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45 《지금 우리는 자연으로 간다》 리처드 루브 류한원 옮김 목수책방 2016.2.26. 《지금 우리는 자연으로 간다》(리처드 루브/류한원 옮김, 목수책방, 2016)는 “The Nature Principle : Human Restoration and the End of Nature-Deficit Disorder” 같은 영어를 옮겼습니다. “숲길 : 사람을 살리며, 숲을 잊은 굴레를 끝내다”를 나타낸다고 할 만하니, “오늘 우리는 숲으로 간다”처럼 풀어낸 이름이 꽤 어울릴 수 있습니다. 배움길에서는 ‘자연결핍장애’ 같은 이름을 쓰는 듯싶은데, ‘숲멍울’이나 ‘숲을 잊다’라 해야 알맞다고 느껴요. 자꾸 ‘장애·결핍장애’ 같은 굴레를 씌우지 않기를 바라요. 숲이 모자라거나 없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숲을 등지거나 멀리하거나 잊을 뿐입니다. 사랑길을 등지거나 멀리하거나 잊기에 숲도 등지거나 멀리하거나 잊어요. 푸른넋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기에 멍들고 다치고 아픕니다. 풀이 조금만 자라면 모기가 끓느니 뱀이 나온다느니 두려움에 무서움이라는 마음을 심는 짓도 숲멍울이라 여길 만합니다. 이 별에는…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에서 짓는 글살림”은 숲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시골자락에서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길에 새롭게 맞아들여 누리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42. 엄마쉼 아빠쉼 어른이 어른한테 쓰는 말이 있고, 어른이 아이한테 쓰는 말이 있습니다. 두 말은 다릅니다. 어른 사이에서 흐르는 말을 아이한테 섣불리 쓰지 않아요. 거꾸로 아이가 아이한테 쓰는 말은 어떤가요? 아이가 아이한테 쓰는 말은 어른한테 써도 될까요, 안 될까요? 어린이하고 어른이 함께 알아듣는 말이 있고, 어른만 알아듣는 말이 있어요. 그러면 어린이만 알아듣는 말이 있을까요? 아마 어린이만 알아듣는 말도 있을 테지만, 어린이가 알아듣는 말이라면 어른도 가만히 생각을 기울일 적에 ‘아하, 그렇구나’ 하고 이내 알아차리곤 합니다. 이와 달리 어른끼리 알아듣는 말이라면, 어른들이 아무리 쉽게 풀이하거나 밝힌다 하더라도 어린이가 좀처럼 못 알아차리곤 해요. 이를테면 ‘출산휴가’ 같은 말을 생각해 봐요. 어른이 일하는 자리에서는 으레 쓰는 말이지만 어린이한테는 도무지 와닿지 않습니다. 어린이한테 ‘출산’이나 ‘휴가’란 말을 써도 좋을까요? 엄마쉼 아빠쉼 동생을 낳는 어머니나 아버지라면 언니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34 빼앗지도 빼앗기지도 《쫓기는 동물들의 생애》 어니스트 톰슨 시튼 이한음 옮김 지호 2002.12.20. 오늘 헌밥솥을 버리려고 안고 가다가 오르막 징검돌에서 돌멩이를 밟고 미끄러졌다. 손바닥이 붓고 아파서 응급실에 갔다. 손바닥뼈에 금이 가서 판을 대었다. 움직이지 못하게 천까지 친친 감았다. 살짝 딴청을 하다가 넘어지고 손까지 크게 다치자 할 일이 까마득하다. 다른 손은 금은 가지 않지만 아직 얼얼하다. 내가 하는 일은 손을 많이 쓴다. 일도 그렇고 글을 쓸 적에도 두 손으로 글판을 두드린다. 글을 쓰고 싶은데, 글판을 제대로 칠 수 없어 아주 버겁다. 글은 그렇다치고, 한가위 대목 밑에 손길이 닿아야 할 일이 잔뜩이다. 우리 가게에서 다듬어서 싱싱하게 내놓아야하는 살림이 잔뜩 밀렸는데, 이 일을 할 사람이 없다. 손이 제대로 나으려면 얼마나 묶어 두어야 할지 모른다. 조금 금이 가도 이렇게 일이 꼬인다. 《쫓기는 동물들의 생애》를 읽었다. 이 책은 있는 그대로를 들려준다. 글쓴이가 보고 듣고 겪고 만난 삶을 바탕으로 이야기한다. 뿔양 참새 곰 쇠오리 강아지 캥거루쥐 코요태가 나온다. 이 가운데 내가 본…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33 차림맛 《요리의 길을 묻다, 로산진》 박영봉 진명출판사 2010.4.15. 밥하고 글쓰기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에서 살려낸 형용사를 다룬 책을 사서 읽어 보았지만 어쩐지 허술했다. 지난해 어느 글을 읽다가 궁금해서 《요리의 길을 묻다, 로산진》을 산 적이 있다. 지난해에 읽을 적에는, 요리책처럼 그림이 있어 슬쩍슬쩍 지나갔다. 올해에는 좀 다르게 읽어 본다. 올해에는 그림은 건너뛰고 글만 곰곰이 새겨 본다. 어제는 짝꿍이 복숭아를 한 꾸러미 갖고 왔다. 겉은 말짱한데 깎으면 안이 검다. 가게에서 손님한테 팔 수는 없는 복숭아이다. 그렇지만, 먹어 보면 무르지 않고 복숭아맛이 부드럽고 달다. 다만, 겉으로 보기에 이미 썩어가는 빛깔 같아 입맛이 달아났다. 그냥 버리기에 아깝다고 여겨서 먹었다. 이튿날 배앓이를 했다. 복숭아 탓일까? 아니다. 복숭아 탓이 아니라, 탱주만 한 대추를 먹은 탓이라고 느낀다. 대추도 가게에서 시렁에 놓고 팔 수 없지만, 차마 버릴 수 없어 집으로 가져왔다.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속에는 벌레알이 서렸다. 이 대추를 꽤 먹었다. 그리고 묵은나물도 손질을 해서 먹었다. 나물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32 글길 《문창극 칼럼》 문창극 을유문화사 2009.10.25. 사흘 앞서 《문창극 칼럼》을 샀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신문에 올린 글을 모았다. 열다섯 해가 지난 묵은 글일 텐데, 내가 쓰고 싶은 시나 글이 얼마나 깊거나 넓은지 잘 모르겠기에, 글길을 배우고 싶어서 샀다. 누구는 왜 이런 책을 사읽느냐고 할 수 있고, 누구는 이런 책을 사읽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글을 쓰고 싶고, 여러 가지를 두루 파는 가게를 꾸려가다 보니, 자꾸자꾸 둘레에서 하는 말에 휘둘리기도 하고, 이것이 좋다면 이쪽을 보고 저것이 좋다면 저쪽을 보기도 한다. 그래서 예전 신문에 실린 묵은 글을 오늘 되읽어 보면서 뭔가 배우자고 생각했다. 한참 《문창극 칼럼》을 읽다가 소금을 떠올렸다. 팔이나 다리에 긁히거나 다친 데에 소금이 닿으면 되게 쓰라리다. 그런데 이 소금으로 재워야 먹을거리가 오래간다. 소금이 없으면 절임을 못 한다. 바닷물이 품은 소금처럼, 글도 소금을 품을 노릇일까? 그렇지만 소금은 아무 데나 쓸 수 없다. 바닷물이 하늘로 올라가서 비가 되어 뿌리는데, 빗물에는 소금 기운이 하나도 없다. 바다 같은 글이 쓰일…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31 어린이 사랑 《꼬마 옥이》 이원수 창작과비평사 1977.02.20. 어제 ‘이원수 글숲(문학관)’에 갔다. 언덕으로 버스가 올라가지 못해 삼백 미터쯤 걸었다. 다친 발가락이 아직 다 낫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절룩거렸다. 글숲에 들어서자 꽃대궐 작은 책이 먼저 눈에 띈다. 신문종이를 반 크기로 네 번 접었다. 첫 쪽에 이원수 님 동시가 실리고, 뒤편 윗줄에 이원수 수필이 실리고, 밑에 문학관 이야기로 이원수 님을 주제로 쓴 글이 실리고, 이 옆에 어린이 ‘시마을 칸’에 아이들이 지은 동시를 실었다. 작은 책을 알차게 꾸렸다. 글숲에는 첫 유리칸에 이원수 님 호적이 있다. 이원수 님이 남긴 살림을 둔 칸에는, 깨알처럼 작은 글씨로 적은 수첩이 있다. 내가 아는 어느 이웃도 저렇게 깨알같은 글씨로 작은 공책에 적는다. 늘 생각하고 글을 적어 동시로 동화로 태어났을 테지. 아이들 눈높이에 맞도록 동시를 나란히 세워 놓았다. 대구에서 어린이가 많이 온다던데, 이곳을 다녀간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마음에 담으려나 헤아려 본다. 집으로 돌아와서 《꼬마 옥이》를 읽어 본다. 여러 글 가운데 <불새의 춤>와 <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30 끈 《인연이야기》 법정 문학의숲 2009.7.5.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시끄러워서 읽던 책을 덮는다. 다른 책을 펼쳤다가 또 덮고 《인연 이야기》를 집는다. 열세 해 앞서 만난 이 책은 다시 읽을 때면 언제나 마음을 쉴 수 있다. 아까까지는 책을 읽어도 글씨가 튕겨나가는 듯하더니 어느새 술술 익힌다. 첫째 글인 ‘오늘의 나는 무엇인가’와 ‘시 반 구절과 바꾼 목숨’을 읽는다. 여태 시끄럽던 마음을 살살 다독인다. 대구에서 가게를 열기 앞서 점집에 가서 물은 적이 있다. 점집에는 아들 낳으려고 답답한 마음에 처음 가고 더 안 갔는데, 짝하고 둘이서 우리 가게를 내려고 한참 헤맬 적에 다시 가 보았다. 가게를 어느 날에 열어야 할지 묻고 싶어서 가 보았다. 점집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 좋게 나왔다. 나는 점을 보는 사람한테 내가 예전에 어떤 일을 하는 삶이었는지 슬쩍 물어보았다. 점집지기는 태어난 날을 묻는다. 이래저래 헤아리는 듯하더니, 내가 예전에는 서당에서 가르친 사람이었다고 알려준다. 그런가? 이 이야기를 듣고 보니 마음이 한결 차분했다. 오늘 내가 살아가는 모습은 모두 예전에 뿌린 씨앗이 그대로 돌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29 느끼는 몸을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7.20 다섯 해 앞서 벚꽃이 필 무렵에 송해공원 옥연못을 걸었다. 그날 나란히 걷던 분이 《감각의 박물학》이라는 책을 읽으면 글쓰기에 이바지할 만하다고 얘기했다. 그날 덥석 이 책을 장만했다. 이 책에는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시각, 공감각’이 나온다. 하나마다 여러 이야기를 담는다. 한 꼭지에도 온갖 이야기가 흐른다. 숱한 사람들이 여러 느낌(감각)을 놓고서 쓴 글을 꽤 많이 따서 실었다. 냄새(후각)를 떠올려 본다. 맡기 싫으면 숨을 살짝 멈춘다. 우리 일터 지하실에 들어가야 할 적에는 숨을 훅 참지만, 오 초만 지나도 숨을 쉬어야 한다. 땅밑에 고인 여러 냄새로 어질어질하다. 나이든 어머니한테서 나온 지린내도 떠오른다. 나이든 어머니가 오줌을 조금씩 지리셨는데, 옷에도 몸에도 집안에도 가득한 적이 있다. 옷을 갈아입히고 씻기고 문을 다 열자고 말했더니 갑자기 집안이 싸늘했다. 만지고 맛보고 듣고 보는 일은 혼자서 느끼면 그만이지만, 냄새는 숨을 쉬듯 마신다. 우리 몸은 움직이는 작은 바다인데, 맡기 싫은 냄새도 바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28 이웃한테 《우리 마을 이야기 1》 오제 아키라 지음 이기진 옮김 길찾기 2012.03.20. ‘코로나19’라는 돌림앓이에 걸리고 낫던 하루가 한참 오래된 이야기 같다. 처음 《우리 마을 이야기 1》를 읽던 즈음에는 드디어 돌림앓이가 나았다고 여겨서 풀려났다. 막내아들하고 끙끙거리듯 서로 갇혀서 힘겹게 혼자 지내야 했는데, 그때 이 만화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라기도 했고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우리 마을 이야기》는 일본에서 ‘나리타 공항’을 닦으려 하면서, 일본 정부가 ‘나리타 시골마을’을 어떻게 갈라놓으면서 사람들끼리 다투도록 불씨를 심다가 땅을 빼앗았는가 하는 줄거리를 들려준다. 우리는 쌀밥을 먹고, 무와 배추를 먹고, 수박과 참외를 먹는다. 모든 먹을거리는 땅한테서 얻는다. ‘땅’이라고 했지만, 그냥 땅이 아닌 ‘논밭’이다. 논밭이 있기에 우리가 서울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밥을 먹고 몸을 살찌운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일본에 공항을 늘려야 한다면서 ‘경제발전’과 ‘관광수입’을 내세워 갑작스레 시골마을을 큼지막하게 통째로 밀어서 없애려 했단다. ‘나리타 공항’을 일본 정부가 마구잡이로 지으려 할 적에 시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27 책이름에 낚였지만 《날씨의 맛》 알랭 코르뱅 외 김혜연 옮김 책세상 2016.3.30. 《날씨의 맛》을 장만해서 읽던, 세 해 앞서 겨울을 떠올린다. 2020년 겨울,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도 덮으면서도 머리가 휑했다. 마음도 휑했다. 글밭(문장)을 넓히려고 온누리(우주)를 알고 싶었다. 날씨가 내 마음을 어떻게 열어 줄까 궁금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2023년 가을에 이 책을 다시 읽자니 아무래도 책이름(제목)에 낚였구나 싶다. 책이름에 이끌려서 책을 산 지난날이란, 허울이 좋아 보이면 덥석 집어무는 어리석은 마음이리라. 하늘을 다스리는 해와 비와 바람과 눈과 안개와 천둥 번개를 한 갈래씩 다루면 꽉 찰 듯한데, 《날씨의 맛》은 역사학자 같은 분들이 쓴 글을 모았다. “영원히 내릴 것처럼 계속되는 질척하고 고약하고 밉살스러운 비” 같은 대목을 읽다가 놀랐다. 스탕달이 쓴 글에서 뽑았다는데, 비를 싫어하며 이렇게 적었단다. 《날씨의 맛》을 엮은 사람은 스스로 해나 비나 바람을 느낀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 자꾸자꾸 다른 이름난 사람들 말을 따온다. 해를 나쁘게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인간들 건강이나 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