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10 매 《케스-매와 소년》 베리 하인즈 글 김태언 옮김 녹색평론사 1998.08.20. 나는 어릴 적에 매를 맞았다. 학교에서는 우리가 떠들거나 무엇을 잘못했다고 여기면 책상에 무릎 꿇고 앉으라 시키고는 발바닥을 때렸고, 칠판에 팔을 뻗치라 하고는 엉덩이를 때렸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어른들이 윽박지르면서 매를 드니, 우리처럼 몸도 나이도 작은 아이들은 얌전하게 시키는 대로 따를 뿐이었다. 왜 예전에 학교에서는 말로 부드러이 타이르지 않았을까. 왜 예전에 교사들은 하나같이 매를 들고 윽박지르면서 나무랐을까. 그런데 매맞는 일은 우리 문화나 역사가 아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나리한테 붙들려 가서 볼기(곤장)를 맞는 일이 있었다지만, 마을에서 어른이 아이들을 때리는 짓은 아니었다. 나라에서 힘으로 아랫사람을 윽박지르는 길이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때부터 매바심이 퍼졌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학교라는 곳도 일제강점기부터 다닐 수 있었다. 예전에 조선시대에는 양반이나 사대부만 배우러 다닐 수 있을 뿐, 논밭을 짓는 사람들은 따로 배우러 다니지 못 하고, 그저 집에서 어버이 곁에서 함께 일하고 살림할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09 꽃처럼 피는 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최종규 글 강우근 그림 철수와영희 2014.3.1.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은 2020년 12월 19일에 처음 읽었다. 벌써 여러 해 지났다. 그날은 큰딸한테 동생(나한테는 작은딸)이 언제부터 안경을 끼었는지 아느냐고 물었는데, “엄마가 기억할 일!”이란 대꾸를 듣고서 어쩐지 기운이 쭉 빠졌다. 엄마가 옛일이 가물가물해서 잊거나 헷갈릴 수도 있는데, 그냥 알려주면 안 되나.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엄마로서 여러 가지를 쉽게 잊어버렸다. 집안일이며 가게일로 바쁘다는 핑계로, 또 엄마가 집과 가게를 넘어 엄마 삶을 글로 쓰고 싶다는 꿈을 품고서, 어쩐지 가볍게 지나치거나 잊어버리는 일이 늘었다. 기운이 빠지는 날이면 으레 집에서 가까운 멧골에 올라 숲빛을 느껴 보려 한다. 답답할 적에는 집에 그냥 있어도 답답하고, 가게일을 보아도 답답하지만, 좀 귀찮거나 춥거나 더운 날 억지로라도 숲에 깃들면, 조금 앞서까지 답답하던 숨통이 트인다. 아무래도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은 말 한 마디를 숲에서 돌아보고 찾아보면서 스스로 숨통을 트자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느낀다. 외워서 쓸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08 푸른 눈으로 쓴다 《아나스타시아 6 가문의 책》 블라지미르 메그레 한병석 옮김 한글샘 2021.5.20. 《아나스타시아 6 가문의 책》을 2021년 7월 22일에 처음 펼쳤다. 그날은 머리가 얼음덩이 같고 쩍쩍 갈라지듯이 아팠다. 다섯 시간 동안 책을 읽었지만 반도 못 넘겼다. 두 해가 지난 오늘 다시 들춘다. 오늘은 두 해 앞서처럼 머리가 차갑거나 갈라지듯 아프지 않다. 두 해 앞서는 다섯 시간을 붙잡아도 못 읽은 책인데, 오늘은 끝까지 다 읽을 수 있다. 책도 때에 따라서 다르구나. 아름답거나 훌륭하다는 책도 스스로 힘들거나 괴롭거나 지치는 날에는 한 줄조차 버겁겠지. 스스로 웃고 즐겁게 살림을 가꾸는 날이라면, 안 아름답거나 안 훌륭한 책에서도 배울거리를 얻을 수 있을는지 모른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 즐거운 날에 구태여 안 아름다운 책을 골라서 읽어 보고 싶지는 않다. 《아나스타시아 6 가문의 책》에 적힌 ‘가문의 책’이 무언가 했더니, 모든 사람이 저마다 “우리 집안 이야기를 책 하나로 남길 수 있을 만큼 스스로 써야 한다”는 줄거리이다. 아이를 낳을 적에는, 남한테 맡겨서 가르치지 말고,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07 세 가지 꿈으로 《영리한 공주》 다이애나 콜즈 글 공경희 옮김 비룡소 2002.4.24. 《영리한 공주》는 동화책이다. 책을 많이 읽는 글벗이 읽어 보라고 했다. 거듭 소리내어 읽으면 글쓰기 실마리를 새삼 알아차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책을 장만하던 2021년 7월 20일을 떠올린다. 그날은 마음이 어수선했다. 어디 가야 하는 날인데, 어디 가는 길에 반쯤 지나서 보니 가방이 없더라. 그냥 이대로 갈까 하다가 차를 돌려 집으로 왔다. 가방을 찾아야겠더라. 더구나 이날부터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분이 휴가를 간다고 하면서 쉬는데, 이분 자리를 채울 일꾼을 미처 찾지 못 했다. 모자라는 일손 걱정에, 집안일 눈치에, 또 제대휴가를 나온다는 아들내미 생각에, 또 나중에 사위가 될 ‘작은딸 남자친구’하고 밥 한 끼 먹기로 한 일에,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줄거리를 죽 짚어 본다. 아버지인 임금님은 보석만 좋아한다. 딸인 공주가 태어났지만 딸하고 놀 틈을 안 낸다. 아이는 엄마를 일찍 여의었고 아버지가 있는데, 어버이는 어버이로서 아이를 바라보지 않는다. 게다가 임금이란 사람은, 딸이 나이가 어느 만큼 차면 ‘목돈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06 딱딱하다 《일방통행로》 발터 벤야민 글 조형준 옮김 새물결 2013.4.30. 둘레에서 《일방통행로》는 꼭 읽을 책으로 꼽기에 장만했다. 지지난달에 처음 읽으면서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더라. 오늘 다시 펼쳐도 글이나 이야기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읽다가 자꾸만 멈춘다. 옮긴 말씨까지 한몫 거들듯 딱딱하다. 글쓴이 발터 벤야민을 풀이한 글을 들춘다. 꽤 길고, 이분이 뭘 하고 뭘 생각해서 뭘 썼다는 뜻인지 종잡기 어렵다. 논문을 써서 냈더니 ‘단 한 줄도 이해할 수 없다’라는 소리를 들었다는데, 절로 고개를 끄떡인다. 우리나라에서는 번역 탓도 크다고 느낀다. 집안일을 하고서 다시 읽어 본다. 글은 꼭지 하나마다 짧다. 다음 글하고 이어가는 글이 아닌, 저마다 따로 노는 글이다. 글이름과 줄거리가 잘 와닿지 않는다. 글이름을 건너뛰고서 읽자니 오히려 줄거리를 어림할 수 있겠다. 발터 벤야민이라는 분은 이렇게 한자로 얘기했을까? 어쩌면 라틴말을 많이 썼을는지 모르지만, 왜 옮긴이는 우리말로 ‘생각’을 풀어내려 하지 않을까? 딱딱한 글이고, 깔끔하지도 않다. 자꾸만 전쟁이 떠오른다. 책을 반쯤 읽다가 샛길로 빠진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05 나는 오직 나 《여자의 일생》 모파상 글 송면 옮김 어문각 1986.07.31. 《달과 6펜스》읽고서 제자리에 꽂다가, 곁에 있는《여자의 일생》을 집었다. 우리 집에 있는 《여자의 일생은 1986년에 나온 판이니 묵은 책이다. 그런데 첫 쪽을 넘기다가 깜짝 놀랐다. ‘1986학년도 2학기 중간고사 성적 우수’라고 선생님이 적은 글씨가 있고, ‘상’ 도장이 찍혔다. 어, 내가 열아홉 살 적에 받은 책이잖아! 여태 몰랐다. 이제야 알아본다. 놀란 나머지 책을 이리저리 살피는데, 뒤쪽 빈종이에 “빗물 같은 정을 주리라”라는 김남조 시인이 쓴 시를 옮겼다. “고독에서 고고로”라는 열여섯 줄도 적어 놓았다. 어쩐지 낯간지럽다. 마흔아홉 살이나 쉰아홉 살도 아닌, 열아홉 살 어린 나이에 무슨 ‘고독’을 씹는다고 했을까. 무슨 ‘빗물 같은 정을 준다’는 시를 읽었을까. 그러나 그때에는 둘레에서 다들 이런 시를 읽었고, 이야기했고, 학교에서도 배웠다. 우리 집에는 《여자의 일생》이 두 가지 책으로 있다. 하나는 민음사에서 펴낸 ‘세계문학전집’이다. 새책으로 장만했다. 다른 하나는 고등학생 적에 받은 문고판이다. 이제 해묵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04 달과 일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글 송무 옮김 민음사 2000.6.20 《달과 6펜스》는 20.12.18 구미에 있는 〈삼일문고〉에서 샀다. 그날 ‘세계문학전집’을 한 꾸러미로 삼백스무 자락을 장만했다. 하루에 하나씩 읽으면 한 해 걸리고, 이틀에 하나 읽으면 두 해가 걸리리라 여겼다. 이 마음으로 읽으면 세 해쯤 넉넉잡아서 다 읽을 줄 알았다. 이제 여섯 달이 지나면 세 해째에 이르는데, 여태 펼치지 못한 책이 더 많다. 《달과 6펜스》는 21.1.7에 첫 쪽을 넘겼다. 가게에서 일을 하다가도 틈틈이 책을 읽을 생각에 즐거웠다. 그렇지만 이내 이 마음이 훅 꺼져버렸다. 이날은 저녁에 가게 다른 일꾼이 바코드가 있는 자리를 손으로 잡고는 여러 번 찍는 척하더라. 그러니까, 가게 물건을 마치 팔린 듯 찍찍 긁는 시늉을 하면서 빼돌린 셈이다. 다른 일꾼이 집으로 돌아간 뒤에 시시티비를 열 번쯤 돌려보았다. 그냥 넘어갈 수 없기에, 이이한테서 이야기를 들으려고, 이튿날 가게에 십 분쯤 일찍 나오라고 했다. 그런데 “십 분 일찍 나오면 제 시간만 버리잖아요. 그렇게 일찍 나갈 수 없으니 할 말 있으면 바로 하세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03 나무처럼 서기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 유영만 글 나무생각 2017.11.28.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를 2021.12.17.에 처음 장만했다.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온 그날 하루는 일을 나가지 않았다. 얼굴도 안 씻고 마냥 책을 읽었다. 그날은 화담 서경덕 소설 두 자락도 슥 읽었다.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를 읽을 적에, 보랏빛과 노란 띠종이를 붙여 가면서 읽었다. 몇 군데나 띠종이를 붙였나 나중에 세니 스물세 군데이다. 오늘 한 해하고 일곱 달 만에 다시 읽으면서 책 귀퉁이를 접기로 한다. 예전에 읽을 적하고 얼마나 마음이 맞으려나 하고 헤아려 본다. 그런데 귀퉁이를 접은 데는 열로 줄었다. 더구나 예전에 띠종이를 붙인 곳하고 겹치면서 마음에 드는 대목은 딱 한 군데이다. 이 하나에는, 스님이 두드리는 나무방울(목탁)을 살구나무로 짠다는 이야기가 흐른다. 책을 덮고서 생각에 잠긴다. 어떻게 열아홉 달 만에 ‘마음에 닿는 대목’이 확 줄어들까. 더구나, 예전에 읽을 적하고 오늘 되읽을 적에 마음이 닿는 대목이 한 군데뿐일 수 있을까? 다시 책을 편다. 이 책을 쓴 분은 시집을 읽는 분 같다. 니체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02 불빛으로 《촛불의 미학》 가스통 바슐라르 글 이가림 옮김 문예출판사 1975.9.30. 《촛불의 미학》을 2019년 1월 10일에 처음 읽었다. ‘등단’이란 이름을 얻으면 글쓰기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줄 알았다. 두 달이 지나자 슬슬 속이 바짝 탔다. 밤늦게 집에 오는데 길바닥과 담벼락마다 그림자 다섯하고 걸었다. 길마다 불빛이 등에서 내리쬐고, 달리는 자동차 불빛으로 여러 그림자가 나왔다. 담벼락에는 커다란 짐가방도 따라오고, 심부름꾼을 떠맡아 투덜거리고 들어온 날 이 책을 만났다. 책이름만 떠올리다가 오늘 다시 읽는다. 내가 얼마나 잘 읽어내는지 모르겠지만, 우리한테 뭔가 들려주고자 하는 말을 잘 적지 못했지 싶다. 논문 같기도 하고 여느 시집 끝에 나온 평론을 읽는 느낌이다. 생각을 끌어낼 이야기도 없고, 외로운 마음을 받춰줄 이야기도 없고, 촛불이 어떻게 아름답다는 소리인지 딱히 드러내지도 못하고, 이런 시인에 저런 철학자들 이름만 줄줄이 들먹인다고 느낀다. 왜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다른 훌륭하거나 이름나거나 뛰어나다고 하는 ‘누’가 한 말이라고 내세우면 책이 되고 논문이 될까? ‘내 목소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 숲하루가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에 보고 먹고 만지며 가지고 놀던 풀꽃나무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마을 뒷산은 낮은 등성이가 갈래로 길게 이어졌어요. 골 따라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지요. 그때는 몰랐지만, 돌아보니 우리가 숲을 헤쳐도 숲은 우리를 키웠어요. 나무를 잘라서 불을 때던 때는 숲이 우거지지 않았어요. 어린 우리한테는 놀이터가 되어 주었어요. 논밭 못과 숲에는 철마다 먹을거리가 나오고 모두가 놀이감이에요. 먹을거리가 하도 없어 배가 고파 먹었지만, 우리 몸에 좋다는 것만 먹은 셈이예요. 풀 한 포기가 밥이 되고 반찬이 되고 나무 한 포기가 맺은 열매를 먹고 소나무를 벗겨 먹었어요. 먹고 사는 일이 가장 큰 일이던 때라 배움도 뒷전이었어요. 남새가 우리 등록금이 되어 주고 어머니 아버지 허리를 펴 주었어요. 그때 아이들이 커서 마을을 떠나고 민둥산이던 숲이 이제야 나무가 우거져서 바람이 맑게 깃드는 마을이 되었어요. 빈집이 늘어나고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면 마을이 묻힐지도 몰라요. 이 책은 한 마을에서 살림을 해온, 골과 밭과 들과 숲 이름을 살리고, 어머니가 쓰던 구수한 말을 살리고, 풀꽃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