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34] 잔디 잔디에 대가 쑥 올라와 씨앗이 영근다. 중학교 다닐 적이 떠오른다. 여름이면 빠지지 않고 잔디 훑기를 해오라고 시켰다. 작은 그릇을 하나 들고 장골 뒷산에 오른다. 묏자리에 잔디가 많다. 대를 손으로 꼭 잡고 당기면 두 손가락 사이에 딱 씨앗이 붙는다. 그릇에 손가락을 비비면 잔디가 떨어진다. 손에 묻힌 씨앗을 담다가 흘린다. 그렇게 흘린 씨앗이 무덤터에 다시 뿌리를 내렸지 싶다. 작은 씨앗을 그릇에 채우려면 쪼그려 앉아 오래 훑어야 한다. 갖고 가야 할 몫을 채우려면 볕이 뜨겁고 하기 싫어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잔디씨 훑는 일은 그렇게 싫지가 않았다. 이 숙제가 어렵지 않으니깐 좋았다. 내가 훑어 온 잔디씨를 글월자루(편지봉투)에 담아서 낸다. 그러면 부피를 채웠는지 무게를 단다. 잔디는 배움터에서 시켰기 때문에 훑기도 했지만 팔려고 훑기도 했다. 어머니 아버지도 많이 훑었다. 재 너머 덥니미에 소풀을 먹이면서 잔디씨를 훑는다. 온집안이 훑어 한 되가 모이면 어머니는 저자에 가서 팔았다. 우리는 잔디씨를 온집안이 훑어서 파는데 배움터에서는 왜 거저로 잔디씨를 거두는지 못마땅했다. 너른터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33] 찔레나무 찔레는 꺾는 자리가 따로 있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재 밑이다. 산 따라 도랑이 길 따라 이어졌다. 도랑에 다리를 걸치고 비탈진 산으로 몇 걸음 오른다. 흙을 밟으면 땅이 비스듬하고 흙이 푸석해서 발이 흙하고 같이 미끄러진다. 어떤 날은 주르르 몸이 미끄러져 엉덩이를 찍는다. 찔레는 덩굴이 커서 잎이 나무를 가린다. 덩굴줄기에 삐죽 올라온 새싹을 먹는다. 가시덤불에 있는 싹도 팔을 뻗어 꺾는다. 가시를 살살 비껴서 꺾어도 손등이 긁힌다. 싹이 굵고 보드랍고 풀 맛이 상큼하다. 길쭉한 찔레를 앞니로 똑똑 꺾어 씹으면서 아껴 먹는다. 새싹 가운데 살이 통통하고 굵은 찔레가 맛이 좋다. 어떤 찔레는 가늘고 가시가 돋아 질겨서 껍질을 벗겨내고 먹는다. 찔레 몇 가닥 꺾어 먹으면 목마름도 사라진다. 배도 무척 부르다. 겨울이면 흰꽃이 진 자리에 빨간 열매가 달린다. 우리는 열매는 먹지 않고 가끔 꺾어서 들고 논다. 아버지는 눈 내린 겨울에 이 열매에 무슨 약을 묻히고 산에 덫을 놓고 토기를 잡아 온다. 아버지는 “싸이나 놓는다”고 했다. 찌르기 가시 때문에 찔레라는 이름일 텐데, 우리가…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토박이말 살리기]한바람, 작달비, 큰물 엊그제 밤에 벼락과 함께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이처럼 짧은 동안 비가 많이 내리는 일이 앞으로 잦을 것입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곳곳에 ‘태풍’ 때문에 ‘폭우’가 내려 ‘홍수’로 하천이 ‘범람’을 하는 바람에 건물이 ‘침수’되었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지요. ‘뉴스’에서 자주 듣다보니 어른들에게는 눈과 귀에 익어서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 말을 얼른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아마 나이가 많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들 가운데 잘 모르시는 분들도 더러 계실 것입니다. 그런 말을 갈음할 수 있는 토박이말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 슬프고 알고도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서 더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앞으로 자주 듣게 될 ‘태풍’, ‘폭우’, ‘홍수’ 같은 말과 아랑곳한 토박이말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태풍’을 보겠습니다. ‘태풍’은 한자말이기 때문에 ‘태’를 ‘클 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태’자는 ‘태풍 태’ 또는 ‘몹시 부는 바람 태’입니다. 그래서 굳이 풀이를 하자면 ‘몹시 부는 바람이 될 것입니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아들, 딸에게 들려 주는 좋은 말씀]23-우리는 나를 이김으로써... 사랑하는 아들, 딸에게 어제 뒤낮(오후) 소나기가 올 거라고 하더니 참말로 소나기가 내렸지. 그리고 내가 집에 갈 동안에는 해도 났었는데 저녁에 벼락과 함께 비가 올 거라고 하더니 어김없이 그렇게 비가 주룩주룩 내렸지. 그걸 보면서 날씨 알림이 마치 다맞힘이(점쟁이) 같다는 생각을 했단다. 오늘 들려 줄 좋은 말씀은 "우리는 나를 이김으로써 스스로를 나아지게 한다. 나와의 싸움은 언제든 있기 마련이고 그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야. 이 말씀은 잉글랜드(영국)에서 지나간 일들을 깨치는 일을 하신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 님께서 남기셨다고 해. 어려운 쪽보다는 쉬운 쪽으로 가려는 나, 울퉁불퉁 꼬불꼬불 거친 길보다는 반반하고 곧으며 부드러운 길로 가려는 나와의 싸움이 그리 가든한 것은 아니지. 하지만 그런 싸움에서 질 때마다 나는 갈수록 쪼그라들거나 뒤처지는 열매를 낳는다는 것을 느끼거나 보기도 하지. 아침에 잠자리에서 좀 더 누워 있고 싶은 나를 벌떡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사람도 나라는 것, 배운 것을 다시 익히고 해내야 할 것을 앞에 두고도 노는…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토박이말 살리기]1-56 도다녀가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다."는 말도 아이를 키워 본 어버이들은 온몸으로 느끼셨을 테지만 저를 돌아보게 되더라구요. 날씨도 더운데 그 생각을 하니 더 더워서 꼬꼬들 물을 챙겨 주고 집으로 왔습니다. 오늘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도다녀가다'입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왔다가 머무를 사이 없이 빨리 돌아가다.'라고 풀이를 하고 "할머니가 어제 여기에 도다녀가셨다."를 보기로 들었습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사람이 어떤 곳에) 왔다가 지체 없이 빨리 돌아가다.'로 풀이를 하고 "부장님이 어제 이곳에 도다녀가고 게다가 밤을 새웠으니 곤하지 않겠어?"를 보기월로 보였습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 있는 '지체 없이'보다는 '머무를 사이 없이'가 훨씬 낫도 싶었고 '(사람이 어떤 곳에)'는 풀이에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이 풀이를 해 보았습니다. 도다녀가다: (사람이 어떤 곳에) 왔다가 머무를 사이 없이 빨리 돌아가다. 일터에 있는 때새가 집에 있는 때새보다 긴 사람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하루글 하루를 씁니다. 저물녘에도 쓰고, 한낮에도 쓰고, 아침에도 씁니다. 하루글은 꼭 잠자리에서 써야 하지 않습니다. 어느 때이든 하루자취를 돌아보고 싶을 적에 써요. 즐겁거나 뜻깊거나 아프거나 새롭게 겪은 하루를 차근차근 옮깁니다. 오늘을 씁니다. 누가 안 시켜도 스스로 오늘글을 씁니다. 스스로 즐긴 일을 씁니다. 새삼스레 맡는 일을 적습니다. 반가이 맞아들여 삶을 가꿀 일감을 누린 이야기를 씁니다. 살림을 씁니다. 조곤조곤 지은 살림을 옮기고, 소꿉놀이 같은 빛살을 적으며, 아이하고 돌본 삶을 써요. 서로 이야기를 하듯 씁니다. 글줄마다 생각이 반짝반짝 드리웁니다. 어쩌면 삶글이란 삶빛글이라 할 만해요. 삶꽃글이라 해도 돼요. 살림꽃글이나 살림빛글처럼 이름을 곱게 붙입니다. 우리 보금자리에 풀꽃나무가 넉넉히 자라도록 하니, 나무그늘이 싱그럽고 풀내음이 상큼합니다. 이 풀꽃나무한테 찾아오는 새는 노랫가락을 베풀고, 개구리랑 두꺼비가 함께 노래하며,…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토박이말 살리기]1-55 데설궂다 누리를 바꾸겠다든지 나라를 바꾸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앞서 나를 먼저 바꾸라는 말이 문득 제 마음을 울리는 요즘입니다. 많다고 하기는 그렇지만 그렇다고 적다고 할 수 없는 분들이 저와 뜻을 함께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고마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리라 다짐을 해 봅니다. 오늘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데설궂다'입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성질이 털털하고 걸걸하여 꼼꼼하지 못하다.'라고 풀이를 하고 "저 아이는 성격이 데설궂어 터진 옷을 며칠째 입고 다닌다."를 보기월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사람이) 성질이 털털하여 꼼꼼하지 못하다.'라고 풀이를 한 다음 "그 애가 데설궂어서 제 아낙한테도 마구 굴까 봐 걱정이란 말이요."를 보기로 들고 있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에 있는 '걸걸하다'가 됨됨이나 하는 짓이 조심스럽지 못하고 거칠다'는 뜻이니까 표준국어대사전 풀이가 좀 더 꼼꼼하다고 하겠습니다. 둘레에 계신 분들을 보면 털털해서 좋지만 조심스럽지 못하거나 꼼꼼하지 못하다 싶은 사람이 더러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둘레에 그렇게 데설궂은 사람이 있어도 이…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말 좀 생각합시다’는 우리를 둘러싼 숱한 말을 가만히 보면서 어떻게 마음을 더 쓰면 한결 즐거우면서 쉽고 아름답고 재미나고 사랑스레 말빛을 살리거나 가꿀 만한가 하는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말 좀 생각합시다 14 농땡이·땡땡이 ‘농땡이’가 일본말이고, ‘땡땡이’까지 일본말인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우리말로는 ‘노닥거리다·놀다’하고 ‘빼먹다·게으르다’인 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일본말이기에 안 써야 하지 않습니다. 일본말이기에 샅샅이 털어내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쯤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왜 구태여 일본말을 끌어들여서 우리 마음이나 뜻이나 생각을 나타내려고 하는가를 살펴보기로 해요. 왜 굳이 영어나 한자말을 내세워서 우리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는가를 되새기면 좋겠어요. ‘농땡이’는 ‘油を賣る(あぶらをうる)’라는 일본말에서 왔어요. ‘땡땡이’는 ‘でんでん’이라는 일본말에서 왔고요. 그런데 우리 낱말책을 보면 이런 말밑을 밝히지 못합니다. ‘농땡이’랑 ‘땡땡이’ 모두 마치 우리말이기라도 되는듯이 다루지요. 글꽃(문학)이나 삶꽃(인문학)을 하는 분도 이 일본말을 그냥 쓰고, 어린이책을 쓰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32] 솔잎 유월이 되니 솔잎이 쑥쑥 올라왔다. 손가락 길이로 길쭉하고 새잎은 한 뼘씩 하늘로 곧게 자란다. 솔잎이 삐죽삐죽 덜 나올 적이 되면 새잎에 가루가 잔뜩 달라붙었다. 우리는 나무를 흔들어 노란가루를 털어냈다. 흩어지는 가루는 눈먼지처럼 펄펄 난다. 가루를 터는 재미로 소나무를 무척이나 뒤흔들었다. 가루가 날아가면 새잎이 드러난다. 솔잎이 푸르고 빳빳하게 힘이 차면 한가위에 솔잎을 따다 송편 사이에 넣고 찐다. 솔잎 한 가지를 꺾어 하나하나 잎을 따서 실로 묶어 항로에도 꽂는다. 풋풋한 솔방울이 자라 겨울에 마르고 입을 쩍 벌리면 나무에서 떨어지고 우리는 주워서 불쏘시개로 썼다. 솔잎이 겨우살이를 하면서 잎을 떨구면 우리는 까꾸리로 모아서 불쏘시개 땔감으로 태운다. 소나무 껍질과 속살을 벗겨 먹는다. 금성산에 와 보니 소나무는 힘들게 자란다. 곧게 자라지 못한다. 그렇지만 잎이 보드랍고 솔방울도 작고 나무도 작다. 하나같이 왜 이리도 작을까 싶어 살펴본다. 돌 틈에 뿌리를 겨우 내리고 밑둥은 바위에 걸터앉은 꼴을 하며 둘레 나무가 거의 휘면서 자란다. 바위틈에 살아나려고 몸집을 키우지 않은 듯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31] 뽕나무 뽕잎에 가려진 똘기와 아람열매가 달렸다. 꼬물꼬물 기어가는 풀벌레 같다만 맛은 달다. 오디가 나무에서 익어 갈 무렵이면 뽕잎을 따고 훑었다. 우리 집은 집도 작고 방도 작아 한 방에 모여 자고 윗목에 누에도 키웠다. 어머니는 광주리에 어린 뽕잎을 따다 어린 누에를 키웠다. 뽕잎을 먹고 자라면 광주리를 바꾸고 또 자라면 광주리를 바꾸며 누에 집을 늘려준다. 누에가 무럭무럭 자라자 뽕잎도 많이 먹는다. 몸집이 굵으면 아버지는 나무로 틀을 짜고 모기그물을 붙인 켜를 올리고 발도 펴서 또 한 켜를 올린다. 솔가지를 꺾어 켜를 놓으면 누에는 솔가지에 집을 짓는다. 솔가지를 넓은 자리에 옮겨 놓는다. 우리는 집 뒷골에 올라가 뽕잎을 몇 씩 땄다. 누에가 자라자 아버지는 뽕나무 가지를 베어서 집에서 잎을 따서 더 많이 먹인다. 누에가 실을 풀 때쯤이면 굵다. 어른 손가락보다 굵다. 잠결에 뽕잎을 갉아먹는 소리를 쉐쉐 세차게 듣는다. 누에가 입에서 끊임없이 실을 풀면 온통 하얀 고치이다. 실을 풀어내고 고치에서 잠든 누에를 생각지 못하고 나는 귀에 대고 흔들며 고치를 손에 쥐고 놀았다. 엄지보다 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