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에서 짓는 글살림”은 숲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시골자락에서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길에 새롭게 맞아들여 누리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숲에서 짓는 글살림 19. 책숲마실 제가 어릴 적에는 어디를 갈 적에 그냥 ‘간다(가다)’고 했습니다. 그저 갈 뿐이었어요. 옆집에 가든 아랫집에 가든 동무가 사는 집에 가든 늘 간다고 했어요. 배움터에도 가고 저잣거리에도 가며 작은아버지네에도 그저 갔습니다. 책집에도 가며 가게에도 가고 기차나루에도 갔지요. 좋아하는 곳이 따로 있어서 찾아간다고 하더라도 저뿐 아니라 둘레에서도 하나같이 ‘간다’고 했고, ‘가자’고 했으며, ‘갈까’ 하고 물었어요. 때로는 ‘찾아가다’라고도 하지요.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여행’이나 ‘산책’ 같은 한자말을 쓰는 분이 나타났습니다. ‘여행·산책’ 같은 말을 곳곳에서 쓰며 ‘간다’고 말하는 사람이 부쩍 줄어요. 그러고 보면 “바람을 쐰다”고도 으레 말했지만, 이 말도 어느새 자취를 감춥니다. 저는 책집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책집을 퍽 자주 갔습니다. 책집을 자주 가니 ‘드나든다’고 이야기하는 분이 있고, ‘쏘다닌다’라든지 ‘들락거린다’고 이야기하는 분이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책숲마실’은 나라 곳곳에서 알뜰살뜰 책살림을 가꾸는 마을책집(동네책방·독립서점)을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여러 고장 여러 마을책집을 알리는(소개하는) 뜻도 있으나, 이보다는 우리가 저마다 틈을 내어 사뿐히 마을을 함께 돌아보면서 책도 나란히 손에 쥐면 한결 좋으리라 생각하면서 단출하게 꾸리려고 합니다. 마을책집 이름을 누리판(포털) 찾기칸에 넣으면 ‘찾아가는 길’을 알 수 있습니다. 봄바람 책숲마실 : 포항 〈리본책방〉 봄바람이 흐드러지는 아침에 대전에서 포항으로 기차를 타고 갑니다. 기차나루에서 가까운 〈리본책방〉부터 찾아가려고 시내버스를 갈아탑니다. 포항이라면 사람도 많을 텐데 “포항으로 주민등록을 옮기자!”고 알리는 글월이 곳곳에 붙습니다. 어느덧 우리나라는 푸른별에서 아기가 가장 적게 태어나는 나라로 손꼽히니, 시골이 사라지기 앞서 나라부터 사라질 만하겠네 싶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고장에 안 살면서 ‘머리만 늘린다’고 포항이 나아질까요? 이런 눈속임을 포항뿐 아니라 전남이며 경남 여러 시골에서 해요. 아기도 어린이도 푸름이도 젊은이도 어르신도 살가이 어우러지면서 빛나는 고장으로 돌보는 벼슬판(정치행정)이라면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에서 짓는 글살림”은 숲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시골자락에서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길에 새롭게 맞아들여 누리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숲에서 짓는 글살림 18. 옮김말씨는 우리말인가? 제가 쓴 글을 받아서 싣는 곳에서 더러 글이름이나 글줄을 고칩니다. 그런데 글이름이나 글줄을 고치면서 고쳤다고 알리지 않기 일쑤입니다. 나중에 새뜸이나 책를 보면서 깜짝 놀라요. 저는 틀림없이 이렇게 안 썼으나 그곳 엮은이가 고쳤거든요.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가다듬거나 살피는 길을 걷는다는 사람으로서 엉뚱하거나 엉성한 글이 제 이름을 달고 나오면 부끄럽습니다. 비록 제가 그렇게 안 썼다고 하더라도, 새뜸이나 책을 엮는 분이 우리말을 제대로 짚지 않고서 고쳤으니 부끄럽지요. 그 엮는이는 틀림없이 다른 분 글도 엉뚱하게 고치겠지요. 이러면서 얄궂은 옮김말씨(번역체)는 끝없이 퍼질 테고요. 엮는이는 엮는이 나름대로 알맞게 고쳤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멀쩡한 글을 옮김말씨로 고친다거나, 입으로 말하듯이 썼는데 딱딱하게 고친다거나, 쉽게 쓴 글에 한자를 입힌다면 좀 따질 노릇이라고 봅니다. 쓰레기를 생각해 본 적 있나 (글쓴이) 쓰레기에 대해 생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책숲마실’은 나라 곳곳에서 알뜰살뜰 책살림을 가꾸는 마을책집(동네책방·독립서점)을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여러 고장 여러 마을책집을 알리는(소개하는) 뜻도 있으나, 이보다는 우리가 저마다 틈을 내어 사뿐히 마을을 함께 돌아보면서 책도 나란히 손에 쥐면 한결 좋으리라 생각하면서 단출하게 꾸리려고 합니다. 마을책집 이름을 누리판(포털) 찾기칸에 넣으면 ‘찾아가는 길’을 알 수 있습니다. 고니못 책숲마실 : 서울 〈호수책장〉 시골사람한테 서울마실은 가장 가깝습니다. 이 시골에서 저 시골로 오가는 길은 서울을 다녀오는 길보다 단출하며 길삯마저 적게 들어요. 곰곰이 보면 시골에서도 읍내나 면내를 잇는 길이 뻥뻥 뚫리고, 시골에서 구경터(관광지)로 삼는 곳도 길이 잘 뚫립니다만,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가는 시골버스는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나라가 모든 사람을 온통 서울바라기로 몰아붙인 지 꽤 깁니다. 얼추 즈믄 해가 넘을 테지요. 고구려·백제·신라·가야·부여로 알맞게 나누던 작은 울타리일 적에는 곳곳이 사이좋게 어울릴 만했다면, 한나라로 삼는다며 크게 치고받으면서 이웃을 무너뜨릴 적에는 서울 한 곳만 키우려 했어요. 굳이 한나라여야 하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에서 짓는 글살림”은 숲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시골자락에서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길에 새롭게 맞아들여 누리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숲에서 짓는 글살림 17. 다람쥐를 다람쥐라 못하다 2017년 가을께 전남 고흥군 고흥읍에 있는 시외버스역 뒷간에 ‘아짐찬하요’라는 글월이 붙었습니다. 뭔 뜬금없는 글월인가 하고 쳐다보니, 사내들이 오줌을 눌 적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서면 ‘아짐찬하다’는 소리입니다. 다만, 고흥 바깥 전라말로는 ‘아심찬하다’로 씁니다. 흔히 전라사람은 뭔 말을 할라치면 ‘거시기하다’라 한다고들 합니다. 고흥에서는 ‘거시기하다’라고는 거의 안 쓰고 ‘거석하다’라고 합니다. 낱말책을 살피면 ‘거석’을 경남말로만 다루는데, 경남말로만 여겨도 될까 아리송합니다. 그리고 ‘거시기하다’는 전라말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온나라에서 두루 쓰는 말입니다. 고흥에서 흔히 쓰는 ‘거석하다’를 놓고 낱말책은 ‘거식하다’라는 표준말을 싣기도 합니다. 더 헤아려 보면 ‘머시기’라는 말이 있고, 뭔가 뭉뚱그려서 말하는 자리라든지 또렷하게 안 떠오르지만 나타내고 싶은 말이 있을 적에 ‘무엇’이나 ‘거기’나 ‘그것’이나 ‘것’이나 ‘거’를 쓰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에서 짓는 글살림”은 숲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시골자락에서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길에 새롭게 맞아들여 누리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숲에서 짓는 글살림 16. 어정쩡한 겹말을 털고 말꽃으로 2017년 10월에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이라는 우리말꽃(국어사전)을 한 자락 써냈습니다. 이 우리말꽃이자 ‘글쓰기 길잡이책’은 모두 1004가지 보기를 다룹니다. 어느 이웃님은 사람들이 어정쩡하거나 엉뚱하게 쓰는 겹말이 이렇게 많으냐며 놀랍니다. 그런데 저도 놀랐습니다. 느낌을 살리거나 힘주어 밝히려는 뜻이 아닌 자리에, 어정쩡하거나 엉뚱하게 말을 겹쳐서 쓰는 버릇이 대단히 널리 퍼졌을 뿐 아니라 숱하게 많은 줄 하나하나 깨달으면서 저부터 제가 쓰는 글을 새롭게 가다듬자고 생각했어요. 《겹말 사전》을 써낸 뒤에도 겹말 보기는 꾸준히 모읍니다. 그야말로 끝도 없이 나오는데요, ‘시시때때로’나 ‘삼시세끼’나 ‘한도 끝도 없이’나 ‘누군가가’나 ‘무언가가’나 ‘가끔씩’이나 ‘이따금씩’은 매우 귀엽다고 할 만한 가벼운 겹말이라 할 만합니다. 이런 겹말은 살짝 손질하면 쉬 고칠 만하고, 가볍게 알려주면서 고개를 끄덕이겠지요. 다음에 드는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14 백 가지 친구 이야기 동무하며 걷는 길 《백 가지 친구 이야기》 이와타 켄자부로 글·그림 이언숙 옮김 호미 2002.5.25. 《백 가지 친구 이야기》(이와타 켄자부로/이언숙 옮김, 호미, 2002)가 갓 나오던 무렵, 저는 서울에서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쓰고 엮는 일을 했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을 꾸리는 분(출판사 사장님)은 멋스러운 책이 나왔다면서 잔뜩 장만하셨고 둘레에 하나씩 건네셨어요. “그래, 너도 좀 봐라. 순 글씨가 가득한 책만 읽지 말고, 이런 그림도 읽고 시도 읽으면서 마음 좀 다스려 봐.” 하고 한마디 보태셨어요. “사장님, 저, 시집도 많이 읽는걸요?” “에그, 그런 시 말고, 이렇게 여백을 남기면서 노래하는 글을 읽으라고!” “그럼 시에 빈자리(여백)가 있지, 빈자리가 없는 시가 어디 있어요?” “됐다. 그냥 읽어라.” 그때 그 어른은 왜 제가 《백 가지 친구 이야기》 같은 책을 안 좋아하거나 못 알아보리라 여겼을까요? 우리말꽃이라는 책은 그야말로 글이 빼곡하고 두툼합니다. 이런 책을 지어야 하는 일을 한대서 글책만 읽을 까닭이 없습니다. 2002년 무렵에 저한테 아이가 없었어도 그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에서 짓는 글살림”은 숲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시골자락에서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길에 새롭게 맞아들여 누리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숲에서 짓는 글살림 15. 한모금 부딪히는 말 사람들마다 쓰는 말이 다릅니다. 사람들마다 사는 고장이 다르고, 사람들마다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가는 터전이 다르거든요. 그런데 고장이나 삶터나 일터가 다르더라도 비슷하게 쓰는 말이 있어요. 이를테면 어른들이 술을 마실 적에 그릇을 부딪히면서 하는 말은 비슷하곤 해요. 요새는 “위하여!” 같은 말을 흔히 씁니다. 저는 ‘위하다’라는 말을 아예 안 씁니다. 아이들 앞에서도 안 쓰고, 이웃 앞에서도 안 써요. 글을 쓰든 말을 하든 저로서는 ‘위하다’를 쓸 일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어린이나 푸름이가 어른을 흉내내어 물그릇을 부딪힐 적에 어른처럼 “위하여!” 하고 외치면 몹시 안 어울려 보여요. ‘위하다’는 ‘爲’라는 한자를 붙인 말씨예요. 숱한 글이나 책을 살피면 “이를 위하여”나 “하기 위하여”나 “지원을 위하여”나 “여행을 위하여”나 “나라를 위하여”나 “꿈을 위하여”나 “사랑을 위하여”나 “시행하기 위하여”나 “보호하기 위하여”나 “발전을 위하여”나…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13 《모유 수유가 처음인 너에게》 최아록 샨티 2020.11.25. 《모유 수유가 처음인 너에게》(최아록, 샨티, 2020)를 읽으면서 여러모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날은 어버이한테서 삶이나 살림이나 사랑을 물려받는 때가 아닌, 누리그물에서 이모저모 스스로 그때그때 찾아서 보는 때인 만큼,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길도 글이나 책으로 만나겠네 싶어요. 책 한 자락입니다만,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곁에 있으면 곧장 배울 뿐 아니라 훨씬 깊고 넓게 익힐 만한 젖물림입니다. 어머니가 아기한테 ‘밥을 먹이는’ 살림을 놓고 ‘젖먹이기’나 ‘젖물리기’라 합니다. 그저 보면 ‘먹이기’이나 곰곰이 보면 ‘물리기’이거든요. 한자말이라서 ‘수유’를 안 써야 한다고 여기지 않습니다만, 왜 먼먼 옛날부터 “젖을 물린다”고 했는지 혀에 이 낱말을 얹고서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물리다 = 물려주다’이고, ‘물림 = 물(흐름)’이에요. 이어서 흐르는 숨결에 사랑을 담습니다. 그래서 젖을 물린다고 합니다. 말씨로 ‘젖물리기’가 무언지 읽어내어도 어떻게 아기를 안아서 사랑하면 즐거운가를 온몸으로 깨닫고 온마음으로 움직일 만해요. 여기에 ‘아이를 낳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12 《어느 돌멩이의 외침》 유동우 철수와영희 2020.5.1. 《어느 돌멩이의 외침》(유동우, 철수와영희, 2020)은 1978년에 처음 나왔고, 1984년에 다시 나왔으며, 2020년에 새로 나왔습니다. 해묵었다고 여길 분이 있을 테지만, 이 책을 1990년대랑 2000년대랑 2020년대에 새삼스레 되읽으며 돌아보노라니, 오늘날 우리 터전 민낯은 그대로이지 싶습니다. 일꾼은 그럭저럭 일삯을 제법 받을 만큼 나아졌습니다만, 벼슬자리에서 사람들을 깔보거나 억누르는 흐름은 걷히지 않았습니다. ‘일순이가 짓밟혀도 일두레(노동조합)가 먼저’라 여긴 지난날 그 사람들은 오늘날 ‘가시내를 괴롭히고 응큼짓을 일삼았어도 나라힘(정치권력)을 지키기가 먼저’라 여기지요. 우리는 무엇을 바꾸었고, 아직 무엇이 그대로일까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이란, 억눌리는 사람이 사라지는 터전일 뿐 아니라 억누르는 사람도 사라지는 터전입니다. 한켠에서 억눌리는 사람이 있다면, 한쪽에서 억누르는 사람이 있어요. 한구석에서 우는 사람이 있다면, 한복판에서 우쭐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라힘을 거머쥔 이들은 몇 해째 ‘검찰 바꾸기’를 외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