만,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글읽기’를 얘기해야 생각을 나눌 만하다고 느낍니다. 북중미 텃사람을 끔찍하게 죽이면서 땅을 빼앗은 이들은 ‘북중미 텃사람 말’을 배우려 하지 않았고,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숱한 글바치(작가·교사·기자)는 어린이 말을 배우려 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으면서, 쳇바퀴에 갇힌 일본 한자말에 옮김말씨를 외우라고 닦달하는 얼거리입니다. 처음부터 어린이하고 푸름이 모두 못 알아들을 얄궂은 말을 쓰면서, 이 얄궂은 말을 억지로 외우라고 내모는 틀이 ‘문해력 교육’인 셈입니다. 순천을 거쳐 구례로 건너갑니다. 다시 택시를 탑니다. 택시 일꾼은 책집 앞까지 모시겠다고 자꾸 말씀하지만, 저는 책집을 둘러싼 마을을 걸을 마음이기에 “내려서 걸어갈 생각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책숲마실 ― 전남 순천 〈도그책방〉 새로 여민 책을 들고서 순천마실을 갑니다. 어릴 적부터 ‘책숲마실’을 해왔고, 이 삶을 고스란히 《책숲마실》이라는 이름으로 담았습니다. 책을 사고파는 곳도 숲이고, 책을 빌려서 읽는 데도 숲입니다. 마음에 드는 책이 있다면, 마음에 안 드는 책이 있을 텐데, 뭇책이 어우러지기에 책숲입니다. 사람은 숲을 품고서 살아가기에 사람답습니다. 숲을 품지 않고서 살아간다면 사람빛을 잊다가 잃습니다. 몸짓에 마음이 드러나고, 말씨에 마음이 나타납니다. 글줄에 마음이 퍼지고, 눈망울에 마음이 흘러요. 책이 태어나려면 먼저 삶을 일굴 노릇입니다. 스스로 그려서 일구는 삶이 있기에, 이 삶을 누리는 하루를 마음에 담습니다. 삶을 마음에 담으니 날마다 천천히 가꾸고 돌봐요. 가만히 자라나는 마음에서 말이 피어납니다. 삶이 있기에 마음에서 말이 샘솟고, 삶이 없으면 마음에서 아무런 말이 안 나옵니다. 고흥 시골집부터 순천책집을 오가는 길은 서울 오가는 길 못지않게 품과 돈이 듭니다. 시골에서 살며 이 대목을 또렷이 느낍니다. 서울에서야 인천이나 연천이나 남양주나 안산쯤 가볍게 오갈 만하고, 천안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우리말숲 다듬읽기 18 《제주어 기초어휘 활용 사전》 강양봉·김순자 한그루 2021.11.15. 《제주어 기초어휘 활용 사전》(강양봉·김순자, 한그루, 2021)을 읽었습니다. ‘밑말(기초어휘)을 살려쓰(활용)도록 이바지하는 꾸러미라고 하기에 장만했는데, 썩 살려쓸 만하지 않구나 싶어요. 제주말을 살려쓰려면 뜻풀이도 제주말로 할 노릇이에요. 엮은이는 ‘일본스런 한자말’로 가득한 다른 낱말책 뜻풀이를 그냥 옮긴 듯싶습니다. 이래서야 제주말을 제주스럽게 알 길이 없어요. 다른 낱말책에 기대지 말고서 오롯이 제주살림을 바탕으로 제주노래를 풀어내면 됩니다. 제주말로 뜻풀이를 하고서 서울말로 조그맣게 보태면 되어요. 이렇게 하면 ‘일본스런 한자말’을 확 줄일 만합니다 ‘틀에 갇힌 굴레말’이 아닌 ‘살아서 싱그러이 나누는 말’을 알리고 밝히려면, 허울부터 벗어야지요. 밑말이나 씨앗말을 살리려면 ‘더 많은 낱말’이 아니라, 마음을 밝히고 생각을 펴는 길에 이바지할 낱말을 500∼1500만 추려서 깊고 넓게 쓰임새를 알리는 얼개로 가야 어울립니다. ㅅㄴㄹ 기초어휘는 우리들의 언어생활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어휘를 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