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06 딱딱하다 《일방통행로》 발터 벤야민 글 조형준 옮김 새물결 2013.4.30. 둘레에서 《일방통행로》는 꼭 읽을 책으로 꼽기에 장만했다. 지지난달에 처음 읽으면서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더라. 오늘 다시 펼쳐도 글이나 이야기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읽다가 자꾸만 멈춘다. 옮긴 말씨까지 한몫 거들듯 딱딱하다. 글쓴이 발터 벤야민을 풀이한 글을 들춘다. 꽤 길고, 이분이 뭘 하고 뭘 생각해서 뭘 썼다는 뜻인지 종잡기 어렵다. 논문을 써서 냈더니 ‘단 한 줄도 이해할 수 없다’라는 소리를 들었다는데, 절로 고개를 끄떡인다. 우리나라에서는 번역 탓도 크다고 느낀다. 집안일을 하고서 다시 읽어 본다. 글은 꼭지 하나마다 짧다. 다음 글하고 이어가는 글이 아닌, 저마다 따로 노는 글이다. 글이름과 줄거리가 잘 와닿지 않는다. 글이름을 건너뛰고서 읽자니 오히려 줄거리를 어림할 수 있겠다. 발터 벤야민이라는 분은 이렇게 한자로 얘기했을까? 어쩌면 라틴말을 많이 썼을는지 모르지만, 왜 옮긴이는 우리말로 ‘생각’을 풀어내려 하지 않을까? 딱딱한 글이고, 깔끔하지도 않다. 자꾸만 전쟁이 떠오른다. 책을 반쯤 읽다가 샛길로 빠진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05 나는 오직 나 《여자의 일생》 모파상 글 송면 옮김 어문각 1986.07.31. 《달과 6펜스》읽고서 제자리에 꽂다가, 곁에 있는《여자의 일생》을 집었다. 우리 집에 있는 《여자의 일생은 1986년에 나온 판이니 묵은 책이다. 그런데 첫 쪽을 넘기다가 깜짝 놀랐다. ‘1986학년도 2학기 중간고사 성적 우수’라고 선생님이 적은 글씨가 있고, ‘상’ 도장이 찍혔다. 어, 내가 열아홉 살 적에 받은 책이잖아! 여태 몰랐다. 이제야 알아본다. 놀란 나머지 책을 이리저리 살피는데, 뒤쪽 빈종이에 “빗물 같은 정을 주리라”라는 김남조 시인이 쓴 시를 옮겼다. “고독에서 고고로”라는 열여섯 줄도 적어 놓았다. 어쩐지 낯간지럽다. 마흔아홉 살이나 쉰아홉 살도 아닌, 열아홉 살 어린 나이에 무슨 ‘고독’을 씹는다고 했을까. 무슨 ‘빗물 같은 정을 준다’는 시를 읽었을까. 그러나 그때에는 둘레에서 다들 이런 시를 읽었고, 이야기했고, 학교에서도 배웠다. 우리 집에는 《여자의 일생》이 두 가지 책으로 있다. 하나는 민음사에서 펴낸 ‘세계문학전집’이다. 새책으로 장만했다. 다른 하나는 고등학생 적에 받은 문고판이다. 이제 해묵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04 달과 일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글 송무 옮김 민음사 2000.6.20 《달과 6펜스》는 20.12.18 구미에 있는 〈삼일문고〉에서 샀다. 그날 ‘세계문학전집’을 한 꾸러미로 삼백스무 자락을 장만했다. 하루에 하나씩 읽으면 한 해 걸리고, 이틀에 하나 읽으면 두 해가 걸리리라 여겼다. 이 마음으로 읽으면 세 해쯤 넉넉잡아서 다 읽을 줄 알았다. 이제 여섯 달이 지나면 세 해째에 이르는데, 여태 펼치지 못한 책이 더 많다. 《달과 6펜스》는 21.1.7에 첫 쪽을 넘겼다. 가게에서 일을 하다가도 틈틈이 책을 읽을 생각에 즐거웠다. 그렇지만 이내 이 마음이 훅 꺼져버렸다. 이날은 저녁에 가게 다른 일꾼이 바코드가 있는 자리를 손으로 잡고는 여러 번 찍는 척하더라. 그러니까, 가게 물건을 마치 팔린 듯 찍찍 긁는 시늉을 하면서 빼돌린 셈이다. 다른 일꾼이 집으로 돌아간 뒤에 시시티비를 열 번쯤 돌려보았다. 그냥 넘어갈 수 없기에, 이이한테서 이야기를 들으려고, 이튿날 가게에 십 분쯤 일찍 나오라고 했다. 그런데 “십 분 일찍 나오면 제 시간만 버리잖아요. 그렇게 일찍 나갈 수 없으니 할 말 있으면 바로 하세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우리말 살려쓰기 다듬읽기 4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장명숙 김영사 2021.8.18.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장명숙, 김영사, 2021)를 이태 앞서 마을책집에서 읽다가 내려놓았습니다. 올해에 문득 장만해서 찬찬히 읽고서 덮었습니다. 짧지 않은 나날 씩씩하게 걸어온 길을 갈무리했다기보다는, 어쩐지 글치레가 잦습니다. 옷이 멋부림 아닌 옷살림이라면, 글도 글꾸밈 아닌 글살림으로 바라볼 노릇입니다. 글 한 줄에는 이제껏 얻거나 누리거나 쥔 이름값이 아닌, 민낯과 맨발과 속빛을 얹을 적에 이야기로 피어납니다. 옷살림에서는 손꼽히실 수 있고, 젊은이를 가르치실 수 있으나, 굳이 글쓰기까지 넘보려 한다면, 부디 일곱 살 어린이 눈길로 돌아가서 ‘새내기 할머니’로서 글씨·말씨를 추스르시기를 바라요. 햇빛은 반짝이고 삶은 대단합니다. 해는 눈부시고 오늘은 빛납니다. 옷을 차려입기에 사람이 빛나지 않습니다. 꾸밈말이나 치레말을 끌어들일수록 오히려 글이 시들시들합니다. 새길을 찾는 마음이라면, 우리말부터 새로 배우는 눈길을 틔우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3백여 쪽의 책을 쓰면서 → 3백쪽 즈음 책을…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우리말 살려쓰기 다듬읽기 3 《체벌 거부 선언》 아수나로 엮음 교육공동체벗 2019.5.5. 《체벌 거부 선언》(아수나로 엮음, 교육공동체벗, 2019)을 읽었습니다. 뜻있게 엮은 책이라고 보면서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체벌’이란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되물으며 헤아리지는 못 하는구나 싶고, ‘거부’나 ‘선언’은 또 무엇인지 찬찬히 새기지 않았구나 싶어요. ‘체벌·거부·선언’ 세 낱말 모두 우리말 아닌 ‘일본 제국주의·군국주의 한자말’입니다. 매질이나 주먹질을 거스르거나 손사래치겠다고 외치거나 밝히겠다면, 우리 삶터에 스미거나 깃든 모든 굴레하고 멍울부터 씻고 털어낼 노릇입니다. 이 작은 낱말 하나에까지 총칼(군사·독재주의) 기운이 흘러요. 이런 일본 한자말을 떨쳐내지 못하거나 않는다면, ‘아무렇지 않게 쓴 작은 말씨 하나’가 말주먹(언어폭력)이 되는 얼거리를 못 읽고 안 느낄 테지요. 모든 열매는 암꽃하고 수꽃이 만나야 씨앗을 맺고 영글어서 얻습니다. 순이돌이가 어깨동무를 사랑으로 하면서 살림길을 새롭게 짓는 보금자리를 찾아야 비로소 삶입니다. ㅅㄴㄹ 아이들의 애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 아이들이 매달려도 아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42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 ‘조선식물향명집’ 주해서》 조민제·최동기·최성호·심미영·지용주·이웅 엮음 심플라이프 2021.8.15.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조민제와 다섯 사람 엮음, 심플라이프, 2021)는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풀꽃나무에 붙은 이름을 《조선식물향명집》을 바탕으로 다시 하나하나 짚으면서 새롭고 깊으면서 넓게 돌아보는 얼거리입니다. 1928쪽에 이르는 두툼한 풀꽃책이고, 웬만하다 싶은 풀꽃나무 이름을 이 꾸러미로 차근차근 찾아볼 만합니다. 엮은이 여섯 사람은 풀꽃나무를 틀에 박힌 굴레로 바라보려 하지 않습니다. 풀이름도 꽃이름도 나무이름도 처음에는 언제나 숲사람(시골사람)이 숲을 품고 살아가는 길에 숲빛을 담아서 고을·마을·고장뿐 아니라 집집마다 다르게 가리킨 뿌리를 헤아리려고 애씁니다. 풀꽃나무 이름뿐 아니라, 우리가 쓰는 말도 처음에는 모두 ‘사투리’입니다. 고을·마을·고장·집마다 다르게 쓰는 말씨였는데, 서울이 크고 나라가 서면서 ‘맞춤말(표준말)’을 세웠을 뿐입니다. 맞춤말은 으레 한 가지 이름만 세웁니다만, 사투리는 하나일 수 없어요.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내가 안 쓰는 말. 결혼 함께살림을 한다면 한걸음씩 함함하게 하늘빛으로 함박웃음 하루하루 한결같이 같이살기를 간다면 가만가만 듣고 가다듬고 가벼이 손잡으며 가누고 가르치기보다 배우는 꽃맺음 사랑맺음 아름맺음 가시버시 순이돌이 한마음 너나없이 너나들이 우리집 보금자리 둥지 포근포근 철들어 가는 어른 철노래 잇는 어버이 들숲바다처럼 노는 아이 하나씩 가꾸며 짓는 오늘 ㅅㄴㄹ 일본 한자말이라는 ‘결혼(結婚)’은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음”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 한자말이라는 ‘혼인(婚姻)’은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는 일”을 뜻한다지요. 예부터 여느 사람들은 한자도 중국말도 없이 생각을 나누었고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살림을 지었습니다. 이 한자말도 저 한자말도 안 쓰던 사람들은 먼 옛날부터 어떤 우리말로 둘 사이를 나타냈을까요? 먼저 ‘맺다’입니다. ‘매듭’하고 뿌리가 같은 ‘맺음’은 “열매가 맺다”나 “꽃망울이 맺다”처럼 쓰고, “이슬이 맺다”나 “끝을 맺다”처럼 쓰기도 합니다. ‘매조지’라는 우리말하고 비슷하면서 다른데, 곱게 피어나는 끝이자 처음인 길을 나타내는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내가 안 쓰는 말. 학교 울타리로 찔레꽃 피고 담벼락에 동박새 앉고 밤마다 별을 읽고 아침에 이슬 먹고 나무에 올라타서 풀잎피리 풀밭에 드러누워 휘휘파람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잔치 들판을 내달리는 땀방울꽃 빗물이 흐르는 길 배운다 햇살이 내리는 곳 돌본다 언니는 동생을 아끼고 동생은 언니를 이끌고 사랑을 물려주는 어린이 아이한테서 듣는 어른 소꿉으로 살림놀이 어린이 너나없이 어울리는 이야기 ㅅㄴㄹ 어린이는 어느 나이에 차면 들어가서 배우는 곳이 있습니다. ‘학교(學校)’라 하고, “일정한 목적·교과 과정·설비·제도 및 법규에 의하여 계속적으로 학생에게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을 뜻한다지요.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으로 풀이하는데, ‘교육(敎育)’은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 줌”을 뜻해요. ‘학교 = 가르치는 곳’이라는 낱말풀이입니다. 그런데 왜 빙빙 돌며 어렵게 풀이를 할까요? “삶을 가르치는 곳”이나 “삶과 살림과 사랑을 배우는 곳”처럼 풀이할 만하며, 쉽게 풀이하는 길을 따라서 ‘배움터·배움곳·배움집’처럼 더 쉽게 우리말로 여밀 만합니다. 숲(자연)을 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03 나무처럼 서기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 유영만 글 나무생각 2017.11.28.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를 2021.12.17.에 처음 장만했다.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온 그날 하루는 일을 나가지 않았다. 얼굴도 안 씻고 마냥 책을 읽었다. 그날은 화담 서경덕 소설 두 자락도 슥 읽었다.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를 읽을 적에, 보랏빛과 노란 띠종이를 붙여 가면서 읽었다. 몇 군데나 띠종이를 붙였나 나중에 세니 스물세 군데이다. 오늘 한 해하고 일곱 달 만에 다시 읽으면서 책 귀퉁이를 접기로 한다. 예전에 읽을 적하고 얼마나 마음이 맞으려나 하고 헤아려 본다. 그런데 귀퉁이를 접은 데는 열로 줄었다. 더구나 예전에 띠종이를 붙인 곳하고 겹치면서 마음에 드는 대목은 딱 한 군데이다. 이 하나에는, 스님이 두드리는 나무방울(목탁)을 살구나무로 짠다는 이야기가 흐른다. 책을 덮고서 생각에 잠긴다. 어떻게 열아홉 달 만에 ‘마음에 닿는 대목’이 확 줄어들까. 더구나, 예전에 읽을 적하고 오늘 되읽을 적에 마음이 닿는 대목이 한 군데뿐일 수 있을까? 다시 책을 편다. 이 책을 쓴 분은 시집을 읽는 분 같다. 니체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02 불빛으로 《촛불의 미학》 가스통 바슐라르 글 이가림 옮김 문예출판사 1975.9.30. 《촛불의 미학》을 2019년 1월 10일에 처음 읽었다. ‘등단’이란 이름을 얻으면 글쓰기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줄 알았다. 두 달이 지나자 슬슬 속이 바짝 탔다. 밤늦게 집에 오는데 길바닥과 담벼락마다 그림자 다섯하고 걸었다. 길마다 불빛이 등에서 내리쬐고, 달리는 자동차 불빛으로 여러 그림자가 나왔다. 담벼락에는 커다란 짐가방도 따라오고, 심부름꾼을 떠맡아 투덜거리고 들어온 날 이 책을 만났다. 책이름만 떠올리다가 오늘 다시 읽는다. 내가 얼마나 잘 읽어내는지 모르겠지만, 우리한테 뭔가 들려주고자 하는 말을 잘 적지 못했지 싶다. 논문 같기도 하고 여느 시집 끝에 나온 평론을 읽는 느낌이다. 생각을 끌어낼 이야기도 없고, 외로운 마음을 받춰줄 이야기도 없고, 촛불이 어떻게 아름답다는 소리인지 딱히 드러내지도 못하고, 이런 시인에 저런 철학자들 이름만 줄줄이 들먹인다고 느낀다. 왜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다른 훌륭하거나 이름나거나 뛰어나다고 하는 ‘누’가 한 말이라고 내세우면 책이 되고 논문이 될까? ‘내 목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