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우리말 오늘말. 노란쪽 지난날에는 누구나 볏섬을 지고 쌀자루를 날랐으나, 어느 때부터인가 ‘섬·자루’ 같은 낱말이 ‘푸대·포대’나 ‘봉투’란 한자말에 밀립니다. ‘꾸러미’가 ‘세트’한테 쓰임새를 잃으며 ‘꾸리·꿰미’는 더더욱 설 자리를 잃으니, ‘천바구니’로 조금 살아난다 싶은 말씨도 ‘에코백’ 앞에서 힘을 못 쓰더군요. 우리말도 넉넉히 보따리요 넘실거리는 타래입니다. 일본 한자말에 노란쪽을 매기거나 영어에 빨간종이를 붙여야 하지 않아요. 노랑도 빨강도 검정도 풀빛도 파랑도 무지개처럼 어우러지는 빛종이로 삼아서 누리면 됩니다. 글월을 담아 글월자루에 글자루요, 실꾸리나 달걀꿰미뿐 아니라, 책바구니에 생각보따리에 이야기타래를 엮을 만합니다. 이웃나라에서 쳐들어와 우리말을 짓밟은 적이 있습니다만, 스스로 우리 살림을 사랑하지 않을 적에는 스스로 때려부수거나 짓찧는다고 느껴요. 모든 말에는 살림을 가꾸면서 사랑스레 펴는 삶이 흘러요. 고운 텃말을 살리는 길보다는 일바탕을…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꽃 오늘말. 두루 달구벌에서 “마스크 쓰go”란 글자락을 새겨서 알리는 일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어느 분은 뭔 소리인지 쉽게 못 알아듣겠다 하고, 어느 분은 수월히 알아보며 좋다고 한답니다. 영어가 익숙한 사람은 가볍게 받아들일 테고, 어른이나 어르신이라면 두루 맞이하기 어렵겠지요. 나라(정부)에서 하는 일이라면 누구를 바라보면서 글자락을 짓는가를 생각해야겠지요. 누구는 재미있다 하더라도 어렵거나 우리말하고 안 맞다고 나무란다면, 이처럼 수수한 목소리를 귀여겨듣고서 뭇사람한테 이바지할 새 말길을 찾으면 서로 즐거워요. 이를테면 “입가리개 하고 가고”나 “입가리개 쓰고 가고”처럼 말끝 ‘-고’를 잇달아 붙이며 노래처럼 부를 만합니다. 굳이 ‘go’를 안 보태도 돼요. 귀를 열고 눈을 뜰 적에 새길을 찾아요. 우리 살림살이를 손수 가꾸려는 눈길일 적에 들꽃사람 누구나 즐겁습니다. 사고팔것에 너무 얽매이면 오히려 장사가 어렵고, 더 멋져 보이려고 꾸밀 적에는 이래저래 말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말 좀 생각합시다’는 우리를 둘러싼 숱한 말을 가만히 보면서 어떻게 마음을 더 쓰면 한결 즐거우면서 쉽고 아름답고 재미나고 사랑스레 말빛을 살리거나 가꿀 만한가 하는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말 좀 생각합시다 18 좋은 생각 영어로는 “굿 모닝!”이라 말하며 서로 절을 합니다. 영어를 고스란히 옮겨 “좋은 아침”이라 말하는 분이 있으나 어설픕니다. 이른바 옮김말씨(번역어투)예요. 아침을 맞이할 적에 우리말씨로 제대로 한다면 “아침입니다!”나 “아침이야!”예요. “아침입니다. 반갑습니다!”나 “아침이야. 반가워!”처럼 ‘반갑다’를 덧붙일 수 있어요. 우리말씨로는 따로 아침 낮 밤을 가리지 않으니 “반가워!”나 “반갑습니다!”라고만 해도 어울려요. 옮김말씨인 “좋은 생각”이 있어요. 책이름으로도 있지요. “참 ‘좋은 생각’이야.”처럼 쓰기도 해요. 이때에 고개를 갸우뚱해 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예부터 “‘생각’ 참 ‘좋네’.”나 “참 잘 ‘생각’했어.’”라 했습니다. ‘좋은’을 앞에 못 넣지는 않습니다. “‘좋은’ 생각”을 아예 안 쓸 까닭도 없습니다. 다만 ‘좋은’을 지나치게 아무 곳에나 쓰는 줄은 느끼고 헤아려야지 싶습니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차꼬 깊이 배우거나 많이 알아야 일할 만하다고 여긴다면 사슬터입니다. 일이란, 스스로 즐겁게 노래하며 놀 줄 아는 사람이 해요. 힘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짓누르거나 내리누르듯 시킬 수 없는 일입니다. 시킬 적에는 ‘시킴질’이요, 이때에는 ‘심부름’입니다. 재갈을 물거나 고삐를 달거나 멍에를 쓰거나 차꼬를 찬 몸으로는 아무 일을 못 해요. 총칼을 앞세운 나라가 시키는 대로 따를 뿐이에요. 찧거나 쪼는 우두머리나 힘꾼 등쌀에 밀려 억지로 심부름을 합니다. 남이 시키기에 할 적에는 스스로 숨결을 갉아먹습니다. 스스로 일어나서 움직이는 일일 적에는 모든 울타리나 담벼락을 허물고서 종수렁을 씻어냅니다. 아이는 아직 어려 일보다 심부름을 한다지만, 아이는 어른을 거들려는 맑은 눈망울로 기꺼이 심부름을 맡을 뿐이에요. 아이들은 재미나게 소꿉을 하면서 재잘재잘 노래합니다. 어른이란 몸은 소꿉놀이로 키운 살림빛을 일머리로 가다듬는 슬기로운 숨빛입니다. 심부름이란 굴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변변찮다 스스로 즐겁다고 여기면 언제 어디에서나 모든 일이 즐겁게 흐르고, 스스로 하찮다고 여기면 늘 무엇이든 하찮게 구릅니다. 남이 손가락질하면서 값없다거나 쓸데없다고 말한들, 한귀로 흘릴 까닭조차 없이 빙그레 웃어요. 오늘 이곳에서 지을 변변찮은 살림이라 하더라도 가만히 두레를 하고 천천히 품앗이를 합니다. 더 많이 모여서 울력을 하지 않아도 좋아요. 아이들하고 조그맣게 모둠을 이루어 천천히 들꽃모임을 즐기면 됩니다. 우리는 들두레도 들풀두레도 할 만합니다. 푸른두레나 풀꽃두레도 어울려요. 들꽃 한 송이하고 어우러지는 모임도 새롭고, 나무 한 그루하고 하나되는 살림두레도 싱그러워요. 조그맣다면 조그마하니 즐겁고, 작다면 작아서 즐겁습니다. 낮은길도 높은길도 없어요. 못난이도 잘난이도 없습니다. 금을 긋거나 손가락질을 하거나 핀잔을 하는 마음이야말로 후줄근하지 싶어요. 깔보거나 얕보는 말을 읊는 쪽이야말로 초라하고요. 쓸모없는 풀은 한 포기도 없습니다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뻣몸 우리말 ‘나리’는 두 가지로 씁니다. 첫째는 꽃이름이요, 둘째는 벼슬아치나 구실아치를 하는 사람인 ‘관리·공무원’이에요. 어쩌다가 사뭇 다른 두 가지를 똑같은 이름 ‘나리’로 가리킬까요? 벼슬이나 감투를 누리는 이들이 부디 막짓으로 기울지 않으면서 꽃손처럼 마을에 깃들기를 바라는 뜻이었을까요? 미운손 같은 나리가 아니라 아름손 같은 나리를 바라보면서 이처럼 이름을 지었을까요? 엉터리라 할 만한 짓을 일삼는 사람을 마주하면 몸이 굳습니다. 바보짓이란 꼴보기싫고, 밉짓은 볼썽사납거든요. 그런데 멍텅구리처럼 구는 구실바치야말로 뻣몸이지 싶어요. 아름다운 길이 아니니 뻣뻣하기 마련이요, 고운 꽃빛이 아니니 굳어버리기 쉽겠지요. 우리는 저마다 다른 들꽃입니다. 우리는 다 다른 들꽃으로서 이 별에서 숨을 나누고 품을 들이면서 고운손님이 된다고 느낍니다. 온꽃이 되기를 바라요. 온빛으로 어우러지기를 바라요. 저마다 온살림을 짓고, 온삶빛으로 하루를 일구기를 바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열린밥터 고을마다 고을빛이 흐릅니다. 터를 섬길 줄 아는 이라면 섣불리 풀밭이나 도랑을 잿빛으로 덮지 않아요. 고장마다 새로운 고장빛을 헤아리려는 마음이 없기에 자꾸 뒷길로 삽질을 하고 잿빛집을 세우려 합니다. 우리가 살아갈 자리에는 무엇이 있을 적에 빛날까요? 우리 마당에 무엇을 놓아야 아름다울까요? 즐겁게 일하는 터전이라면 넉넉히 가꾸거나 짓는 숨빛이 모여 몰래질도 감춤질도 걷어치우는 듬직하고 상냥한 손길로 나아가리라 봅니다. 따로 뭘 더 해야 하지 않습니다. 풀꽃나무를 쓰다듬고 바람을 마시고 구름을 맞아들이면 됩니다. 이 땅은 우리가 즐겁게 놀고 일하면서 오순도순 어우러질 적에 하늘빛으로 올라요. 서로 믿으며 뒤주간을 엽니다. 서로 높이며 열린밥터를 꾸립니다. 혼자 몰래쓴다면 재미없을 뿐 아니라 뒤가 구리기 마련이에요. 오래 뜸을 들이지 말아요. 이제는 노래판과 나눔판과 춤판으로 만나기로 해요. 궂은 몸짓은 막고, 궂긴 소리는 다물도록 하고, 구순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말 좀 생각합시다’는 우리를 둘러싼 숱한 말을 가만히 보면서 어떻게 마음을 더 쓰면 한결 즐거우면서 쉽고 아름답고 재미나고 사랑스레 말빛을 살리거나 가꿀 만한가 하는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말 좀 생각합시다 17 예쁜 토박이말 ‘예쁜 토박이말’이나 ‘아름다운 토박이말’을 살리자고 하는 얘기를 새뜸(언론)이나 책이나 배움터(학교)에서 곧잘 다룹니다. 이런 얘기를 더러 읽거나 듣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러네, 이런 말이 있었네” 하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얼마 뒤에 몽땅 잊기 일쑤입니다. 예쁘거나 아름답다고 하는 텃말이 좀처럼 머리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예쁘거나 아름답다고 하는데 왜 머리에 안 들어오는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무래도 예쁘기만 하거나 아름답기만 하기 때문은 아니랴 싶습니다. 삶을 짓거나 살림을 꾸리면서 여느 자리에 수수하게 쓸 만한 말이 아니라, 낱말책 어느 구석에 숨은 말이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예쁘거나 아름다운 텃말이라고 해서 더 낫지 않으며, 딱히 나쁘지 않습니다. 좋거나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쓰임새를 잃은 말이라면, 또 우리 스스로 쓰임새를 잊은 말이라면, 이러한 말에는 새로운…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칸소리 일곱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 다섯겹(5층)인 작은 잿빛집(아파트)에서 살았습니다. 집에서 뛰거나 뒹굴면 틈새소리 탓에 아랫집에서 시끄러우니 “나가서 뛰놀라”는 말을 익히 들었습니다. 밖에 나가서 뛰놀면 우리가 외치고 깔깔대는 소리가 쩌렁쩌렁 퍼집니다. 이윽고 어느 집에서 드르륵 미닫이를 젖히고 “좀 조용히 놀아라!” 하고 나무랍니다. 집안도 집밖도 “뛰지 말라”는 어른들 말소리가 가득합니다. 여름겨울이면 어머니 옛집에 찾아갔고, 논밭을 짓는 어른하고 언니가 어우러지는 시골집에서는 “뛰지 말라”라든지 “조용히 놀아라” 같은 소리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아이가 노는 소리에 새·개구리·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가 어우러지기에 시골일까요? 여름지기는 칸소리에 시달릴 까닭이 없이 언제나 숲소리가 고이 흐드러져 철빛으로 칠칠하구나 싶습니다. 큰고장이기에 칠칠치 못하겠지요. 흙 한 줌이 없고 들꽃 한 송이 필 틈이 없는 서울이기에 구지레하거나 추레하겠지요. 풀 한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려면 뭘 걸어야 하지 않아요. 내걸지 않아도 기꺼이 나섭니다. 높다란 뜻을 내세워야 값지지 않아요. 누구를 앞세우기보다 다같이 노래하면 넉넉해요. 꼭 해야 하지 않습니다. 잡으려면 잡을 테고 이루자면 이루겠습니다만, 먼저 바라볼 곳이 있어요. 우리가 선 자리부터 사랑으로 헤아리면서 밑바탕을 포근히 가꾸어야지 싶습니다. 스스로 사랑인 줄 생각하지 않기에 나중에 말이 어긋나고 토를 붙입니다. 아직 어설프기에 남사스럽다고 여기는데, 아직 엉성하지만 스스럼없이 나설 만해요. 안되어 보이거나 창피하다는 눈길을 잊어요. 넘어지면서 다릿심이 붙는 아이처럼, 후줄근한 우리 모습을 더 깊이 사랑하면서 하루를 지어요. 무엇보다 사랑이라는 마음이기에 꿈을 이루고 뜻을 폅니다. 힘이나 돈이나 이름이 반드시 있어야 할까요? 힘이나 돈이나 이름은 겉치레이지 않을까요? 꼭두로 삼고 꽃등으로 다스릴 밑을 잃거나 잊기에 힘이며 돈이며 이름에 매이지 싶어요. 가없이 따스하게 돌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