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책숲마실 책과 글이라는 꽃 ― 청주 〈달꽃〉 청주 마을책집 〈달꽃〉은 2023년 3월 30일까지 열고서 조용히 닫았습니다. 네 해에 이르는 책살림은 접습니다. 책집이 떠난 자리에는 다른 가게가 들어설 테고, 다른 이야기가 이어가리라 봅니다. 그러나 그곳에 책집이 있던 자국은 언제까지나 흘러요. 우리말 ‘자’는 ‘길이’가 있는 ‘단단한 것’을 가리킵니다. 앞에 서거나 스스로 나서려고 하는 숨결도 ‘자’를 넣습니다. 집(ㅁ)으로 둘러싸는 받침을 넣은 ‘잠’은, 반듯하게 누워서 꿈으로 나아가는 길을 나타내고, ‘잠기다·잠그다’로 잇는데, ‘잠’이 나비한테도 사람한테도 새몸과 새빛으로 깨어나는 길을 밝히는 말밑이듯, ‘자리’는 모든 곳을 짓거나 이루는 바탕을 나타내요. ‘자위·자욱·자국’으로 뻗으면 삶결이 깨어나거나 묻어난 바탕을 나타냅니다. 책집이 있던 자리는 앞으로 잊힐 만하지만, 책집으로 만나던 자욱이며 자국은 책손 마음에 가만히 남을 테지요. 우리는 자고 깨어나는 하루를 누리면서 언제나 새롭게 달라지면서 거듭나는 마음입니다. 어제하고 오늘은 누구나 다른 숨결이자 삶입니다. ‘나’는 ‘나아가’려고 생각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하루 우리말 노래 우리말 새롭게 가꾸기 29. 봉긋·바위 우리말 ‘벙어리’는 ‘벙긋벙긋’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이름이다. ‘벙글벙글’ 웃는 몸짓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싱글벙글’도 마찬가지이다. ‘벙글·빙글·빙그레’를 깎음말(차별어)로 여기지 않는데, ‘벙어리’란 우리말만 깎음말로 여긴다. 그러면 더 생각해 본다. 차라리 새말을 여미면서 새뜻을 밝히고 새길을 알려 보자. ‘벙긋·벙글’처럼 소리를 내지 않듯 가만히 웃음짓듯 벌어지는 꽃송이를 ‘봉오리’라 하고, 봉오리는 ‘봉긋’ 솟거나 핀다고 여긴다. 이러한 뜻과 결을 담고, 뜻풀이에서도 찬찬히 밝혀 ‘봉긋님’ 같은 이름을 쓸 수 있다. ‘바위님’이라는 낱말에도 새뜻과 새결과 새숨을 담아서 함께 쓰자고 할 수 있다. 봉긋님 (봉긋 + 님) : 소리를 내지 않거나 말을 하지는 않는 사람. 피어나는 봉긋봉긋한 봉오리처럼, 고요하면서 맑게 숨빛을 품은 사람. (= 바위님. ← 청각장애인·언어장애인) 바위님 (바위 + 님) : 소리를 내지 않거나 말을 하지는 않는 사람. 커다랗고 단단하게 삶터를 버티는 바위나 멧자락처럼, 넉넉하고 푸르게 숨빛을 품은 사람. (= 봉긋님. ← 청각장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에서 짓는 글살림”은 숲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시골자락에서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길에 새롭게 맞아들여 누리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숲에서 짓는 글살림 38. ‘한말’로 짓는 달콤한 노래 아이들하고 마실을 다닐 적에 아이들 스스로 종이(표)를 끊도록 합니다. 돈도 아이가 스스로 치르도록 합니다. 아이들은 처음에 꽤 쭈뼛거렸어요. 아니, 아무 말도 못하고 수줍어 하더군요. 그렇지만 한 해 두 해 흐르더니, 세 해 네 해 지나가니, 이제 파는곳(매표소) 앞에 서서 씩씩하게 “어린이표 하나 주셔요!” 하고 말합니다. 어린이는 어린이 스스로 “어린이표 주셔요”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린이표’ 같은 이름을 쓴 지는 아직 얼마 안 되어요. 예전에는 으레 ‘소아’나 ‘유아’나 ‘아동’ 같은 한자말만 썼습니다. 어른 어린이 때로는 제가 혼자서 어린이표까지 끊어요. 이때에 흔히 “어른표 하나랑 어린이표 둘 주셔요!” 하고 말합니다. 고장마다 살짝 다르기는 해도 몇 해 앞서까지만 해도 ‘어른표’라는 말을 ‘성인표’로 바꾸어서 대꾸하는 일꾼을 제법 보았으나 요새는 파는곳에서도 ‘어린이표·어른표’라는 이름을 스스럼없이 씁니다. 우리 집 어린이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곁말’은 곁에 두면서 마음과 생각을 살찌우도록 징검다리가 되는 말입니다. 낱말책에는 아직 없습니다. 글을 쓰는 숲노래가 지은 낱말입니다. 곁에 어떤 낱말을 놓으면서 마음이며 생각을 빛낼 적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면서 ‘곁말’ 이야기를 단출히 적어 봅니다. 숲노래 곁말/숲노래 우리말 곁말 53 빛줄기 처음에는 모르니 그냥 쓰지만 곰곰이 생각합니다. 낯선 말을 들을 적에는 무슨 뜻이고 어떠한 결이며 어느 곳에 쓰는가를 살펴요. 귀로 들어온 낱말을 혀에 얹고서 곰곰이 생각하노라면, 이제 이 낯선 낱말을 아이들한테 어떻게 풀어내어 들려주어야 즐거이 넉넉히 새롭게 받아들일 만한가 하고 반짝반짝 머리가 빛납니다. 한자말 ‘신경세포’는 영어 ‘뉴런’을 일본사람이 옮긴 말씨입니다. 일본사람은 한자를 이모저모 엮어서 새말을 잘 지어요. 우리는 일본 한자말을 그냥그냥 써도 나쁘지 않습니다. 영어를 이냥저냥 써도 안 나빠요. 다만, 우리한테 우리말이 있다면 우리말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우리말로 새롭게 엮을 수 있을까요? 우리말로 즐겁게 풀어내어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나요? ‘신경세포·뉴런’이란 이름을 처음 들을 적에는 시큰둥했지만,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곁말’은 곁에 두면서 마음과 생각을 살찌우도록 징검다리가 되는 말입니다. 낱말책에는 아직 없습니다. 글을 쓰는 숲노래가 지은 낱말입니다. 곁에 어떤 낱말을 놓으면서 마음이며 생각을 빛낼 적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면서 ‘곁말’ 이야기를 단출히 적어 봅니다. 숲노래 곁말/숲노래 우리말 곁말 52 봉긋님 누리그물에서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을 살피면, 우리말 ‘벙어리’에 “차별 또는 비하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므로 이용에 주의가 필요합니다(차별표현 바로알기 캠페인)” 같은 붙임말이 있어요. 놀랐어요. 우리말이 따돌림말(차별어)이라니? 한자말 ‘청각장애인·언어장애인’은 따돌림말도 들볶음말도 돌림말도 괴롭힘말도 아니라 하는군요. 조선 무렵부터 불거진 ‘우리말을 깎아내리는 버릇’이 오늘날까지 짙게 남은 모습이로구나 싶습니다. ‘벙어리’는 따돌림말일 수 없습니다. 소리를 내지 않거나 말을 하지는 않는 사람을 가리킬 뿐인 우리말입니다. 우리말을 낮춤말로 여겨 깎아내리지 말아야 할 텐데, 아무래도 말이 태어난 밑바탕을 안 살핀 탓입니다. ‘벙어리(버워리)’는 ‘벙·버’가 뿌리이고, ‘벙긋·방긋’이며 ‘벗다’나 ‘바위·벅수’나 ‘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곁말’은 곁에 두면서 마음과 생각을 살찌우도록 징검다리가 되는 말입니다. 낱말책에는 아직 없습니다. 글을 쓰는 숲노래가 지은 낱말입니다. 곁에 어떤 낱말을 놓으면서 마음이며 생각을 빛낼 적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면서 ‘곁말’ 이야기를 단출히 적어 봅니다. 숲노래 곁말 곁말 51 집사람 어릴 적부터 듣기에 거북한 말이 꽤 많았어요. 우리 아버지가 손님 앞에서 “우리 집사람이 …….” 하고 말할 적마다 “아버지, 어머니는 집에만 있는 사람이 아닌걸요? 어머니가 집살림을 꾸리려고 집밖일을 얼마나 많이 하시는데요?” 하고 따지고픈 생각이 굴뚝같았습니다. 거북하거든요. 요새야 아이가 어버이한테 이렇게 따지기 쉽다지만, 지난날에는 아이가 ‘사내 어른’ 앞에서 대꾸를 하거나 먼저 말하면 호되게 얻어맞고 꾸중을 들었습니다. 한또래로 자라는 마을순이도 밖이며 골목이며 배움터에서는 신나게 재잘재잘하지만 다들 집에만 가면 벙어리로 바뀌어요. 동무네에 놀러갔다가 “야, 너 이렇게 얌전한 아이였어? 집에서 말을 한 마디도 안 하네?” 했더니 옆구리를 힘껏 찌르더군요. 우두머리가 서며 사람들을 사슬에 가둘 적에는 입을 가리고 목을 죕니다. 우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92] 커피포트 있어요? 쓰레기터에 비닐을 따로 담는 자리가 없다. 규격 봉투에 담아 버려야 한다니 다시 꺼내 담았다. 가구와 가전만 남기고 짐을 다 들어냈다. 음식쓰레기를 버리려는데 열쇠를 안 갖고 왔다. 비밀번호도 몰라 우리 딸이 갖고 오는 동안 경비 아저씨는 우리가 내놓은 짐을 치우면서 “커피포트는 없어요?” 하고 묻는다. “버렸는데요?” 저쪽 한자리에 있는지 아저씨와 찾았다. 집에 둔 듯했다. “그럼 전자렌지 같은 거는 없나요?” “있어요. 집에 있는데 내일 짐차가 와서 싣고 가는데 갖고 가세요. 말짱한데 안 닦아서 지저분해요.” 지저분해도 좋다고 아저씨가 집까지 따라왔다. 컴퓨터와 같이 버리려고 그 방에 둔 커피포트를 건네주고 전자렌지도 꺼냈다. 내놓은 그릇을 아까는 어디에 따로 비닐에 담아서 버리라고 하더니, 어쩐지 상자에 담아 버리라고 한다. 나는 그냥 버려도 되는지 되물었다. 그릇을 찾다 보니 비누가 잔뜩 있다. “아저씨, 비누 쓰실래요?” “우리야 주면 좋죠.” 깨끗한 행주도 쓰신대서 따로 담았다. 얼음가방도 쓰신대서 거저 주었다. 내가 갖고 오려고 따로 챙겨 놓은 전기레인지도 드렸다. 하나도 버릴 것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91] 돌려주기 알림소리에 깼다. 밖에서 물소리가 난다. “어제 몇 시에 왔어요?” “집에 오니 두 시쯤 되었더라.” “많이 안 늦었네. 가서 문 열려고요?” “내가 문 열어야지. 니도 어제 힘들었잖아.” “그럼 나 몇 시에 나갈까?” “나오기는 뭐. 어제 일찍 간다고 애들이 뭘 좀 싸주더라. 명이나물도 한 상자 주데.” 보따리를 풀었다. 방울토마토랑 메밀부침이랑 문어가 담겼다. “와 문어 엄청나게 크네. 근데 나 팔이 아파 못 썰어요.” 하고 부침을 데운다. 어제 짝이 멀리 가서 저녁에 내가 가게에 나갔다. 책을 읽으려고 하지만 가만히 앉을 짬이 없다. 바닥에 놓인 상자를 자르고 비워서 자리를 넓힌다. 삐뚤삐뚤 놓이고 넘어진 물건을 세우다 날짜를 보았다. 깜짝 놀랐다. 팔림날(유통기한)이 지났다. 하나씩 들고 본다. 글씨가 너무 작아 날짜가 안 보인다. 사진을 찍어 크게 보고 찾다가 학생을 불러 같이 본다. 아래도 옆도 뒤쪽도 앞쪽도 빼고 나니 쑥 준다. ㅇ과 ㄷ는 담당은 키가 크다. 높고 깊은 자리 물건을 잘 봐달라고 올 적마다 말해도 잔뜩 나온다. ㅇ은 밑에 일꾼이 자주 바뀌고 새로 온 사람도 묵은 걸 빼지 않고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90] 명이나물 길바닥 틈으로 질경이가 뿌리를 내렸다. 사람이 드나드는 문 앞이라 뽑으려다 멈춘다. 한때는 틈마다 난 풀을 뽑았다. 이제는 비좁은 틈에 살아난 풀이 멋스럽다. 만날 적마다 내 눈을 빤히 쳐다보고 “나 뽑지 마요.”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래, 걱정 말아, 뽑지 않을게.” 마음으로 말한다. 풀이 설 땅이 사람길이 되니 함께 누리기로 한다. 내가 본 질경이잎하고 명이나물이 닮았다. 질경이풀은 이름처럼 힘줄이 돋아 질겨 보이고 명이나물잎은 좁고 길다. 지난달 울릉도 명이나물지를 한 통 사왔다. 한끼 먹다가 다음날시골집에 갈 적에 부지깽이지하고 갖고 갔다. 지를 담아도 나물이 질겨서 남을 줄 알았는데 맛있다면서 다 드신다. 마침 어제 짝이 모임에서 한 상자 받았다. 명이나물지는 먹어 보았으나 날나물을 처음 보았다. 처음으로 명이나물지를 담는다. 양파를 하나 썰고 무말랭이 한 줌에 파뿌리를 깨끗하게 씻고 제사 쓰고 둔 황태포를 잘라서 주머니에 담았다. 물 여덟 컵을 붓고 끓이고 불을 끄고 주머니를 꺼냈다. 끓인 물에 진간장 네 컵 국간장 한 컵 설탕 한 컵 매실청 두 컵을 넣고 팔팔 끓였다. 불을 끄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우리말꽃 말꽃삶 10 고운말 미운말 말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느냐고 묻거나 궁금한 이웃님이 많기에 으레 네 가지로 간추리곤 합니다. 좋거나 나쁘거나 곱거나 미운 말이란 없이 그저 ‘말’만 있을 뿐이며, 이 말이란 ‘마음’에 담는 ‘소리빛’이니, 그저 ‘말·마음·소리빛’만 바라보고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고 여쭙니다. ‘좋은말’을 쓰려고 하면 배앓이를 합니다. ‘고운말’을 쓰려고 하면 속앓이를 합니다. ‘나쁜말’을 안 쓰려고 하면 마음이 뒤틀리고, ‘미운말’을 안 쓰려고 하면 마음이 죽어버립니다. 말을 바라보는 네 가지 길을 적어 보았습니다. 이 네 가지 길을 듣고서 “그러면 어떤 말을 써야 하나요?” 하고 물을 만할 테지요. 이때에 다음처럼 들려줍니다. “오직 ‘내가 나를 사랑할 말’을 스스로 생각하고 찾아서, 노래를 부르듯이 즐겁게 쓰면 넉넉합니다.” ‘내가 나를 사랑할 말’을 얼른 찾아내려고 애쓰지는 마요. 애쓰면 애쓸수록 ‘내가 나를 사랑할 말’을 못 찾게 마련이에요. 그저 참나(참다운 나)를 고요히 바라보거나 마주하는 하루를 그리면서 느긋이 살림살이를 가꾸면 되어요. 밥을 하고, 집을 돌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