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에서 짓는 글살림”은 숲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시골자락에서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길에 새롭게 맞아들여 누리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숲에서 짓는 글살림 17. 다람쥐를 다람쥐라 못하다 2017년 가을께 전남 고흥군 고흥읍에 있는 시외버스역 뒷간에 ‘아짐찬하요’라는 글월이 붙었습니다. 뭔 뜬금없는 글월인가 하고 쳐다보니, 사내들이 오줌을 눌 적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서면 ‘아짐찬하다’는 소리입니다. 다만, 고흥 바깥 전라말로는 ‘아심찬하다’로 씁니다. 흔히 전라사람은 뭔 말을 할라치면 ‘거시기하다’라 한다고들 합니다. 고흥에서는 ‘거시기하다’라고는 거의 안 쓰고 ‘거석하다’라고 합니다. 낱말책을 살피면 ‘거석’을 경남말로만 다루는데, 경남말로만 여겨도 될까 아리송합니다. 그리고 ‘거시기하다’는 전라말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온나라에서 두루 쓰는 말입니다. 고흥에서 흔히 쓰는 ‘거석하다’를 놓고 낱말책은 ‘거식하다’라는 표준말을 싣기도 합니다. 더 헤아려 보면 ‘머시기’라는 말이 있고, 뭔가 뭉뚱그려서 말하는 자리라든지 또렷하게 안 떠오르지만 나타내고 싶은 말이 있을 적에 ‘무엇’이나 ‘거기’나 ‘그것’이나 ‘것’이나 ‘거’를 쓰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05] 벼랑 보슬비가 내리는 날 칠곡 가산면 유학산에 오른다. 멧길에 안개가 자욱하다. 멧자락에 깃든 절까지 올라가며 바라보는데 바윗덩이가 그대로 멧자락이로구나 싶다. 어떻게 멧갓 하나가 바위 하나일 수 있을까. 그러나 사람 눈으로 보기에 바윗덩이 하나가 멧갓인 모습이 놀라울 테지만, 온누리(우주)로 보자면 이 바윗덩이도 그저 작은 돌멩이 하나일는지 모른다. 깎은 듯한 벼랑 한켠에 선 나무 석 그루를 본다. 떡갈나무이다. 이 나무는 뿌리를 어디로 내렸을까. 바윗덩이에 틈이 있을까. 아니면 나무뿌리가 바윗덩이에 틈을 내었을까. 나무를 넋놓고 바라보다가 그만 이끼에 미끄러지면서 무릎을 쿵 박는다. 아픈 무릎을 쓰다듬으며 바윗덩이에 앉았다. 멧갓인 바윗덩이를 타고 넘은 사람이 여태 얼마나 많을까. 이 멧갓 바위는 나처럼 미끄러진 사람도, 이 멧갓을 두고 싸움을 벌였던 옛사람도, 이 멧갓에서 땔감을 찾던 나무꾼도 오래오래 지켜보았겠지. 2021.05.06.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04] 뿌리 멧길을 오르다 보면 쓰러진 나무를 자주 본다. 쓰러진 나무를 보면 문득 멈춰서 바라본다. 까맣게 타버린 나무에는 어떤 숨결이 남았을까. 꼿꼿이 설 적에는 그늘하고 열매를 내어주면서 보금자리가 되고, 쓰러진 뒤에는 버섯이며 이끼가 자라면서 더 작은 숲이웃한테 보금자리가 된다. 이 나무는 언제 뿌리까지 뽑혔을까. 다가가서 보니 흙이 바싹 말랐고, 잔뿌리도 굵은 뿌리도 안 보인다. 어느새 사라진 뿌리일 텐데 어떻게 그 우람한 몸을 버티었을까. 오래도록 서다가 쓰러진 나무는 흙으로 천천히 돌아가다가 아주 조그마한 씨앗이 새롭게 나무로 자라는 밑거름이 되겠지. 그동안 이 숲을 지키느라 애썼다. 이제 누워서 쉬렴. 어린 새나무가 네 곁에서, 또는 네 몸을 머금고서 뿌리내리며 자랄 테니. 2021.05.06.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아들 #딸 #좋은말씀 #명언 #토박이말 #살리기 #터박이말 #참우리말 #숫우리말 #순우리말 #고유어 #토마스제퍼슨 [아들, 딸에게 들려 주는 좋은 말씀]16-아무 하는 일 없이... 오늘 알려 줄 좋은 말씀은 "아무 하는 일 없이 헛되이 때새를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라. 우리가 늘 뭔가를 한다면 놀라우리만치 많은 일을 해 낼 수 있다."야 이 말씀은 미국 독립선언문을 쓴 '토마스 제퍼슨' 님의 말씀이라고 해. 내가 늘 하는 이야기와도 이어지는 말이라 반갑기도 했어. 가만히 하루를 돌아보며 어떻게 때새(시간)를 보내는지 생각해 보렴. 일어나서 다시 잠이 들 때까지 내가 헛되이 보내는 때새는 없는지 생각해 보자는 것이야. 그런 때새가 없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이고 그런 때새에 무엇이든지 하면 놀라울 만큼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이지.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서 기쁜 마음으로 몸을 깨운 뒤 물을 한 그릇 먹는 게 좋다는 구나. 그 다음에는 몸을 골고루 가볍게 움직인 다음 해야 할 일을 챙겨 보고 아침밥을 챙겨 먹으면 기운 넘치는 하루를 만들어 갈 수 있다니 너희들도 해 보면 좋겠구나. 미리 익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무시무시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에는 여러 깨비가 있습니다. 우리가 멋모르고 무섭거나 사납게 여기는 도깨비가 있다면, 밥이 좋은 밥깨비에 먹깨비가 있어요. 잠에 빠지는 잠깨비도 있고, 책에 사로잡힌 책깨비가 있고, 즐겁게 노는 놀이깨비가 있어요. 꽃을 사랑하면 꽃깨비일 테지요. 숲이 좋아 숲깨비요, 바다를 반겨 바다깨비입니다. 깨비 아닌 밥바보나 책바보나 놀이바보나 꽃바보라 해도 좋아요. 누가 우리더러 바보란 이름을 붙이며 볼품없다고 놀리더라도 빙긋빙긋 웃으면서 우리 손길을 사랑으로 가꾸면 됩니다. 누구보다 잘하거나 훌륭해야 하지 않아요. 들꽃님이 아닌 들꽃깨비란 이름도 좋습니다. 밥지기 아닌 밥쟁이여도 즐거워요. 우리 온솜씨를 펴서 차근차근 다루거나 만지면서 스스로 빛나면 됩니다. 아직 서툰 솜씨라면, 좀 엉성한 재주라면, 모자란 힘이라면, 이렇게 서툴거나 엉성한 줄 아는 만큼 느긋하게 힘쓰면 돼요. 허술하다고 해서 추레하지 않습니다. 더딘 발놀림이라 해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34. 손질 셋째 아이가 장난감 비행기를 손에 들고 몸을 이리저리 휘젓고 빙글빙글 돌아다니며 비행기 놀이를 했다. 침대에도 올라가고 끄트머리를 등지고 앉아 비행기를 들고 몸을 틀다가 그만 기우뚱 뒤로 넘어졌다. 미닫이를 박고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얼떨결에 일어난 아들은 뒤통수를 손으로 잡고 머리를 박은 유리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엄마 유리 깨서 어떡해?” “좀 얌전히 놀아. 클날 뻔했잖아.” 유리에는 아들이 세게 박은 곳에서 사방으로 촘촘하게 금이 가고 머리 자국이 어렴풋이 드러난다. 맑은 유리가 아닌 부옇고 두꺼워서 금이 나도 와르르 떨어지지 않았다. 날카로운 조각이나 가루가 떨어졌더라면 큰일날 뻔했다. 우리 아들 눈하고 머리하고 얼굴이 박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덜컹했다. 잘게 금 간 유리를 쓱윽 훑으니 날카롭다. 유리가 깨지면서 살짝 꺼지고 흔들렸다. 아이들이 모르고 손을 댔다가는 베일 듯하다. 금이 난 유리가 떨어지지 않게 안팎을 단단히 붙였다. 우리 집은 마루를 가른 방이 있다. 미닫이를 닫으면 아들 방이 되고 열어 두면 부엌하고 트여 지나가는 자리인데,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우리한글박물관 #김상석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 #살리기 #쉬운배움책 #교과서 #과학 #피부 #근육 #붇다 #살갗 #힘살 [옛배움책에서 캐낸 토박이말]살갗 붇다 힘살 오늘은 4285해(1952년) 펴낸 ‘과학공부 5-2’의 47쪽부터 48쪽에서 캐낸 토박이말을 보여드립니다. [우리한글박물관 김상석 관장 도움/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47쪽 첫째 줄부터 둘째 줄에 걸쳐 ‘살갗 아래 쌓여서 열이 밖으로 흩어짐을 막고, 또 뼈와 뼈 사이에 붙어서 팔다리의 운동을 부드럽게 해 준다.’가 나옵니다. 이 가운데 ‘살갗 아래 쌓여서 열이 흩어짐을 막고’는 어려운 말을 썼다면 어떻게 썼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 ‘피하에 축척되어 열 발산을 차단하고’와 같이 쓰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옛날 배움책에서는 보시다시피 ‘피부’라는 말을 ‘살갗’이라 했고 ‘발산’은 ‘밖으로 흩어짐’이라고 했으며 ‘차단’은 ‘막고’를 써서 아주 쉽게 만들었습니다. 그 뒤에 나오는 ‘뼈와 뼈 사이에 붙어서 팔다리의 운동을 부드럽게 해 준다.’도 ‘운동’을 빼고는 모두 토박이말로 되어 있지만 참 쉬워서 좋습니다. 일곱째 줄과 여덟째 줄에 걸쳐 ‘우리 몸이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책숲하루’는 전남 고흥에서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책숲(도서관)을 꾸리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말꽃을 짓는 길에 곁에 두는 책숲에서 짓는 하루 이야기인 ‘책숲하루 = 도서관 일기’입니다. 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1.5.3. 소양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어제 낮에 풀다가 매듭을 못 짓고서 넘긴 ‘소양’이란 한자말이 있습니다. 으레 ‘기본’을 붙여 ‘기본소양’처럼 쓰기도 하지만, 이때에는 겹말입니다. ‘기본소양’이 겹말인 줄 깨닫는 분은 몇이나 될까요? 한자말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한자말을 쓰면 좋으냐 나쁘냐를 떠나서, 말결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아무 말이나 덕지덕지 붙이면 그만 우리 스스로 무슨 이야기를 펴려고 했는가 하고 동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말밑을 하나하나 파다 보면 어느새 ‘덕지덕지 붙여서 어렵게 늘여뜨리는 말이나 글이 얼마나 덧없고 바보스러운가’를 깨닫지요. 깨달은 사람은 어려운 말을 안 씁니다. 쓸 턱이 없어요. 깨달은 사람은 언제나 가장 쉽게 이야기를 들려줘요. 절집에서 펴는 한마디(화두)는 언제나 매우 쉬워서 어린이부터 다같이 알아들을 만한 낱말이자 이야기이기 마련입니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03. 새싹 새가 노래하는 소리에 문득 올려다본다. 새소리를 잊고 나무에 돋은 새잎을 바라본다. 새잎 돋은 아까시나무를 땅바닥에서 올려다보니 마치 하얀구름에 닿을 듯하다. 씨앗에 새싹이 돋듯 나무에 새잎이 돋는다. 사람도 어버이 몸에서 갓 태어난 아기는 새잎이나 새싹 같다. 옅푸른 이 새싹이며 새잎을 해를 받아 차츰 짙푸르다. 짙푸르게 우거질 때도 좋지만, 어쩐지 나는 갓 돋은 옅푸른 새잎에 마음이 더 간다. 어린 날 시골에서 학교를 갈 적에 솔밭에서 쉬고, 아까시나무 가지를 따서 가위바위보를 하며 이파리를 땄다. 이러면 학교에도 집에도 어느덧 다다른다. 잎을 다 딴 앙상한 가지로 머리카락을 돌돌 감는 놀이도 한다. 이 새잎도 머잖아 꽃을 내면서 여름을 맞이하겠지. 이 나무도 아기 같은 새잎이 어른 같은 짙푸른 잎이 되면서 한껏 우거지다가 겨울을 맞이하겠지. 나도 나무처럼 하루를 걸어왔고, 하루를 걸어간다. 2021. 5. 3.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02. 각시붓꽃 구불구불한 팔조령 옛길로 들어온다. 숲에 막 들어서는데 각시붓꽃을 만난다. “각시붓꽃이네.” 곁에 다가가 앉는다. 꽃잎이 짙으면서 맑은 보랏빛이다. 눈부시다. 보랏빛 바탕에 물감을 하얗게 찍은 듯하다. 하얀 무늬는 마치 꽃이 하나 더 핀 듯하다. 언젠가 멧골에 오르다가 어느 무덤가에서 용담꽃이며 각시붓꽃을 몇 뿌리 캔 적이 있다. 그날 고운 꽃을 우리 집에 옮겨심는다며 들뜨다가 그만 징검다리에서 미끄러져 엉덩이를 세게 찧었다. 멧꽃을 캔 그날 곁님은 자동차를 몰다가 버스를 박았단다. 엉덩방아를 안 찧고, 곁님이 자동차를 몰다가 박지 않았으면 어떠했을까? 문득 멧꽃한테 잘못했다고 깨달았다. 멧골이며 숲에 깃든 꽃 한 송이나 돌멩이 하나조차 함부로 건드리지 말고, 섣불리 데려가지 말아야 하는 줄 뒤늦게 돌아보았다. 고운 꽃은 그곳에 피었기에 곱지 않을까? 씨앗을 맺을 적에 받아서 한 톨을 얻고서 우리 집에 심어도 되지 않았을까? 멧길을 타다가 각시붓꽃을 다시 만날 때면 예전 일이 떠오르다. 들꽃도 풀꽃도 저마다 피어나는 자리에 그대로 있을 적에 곱구나 싶다. 2021. 5. 3.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