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07] 순이나무 일터에 갈까 망설이다가 뒷골을 올라가기로 한다. 개나리 풋풋한 내음하고 아까시 꽃내음이 짙다. 꽃꿀을 찾는 벌이 바쁘다. 언젠가 이 뒷골에 아까시나무를 보러 온 적이 있는데, 그날 내가 ‘순이나무’라고 이름을 붙인 나무를 만났다. 일에 바빠 아이들을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맡긴 내 모습을 나무 한 그루에서 보았다. 나는 일에 묶여서 옴짝달싹 못하고, 나무는 어디로도 못 가고 그 자리에 서서 꼼짝을 못한다고 여겼다. 너무 바쁘게 묶인 일이지만, 오늘만큼은 일을 잊고 싶어 뒷골에 올라서 순이나무를 찾았다. 여섯 해 만인가. 순이나무는 껍질이 홀라당 벗겨지고 불에 그을린 듯 까맣다. 나무줄기는 볼품없어 보이지만 우듬지에 흰꽃을 피웠다. 누가 이 나무를 보아줄까. 누가 이 나무에 핀 꽃을 알아보나. 꽃이 피니 잎도 돋고. 잎이 돋으니 나무는 늘 싱그러이 살아간다. 그 자리에 꼼짝을 못하고 박힌 듯하지만, 알고 보면 바람을 마시고 해를 머금으면서 홀가분하게 서서 푸르게 꿈꿀는지 모른다. 어쩌면 나도 일에 묶여서 살아가는 오늘이 아닌, 이 일을 하려고 여기에 와서 살아가는지 모른다. 좋은 일도 싫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06] 디딜방아 숲을 거닐다 쑥떡을 먹을 자리를 둘러본다. 맞춤한 바위를 찾았는데, 이 바위 틈으로 나무가 끼인 듯하다. 자라던 나무에 바위가 굴러온 듯하지 않고, 바위가 있는 사이에 씨앗이 떨어져 자란 듯하다. 어떻게 그 틈에서 자랐나 싶으나, 나무하고 바위는 마치 하나인 듯 얼크러지며 오늘에 이르렀지 싶다. 어릴 적에 언덕집에서 살다가 마당이 넓고 디딜방아가 있는 집으로 옮긴 일이 있다. 마을에서는 으레 우리 집에 와서 쌀이나 가루를 찧었다. 엄마도 우리 먹을 쌀을 한 바가지씩 확돌에 나락을 부어서 찧었다. 긴 나무 받침에 두다리가 달리고 길게 뻗었는데, 가루를 빻을 적에는 여주알처럼 생긴 공이를 머리쪽에 끼우고, 쌀을 찧을 적에는 나무공이로 바꾼다. 방아채 가운데 난 구멍에는 대를 끼우고, 대는 두 돌받침대에 얹었다. 엄마가 줄을 잡고 다리를 밟으면 방아가 올라가고, 이때 확돌에 손을 넣고 뒤집으면 엄마가 보고서 발을 뗀다. 박자를 맞추어야 손을 안 다치고 수그린 머리를 안 박는다. 돌하고 나무하고 나무하고 엄마가 한마음이 되어 방아를 찧는다. 오늘 숲에서 만난 바위하고 나무도 한마음으로 살아가는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05] 벼랑 보슬비가 내리는 날 칠곡 가산면 유학산에 오른다. 멧길에 안개가 자욱하다. 멧자락에 깃든 절까지 올라가며 바라보는데 바윗덩이가 그대로 멧자락이로구나 싶다. 어떻게 멧갓 하나가 바위 하나일 수 있을까. 그러나 사람 눈으로 보기에 바윗덩이 하나가 멧갓인 모습이 놀라울 테지만, 온누리(우주)로 보자면 이 바윗덩이도 그저 작은 돌멩이 하나일는지 모른다. 깎은 듯한 벼랑 한켠에 선 나무 석 그루를 본다. 떡갈나무이다. 이 나무는 뿌리를 어디로 내렸을까. 바윗덩이에 틈이 있을까. 아니면 나무뿌리가 바윗덩이에 틈을 내었을까. 나무를 넋놓고 바라보다가 그만 이끼에 미끄러지면서 무릎을 쿵 박는다. 아픈 무릎을 쓰다듬으며 바윗덩이에 앉았다. 멧갓인 바윗덩이를 타고 넘은 사람이 여태 얼마나 많을까. 이 멧갓 바위는 나처럼 미끄러진 사람도, 이 멧갓을 두고 싸움을 벌였던 옛사람도, 이 멧갓에서 땔감을 찾던 나무꾼도 오래오래 지켜보았겠지. 2021.05.06.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04] 뿌리 멧길을 오르다 보면 쓰러진 나무를 자주 본다. 쓰러진 나무를 보면 문득 멈춰서 바라본다. 까맣게 타버린 나무에는 어떤 숨결이 남았을까. 꼿꼿이 설 적에는 그늘하고 열매를 내어주면서 보금자리가 되고, 쓰러진 뒤에는 버섯이며 이끼가 자라면서 더 작은 숲이웃한테 보금자리가 된다. 이 나무는 언제 뿌리까지 뽑혔을까. 다가가서 보니 흙이 바싹 말랐고, 잔뿌리도 굵은 뿌리도 안 보인다. 어느새 사라진 뿌리일 텐데 어떻게 그 우람한 몸을 버티었을까. 오래도록 서다가 쓰러진 나무는 흙으로 천천히 돌아가다가 아주 조그마한 씨앗이 새롭게 나무로 자라는 밑거름이 되겠지. 그동안 이 숲을 지키느라 애썼다. 이제 누워서 쉬렴. 어린 새나무가 네 곁에서, 또는 네 몸을 머금고서 뿌리내리며 자랄 테니. 2021.05.06.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34. 손질 셋째 아이가 장난감 비행기를 손에 들고 몸을 이리저리 휘젓고 빙글빙글 돌아다니며 비행기 놀이를 했다. 침대에도 올라가고 끄트머리를 등지고 앉아 비행기를 들고 몸을 틀다가 그만 기우뚱 뒤로 넘어졌다. 미닫이를 박고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얼떨결에 일어난 아들은 뒤통수를 손으로 잡고 머리를 박은 유리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엄마 유리 깨서 어떡해?” “좀 얌전히 놀아. 클날 뻔했잖아.” 유리에는 아들이 세게 박은 곳에서 사방으로 촘촘하게 금이 가고 머리 자국이 어렴풋이 드러난다. 맑은 유리가 아닌 부옇고 두꺼워서 금이 나도 와르르 떨어지지 않았다. 날카로운 조각이나 가루가 떨어졌더라면 큰일날 뻔했다. 우리 아들 눈하고 머리하고 얼굴이 박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덜컹했다. 잘게 금 간 유리를 쓱윽 훑으니 날카롭다. 유리가 깨지면서 살짝 꺼지고 흔들렸다. 아이들이 모르고 손을 댔다가는 베일 듯하다. 금이 난 유리가 떨어지지 않게 안팎을 단단히 붙였다. 우리 집은 마루를 가른 방이 있다. 미닫이를 닫으면 아들 방이 되고 열어 두면 부엌하고 트여 지나가는 자리인데,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03. 새싹 새가 노래하는 소리에 문득 올려다본다. 새소리를 잊고 나무에 돋은 새잎을 바라본다. 새잎 돋은 아까시나무를 땅바닥에서 올려다보니 마치 하얀구름에 닿을 듯하다. 씨앗에 새싹이 돋듯 나무에 새잎이 돋는다. 사람도 어버이 몸에서 갓 태어난 아기는 새잎이나 새싹 같다. 옅푸른 이 새싹이며 새잎을 해를 받아 차츰 짙푸르다. 짙푸르게 우거질 때도 좋지만, 어쩐지 나는 갓 돋은 옅푸른 새잎에 마음이 더 간다. 어린 날 시골에서 학교를 갈 적에 솔밭에서 쉬고, 아까시나무 가지를 따서 가위바위보를 하며 이파리를 땄다. 이러면 학교에도 집에도 어느덧 다다른다. 잎을 다 딴 앙상한 가지로 머리카락을 돌돌 감는 놀이도 한다. 이 새잎도 머잖아 꽃을 내면서 여름을 맞이하겠지. 이 나무도 아기 같은 새잎이 어른 같은 짙푸른 잎이 되면서 한껏 우거지다가 겨울을 맞이하겠지. 나도 나무처럼 하루를 걸어왔고, 하루를 걸어간다. 2021. 5. 3.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02. 각시붓꽃 구불구불한 팔조령 옛길로 들어온다. 숲에 막 들어서는데 각시붓꽃을 만난다. “각시붓꽃이네.” 곁에 다가가 앉는다. 꽃잎이 짙으면서 맑은 보랏빛이다. 눈부시다. 보랏빛 바탕에 물감을 하얗게 찍은 듯하다. 하얀 무늬는 마치 꽃이 하나 더 핀 듯하다. 언젠가 멧골에 오르다가 어느 무덤가에서 용담꽃이며 각시붓꽃을 몇 뿌리 캔 적이 있다. 그날 고운 꽃을 우리 집에 옮겨심는다며 들뜨다가 그만 징검다리에서 미끄러져 엉덩이를 세게 찧었다. 멧꽃을 캔 그날 곁님은 자동차를 몰다가 버스를 박았단다. 엉덩방아를 안 찧고, 곁님이 자동차를 몰다가 박지 않았으면 어떠했을까? 문득 멧꽃한테 잘못했다고 깨달았다. 멧골이며 숲에 깃든 꽃 한 송이나 돌멩이 하나조차 함부로 건드리지 말고, 섣불리 데려가지 말아야 하는 줄 뒤늦게 돌아보았다. 고운 꽃은 그곳에 피었기에 곱지 않을까? 씨앗을 맺을 적에 받아서 한 톨을 얻고서 우리 집에 심어도 되지 않았을까? 멧길을 타다가 각시붓꽃을 다시 만날 때면 예전 일이 떠오르다. 들꽃도 풀꽃도 저마다 피어나는 자리에 그대로 있을 적에 곱구나 싶다. 2021. 5. 3.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 01. 등꽃 팔조령 쉼터 지붕에 등꽃이 이르게 핀다. 옅은 보랏빛으로 우거진 꽃송이가 쉼터 지붕을 타고 주렁주렁 달린다. 가느다랗던 등나무 둘은 서로 꼬여서 지붕으로 뻗기만으로는 모자란지 쇠기둥뿐 아니라 모두 친친 감으려 하는 듯싶다. 스스로 곧게 서기보다는 서로 친친 감으면서 자라는 등나무다. 다른 덩굴나무도 서로 친친 감는다. 홀로 뻣뻣하게 서서 바람에 흔들리듯 춤추다가도 곧은 모습이 아닌, 서로 똘똘 뭉쳐서 비바람에도 꿈쩍을 않는 모습 같다. 친친 감는 모습은 어떤 삶일까. 서로 친친 감느라 껍질이 쓸리면 아플까. 서로 친친 감기에 모진 비바람에도 멀쩡하게 살아내는 의젓한 길일까. 등꽃은 언뜻 눈물방울 같다. 등꽃을 보는 봄이면 스물다섯 여름날 첫째 아이를 낳고 시골집에 맡기고서 일하러 다니던 때가 떠오른다. 그때 흙을 만져 그릇을 빚는 자리에도 다녔다. 흙반죽으로 등꽃시계를 빚느라 흙등꽃을 며칠 동안 하나하나 붙이곤 했다. 2021. 5. 3.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33. 돌보기 시골에 살던 둘째 아이가 네 살이 되어 집에 왔다. 두 딸이 어린이집에 함께 간다. 아침에 조금 일찍 나서서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데, 둘째 아이가 자꾸 운다. 안 들어가겠다고 울어 언니가 손잡고 가자고 말해도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이 층 문 앞에서 샘님이 안고 달래도 숨죽여 운다. 샘님이 가라고 손짓해서 내려오는데 우는 소리에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백 미터 떨어진 곳에 아빠 일터가 있고 삼 층이 우리 집이다. 아빠가 여섯 시에 데리러 못 가면 언니가 동생 손을 잡고 데리고 온다. 차가 안 다니는 바로 이어진 골목길을 일러 주었다. 골목 모퉁이를 돌아 오십 미터 길인 우리 집으로 오는 사이에는 찻길이 있어 가게가 들어선 쪽으로 바짝 붙어서 온다. 전봇대가 있고 비스듬한 하수구가 지나가는 길로 걷는다. 일곱 살 첫째 아이는 걸음이 늦은 동생을 어깨동무하고 허리를 굽혀 동생 눈높이에 맞추고 살살 데리고 온다. 하수구를 덮은 넓적한 돌에 구멍이 둘씩 있어 어른인 나도 가끔 발이 걸러 엎어질 뻔한 적이 있는데, 동생이 빠지지 않게 비껴 오느라 신발 앞머리가 구멍에 걸러 엎어졌다. 동생 손을 잡고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32. 시골아이 “옷 산다고 하디 샀나?” “아니. 아직 안 샀어.” “꽃샘추위 지나가면 봄을 건너뛰고 바로 여름이 오지 싶다. 짧은 철이라도 옷은 제때 바꿔 입어야지.” “응 쉬는 날에 나가 볼게.” “그래라. 니 동생 집에 왔다.” “알아. 어제 말했어.” “아. 어여, 엄마가 옷값 보태 주까?” “응, 얼마나?” “돈은 없어. 10이나 20?” “돈 없음 안 줘도 돼.” “어디로 보낼까?” “농협으로. 외우는 게 이뿐이야.” “응. 그날 입고 온 겉옷이 하도 낡아서 사주는 거야! 불쌍해 보여.” “다들 왜 그러지. 난 아무렇지 않은데. 오예 받았슴다. 고맙습니당.” “옷 사면 찍어서 보내.” “네, 네, 그렇게 남기겠슴다. 그럼. 쉬십셔. 난 머리가 너무 아파서 일찍 잘랭. 요즘 한쪽 머리가 너무 아파.” “그래. 푹 자. 잘 때는 잠만 자” “잠을 깊이 못 자. 새벽에 자꾸 깨서 머리가 더 아픈 듯. 쭉 자야 하는데. 어제는 한 시간마다 깼어. 미치는 줄 알았어.” “뒷산이라도 가서 숲 보면 나은데.” “음. 내일은 시장에 나가서 돌아다녀 볼게.” “너 어릴 적에 시골에서 지내서 몸이 서울을 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