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에서 짓는 글살림”은 숲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시골자락에서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길에 새롭게 맞아들여 누리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숲노래 우리말꽃 숲에서 짓는 글살림 47. 셈꽃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배움책(교과서)을 보면 ‘算數’처럼 한자로 적습니다. 우리는 이 이름을 꽤 오래 썼고, 요새는 ‘수학(數學)’으로 쓰지요. 총칼수렁(일제강점기)이 끝난 뒤에 지긋지긋한 일본말 굴레에서 벗어난 만큼, 배움책을 새로 엮을 적에 끔찍한 일본 한자말을 걷어내자는 물결이 일었습니다. 이즈음 ‘셈본’이란 이름으로 교과서가 나왔어요. 이러다가 남북이 갈려서 싸움수렁이 불거졌고, 남녘에 군사독재가 서슬이 퍼렇게 으르렁대면서 ‘셈본’이란 이름은 짓눌려 사라져야 했고, ‘수학·산수’ 두 가지 이름만 나돌았습니다. ‘셈’이란 무엇일까요? ‘세다’는 어떤 결을 나타낼까요? 적잖은 분은 ‘셈’은 얕거나 낮은 낱말이요, ‘수학’이나 ‘계산’ 같은 일본 한자말을 써야 제대로 배우거나 가르칠 만하다고 여깁니다. 참말로 그럴까요? 우리는 ‘셈’이라는 낱말을 아직 모르거나 찬찬히 생각한 적이 없지는 않을까요? 셈(셈하다·셈나다) ← 계산, 산(算), 산수(算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우리말 / 숲노래 말넋 말꽃삶 20 집옷밥 밥옷집 옷밥집 저는 어른이란 몸을 입은 오늘날에도 ‘의’를 소리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동안 생각하고 가다듬고서야 비로소 ‘의’를 소리냅니다. 혀짤배기에 말더듬이란 몸으로 태어나고 자란 터라, 어릴 적에는 더더욱 고단했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요새는 둘레에서 이모저모 ‘입 속에서 혀랑 이를 어떻게 놀리면 되는가’를 밝히거나 알려주는 이웃을 쉽게 만날 만하고, 지난날에는 ‘‘의’를 비롯한 여러 소리를 어떻게 내면 되는가’를 차근차근 보여주거나 알려준 이웃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을식주 으식주 ‘을식주’는 무엇이고 ‘으식주’는 뭘까요? 제가 어린배움터(국민학교)를 다니던 1982∼87년 무렵에는 날마다 시키고 때리는 길잡이(교사)가 많았습니다. ‘시험’이란 이름이 붙은 일도 끝이 없었는데, ‘중간시험·기말시험’뿐 아니라 ‘월말시험·쪽지시험’이 꼬박꼬박 뒤따랐어요. 어느 갈래 어느 시험인지는 어렴풋하지만, ‘의식주’로 풀이(답)를 적어야 하는 일(문제)이 있었고, 적잖은 또래는 ‘을식주·으식주’처럼 틀린 풀이를 적었습니다. 예전 배움터에서는, 이처럼 틀린 풀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우리말 말꽃삶 19 탈가부장, 갇힌 말을 깨우다 조선이란 이름을 쓰던 나라는 500해에 걸쳐서 ‘중국 섬기기’를 했고, 이 나라 사람을 위아래로 갈랐습니다. 중국을 섬기던 조선 나리하고 벼슬꾼은 집안일을 순이한테 도맡기고, 나라일은 돌이만 도맡는 틀을 단단히 세웠지요. 곰팡틀(가부장제)을 일삼았습니다. 나리·벼슬꾼이 나아가는 곰팡틀은 한문만 글이었습니다. 세종 임금이 여민 ‘훈민정음’은 ‘중국말을 읽고 새기는 소릿값’으로 삼는 데에 그쳤어요. 오늘날 우리가 안 쓰는 ‘훈민정음’이 제법 있습니다. 우리 소릿값이 아닌 중국 소릿값을 담아내는 틀이었기에, 굳이 살릴 까닭이 없어서 하나씩 사라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여느사람(백성·평민)은 글(한문)을 못 배우도록 틀어막았습니다. 조선이란 나라가 아닌, 고구려·백제·신라·발해·가야·부여에서도 나리하고 벼슬꾼은 집안일을 안 했을 테지만, 곰팡틀까지 일삼지는 않았어요. 이 곰팡틀은 이웃나라 일본이 총칼로 쳐들어오며 외려 더 단단하였고, 일본이 물러간 뒤에도 서슬퍼런 총칼나라(군사독재)가 잇는 바람에 곰팡틀을 걷어낼 틈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곰팡틀을 이제 겨우 걷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다듬읽기 26 《내게도 돌아갈 곳이 생겼다》 노나리 책나물 2021.8.31. 《내게도 돌아갈 곳이 생겼다》(노나리, 책나물, 2021)는 경북 울진이라는 마을을 새록새록 돌아보는 발걸음을 보여주려 합니다. 울진을 ‘울진사람’ 눈길이 아닌 ‘이웃사람’ 눈길로 보고 느끼고 헤아리는 줄거리인데, 조금 더 느슨하고 느긋하고 느리게 맞이하고 녹이고 품으면 퍽 달랐을 텐데 싶더군요. ‘한 해’ 동안 누린 발걸음으로도 얼마든지 글을 여밀 만하고, 엄마아빠랑 할머니가 발붙이는 터를 되새기는 마음으로도 글을 쓸 만합니다만, 서울(도시)뿐 아니라 시골도 ‘한해살이’로는 겉훑기로 그치게 마련입니다. 네철을 바라보았다는 대목은 대견하되, ‘네철을 네 해쯤’ 마주해 보아야 비로소 철빛 언저리를 건드릴 만하고, ‘네철을 네 해씩’ 네 판을, 그러니까 ‘열여섯 해’를 녹여낸다면 누구나 눈뜰 만한데, 적어도 ‘열 해(들숲이 바뀌는 길)’를 들여다보아야 고을맛도 마을빛도 하나하나 노래할 만하다고 봅니다. 서두르는 글은 으레 섣부릅니다. 그렇습니다. 그뿐입니다. ㅅㄴㄹ 그렇게 막무가내로 울진 여행을 시작했다 → 그렇게 무턱대로 울진 나들이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다듬읽기 25 《아이에게 배우는 아빠》 이재철 홍성사 1995.8.5.첫/2021.1.26.고침2판) 《아이에게 배우는 아빠》(이재철, 홍성사, 2021)는 아버지란 자리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줄거리를 풀어냅니다만, 곰곰이 읽자니 ‘아이돌봄’은 짝꿍인 어머니가 도맡아서 했군요. 이따금 아버지로서 아이를 지켜본 삶을 글로 옮기는 분이 있습니다만, 아직 웬만한 책은 ‘돌봄글(육아일기)’이 아닌 ‘구경글(관찰일기)’에 머뭅니다. 바쁜 틈을 쪼개어 한동안 조금 놀아 주었기에 어버이나 아버지일 수 없어요. 이러다 보니 ‘아이한테서 배우는’ 길을 제대로 못 누립니다. 누구‘한테서’ 배운다고 하지요. ‘한테(에게) 배우는’이 아닙니다. ‘한테서’ 배웁니다. 아무것도 아닌 말씨 하나로 여긴다면, 그만큼 더더욱 아이 곁에 서지 못 한다는 뜻이요, 아주 작은 말씨 하나부터 추스르려는 마음이라면, 스스로 무엇을 복판에 놓고서 아이 곁에서 보금자리를 일굴 적에 비로소 ‘아버지’라든지 ‘어머니’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지 알아보겠지요. 놀이터(유원지)에 가야 놀이일 수 없습니다. ㅅㄴㄹ 하나님께서 제게 첫 아들을 주신 것은, 제가 우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말 좀 생각합시다’는 우리를 둘러싼 숱한 말을 가만히 보면서 어떻게 마음을 더 쓰면 한결 즐거우면서 쉽고 아름답고 재미나고 사랑스레 말빛을 살리거나 가꿀 만한가 하는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말 좀 생각합시다 45 나가는곳 일본 쇳길(전철)에는 언제부터 한글을 나란히 적었을까요? 일본 쇳길에 적힌 한글이 익숙한 분은 예전부터 그러려니 여길 수 있고, 퍽 오랜만이나 처음으로 일본마실을 한 분이라면 새삼스럽다고 여길 수 있어요. 모든 나루에 한글이 적히지는 않습니다만, 큰나루는 어김없이 한글을 적습니다. 나루이름을 한글로 적고, ‘나가는곳’이라는 글씨를 함께 적더군요.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나루에 ‘나가는곳·들어오는곳’을 적습니다. 곁들여 한자로 ‘出口·入口’를 적지요.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말이요, 무엇이 일본말일까요? 바로 ‘나가는곳·들어오는곳’이 우리말이요, ‘出口·入口’가 일본말입니다. ‘出口·入口’를 한글로 옮긴 ‘출구·입구’는 우리말일까요? 아닙니다. 일본 한자말을 한글로 옮겼을 뿐입니다. 국립국어원 낱말책을 보면 ‘출구(出口)’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 ‘나가는 곳’, ‘날목’으로 순화”로 풀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다듬읽기 24 《인생이 내추럴해지는 방법》 신이현 더숲 2022.5.27. 《인생이 내추럴해지는 방법》(신이현, 더숲, 2022)을 읽었습니다. 이제는 책이름에까지 ‘내추럴’을 넣고, ‘-해지는’이라는 옮김말씨를 붙이기도 하는군요. 우리말로 옮기자면 “푸르게 사는 길”이나 “풀빛으로 사는 오늘”이나 “삶을 풀빛으로 가꾸는 길”이나 “삶을 푸르게 가꾸는 하루”쯤 될 테지요. 곰곰이 보면 ‘생태·환경’을 지나 ‘자연·그린’에 ‘내추럴’을 말하는 분들은 우리말 ‘푸르다’를 참 싫어합니다. ‘푸르다 = 풀’이요, ‘풀 = 풀빛 = 풀다’요, ‘품다’에 ‘푸지다·푸근하다’ 같은 낱말이 한뿌리로 잇는 줄 하나도 안 바라보는 탓이지 싶습니다. 풀은, 푸른별을 푸르게 덮으면서 모든 빛을 풀어내고 품으면서 푸근하게 받아들입니다. 푸른들을 푸른 줄 느끼거나 헤아리지 못 할 적에는 우리 숨결이 파란하늘을 파랗게 담으면서 하늘빛으로 젖어드는 줄 알아차리지 못 하겠지요. 말 한 마디를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삶은 저절로 바뀌게 마련입니다. ㅅㄴㄹ 대구의 한 학교에 막무가내로 밀어넣었다 → 대구 어느 배움터에 밀어넣었다 → 대구 어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다듬읽기 23 《강만길의 내 인생의 역사 공부》 강만길 창비 2016.7.15. 《강만길의 내 인생의 역사 공부》(강만길, 창비, 2016)를 읽었습니다. 강만길 님도 일본 한자말을 꽤 쓰지만, 다른 글바치에 대면 아무렇게나 쓰지는 않습니다. ‘훈민정음·한글’이 얽힌 뿌리를 살피기도 한 분이기에 어느 만큼 쉽게 풀어서 쓰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다만,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대목까지 엿보기는 어렵습니다. ‘발자취’를 다루는 ‘길’이기에 옛길을 살피며 오늘길하고 앞길을 돌아보게 마련인데, ‘발걸음’을 ‘새길’로 내딛으려면 ‘말길·글길’도 ‘새말·새빛’으로 나아가도록 가다듬을 적에 한결 밝으면서 숨길을 열 만합니다. ‘앞으로 태어나서 자랄 어린이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씨’로 우리 삶길이며 살림살이를 짚고 다룰 수 있다면, 우리 앞날은 틀림없이 다를 만하리라 봅니다. 일본말씨하고 일본 한자말을 걷어내는 손길 하나도, 조그맣게 거듭나면서 피어나려고 하는 몸짓입니다. 글도 책도 모르던 수수한 사람들 이야기가 쉬운 말씨에 깃들었거든요. ㅅㄴㄹ 살아온 세상을 되돌아보는 자서전 같은 것을 내어놓은 지 → 살아온 나날을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ㄱ. 풀칠 검사 통과 합격 풀칠(-漆) : 1. 종이 따위를 붙이려고 무엇에 풀을 바르는 일 2. 겨우 끼니를 이어 가는 일 ≒ 풀질 검사(檢査) : 사실이나 일의 상태 또는 물질의 구성 성분 따위를 조사하여 옳고 그름과 낫고 못함을 판단하는 일 통과(通過) : 1. 어떤 곳이나 때를 거쳐서 지나감 2. 멈추었다가 가도록 예정된 곳을 그냥 지나침 3. 검사, 시험, 심의 따위에서 해당 기준이나 조건에 맞아 인정되거나 합격함 4. 제출된 의안이나 청원 따위가 담당 기관이나 회의에서 승인되거나 가결됨 5. 장애물이나 난관 따위를 뚫고 지나감 합격(合格) : 1. 시험, 검사, 심사 따위에서 일정한 조건을 갖추어 어떠한 자격이나 지위 따위를 얻음 2. 어떤 조건이나 격식에 맞음 우리말을 담는 그릇인 한글입니다. 한글은 무슨 소리이든 담습니다. 새나 개구리가 들려주는 노래도, 바람하고 바다가 베푸는 노래도 담고, 이웃나라 말도 담습니다. 한글로 적어 놓기에 우리말이지 않습니다. 우리 삶을 우리 스스로 살펴서 우리 숨결을 담아서 여밀 적에 우리말입니다. 보기글처럼 ‘풀칠 + 검사 + 통과 + 합격’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ㄱ. 펼쳐지고 푸르러지고 우리는 ‘-지다’를 잘 안 씁니다. ‘사라지다·없어지다’나 ‘누그러지다·미어지다’처럼 쓰기도 하지만, 이 보기글처럼 ‘펼쳐지다’나 ‘푸르러지고’처럼 쓰지는 않아요. 우리말씨는 워낙 이렇습니다. 그래서 “휜 허리는 곧고”나 “흰 머리카락은 푸르고”로 손질합니다. 때로는 ‘휜’이나 ‘흰’을 아예 덜어냅니다. 이 보기글은 말놀이처럼 ‘휜·흰’을 넣었구나 싶습니다만, 말씨를 망가뜨리는 얼거리라면 말놀이가 아닌 말장난이나 말치레입니다. “이제 허리는 펴고”로 앞자락을 열고서, “어느새 머리카락은 푸르고”처럼 뒷자락을 이을 수 있어요. 앞에만 ‘이제’를 넣어도 어울립니다. ㅅㄴㄹ 휜 허리는 곧게 펼쳐지고, 흰 머리카락은 푸르러지고 → 휜 허리는 곧고, 흰 머리카락은 푸르고 → 이제 허리는 펴고, 머리카락은 푸르고 《노래는 최선을 다해 곡선이다》(함민복, 문학동네, 2019) 20쪽 ㄴ. 사소한 낱말들 실은 지탱 -들의 ㅁ 확인 사소하다(些少-) : 보잘것없이 작거나 적다 실은(實-) : 실제로는. 또는 사실대로 말하자면 지탱(支撑) : 오래 버티거나 배겨 냄 ≒ 탱지 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