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살구 글님 ] 초리야. 한가위는 잘 보냈니? 울산은 큰바람이 지나갔다는데 괜찮아? 더구나 넌 나랏일꾼이라 큰 하늘땅일이 있을 때마다 밤새워 일한다고 했잖아. 그래서 이 디위에는 어떻게 지나갔나 싶어 걱정이 좀 됐어. 그렇지만 우린 서로 아무 새뜸 없는 게 좋은 새뜸이라 여기니 너한테 굳이 손말틀을 걸거나 하진 않았어. 이런 내 마음을 너라면 잘 알 거라 생각해. 이곳 푸른누리는 벌써 방바닥을 뜨끈하게 하고 산단다. 난 올해 한달에 이곳에 온 뒤로 '여기에 여름이 오긴 올까?'라고 늘 궁금했어. 날씨가 추워서 여섯달까지 겨울바지를 입고 살았다니까. 그러더니 갑자기 엄청나게 더워지더라. 여름이 오긴 오더라고. 그런데 여덟달이 끝나가면서 다시 밤낮으로 쌀쌀해지기 비롯했어. 장마가 끝나자마자 가을이 찾아온 느낌이었지. 푸른 잎으로 가득한 줄만 알았던 밤나무에도 어느덧 밤송이가 달리더니 금새 알이 굵어지지 뭐야. 알이 굵어지나 싶었는데 어느새 밤송이가 터지고 알밤이 두두둑 떨어지네. 아... 가을! 가을이 왔어. 난 콧구멍이 벌렁거릴 만큼 가을을 좋아해. 근데 푸른누리에 있으니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좋아지네. 이렇게 된 바에 난 모든 철을 다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책읽기 푸른책읽기 27 《시골 육아》 김선연 봄름 2022.6.24. 《시골 육아》(김선연, 봄름, 2022)를 읽었습니다. 서울에서 아이를 낳아 돌보는 하루는 ‘살림길’로 서기 어렵고 힘들며 지치기까지 하는 줄 느낀 어머니가 하루를 되새기면서 적바림한 이야기가 흐릅니다. 다만 ‘서울을 벗어나 상주에 깃들기’는 하되, 언제까지 시골에 머무를는지는 알 수 없겠구나 싶어요. 시골에 뿌리를 내리려는 삶길보다는 ‘서울을 떠나 시골에 자리를 얻기는 했으나, 이대로 살아도 되나?’ 하는 걱정이 짙어 보이거든요. 시골에서 아이를 낳아 살아가는 하루를 고스란히 글이나 책으로 옮긴 이웃님이 이따금 있으나, 참말로 시골을 시골로 바라보거나 받아들이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풀벌레가 노래하는 곁에서 아기를 업거나 안으면서 자장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면, 멧새가 노래하는 곁에서 사뿐사뿐 걷거나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면, 제비가 춤추는 곁에서 기저귀를 빨아서 마당에 널지 않는다면, 참말로 시골살이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국립국어원이 엮은 낱말책은 ‘시골’을 “도시에서 떨어져 있는 지역. 주로 도시보다 인구수가 적고 인공적인 개발이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책읽기 푸른책읽기 26 《애국가 논쟁의 기록과 진실》 임진택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20.11.10. 《애국가 논쟁의 기록과 진실》(임진택,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20)을 읽기 앞서까지 ‘애국가’란 이름인 노래를 돌아본 적은 없습니다. 노랫말에 담은 뜻은 훌륭하더라도 어린이가 알기 어려운 한자말이 많다고 느끼기는 했습니다. 어린배움터(국민학교)를 다니던 1982∼87년에는 날마다 이 노래를 불러야 해서 지긋지긋할 뿐 아니라, ‘노랫말이 뭔 소리래?’ 하면서 골이 아팠어요. 국민교육헌장하고 애국가를 날이면 날마다 외우도록 시켜서 못 외우면 두들겨맞아야 했거든요. 어린배움터를 마치는 1988년 2월 어느 날 “이제 더는 날마다 외우기를 시키지는 않을 테니 한숨 돌리겠네.” 하고 혼잣말을 내뱉았어요. 이 혼잣말이 좀 컸는지, 길잡이(담임교사)가 들었고, 길잡이한테 또 얻어맞는구나 싶었지요. 그런데 길잡이는 “며칠 뒤면 졸업이니 오늘은 봐주지. 중학교에서는 외우라 시키지는 않을 테지만, 입시지옥이 너희를 기다린단다.” 하며 이죽거렸습니다. 우리는 평양에서 태어난 ‘안익태’로 여기지만, 이녁은 ‘에키타이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에서 짓는 글살림”은 숲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시골자락에서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길에 새롭게 맞아들여 누리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숲에서 짓는 글살림 30. 못 알아듣겠소만 ㅇ이라는 새뜸(매체)에서 제 빛그림(사진)을 몰래 가져다가 쓰면서 마치 ㅇ이라는 곳에서 찍어서 실은 듯이, 저희(ㅇ) 것인 듯 다룬 적 있습니다. 자, 저는 두 가지 말을 썼어요. ㅇ이라는 곳에서 “몰래 가져다가 썼다”는 말이랑 “저희 것인 듯이 다뤘다”고 했습니다. 이를 나라에서는 “저작권 침해” 또는 “무단 도용”이라 하고, “성명표시권 위반”이라 합니다. 앞엣말은 우리 집 아이들한테도 들려줄 수 있으나, 뒤엣말은 아이들이 못 알아들어요. 더구나 뒤엣말은 곁님도 못 알아듣습니다. 제 빛그림을 몰래쓴 곳은 저한테 “잘못했습니다” 하고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사과’를 하지 않았어요. 이때에도 두 갈래 말이 있어요. 아이들은 ‘사과’라는 한자말을 못 알아듣게 마련입니다. 어른들이 으레 쓰니 그냥 따라서 쓸는지 몰라도 말뜻은 제대로 모르지요. 생각해 봐요. 아이들한테 ‘사과’란 ‘능금’이란 열매입니다. ‘능금’을 가리키는 ‘사과’도 한자말이지만, 먹는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곁말’은 곁에 두면서 마음과 생각을 살찌우도록 징검다리가 되는 말입니다. 낱말책에는 아직 없습니다. 글을 쓰는 숲노래가 지은 낱말입니다. 곁에 어떤 낱말을 놓으면서 마음이며 생각을 빛낼 적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면서 ‘곁말’ 이야기를 단출히 적어 봅니다. 숲노래 말빛 곁말 30 헤엄이 마흔 살이 넘도록 헤엄을 못 쳤습니다. 물하고 도무지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마흔너덧 무렵에 비로소 헤엄질이 무엇인가 하고 느꼈어요. 헤엄질이 된 까닭은 딱 하나예요. 남들처럼 물낯에서 물살을 가르지 못해도 된다고, 나는 물바닥 가까이로 가라앉아서 천천히 물살을 갈라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물속으로 몸을 가라앉혀서 숨을 모두 내뱉고서 가만히 움직여 보았는데, 뜻밖에 이 놀이는 매우 잘되더군요. 몸에 힘을 다 빼니 스르르 물바닥까지 몸이 닿고, 물바닥에 고요히 엎드려서 눈을 뜨고 물이웃을 보았어요. 물이웃이란 ‘헤엄이’입니다. ‘물고기’가 아닙니다. ‘먹이’로 본다면, 물에서 헤엄치는 숨결을 ‘물고기’로 삼겠지만, 저는 물살을 시원시원 가르며 저랑 눈을 마주하는 아이들을 ‘고기’란 이름으로 가리키고 싶지 않았어요. 어떤 이름으로 가리키면 어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곁말’은 곁에 두면서 마음과 생각을 살찌우도록 징검다리가 되는 말입니다. 낱말책에는 아직 없습니다. 글을 쓰는 숲노래가 지은 낱말입니다. 곁에 어떤 낱말을 놓으면서 마음이며 생각을 빛낼 적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면서 ‘곁말’ 이야기를 단출히 적어 봅니다. 숲노래 말빛 곁말 29 무릎셈틀 볼일이 있어 바깥으로 멀리 다녀와야 할 적에 셈틀을 챙깁니다. 자리에 놓고 쓰는 셈틀은 들고다닐 수 없기에, 포개어 부피가 작은 셈틀을 등짐에 넣어요. 영어로 ‘노트북’이라 하는 셈틀을 2004년 무렵부터 썼지 싶습니다. 처음에는 영어를 그대로 썼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들고다니는 셈틀 = 노트북”처럼 수수하게 이름을 붙인 이웃나라 사람들이 대단해 보이더군요. 이름짓기란 수수하고 쉽다고, 이름이란 삶자리에서 문득 태어난다고, 스스로 즐거이 가리키고 둘레에서 재미있거나 반갑다고 여길 이름은 시나브로 떠오른다고 느꼈어요. “최종규 씨도 ‘노트북’만큼은 우리말로 이름을 못 붙이나 봐요?” 하고 묻는 분이 많았는데 빙그레 웃으면서 “음, 얼른 우리말을 지어내기보다 이 셈틀을 즐겁게 쓰다 보면 어느 날 이름 하나가 찾아오리라 생각해요.” 하고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28] 되새김질 문닫는 소리에 잠이 깼다. 한가위가 코밑이라 곁님은 시골로 떠났다. 친척 몇이 모여 무덤에 풀을 벤다. 그가 없으니깐 가게에 나가 봐야 한다. 시계를 맞추어도 일어나지 못하는데 문득 잠이 깼다. 혼자서는 어디 가지도 갈 곳도 마땅찮다는 생각이 일고, 같이 다닐 동무 하나 없다는 생각이 겹치자 잠이 확 깬다. 이대로 고히 자면 안 된다는 생각이 사로잡혀 벌떡 일어났다. 새끼손가락에 봉숭아물을 들여서 설거지를 미뤄 두었다. 그릇을 씻고 거름그물을 수세미로 씻어내고 물을 끓여 뜨거운 물을 부었다. 마른걸레를 적셔 아들이 쓰던 방을 닦고 마루도 닦고 부엌을 닦는다. 곁님이 날마다 청소기를 돌려서 바닥을 닦은 걸레가 깨끗하다. 마루하고 방을 닦을 적에는 내 마음도 닦는다. 내 나름대로 바쁘게 사느라 둘레가 들어오지 않았다. 불쑥 혼자인 듯하니 아득한 별빛 하나 없는 밤하늘에 떨어진 듯해 그저 막막하다. 지나간 일들도 잘 떠오르지 않고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보는데도 반쯤 보고서야 본 줄 알고, 머리가 확 풀어지면 시렁에 꽂아두고 읽지 못한 책을 읽어야지 싶은데, 좀처럼 안 된다. 글은 나아지지 않고, 쓰는 글은 나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27] 과일바구니 택배가 왔다. 상자가 묵직하다. 부피가 이만큼 되는데 뭘까, 칭칭 감아 잘 뜯기지 않는다. 궁금하니깐 마음이 더 부산스럽다. 칼로 돌아가며 뜯으니 얇고 까끌한 분홍보자기가 나온다. 보자기가 곱다. 풀어서 뚜껑을 여니 과일이다. 누가 보냈지? 상자에 적힌 이름을 보니 작은딸 짝꿍(남자친구)이다. 한가위에 못 오겠구나 하고 어림한다. 상자에는 메론, 배, 사과, 태주, 자몽, 레드향, 보랏빛망고, 노란망고, 용과, 키위가 들었다. 키위 하나는 납작하게 터졌다. ‘내가 일하는 가게에 다 있는 과일인데 애먼 돈 쓰네’ 하는 생각이 퍼뜩 들지만, 그래도 들뜬다. “덕이가 보냈네. 우리 가게에 과일 많은데 한가위라고 보내는가?” “오옹” “먹기 아깝다야” “웅웅 한가위이라고 보냈다고 하네. 망고 맛있겠따” “아직 야무니 니가 와서 먹어. 키위 하나는 터졌어” “조아!!!! 헐지짱” “배는 가운데 조금 썩은 거 보냈네. 장사꾼이 그렇지 뭐” “아무래도 택배여서 그런가 보다” “엄청 좋으네. 첨 받아 보아” “그래 가게 과일이랑은 또 다르니까. 맨날 안 좋은 거만 먹자나” “그러게 싱싱한 거 먹어 보네” “웅웅”…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말 좀 생각합시다’는 우리를 둘러싼 숱한 말을 가만히 보면서 어떻게 마음을 더 쓰면 한결 즐거우면서 쉽고 아름답고 재미나고 사랑스레 말빛을 살리거나 가꿀 만한가 하는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말 좀 생각합시다 26 알못 ‘알못’이란 말을 처음 듣는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나이가 제법 든 어른이라면 알처럼 생긴 못인가 하고 여길 만합니다. 그런데 ‘알처럼 생긴 못’은 살림에 박는 길고 뾰족한 것 하나에, 물이 고여 찰랑이는 곳 둘이지요. 또는 알이 있는 못물이라고 여길 수 있어요. 어느새 사람들 입에 착 달라붙은 ‘알못’은 “알지 못하는”을 간추린 낱말입니다. ‘겜알못·야알못·축알못’처럼 흔히 쓸 뿐 아니라 곳곳에 ‘-알못’을 붙여서 써요. 그동안 ‘-맹(盲)’이나 ‘-치(癡)’ 같은 한자만 붙여서 “알지 못하는” 모습을 나타냈다면, 오늘날에는 꽤 새롭게 말틀을 빚었다고 할 만합니다. 다만 ‘바보’를 붙여서 ‘야구바보’나 ‘축구바보’라 하기도 했지만, 이때에 ‘바보’는 “알지 못하는”뿐 아니라 “어느 하나에 푹 빠진”을 나타내기도 했어요. ‘야구바보’라 하면 야구만 알고 다른 것은 모른다는 느낌이지요. 그러니까 ‘알못’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이레말’은 이레에 맞추어 일곱 가지로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말에 슬기롭고 즐거우면서 곱게 담아내는 길을 밝히려고 합니다. 이레에 맞추어 다음처럼 이야기를 폅니다. 달날 - 의 . 불날 - 적 . 물날 - 한자말 . 나무날 - 영어 . 쇠날 - 사자성어 . 흙날 - 외마디 한자말 . 해날 - 겹말 레트로retro 레트로 : x retro : 복고풍의 レトロ(프랑스어retro) : 레트로, 복고(復古)풍, 복고조, 회고적(임) 한때는 한자말 ‘복고’를 쓰던 사람들이 요새는 ‘레트로’라는 프랑스말을 쓴다는데, 우리말로는 ‘다시서다·다시하다’나 ‘돌리다·돌아가다·되돌리다·되돌아가다’나 ‘되살다·되살아나다·되일어나다·되일어서다’라 하면 됩니다. ‘되풀이·또·또다시·또또’라 할 수 있는데, 때로는 ‘새·새롭다’로 나타냅니다. ‘아스라하다·지나가다’나 ‘예스럽다·옛날스럽다’를 쓸 수 있어요. ‘예·예전·옛날’이나 ‘옛멋·옛맛·옛모습·옛빛’이나 ‘오래되다·오랜·오래빛·오랜빛’으로 나타내어도 어울립니다. 요즘 레트로 바람을 타고 인터넷에서 판매되는 과자들이 그때는 문방구 좌판에 누워 → 요즘 옛바람을 타고 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