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1 엄마집에 갔다 《티베트의 지혜》 쇼걀 린포체 글 오진탁 옮김 믿음사 1999.2.1. 《티베트의 지혜》을 2010.7.11. 장만하고 이날은 ‘꿈속의 고향(드보르작)’이란 노래를 들었다. 이 책을 처음 편 날 엄마집에 갔다. 경북 의성 시골에 내도록 살아가는 우리 엄마는, 이날 비가 와서 들일을 못 가고 물리치료를 하러 병원에 갔는데, 마침 병원이 쉬는 날이라 헛걸음하고 버스삯만 날렸다고 투덜거렸다. 이날 할아버지가 마늘 묶는 곁에서 재밌게 보던 막내는, 할아버지 손놀림이 재밌다면서 굵은마늘 작은마늘을 고르면서 놀았다. 개구쟁이처럼 잘 노는 막내한테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막내만 하던 어린 날, 할머니 할아버지 몰래 마늘하고 얼음과자를 바꿔 먹으면서 놀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러고서 두 해 뒤인 2012년에 대구로 집을 옮겼는데, 그때 이 책 하나를 챙겼다. 어느덧 열세 해가 지나서 다시 펼친다. 삶과 죽음과 되살림(환생)을 다루는 줄거리를 돌아본다. 태어나서 터트리는 울음은 어떤 뜻일까. 그런데 어쩐지 뭔가 뒤섞인 듯한 얼거리이다. 삶이라는 너른길과는 달리, 붓다에, 달라이 라마에, 린포체에, 밀라레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104] 큰나무집 감나무집 작은딸이랑 새사람이 함께 살림을 차려 인천에서 산 뒤로, 대구에 첫나들이를 했다. 작은딸네하고 맛집에 가고 싶어 ‘큰나무집’이란 데를 가려고 한다. 그런데 차를 몰아 다 왔구나 싶은데 더 들어가라고 알린다. 담벼락 따라 모퉁이로 꺾는다. 아직 열두 시가 되려면 멀었으나 줄이 길다. 어제 미리 자리를 잡았다고 말하는데, 우리 이름은 예약에 없단다. 왜 그런가 하고 갸우뚱하다가, ‘큰나무집’이 아닌 ‘감나무집’이란 데에 자리를 잡았다고 떠오른다. 밥집 이름을 잘못 알고서 다른 곳에 자리를 잡았구나. 어떡해야 하나 헤매다가 ‘감나무집’에는 자리를 잡았으니 그리 가면 되리라 생각한다. 다시 차를 몰아 감나무집으로 간다. 감나무집도 큰나무집 못잖게 붐빈다. 그래도 용케 자리를 찾아서 앉는다. 이곳 감나무집은 골짜기 안쪽으로 한참 들어온 큰 밥집이다. 비가 많이 온 터라 물소리가 힘차다. 물소리를 들으면서 먹으면 좋을까 싶은데, 작은딸은 방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방으로 오니 바닥이 지저분하고 발바닥에 온갖 찌꺼기가 달라붙는다. 드나드는 손님이 꽤 많은데 이곳은 안 치우고 손님받이만 하나. 그렇지만 내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대마도 나들이 - 첫 도장 내가 들어설 때이다. 짐을 바구니에 담는다. 짐은 짐칸에서 살피고 나는 빈 몸으로 훑고서 배를 탄다. 바다가 푸르다가 새파랗다가 시퍼렇다. 한 시간 반을 배를 타고 일본에 닿는다. 아까 여권과 입국허가증을 내면서 이런 말을 했다. “처음이에요. 맨앞에 찍어 주세요.” 이때 아가씨가 웃었다. 내 얼굴을 보고 이제 두 검지를 올려 손그림(지문)을 찍는다. 상륙허가, 연월일, 체류기한, 체류자격, 체류기간이 적힌 종이를 붙인다. 짐을 챙기고 여권을 가방에 넣었다. 일본 버스에 타자마자 여권을 꺼냈다. 도장을 어디 찍었을까. 궁금했다. 근데 첫 장이 아닌 두 장 넘긴 곳에 붙였다. 따로 맨앞에 찍어 달라고 얘기까지 했는데 왜 껑충 뛰어 붙일까. “차근차근 찍어 주면 보기 좋을 텐데!” 하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여권을 덮다가 생각한다. 맨앞이 아닌 ‘6’이라 적힌 쪽이면 내가 마실을 온 달이 6월이라서 6에 찍었을까? 그래서 껑충 뛰었나? 아니지, 마지막이 57인데 13부터는 다르잖아. 무슨 뜻이지? 왜 첫 칸을 안 채울까? 배가 대마도에 닿는다. 밖에 나와서 여권을 펼친다. 상륙허가 입국 종이를 반 걸쳐 하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102] 궁둥걸상 새벽 네 시이다. 캄캄하던 밤하늘이 조금씩 밝는다. 숲은 아직 까맣고 하늘이 파랗다. 달리면서 해돋이를 보려나 기다리는 사이 풍산 읍내를 지난다. 구름이 하늘을 뒤덮는다. 들녘으로 들어오니 한뼘 자란 모가 푸릇푸릇하게 땅을 환하게 밝히고 흐린 구름은 파릇파릇 밝아온다. 한 시간 반 달리는 동안 날이 새는 가장 어두운 얼굴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시골집에 닿으니 햇살이 구름을 겨우 벌리고 눈썹만큼 나왔다. 일하기 좋은 아침이다. 앵두가 빨갛게 익었다. 자잘한 장미꽃이 나무처럼 우거졌다. 아, 매실나무를 타고 뻗어 나무가 말랐다. 한 그루 장미나무처럼 덩굴졌다. 장독대 옆 감나무 밑 꽃잎이 셋 달린 보랏빛꽃이 피었다. 담 같은 대나무 줄기가 마당으로 뻗었다. 뽑느라 애를 먹으며 꽃밭을 꾸려 놓았다. 애써 가꾼 꽃밭이 사라지는 줄 알았더니 지난해 누가 심은 꽃이 올해 다시 살아났다. 이제 뒷밭에 간다. 토마토가 열리고 노란 꽃이 피고 진다. 멧딸기 한 그루도 찔레 덩굴 같다. 바알갛게 영글어 가는 멧딸기로 가지가 축축 늘어졌다. 멧딸기꽃이 매화 닮았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언덕 터이다. 지붕을 보며 숨 크게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딸한테 24 ㅡ봄비 매화꽃 울더니 꽃내 떨어진다. 이맘이면 맡는 이름만 불러도 코앞에 달려오는 바람 불어 춥지만 비처럼 홑옷 가는 하얗게 발갛게 어우러진 봄빛. 어느새 퍼붓는다. 바람이 뒤흔든다. 한바탕 함박비 지나고 바닥에 하얗게 한바탕 꽃얼룩 진다. 2023.06.13. 숲하루 #딸한테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101] 이랑 삐대기 맨밥을 세 사람 먹을 만큼 그릇에 담아 한 김을 빼고 얼음자루에 담았다. 오늘은 집안사람 다섯이 숲을 오른다. 나는 밥을 맡았고, 같이 가지는 않는다. 같이 안 가면 홀가분해야 할 텐데,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는지 몰라 헤맨다. 혼자 가고 싶은 곳이 없었는데 문득 엄마한테 간다. 엄마가 밭매기를 한다니, 고랑 하나나 이랑 둘은 거들 듯하다. 햇볕은 바지런하다. 벼랑 그물에 장미꽃이 활짝 피었다. 길가에는 노란 금계국꽃이 한창이다. 못둑을 걸어 본다. 보랏빛 꽃이 수북하다. 칡덩굴이 휘감은 곁을 걷는데 못둑 풀더미로 뭐가 휙 지나간다. 송아지 빛깔 같은 고라니가 나를 보았는지 몸을 숨긴다. 숨어도 쫑긋한 귀가 보인다. 새싹을 먹으러 내려왔거나 도랑에 물을 먹으러 나왔을까. 밤에는 어디에서 지낼까. 아카시나무 둑 위로는 찻길이다. 고라니는 노란 털빛이라서 풀덤불에 숨어도 눈에 띈다. 얼마 앞서는 땅미에서 보고 오늘은 못둑에서 만나네. 금계국 둘레로 찔레꽃이 바람에 춤춘다. 토끼풀도 키재기하고 함박꽃도 흐드러진다. 진갓골 길가에서 숲으로 걸어간다. 두 이레 앞서 심은 파가 일어나고 들깨 싹이 올라왔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100] 밑바닥 며칠째 일꾼찾기 글을 올린다. 학생 일꾼이 나가려고 한대서 여러 곳에 띄운다. 일꾼찾기를 올리면 어느 때는 사람이 몰리기도 하는데, 요 며칠은 잘 안 모인다. 몇 사람을 살피는데, 막상 일하겠다고 오려는 사람은 집이 멀다. 밤늦게 일을 마치고 막차를 타면 된다고 하지만, 여름 지나고 겨울이 오면 힘들 텐데 싶어, 오래 일을 하지 못하고 그만둘까 싶어, 하마 시름시름 한다. “근데 학생 일꾼은 왜 벌써 그만둔대요?” “응, 군대 가서 죽을까 봐 덜덜 떨더라.” “군대? 아, 군대가 두렵구나” “그래서, ‘니 군대 가서 죽을라 해 봐라. 죽는가? 절대 안 죽는다. 니 죽을까 봐 길에는 어떻게 걸어다니노?’ 하고 말해 보는데 안 돼.”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학생은 학교도 그만 다닌다고 한다. 죽을까 봐 밖에도 잘 안 돌아다닌다고 한다. ‘지구가 곧 망하는데 일 안 해도 된다’고 믿는 아이다. 대학생이라면 꿈이 있을 텐데 하루 벌어 하루 살려고 한다. 어쩌다 꿈조차 꾸지 않는지 가만히 보니 어버이 삶이 바닥이라고 한다. 어버이가 갈라서니 학생을 둘러싸는 사랑이 없으니, 어릴 적부터 본 대로 바닥살이를 그대로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딸한테 19 ―울릉섬 곁섬 김정화 울릉섬은 엄마섬 관음도는 아이섬 섬에서 섬으로 간다. 엄마섬은 큰섬 아이섬은 곁섬 봄맞이풀을 밟는다. 큰섬은 숲섬 곁섬은 밭섬 봄쑥 한 포기 뜯는다. 숲섬은 푸른섬 밭섬은 파란섬 들빛과 하늘빛 함께 본다. 2023. 06. 07. 숲하루 #대구문학2023년6월호 #울릉도#관음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99] 전기삯 전기삯이 오른다. 오월 볕이 칠월 볕 같다. 한여름이 되면 얼마나 뜨거울지 전기삯 걱정에 미리 시름에 잠긴다. 어느 벗이 동생이 꾸리는 가게에서 일을 하는데 여름이면 전기삯이 팔백만 원이 넘게 나온다고 얘기를 했다. “헉!” 소리만 나왔다. 남 얘기 같지만 우리도 만만찮다. 지하실은 일층보다 넓지만, 불을 밝히고 모터를 돌리니 삼만 원 덜 낸다. 일층은 제법 낸다. 겨울이면 백만 원쯤 내고 더위가 한창 올라가면 곱이 넘는다. 그렇다고 냉장고 물건을 팔아서 전기삯을 낼 만큼 벌어들이지는 않는다. 앞에서는 이것저것 그나마 팔아서 겨우 남기지만 묵혀서 버리는 값하고 집삯과 전기삯이 큰짐이다. 앞으로 벌고 뒤로 까먹는다는 일이다. 우리 가게는 에어콘은 따로 돌리지 않는다. 냉장고 문을 열어 두어서 시원하다 못해 일하는 우리는 춥다. 앞문이 열릴 적마다 옆문이 열릴 적마다 추울 적에는 찬바람이 세게 들어오고 더울 적에는 뜨거운 바람이 훅 들어온다. 이 바람으로 아무리 냉장고에 있어도 무르거나 맛이 쉽게 간다. 손님이 뜸하면 비닐 가리개를 내린다. 짝은 알면서도 꾸중한다. 손님이 꺼내다가 부딪쳐 가리개가 찢어지는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98] 힘 앞산 자락길을 걷는다. 공룡공원을 지난다. 여기에는 이름처럼 공룡 닮은 인형을 세웠다. 앞에 다가가면 머리를 움직이며 소리를 낸다. 몸집이 누가 더 큰지 내기라도 하듯 힘자랑하듯 이빨을 드러낸다. 등은 주름지고 꼬리가 길고 짧은 앞다리를 들었다. 공룡이 곧 살아 움직일 듯하다. 아이가 울다가도 이 짐승만 보면 울음을 뚝 그칠 듯하다. 찔레꽃이 한창이다. 오늘이 아니면 찔레꽃을 놓칠지 몰라 가까이 다가간다. 손가락 틈으로 끼워 손등에 올리고 냄새를 맞는다. 찔레꽃은 언제 맡아도 향긋하고 상큼하다. 길을 꺾어 건너편에서 우리가 지나온 길을 나무틈으로 본다. 멀리서 보니 공룡이 나무보다 크다. 그 옛날 큰 덩치가 버티려면 얼마나 먹어야 할까. 움직이는 짐승은 풀을 먹든 열매를 먹든 다른 짐승을 먹든 배를 채운다. 한 자리에 머무는 풀꽃나무는 햇살과 비바람을 받아먹어야 쑥쑥 자라서 숲에 나눈다. 하나는 주고 하나는 먹기만 하면 셈이 맞지 않네. 짐승 몸을 지나 풀은 멀리멀리 뿌리를 내리고 싶겠지. 우리 별이 자리를 잡기까지 바람 비 구름 해 불이 한바탕 싸움을 치렀을는지 모른다. 이동안 누구는 터전을 잃고 누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