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앉은벌이 어버이한테서 돈을 물려받아 고스란히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거저벌이입니다. 딱히 하는 일이 없어 보이면 앉은벌이입니다. 물림먹기나 물림벌이라 할 만해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른 숨결을 어버이한테서 받습니다. 누구는 돈을 받으면, 누구는 사랑을 받고, 누구는 노래를 받고, 누구는 싱그러운 바람하고 햇살을 받아요. 밑천벌이를 하고 싶다면 푸른들이나 파란바다가 아닌 돈을 바라겠지요. 돈벌이가 나쁠 일은 없습니다. 돈에만 들러붙다가는 그만 허수아비가 되고 말아, 스스로 짓는 삶이 없어 떨거지로 구르기 일쑤예요. 남을 좇을 생각은 끊어요. 우리는 찌꺼기가 아닙니다. 말로만 달콤한 길을 바라지 말고, 겉말을 치우고서 새롭게 오늘을 지어요. 따라다니기만 하다가는 아무런 꿈이 없습니다. 글발림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눈속임에 홀랑 넘어가느라 밑돈을 날린답니다. 느긋이 삶을 바라본다면 돈멀미도 글멀미도 씻어내면서 즐겁게 내딛을 삶자리를 맞추면서 차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말 좀 생각합시다’는 우리를 둘러싼 숱한 말을 가만히 보면서 어떻게 마음을 더 쓰면 한결 즐거우면서 쉽고 아름답고 재미나고 사랑스레 말빛을 살리거나 가꿀 만한가 하는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말 좀 생각합시다 20 한자말은 매우 적다 낱말책에 몇 낱말이 올랐나 어림하면서 ‘우리말 가운데 텃말은 매우 적고, 한자말이 거의 모두를 차지한다’고 잘못 이야기하는 분이 많습니다. 이 이야기를 잘못이라고 밝힐 수 있습니다. 아주 쉬워요. 왜냐하면 우리 낱말책을 엮은 이들이 우리 텃말은 일부러 제대로 안 담으면서 벼슬판·힘판(정치권력·사회권력·문화권력)을 거머쥐던 지난날 임금·글바치·나리가 쓰던 중국 한문은 빼곡하게 담으려 했거든요. 일본이 총칼로 짓밟던 무렵에 스며든 일본 한자말도 잔뜩 담으려 했고, 일본에서 흔히 쓰던 영어까지 꽤 많이 담았어요. 국립국어원에서 낸 낱말책을 보면 중국 땅이름이나 미국·유럽 사람이름·책이름까지 참 많이 담습니다. 우리 낱말책에 정작 충청말·경기말·강원말·전라말·경상말·제주말을 제대로 안 담습니다. 예부터 고장마다 서로 다르게 쓰던 말을 조금 담기는 했으나 웬만한 말은 거의 안 담았어요. 북녘말은 그야말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뒤집다 아침에는 아침을 읽습니다. 낮에는 낮을 보고, 저녁에는 저녁을 마주하고, 밤에는 밤을 품습니다. 말과 삶이 다르다면 아침을 아침으로 안 읽거나 밤을 밤으로 못 읽는 탓이지 싶어요. 속임짓을 하려고 말과 삶이 어긋난 사람이 있으나, 삶을 모르기에 다른말삶인 사람이 수두룩해요. 글을 많이 배우면 똑똑하지 않아요. 글을 많이 익히기에 글꾼일 뿐입니다. 살림길을 등질 적에는 오락가락합니다. 삶얼을 짓지 않기에 왔다갔다하더군요. 살림꽃을 돌보는 슬기로운 길로 가지 않으니 갑자기 옮겨타거나 뒤집는 짓을 해요. 눈가림하고 입씻이는 나란히 흐릅니다. 앎꽃도 나쁘지 않으나 삶꽃이 먼저입니다. 생각이 밝은 사람은 숲이라는 터전을 따사로이 어루만지면서 아이랑 놀 줄 알아요. 숲을 등지거나 나몰라라 하는 이들은 겉보기로만 빠삭하고 빈털터리이기 일쑤입니다. 살림넋이 없으니 엇가락이에요. 배울거리를 글에서만 찾으니 어긋나요. 아는힘은 푸르게 들을 안고 파랗게 하늘을 맞이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빗발치다 아기는 모두 갖춘 숨결로 태어납니다. 아기를 품은 어버이는 여태까지 잊거나 놓던 온살림을 아기 곁에서 가볍게 다스리면서 하루하루 새롭게 나는 살림을 짓습니다. 어버이도 처음에는 아기였는데 왜 어른이란 몸뚱이로 오는 길에 오롯한 숨빛을 잊거나 잃을까요? 마음껏 뛰놀면서 신나게 익히는 나날이 아닌, 덮어놓고 배움책을 펴다가 들이붓듯 배움수렁(입시지옥)에 사로잡히기에 온것을 잊는구나 싶어요. 어깨동무가 아닌 할큄질에 내쏨질을 하려고 동무 사이에서 화살을 쏘는 수렁에 잠겼으니, 그만 이웃을 쳐부수거나 뒤흔들거나 물어뜯고서 혼자 올라서려는 마음으로 바뀌고 온빛을 잃겠지요. 빗발치는 채찍은 누가 일으킬까요? 남이 다그치나요? 스스로 갉나요? 남이 때리거나 찌르나요? 스스로 후리거나 후비지 않나요? 옹글게 사랑을 갖추어 태어난 아기로 살다가 아이라는 소꿉놀이를 지나 어른이란 자리로 온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기로 해요. 천에 글씨를 적어 봐요. 다툼길 아닌 사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추레하다 아름답게 살아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는 분을 곧잘 만납니다. 온누리에 사납거나 거친 놈이 수두룩한데, 착하거나 곱게 굴다가는 그악스러운 발톱에 긁혀서 다친다더군요. 가만 보면 무쇠탈을 쓴 듯한 이들이 엉터리로 굴면서 지저분한 짓을 일삼는 모습을 어렵잖이 보곤 합니다. 추레하다 못해 볼썽사나운데, 저이는 어쩜 저렇게 볼꼴없이 구는가 하고 들여다보면, 저이 스스로 얼마나 엉망인가를 모르더군요. 거울로 겉모습은 보되, 냇물로 속마음을 보지는 않아요. 이웃한테 괘씸짓을 일삼는 이들은 모든 몹쓸 씨앗이 이녁한테 돌아가는 줄 안 깨닫습니다. 무시무시한 엄니는 바로 스스로 돌려받을 씨앗인데, 나쁜짓을 못 멈춰요. 우리는 퍽 오래도록 콩나물시루라 할 배움칸(교실)에 갇혀서 길들었습니다. 배움터가 배우고 나누는 밑바탕 노릇을 못 한 지 오래입니다. 북새칸에서 아이들은 살아남느라 바쁩니다. 미어터지는 곳에서 아이들은 서로 밟고 치고 때리면서 따돌릴 뿐 아니라, 끼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응석받이 일본사람이나 미국사람이 대단해서 새말을 짓지 않습니다. 눈길을 가만히 기울이기에 어느 날 문득 새롭게 쓸 말씨앗이 싹트고 자랍니다. 톡톡 튀는 말이어야 새말이지 않습니다. 삶자리에서 수수하게 흐르는 낱말을 즐겁게 엮기에 새말입니다. 살림터에서 조촐히 어우르는 낱말을 웃으며 묶기에 새말이에요. 아무튼 우리는 아직 새말을 짓는 힘이며 눈빛을 잘 밝히지는 않아요. 눈길앓이를 하는 이는 많더군요. 남이 쳐다보기를 바라는 마음일 뿐, 스스로 환하게 웃으며 이웃을 사귀는 길하고는 멀어요. 누가 왜 나를 좀 봐줘야 할까요? 스스로 참나(참된 나)를 보면 넉넉할 텐데요. 응석받이는 응석입니다. 아양쟁이는 아양이에요. 어리광이는 어리광입니다. 응석이나 아양이나 어리광은 사랑이 아닌 겉짓입니다. 참말로 사랑으로 살아간다면 도드라져 보여야 할 까닭이 없는 줄 깨달아요. 뭐 모르니까 알랑알랑하겠지요. 어찌저찌 눈치를 챈다면, 이러구러 속으로 느낀다면, 알랑방귀가 아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머드러기 까닭을 모르며 일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튼 일을 하다 보면 슬슬 영문을 알아채고, 흐름을 읽어요. 처음에는 썩 아름답지 않아 보이지만, 조금씩 얼거리를 잡는 사이에 무엇이 좋거나 아쉬운가를 느끼고, 스스로 숨빛을 살려서 꽃빛으로 거듭나도록 추스릅니다. 남다르거나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지만, 돋보이지도 않고 빛깔있지 않은 일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뛰어나거나 빼어나다는 잣대나 틀은 누가 세울까요? 남이 하는 말에 휘둘리면서 일손을 잡지는 않나요? 둘레에서 펴는 이야기에 사로잡혀 일거리를 찾지는 않나요? 꼭두봉우리에 오르려고 일할 생각은 없습니다. 으뜸꽃이 되려는 마음은 없습니다. 스스로 가꾸는 이 삶길에 씨알을 고이 심으면서 즐겁게 웃는 멋을 노래하고 싶은 나날이에요. 손수 묻은 씨가 싹이 트면서 잎이 돋고 줄기가 오르면 어느새 꽃이 피어요. 밤에는 별빛을 품고 낮에는 빛살을 담으면서 가만히 피어납니다. 온빛이 흐르는 들꽃 곁에 앉으면 사근사근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파란하늘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 살림을 짓는 사람이라면 하늘빛을 보면서 ‘푸르다’고 말을 하지 않습니다. 들판을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 같은 마음이라면 풀빛이 춤추는 곳을 바라보며 ‘파랗다’고 말하지 않아요.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노릇이지만, 한자말에 매인 머리로는 ‘파랗다·푸르다’를 뒤섞을 뿐 아니라, ‘파란하늘’이나 ‘푸른들’ 같은 낱말을 지어서 낱말책에 실을 생각을 못 합니다. 언제나 아이한테 물어보면 길이 쉬워요. 잘 아는 어른이 아닌, 처음 마주하는 아이한테 묻고서 가만히 생각을 기울이면 실마리를 밝게 찾습니다. 아직 우리말에 없다고 여겨 한자말이나 영어를 데려오기도 하지만, 예부터 쓰던 말밭을 살피면서 찬찬히 골라도 돼요. 마음을 쓰기에 살림을 짓고 놀이를 누리면서 새말도 새길도 짓습니다. 가을날 한들거리는 꽃에 어떤 이름을 붙여 볼까요? 살살 춤추기에 ‘살살이꽃’이나 ‘한들꽃’이라 할 만해요. 굳이 바깥말 이름을 그대로 써야 하지 않아요. 잘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말 좀 생각합시다’는 우리를 둘러싼 숱한 말을 가만히 보면서 어떻게 마음을 더 쓰면 한결 즐거우면서 쉽고 아름답고 재미나고 사랑스레 말빛을 살리거나 가꿀 만한가 하는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말 좀 생각합시다 19 엄마말 아빠말 오늘날은 엄마말하고 아빠말 사이가 차츰 무너집니다. 한결 나아진 길로 가는 모습이지 싶습니다. 한동안 엄마말은 집안에만 머물며 아이를 돌보고 집살림까지 도맡으면서 쓰는 말이었고, 아빠말은 집밖에서 나돌며 바깥살이(사회)에 길든 말이었습니다. 엄마말은 집이라고 하는 보금자리를 살뜰히 돌보는 말이기에 언제나 수수하고 쉬우며 포근한데다가 부드러운 말이라면, 아빠말은 서로 다투고 치고받는 말이거나 총칼나라(일제강점기·군사독재)에 억눌리거나 짓밟힌 말이거나 다툼판(정치권력)에서 내리누르는 말이었다고 할 만합니다. 발자국을 더 거슬러 보면, 제법 예전에는 엄마말하고 아빠말이 모두 집에서 일하며 쓰던 말입니다. 엄마말은 아기한테 젖을 물리면서 살내음이 물씬 풍기는 말이었고, 아빠말은 아이한테 집짓기를 보여주고 소몰이를 가르치며 쟁기질이나 나무질을 알려주는 숲내음이 잔뜩 묻어난 말이었지 싶어요. 제법 예전에는 거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우리말 오늘말. 올차다 어릴 적을 돌아보면, 둘레 할아버지나 아저씨는 으레 어렵다 싶은 말씨였어요. 어린이가 알아들을 만하도록 반듯하게 말씀하는 어른은 드물었어요. “어른이라면 어린이가 알기 쉽도록 말해야 옳지 않아?” 하고 생각했으나, 어른들은 “너희가 아직 모르니까 못 알아듣지.” 하면서 ‘어른들 어려운 한자말을 외우라’고 시키기만 했어요. 우리가 참마음이라면 참말을 참하게 하겠지요. 어린이를 참되게 사랑한다면 해밝게 말씨를 가다듬어 올차게 이야기를 지피리라 생각해요. ‘아직 모르는 아이’라고 여기기보다는, 몸힘처럼 마음힘을 차근차근 북돋우는 아이들 눈높이를 헤아리는 곧고 어진 말씨로 쉽고 부드러이 말을 가눌 노릇이지 싶습니다. 왜 어렵게 말해야 할까요? 왜 어렵게 글써야 할까요? 왜 어른들은 스스로 익숙한 대로 말글을 외우기만 할까요? 눈을 맑게 틔워서 숨빛이 싱그럽게 말글을 가꾸기가 어려울까요? 말 한 마디에 담을 기운은 해님처럼 안차고 별님처럼 올되면서 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