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노래에서 길을 찾다]9-장미 제가 사는 마을 둘레에 있는 울타리에는 빨간 장미가 예쁘게 피어 있답니다. 마실을 갈 때 불빛을 받아 더욱 반짝이는 꽃잎을 보면 더 예쁘답니다. 이 무렵 이 꽃을 보면서 이 노래를 흥얼거리시는 분이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나온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이 노래를 아시는 분은 나이가 드신 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무렵이면 이 노래를 틀어주기도 하니까 들어서 아시는 분도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김미선 님의 노랫말에 백순진 님이 가락을 붙여 사월과 오월이 4312해(1979년) 처음 부른 노래입니다. 노랫말을 살펴보면 '당신,' '장미', '동화', '왕자'를 빼고는 모두 토박이말로 되어 있는 예쁜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꽃향기'라 하지 않고 '꽃내음'이라는 예쁜 말을 살려 썼으며, '싱그런', '어여쁜'과 같은 꾸미는 말도 예쁘지만 '잎사귀', '꽃송이'와 같은 말과 참 잘 어울려서 더 좋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꽃내음'이 잠자는 나를 깨우고 가기도 하고 잠못이룬 나를 재우고 가기도 한다고 나타낸 것은 참 남다르다 싶습니다. 다만 '장미'라는 말이 '장미 장(薔)'에 '장미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아들, 딸에게 들려 주는 좋은 말씀]17-이제 그대가 무얼... 밤마다 마실을 갈 때 만나는 벚나무에 버찌가 익어가고 있더구나. 일찍 꽃이 피었던 나무는 벌써 익어 떨어지는 것도 있고, 늦게 핀 나무는 붉은 빛을 띄고 있더라. 버찌가 떨어져 바닥이 시커멓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니 어릴 때 버찌를 먹고 나면 혀는 말할 것도 없고 입술까지 시커멓게 되곤 했던 게 생각이 났어. 그러고 보니 너희들도 그렇게 될 때까지 버찌를 먹은 적이 없지 싶구나. 배움을 돕는 아이들과 함께 버찌를 따서 먹어 보게 하는 것도 좋은 겪배움이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 오늘 알려 줄 좋은 말씀은 "이제 그대가 무얼 못 가졌는지가 아니라 그대가 가진 것으로 무얼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라."야. 이 말씀은 이름이 널리 알려져 너희들도 이름을 들어 보았을 어니스트 헤밍웨이 님이 남기신 말씀이라고 해.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지 못할 때나 안 될 때, 무엇이 없어서 그렇다고 핑계를 대곤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보면 뜨끔할 말씀이라고 생각해. 너희들이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꿈이 없는 것도 잘하는 게 없기 때문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둘레 가까운 사람들이…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09] 홍시 비슬산에 오르니 바람이 차다. 10도로 기온이 뚝 떨어진다. 입춘이 지났다고 곁님은 얇은 바지를 입고 오더니 덜덜 떤다. 참꽃 필 적에 가기로 하고 돌아선다. 건너쪽 꼭대기에 오른다. 맵찬 바람을 막고 볕이 든 알림말이 선 바위에 퍼질러 앉아 새참으로 말랑감을 꺼낸다. 햇빛에 빛나 반짝하는 감이 달다. 그래도 어린 날 먹던 우리 집 감이 더 달다. 금성산 밑에 마을이 들어서고 멧턱 밭에 감나무가 자란다. 이슬이 맞지 않을 적에 땡감을 따낸다. 서리가 내린 뒤에도 말랑감을 딴다. 아버지는 장대를 비틀어 가지를 꺾었다. 꼭대기가 높아서 장대가 닿지 않으면 까치밥으로 두었다. 밭 위아래에 두 가지 감나무가 있다. 한 그루는 찬감, 밑에 또 한 그루는 도감이다. 찬감은 납작하고 말랑말랑하고 껍질이 얇고 발갛고 도감은 대봉처럼 뾰족하고 껍질이 두껍다. 찬감은 달고 씨가 없다. 도감도 씨앗은 없지만, 씨앗 닮은 결로 타박타박하고 뽀드득 알갱이로 씹힌다. 아부지가 그 먼 곳에서 따다 놓은 홍시를 아랫방에 두고 겨울에 온집안이 먹는데, 작은오빠하고 나하고 몰래 많이 꺼내 먹었다. 배추 뿌리나 날고구마를…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08] 솔가리 청도 밤티재에서 길을 헤매고 남산에 오른다. 들머리에 잣나무가 쭉쭉 뻗었다. 우거진 숲으로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길이 폭신하다. 붉은 잣나무 이파리가 땅에 두툼하게 쌓였다. 가파른 등성이를 따라 오르자 바위가 가득하다. 돌 틈마다 소나무가 힘들게 자란다. 낭떠러지가 있는 모퉁이를 돌아 밧줄을 잡고 곁님이 오를 적에 나는 솔가리를 밟고 발로 파 본다. 두툼해서 땅이 보이지 않는다. 소나무가 많아 풀꽃도 드물고 솔가리를 파헤쳐 소나무 냄새가 짙다. 소나무 잎은 태워도 소나무 냄새가 난다. 내가 열한두 살 적에 멧골에 가서 땔감을 마련했다. 작은오빠를 따라가기도 하고 마을 언니들과 몰려다녔다. 까꾸리(갈퀴)로 그러모으고 마른 솔방울도 줍는다. 자루에 들고 가기 좋게 맞춤하게 채운다. 그리고 소나무 겉껍질을 낫으로 깎는다. 하얀 속껍질이 보이면 이로 깨물어 하모니카를 불듯 왔다갔다 하면서 송구를 뜯어먹었다. 맹 맛이고 뻐덕뻐덕한데도 배고파서 먹었다. 솔가리는 부엌에 두고 불쏘시개로 썼다. 더러 날소나무도 아버지가 베어서 쇠솥에 장작을 지펴 밥을 짓고 물을 데웠다. 그런데 마을에 순사가 떴다.…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토박이말 살리기]- ‘빨래’와 아랑곳한 토박이말 누구나 이레끝(주말_만 되면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안 할 수 없는 일 가운데 하나가 빨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 있으면 가장 먼저 할 일이 빨래고, 놀러 갔다가 오더라도 빨래는 해야 입고 신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빨래’와 아랑곳한 토박이말을 몇 가지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낱말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옛날에는 빨래를 하려면 빨랫감을 가지고 냇가나 샘가에 가야했습니다. 그래서 빨래를 하는 곳을 가리켜 ‘빨래터’라고 했습니다. 빨래를 할 때는 손으로 조물조물 주물러 빨기도 했지만 이게 있어야 빨래를 하는 맛이 났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게 바로 ‘빨랫방망이’입니다. 요즘에는 집집마다 집에서 빨래를 하기 때문에 볼 수가 없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세탁기’라고 하는 것이 빨래를 다 해 주는데 그래도 빨래를 해서 갓 말린 옷을 입을 때 나는 냄새는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다 좋게 느껴질 것입니다. 빨래를 해서 이제 막 입은 옷에서 나는 냄새를 가리키는 토박이말이 있는데 그게 바로 ‘새물내’입니다. ‘새물내’는 ‘새물+내’의 짜임으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토박이말 살리기]1-45 달램수 어제 저녁에는 여느 날보다 좀 일찍 마실을 나갔습니다. 늘 걷는 냇가에 가까이 갔을 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로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못 봤지만 저녁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던 거였죠. 사람이 많다 보니 제가 가는 앞쪽에 있는 사람들을 앞질러 가는 것도 마음이 쓰였고, 맞은 쪽에서 내려오는 사람들도 마음에 쓰였습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늦게 나오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힘차게 한 바뀌 돌고 오니 땀도 나고 좋았습니다. 오늘 알려드릴 토박이말은 '달램수'입니다. 이 말은 말집(사전) 가운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달래서 꾀는 수단'이라고 풀이를 하고 있지만 보기월이 없고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말집(사전)에 오르지도 못했고 쓴 보기월도 없는 말이니까 몰라도 되는 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지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이 말의 짜임을 보면 '좋고 옳은 말로 잘 이끌어 꾀다'는 뜻으로 쓰는 '달래다'의 이름씨꼴(명사형) '달램'에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나 수완'이라는 뜻을 가진 '수'가 더해진 것으로 볼 수 있습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07] 순이나무 일터에 갈까 망설이다가 뒷골을 올라가기로 한다. 개나리 풋풋한 내음하고 아까시 꽃내음이 짙다. 꽃꿀을 찾는 벌이 바쁘다. 언젠가 이 뒷골에 아까시나무를 보러 온 적이 있는데, 그날 내가 ‘순이나무’라고 이름을 붙인 나무를 만났다. 일에 바빠 아이들을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맡긴 내 모습을 나무 한 그루에서 보았다. 나는 일에 묶여서 옴짝달싹 못하고, 나무는 어디로도 못 가고 그 자리에 서서 꼼짝을 못한다고 여겼다. 너무 바쁘게 묶인 일이지만, 오늘만큼은 일을 잊고 싶어 뒷골에 올라서 순이나무를 찾았다. 여섯 해 만인가. 순이나무는 껍질이 홀라당 벗겨지고 불에 그을린 듯 까맣다. 나무줄기는 볼품없어 보이지만 우듬지에 흰꽃을 피웠다. 누가 이 나무를 보아줄까. 누가 이 나무에 핀 꽃을 알아보나. 꽃이 피니 잎도 돋고. 잎이 돋으니 나무는 늘 싱그러이 살아간다. 그 자리에 꼼짝을 못하고 박힌 듯하지만, 알고 보면 바람을 마시고 해를 머금으면서 홀가분하게 서서 푸르게 꿈꿀는지 모른다. 어쩌면 나도 일에 묶여서 살아가는 오늘이 아닌, 이 일을 하려고 여기에 와서 살아가는지 모른다. 좋은 일도 싫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06] 디딜방아 숲을 거닐다 쑥떡을 먹을 자리를 둘러본다. 맞춤한 바위를 찾았는데, 이 바위 틈으로 나무가 끼인 듯하다. 자라던 나무에 바위가 굴러온 듯하지 않고, 바위가 있는 사이에 씨앗이 떨어져 자란 듯하다. 어떻게 그 틈에서 자랐나 싶으나, 나무하고 바위는 마치 하나인 듯 얼크러지며 오늘에 이르렀지 싶다. 어릴 적에 언덕집에서 살다가 마당이 넓고 디딜방아가 있는 집으로 옮긴 일이 있다. 마을에서는 으레 우리 집에 와서 쌀이나 가루를 찧었다. 엄마도 우리 먹을 쌀을 한 바가지씩 확돌에 나락을 부어서 찧었다. 긴 나무 받침에 두다리가 달리고 길게 뻗었는데, 가루를 빻을 적에는 여주알처럼 생긴 공이를 머리쪽에 끼우고, 쌀을 찧을 적에는 나무공이로 바꾼다. 방아채 가운데 난 구멍에는 대를 끼우고, 대는 두 돌받침대에 얹었다. 엄마가 줄을 잡고 다리를 밟으면 방아가 올라가고, 이때 확돌에 손을 넣고 뒤집으면 엄마가 보고서 발을 뗀다. 박자를 맞추어야 손을 안 다치고 수그린 머리를 안 박는다. 돌하고 나무하고 나무하고 엄마가 한마음이 되어 방아를 찧는다. 오늘 숲에서 만난 바위하고 나무도 한마음으로 살아가는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애면글면 멋진 사람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힘이 센 사람이 아닌, 썩 힘차지 않은, 그리 대단하지 않은, 어찌 보면 그리 당차지도 않은 우리가 멋집니다. 씩씩하게 나서지 않아도 멋집니다. 있는 힘껏 일하지 못하더라도 멋지지요. 애면글면 하거나 악착같아야 하지 않아요. 불타오르지 못하고 화끈하게 내달리지 않더라도 좋아요. 우리 스스로 오늘을 사랑할 줄 안다면 멋져요. 수수하게 살림을 짓는 오늘을 스스로 즐기기에 멋집니다. 씨앗 한 톨을 땅에 묻는 손길이면 넉넉합니다. 어린이랑 어깨동무하면서 활짝 웃는 마음이면 넉넉해요. 굳이 잡아당기지 마요. 즐거우면 스스로 나선답니다. 푹 빠질 적에만 잘 하지 않아요. 사랑하는 마음이기에 즐겁게 합니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면 좋겠어요. 겉으로 보는 모습이 아닌, 겉모습에 사로잡힌 길이 아닌, 우리가 손수 지은 하루를 얘기하면서 그대로 꽃이 되면 넉넉하구나 싶어요. 꾸밈없이 되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만, 오롯이…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말 좀 생각합시다’는 우리를 둘러싼 숱한 말을 가만히 보면서 어떻게 마음을 더 쓰면 한결 즐거우면서 쉽고 아름답고 재미나고 사랑스레 말빛을 살리거나 가꿀 만한가 하는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말 좀 생각합시다 10 햇빛 햇살 햇볕 해에서 흐르는 기운을 여러모로 가릅니다. ‘햇빛’이 있고, ‘햇살’이 있으며, ‘햇볕’이 있어요. 세 낱말은 쓰임새가 다르고 뜻이 달라요. 그러니, 이렇게 세 갈래로 꼴을 다르게 해서 쓰지요. 햇빛은 말꼴대로 ‘빛’을 가리킵니다. 빛이란 무엇일까요? 빛깔이나 무늬를 알아보도록 하는 밝은 기운입니다. 햇살은 말꼴대로 ‘살’을 가리킵니다. 살이란 무엇일까요? 빛이 퍼지는 줄기를 살이라고 합니다. 햇볕은 말꼴대로 ‘볕’을 가리킵니다. 볕이란 무엇일까요? 지구라는 별에서 사는 모든 목숨이 따뜻하도록 하는 기운입니다. 그러니, 햇볕을 놓고 ‘밝다’라든지 ‘눈부시다’라는 낱말로 나타낼 수 없습니다. 햇살이나 햇빛을 놓고 ‘따뜻하다’라든지 ‘뜨겁다’라든지 ‘포근하다’라는 낱말로 나타낼 수 없어요. 말을 쓸 적에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어느 말 한 마디가 어떻게 태어났는가 하는 대목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