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변변찮다 스스로 즐겁다고 여기면 언제 어디에서나 모든 일이 즐겁게 흐르고, 스스로 하찮다고 여기면 늘 무엇이든 하찮게 구릅니다. 남이 손가락질하면서 값없다거나 쓸데없다고 말한들, 한귀로 흘릴 까닭조차 없이 빙그레 웃어요. 오늘 이곳에서 지을 변변찮은 살림이라 하더라도 가만히 두레를 하고 천천히 품앗이를 합니다. 더 많이 모여서 울력을 하지 않아도 좋아요. 아이들하고 조그맣게 모둠을 이루어 천천히 들꽃모임을 즐기면 됩니다. 우리는 들두레도 들풀두레도 할 만합니다. 푸른두레나 풀꽃두레도 어울려요. 들꽃 한 송이하고 어우러지는 모임도 새롭고, 나무 한 그루하고 하나되는 살림두레도 싱그러워요. 조그맣다면 조그마하니 즐겁고, 작다면 작아서 즐겁습니다. 낮은길도 높은길도 없어요. 못난이도 잘난이도 없습니다. 금을 긋거나 손가락질을 하거나 핀잔을 하는 마음이야말로 후줄근하지 싶어요. 깔보거나 얕보는 말을 읊는 쪽이야말로 초라하고요. 쓸모없는 풀은 한 포기도 없습니다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아들, 딸에게 들려 주는 좋은 말씀]35-동무를 고르는... 사랑하는 아들, 딸에게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많은 요즘이다. 싹쓸바람이 올라 온다고 해서 걱정을 했는데 우리나라로 안 온다는 반가운 기별을 너희들도 들었을 거야. 그래도 비가 많이 올 거라고 하니 오가는 길 우리 모두 조심하기로 하자. 지난 오란비(장마) 때 사 놓고 신지 못한 비신도 신어 보길 바란다. 오늘 들려 줄 좋은 말씀은 "동무를 고르는 데는 천천히, 동무를 바꾸는 데는 더 천천히."야. 이 말씀은 앞서 다른 말씀을 하신 분으로 알려 드린 적이 있는 벤자민 프랭클린 님께서 남기신 말씀이란다. 워낙 널리 알려 지신 분이고 좋은 말씀을 많이 남기신 분이라 다음에도 또 이름을 들을 날이 오지 싶구나. 이 말씀은 우리가 살면서 동무를 사귀는 것이 얼마나 종요로운 것인지를 일깨워 주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먹물 가까이 있으면 먹물이 들기 쉽다는 것은 잘 알 거야. 어떤 동무와 가까이 지내느냐에 따라 나도 그 동무와 비슷한 됨됨이 되기도 하고 그 동무와 같은 사람으로 꼲음(평가)을 받기 쉽거든. 무슨 일이든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좋은 말, 고운 말을 쓰며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옛배움책에서 캐낸 토박이말]-주전자 쟁개비 쓰다 오늘은 4285해(1952년) 펴낸 ‘과학공부 5-2’의 65쪽부터 66쪽에서 캐낸 토박이말을 보여드립니다. [우리한글박물관 김상석 관장 도움] 앞서 보여드린 64쪽 마지막 월이 65쪽 첫째 줄까지 이어집니다. “물을 주전자에 넣어 화로에 얹어 놓으며 끓어서 김이 난다.”인데 여기서는 ‘화로’을 빼면 모두 토박이말로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요즘 책이나 다른 책에서 ‘수증기’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여기서는 ‘김’을 써서 더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주전자’를 표준국어대사전에 찾으면 ‘주전자(酒煎子)’라고 되어 있고 ‘물이나 술 따위를 데우거나 담아서 따르게 만든 그릇. 귀때와 손잡이가 달여 있으며, 쇠붙이나 사기로 만든다.’라고 풀이를 해 놓았습니다. 풀이에도 그렇게 해 놓았듯이 우리가 술을 담으면 ‘술주전자’라고 하고 물을 담으면 ‘물주전자’라고 하는데 한자 풀이에 ‘술 주(酒)’가 들어 있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뒤에 있는 ‘전자(煎子)’도 ‘그릇’이라는 뜻으로 두루 쓰이는 한자라면 또 그러려니 할 수 있는데 그렇지도 않기 때문에 소리가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토박이말 살리기]1-76 들피지다 오늘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들피지다'입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굶주려서 몸이 여위고 쇠약해지다'라고 풀이를 하고 "한 육십쯤 되었을까 허리가 구붓하고 들피진 얼굴에 좀 병신스러운 촌뜨기가 하루는 군복을 벗고 몸을 검사시키는데 유달리 몹시 떤다."라는 김유정의 '금'에 나온 월을 보기로 들었습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사람이) 굶주려서 몸이 여위고 기운이 쇠약해지다'라고 풀이를 하고 "허리가 구붓하고 들피진 얼굴의 노인 하나가 슬그머니 대합실로 들어섰다."를 보기월로 들었습니다. 이 두 가지 풀이를 놓고 '들피지다'의 풀이를 다음과 같이 다듬어 보았습니다 들피지다: 굶주려서 몸이 여위고 여려지다. 사람이 몸이 아파도 살이 갑자기 빠져 여위고 여려지는 때가 있지만 일부러 먹는 것을 가리고 몸을 많이 움직이면 살이 빠지고는 하는데 그럴 때 쓸 수 있는 말이지 싶습니다. "그는 어디가 아픈 사람처럼 들피진 몸으로 나타났다." 또는 "그는 여러 날 굶었는지 눈에 뜨게 들피진 얼굴이었다."처럼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몸이 아파서 여리고 아픈 사람을 본 사람이야말로 '들
[ 배달겨레소리 이창수 글님 ] [요즘 배움책에서 살려 쓸 토박이말]3-스승 1학년 국어 교과서 첫째 마당에 ‘나’, ‘너’, ‘우리’, ‘친구’ 다음에 나오는 말이 ‘선생님’입니다. 이 말도 제가 찾아보니 중국에서는 한자 ‘老(늙을 로)’, ‘師(스승 사)’를 써서 ‘[lǎoshī](라오씨)’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한자 ‘先(먼저 선)’, ‘生(날 생)’을 써서 ‘せんせい(센세이)’라고 하더라구요. 우리가 쓰는 ‘선생님’도 ‘선생’+ ‘님’인데 한자는 일본과 같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師傅(사부)’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나 옛날 서당에서 글을 가르치는 사람을 가리켜 ‘訓長(훈장)’이라고 한 것을 볼 때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 ‘선생님’은 우리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난 뒤부터 쓰게 된 말로 보입니다. 우리도 옛날부터 ‘선생(先生)’이란 말을 썼습니다. 하지만 ‘포은 선생’, ‘율곡 선생’, ‘면우 선생’처럼 많이 배우시거나 다른 사람이 우러러 보는 분을 높여 부르는 말로 썼던 것이지요. 옛날에 썼던 ‘사부’라는 말이 ‘師(스승 사)’ ‘傅(스승 부)’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스승’이라는 말이 토박이말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66] 논두렁콩 논두렁 길두렁에 벼가 한 뻠 자라고 콩도 한 뼘 자랐다. 어린 날에 우리 집도 벼를 심은 뒤 논두렁에 콩을 심었다. 논두렁에 풀이 많이 자라 풀을 뽑고 모를 심고 난 뒤 논두렁을 진흙으로 매끈하게 다듬었다. 투박한 손으로 진흙을 매만지고 두렁길만 두고 이쪽저쪽에 손으로 흙에 구멍을 내고 콩을 몇 알 넣는다. 논두렁에 심는 콩은 들일 밭일이 적었기에 알뜰히 심어 콩을 뽑았다. 들일이 바쁘자 풀에 약을 치고 콩을 심자면 일거리가 많았다. 들일이 늘자 열 집이 심는 부피를 혼자 할 만큼 손이 모자라자 논두렁에 콩을 심는 일을 그만둔다. 들일을 가지 못하는 할머니가 있는 집만 풀을 뽑고 논두렁 콩을 심지, 우리 어머니처럼 젊은 사람은 할 틈이 없다. 마늘 고추 사과 작약이 일거리가 많다. 논두렁에 검은콩을 심고 우리 집은 콩나물을 내었다. 고무 대야에 나무를 올리고 구멍 나고 물이 잘 빠지는 그릇에 불린 콩을 넣어 물을 자주 주었다. 햇빛이 들지 않게 두꺼운 보자기를 덮었다. 빛을 보면 콩나물 머리가 푸르게 바뀐다. 햇빛을 보지 않고 자란 콩은 노랗게 웃자라 부드럽고 빛을 본 콩나물은 잔뿌리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65] 박주가리꽃 어린 날에 다니던 마을 앞산 길이 막혔다. 밭으로 내려오니 멧돼지가 내려오지 못하게 그물 담을 쳐서 멧자락을 다 막았다. 풀밭을 밟고 되돌아가다가 박주가리를 둘 만났다. 박주가리가 뒤늦게 영글었는지 풀빛이 도는 작은 열매이다. 껍질이 오돌토돌하고 앞머리는 도톰하고 끝은 가늘다. 눈썹을 닮았다. 덤불에 손을 넣어 박주가리를 하나 땄다. 알이 꽉 차서 부른 배가 벌어졌다. 그 틈을 엄지손으로 벌렸다. 고치처럼 하얀 속에 박주가리 씨앗이 들었다. 촘촘한 깃털로 모였다. 깃털 끝에는 마른 고추씨앗처럼 납작한 씨앗이 붙어 성냥개비를 닮았다. 손으로 조금 떼어내니 빈틈없이 붙은 얇은 알맹이가 미끄러졌다. 몇 집어 씹었다. 깃털이 촉촉해서 입에 넣으면 살살 감친다. 알갱이를 씹으면 겨울에 내리는 눈을 밟는 소리가 뽀드득 난다. 어린 날에 덜 익은 박주가리도 따먹었다. 누렇게 익을 적에 따거나 쩍 벌어지면 하얀 깃털이 마른다. 우리는 바람이 불면 솜털을 날렸다. 하얀 깃털이 햇살에 반짝였다. 박주가리는 껍데기만 터지기를 기다리면서 바람을 맞고 싶었겠지. 메 너머 마을이 궁금할 테고. 촉촉한 깃털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사진: 박종덕님]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64] 가재 마을 앞뜰 어귀에 느티나무를 지나 오빳골 재 덜 가서 아랫마을로 내 따라 논 따라 길이 갈라졌다. 가는 길로 갈라지는 곳에 냇물이 흐른다. 재 너머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을 만나 아랫마을로 뻗어가는 냇가는 가재가 있는 개울이다. 냇바닥에는 누렇고 검은 돌과 큰돌 작은돌이 있고 물이 떨어지는 곳에 시멘트를 발라 밑쪽에는 작은 뚝이 있다. 물이 넘쳐 흘러가고 뚝으로 논둑과 냇가에서 자라는 산수유가 늘어서니 언제나 그늘이 진다. 마을 언니 오빠 동생하고 씻으러 가거나 가재를 잡으러 뚝을 따라 물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아버지 헌 검정고무신을 들고 갔다. 큰돌을 뒤집고 작은 돌을 들춰 가재를 찾는다. 들춰 본 돌은 제자리에 두고 물이끼에 발이 미끄러지지 않게 비껴 걸었다. 돌 밑에 알갱이 돌에 숨는다. 딱딱한 껍데기에 두 집게발이 통통하게 올라오고 더듬이를 내밀며 느릿느릿 바위틈에서 나온다. 가재 허리에 작은 발이 몇씩 있고 꼬리 가까이에 가로무늬가 있고 뒤집으면 배를 구부리고 부채처럼 꼬리를 펼친다. 구부린 배를 보면 알갱이를 품은 가재도 있다. 나는 손가락보다 긴 굵고 큰 가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17 사랑으로 지켜보기에 《곤충·책,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수리남 곤충의 변태》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글·그림 윤효진 옮김 양문 2004.10.20. 이월부터 들꽃을 살피는 이웃님이 많습니다. 긴긴 겨울이 저무는구나 하고 알리는 이월꽃은 참으로 반가우면서 곱기 마련입니다. 삼월로 접어들면 온누리 곳곳은 푸릇푸릇할 뿐 아니라 아직 덮은 하얀 눈빛 곁에 흰꽃이 흐드러지지요. 이제 사월로 넘어서면 풀빛에 흰꽃·노랑꽃·빨강꽃·파랑꽃이 얼크러져 마치 ‘풀무지개’나 ‘숲무지개’를 펼친 듯합니다. 그런데 오월쯤 이르면 덥다고 말하는 이웃님이 늘면서 “오월에 굳이 무슨 꽃을?” 하고 여기더군요. 그런데 사오월 사이에는 딸기꽃이 지고 딸기알이 여물면서 찔레꽃이 피지요. 유월로 들어서는 길턱에는 감꽃에 귤꽃에 유자꽃에다가 오동꽃이 훅훅 사로잡습니다. 이제는 꽃구경을 하려는 이웃님은 가뭇없이 사라지는데, 여름인 칠월로 가면 온통 푸르기만 한 들녘에 파랗게 달개비꽃이 올라요. 여기에 달맞이꽃이라든지 나팔꽃이 어깨동무합니다. 그리고 한여름인 칠팔월 사이에 쑥꽃이며 모시꽃이 올망졸망 번지고, 살살이꽃도 천천히 줄기를…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책에서 길을 찾다]3-딴길, 튼튼하면 이기느냐, 한갖, 흐르는 때새(시간)가 참 빠르게 간다는 말을 자주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합니다. 지난 글을 쓴 지가 보름이 다 되었다는 것을 알고 새삼 느꼈습니다. 지난 글에 이어서 오늘도 이극로 님의 '고투사십년' 안에 있는 유열 님의 '스승님의 걸어오신 길'에 있는 월에서 제 눈에 띈 말들을 가지고 생각해 본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또한 우서운 것은 스승님은 경제학 박사임에도 불구하고 생판 딴길같은 어학을 하시니 무슨 뜻인지 모르겠더라는 분도 많고, 심지어는 글만 가지고 사느냐? 정신만 튼튼하면 이기느냐? 하는 생각을 가지며, 혹시 스승님은 한갖 어학자요, 또는 문약에 흐르는 초라한 선비이신가 하고 걱정하는 이도 많았다. 이런 이들을 위하여서도 이 글을 초하는 바이다. [이극로(2014), 고투사십년, 227쪽. 스승님의 걸어오신 길_유열] 한자말이 곳곳에 들어 있지만 요즘 쓰지 않는 말이 제 눈에는 가장 먼저 들어왔습니다. 바로 '딴길'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딴길'은 요즘 많이 쓰는 '외도(外道)'를 다듬은 말이지 싶습니다. '외도'에 '본업을 떠나 다른 일에 손을 댐'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