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48] 말밤 씨앗을 주웠다. 껍질만 다르고 빛깔하고 생김이 밤과 닮았다. 까맣고 두꺼운 껍질에서 씨앗이 나온다. 못에도 딱딱하고 가시가 돋은 껍질에 씨앗이 있었다. 어린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배가 고파 못에 기웃거린다. 오빠골에는 못이 셋이나 있다. 못이 크기대로 줄줄이 있다. 우리는 가운데 못에서 잘 논다. 길 바로 옆에 있어 물에는 부레옥잠 닮은 풀이 물낯에 퍼져 넓게 덮는다. 작대기를 하나 꺾어 풀을 끌어올리다가 뱀을 본다. 작대기를 물에 탕 치며 뱀을 쫓는다. 풀을 다시 당겨서 푸른 열매를 딴다. 깨물면 알이 덜 여물어서 물이 찍 뻗는다. 가뭄이 들거나 논물을 댄 뒤에는 못에 물이 준다. 물이 빠진 자리에는 진흙이 드러난다. 진흙이 말라 쩍쩍 갈라진 자리를 밟고 말밤(마름)을 캔다. 진흙에서 나오는 말밥은 물 낯에서 건진 풀빛하고 다른 흙빛이다. 아주 딱딱하고 뾰족한 가시가 두 쪽으로 나고 세모지다. 깨물면 이가 부러질 듯 야물다. 하얀 가루가 나온다. 쌀가루 맛이 나는 가루가 쫀득쫀득하다. 어머니 아버지도 일하다가 호미로 말밤을 캐서 삶아 주었다. 못에서 나는 밤도 타박타박하다. 말밤 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09] 모깃불 여름이 되면 마당에서 잤다. 안방에서 뜨락을 밟고 두 계단 내려오면 마루를 붙여놓았다. 어머니가 밥을 할 적에 아버지는 마당에 불을 피운다. 볏단에 불을 지피고 풀을 덮었다. 연기가 많이 난다. 매캐한 연기가 마당을 휘돌고 바람에 떠밀려 다닌다. 우리는 마루에 앉아 저녁을 먹고 아버지 몽침이를 갖다 드리고 눕는다. 어머니는 거꾸로 눕고 동생하고 자려면 갈치잠을 잔다. 나한테 밀려나면 동생도 마당에서 잔다. 아버지하고 오빠는 마당에 멍석을 깔고 더 아무것도 깔지 않고 잘 덮지도 않고 잔다. 나도 멍석에 눕는다. 꺼끌꺼끌해도 넓은 멍석에 누우면 하늘에 눈길이 빼앗긴다. 눈썹달이 조금씩 살을 찌우며 보름달이 되었다가 다시 눈썹달로 사라지는 달을 구경한다. 캄캄한 밤하늘에 별은 얼마나 반짝이는지 밤늦도록 별을 헤아리고 별을 찾는다. 올록볼록 카시오페아 국자꼴 북두칠성 북극성 작은곰자리 큰곰자리를 잘 찾았다. 아홉 살에서 열세 살 적에 본 밤하늘과 여름밤은 어린 날 하나뿐인 책이다. 별을 헤아리면서 잠이 든다. 새벽이슬을 맞으면 방으로 옮기는데 찬기운에 새벽에 깨서 혼자 방으로 건너가기가 싫었다. 네 시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8] 마늘 캐기 유월 보름 무렵에는 비가 자주 내린다. 비를 안 맞히려고 마늘을 당겨서 캤다. 비 얘기만 뜨면 온 마을이 바쁘다. 수레를 타고 재 너머 마늘밭에 갔다. 모두 호미로 마늘을 하나씩 캤다. 소가 들어갈 길을 트면 아버지는 쟁기로 마늘을 깊이 갈았다. 마늘 심을 적처럼 줄지어 뒤로 물러 서다가 소가 지나가면 쓰러진 마늘을 줍는다. 마늘 뿌리에 진흙이 붙었으면 마늘을 마주치면서 흙을 털어낸 뒤 나란히 넌다. 마늘을 다 주우면 어머니 아버지는 마늘을 묶고 우리는 곁에서 쉰씩 헤아려 놓는다. 어머니가 하는 대로 따라서 짚으로 묶어 보지만 헐렁하다. 짚을 빙빙 돌려서 매듭짓는 일이 서툴다. 내가 묶은 마늘을 들면 마늘이 쑥쑥 빠진다. 어머니가 묶은 마늘을 우리는 두 손에 둘씩 거머쥐고 수레로 옮기면 아버지는 차곡차곡 높이 쌓는다. 마늘을 다 묶은 뒤 빈 논을 다니면서 떨어진 마늘을 줍는다. 우리 논은 이웃 마을에 있어 재를 넘는데 비렁길이라 울퉁불퉁하고 마른 먼지가 펄펄 났다. 오빠하고 아버지는 마늘을 집으로 나른다. 아버지가 가게에 올라가서 장대에 하나씩 건다. 밑에서 오빠가 하나씩 올려 주고 동생과 나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7] 엿 어린 날 두메 마을에 장사꾼이 들어왔다. 자전거를 타고 얼음과자를 팔러 오고, 당면이나 미역도 판다. 옷보따리를 이고 할머니 장사꾼도 온다. 당면을 사면 할머니가 점을 거저 봐준다. 당면 장사꾼이 돌아가면 엿장수가 들어온다. 가위질 소리가 착착 쇠소리 내며 박자를 맞추고 ‘울릉도 호박엿 사시오, 깨진 그릇도 갖고 오고, 오그라든 냄비도 좋고, 떨어진 고무신도 받고, 마늘도 갖고 오이소.’ 엿장수 아저씨가 빨간 확성기로 길게 노래를 하듯 말한다. 확성기 소리를 들으면 장골 이골 목골에서 놀던 아이들이 우르르 뛰어나왔다. 나는 수레에 붙어서서 가위질을 구경했다. 엿을 끊으려고 끌쇠로 어림잡고 가위로 탁탁 치며 엿을 한 줄씩 떼어낸다. 그리고 하얀 가루에 묻힌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동생하고 눈을 마주치고는 둘이서 집으로 뛰어간다. 마늘 걸어둔 가게 밑에 할아버지 몰래 기어들어가서 가장 굵은 마늘을 다섯씩 골라 뺐다. 몸이 힘든 할아버지가 우리가 마늘을 빼가자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지른다. 둘은 등 뒤에 마늘을 숨기고 할아버지 지팡이에 안 맞으려고 몸을 옆으로 비껴 할아버지 방 앞을 지나 대문으로 빠져나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47] 마늘씨 한가위가 지나면 마늘씨를 쪼갠다. 여름에 캐서 가게 장대에 걸어두었다가 가을에 벗긴다. 마늘 꼬투리를 하나하나 딴다. 대가 바싹 말라서 비틀면 마늘대가 똑 부러진다. 안 떨어지면 가위로 자른다. 마늘 한 톨을 잡고 결대로 반을 쪼갠다. 그리고 하나하나 뗀다. 떼어낸 마늘에는 이미 뿌리가 가지런하게 자란다. 쪼갠 마늘을 크기대로 모은다. 허실은 허실대로 따로 담는다. 심을 적에는 굵은 씨앗부터 심고 씨앗이 모자라면 작은 씨앗을 심는다. 아주 작은 씨앗은 생채기가 있기도 해서 우리가 먹는다. 굵기대로 심는 까닭은 마늘을 캘 적에 굵기가 비슷해서 따로 고르지 않아도 된다. 굵은 씨앗과 작은 씨앗을 섞어 심으면 굵은 씨앗 곁에 자라는 작은 씨앗은 잘 크지 못한다. 캘 적에 작은 마늘이 끼면 따로 골라야 한다. 마늘을 걸어 둔 가게 밑에서 마늘씨를 며칠 밤낮으로 까느라 어머니 아버지 손이 까지고 갈라진다. 몇 톨 쪼개지 않아도 마늘물이 닿으면 따갑다. 반창고로 엄지손가락을 감고 또 깠다. 나는 손 아프다고 안 까면 되지만 어머니 아버지는 손이 부르트도록 깠다. 아버지가 논 손질 끝나면 소로 고랑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46] 마늘 아버지는 마늘을 아주 잘 묶었다. 들쑥날쑥 않고 마늘 뿌리를 반반하게 하고 쉰씩 둘을 묶으며 한 접을 손질한다. 마늘을 묶어 놓으면 나팔꼴로 펼쳐진다. 오일장에 내다 팔 적에는 깔끔하게 손질했다. 우리 마을은 마늘로 널리 알려졌다. 의성 마늘이다. 가음마을이나 읍내는 땅도 넓고 좋은데도 우리 마을 안전푸이 마늘이 으뜸이다. 약장사 아저씨가 서울에 가서 마늘을 팔아 돈을 많이 번 뒤로 전푸이 마늘은 입소문이 퍼진다. 아랫마을은 전푸이, 우리 마을은 안전푸이라 했다. 이웃 마을에 마늘이 안 되어도 우리 마을에는 마늘이 잘 자랐다. 그래서 오래 잘사는 마을로도 알려졌다. 우리 마을 땅이 골짜기인데도 읍내 넓은 땅을 몇 마지기를 살 수 있고 가음마을 땅도 우리 마을보다 쌌다. 못도 없고 물이 적어 땅이 아무리 좋아도 마늘은 우리 마을보다 못하다. 우리 마을 어른들은 “꽁지 없는 소.”라고 부른다. 소는 아니지만, 사람은 꽁지가 없으니 소처럼 일한다는 뜻이다. 마늘이 잘 되는 까닭은 땅이 기름지다. 똥오줌이며 거름을 넣고 풀이나 속새를 듬뿍 넣었다. 부지런히 논밭에 거름을 뿌리지 못하면 논이 기름질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45] 단감 우리 마을 감은 씨가 없다. 납작하고 껍질이 얇은 감은 찬감이라 하고 길쭉하고 두꺼운 감은 도감이라 했다. 도감은 붉게 익혀서 먹고 찬감은 곶감으로도 말리기도 하고 삭힌다. 마구간을 가운데 두고 방이 둘인데 하나는 할아버지 방, 또 하나는 고추를 말린다. 켜를 올리고 그물 틀에 익은 고추를 골고루 널어서 연탄불에 며칠을 굽는다. 두 화로가 활활 타니 굴이 아주 뜨겁다.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혼자이다. 집 뒤 감나무에서 땡감을 서넛을 땄다. 그릇에 물을 담고 굵은 소금을 넣은 뒤 고추 굴 문을 열었다. 뜨거운 바람이 얼굴에 스치자 따갑다. 매캐한 고추 냄새가 목구멍으로 들어오자 숨도 막혔다. 손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숨을 멈추고 그릇을 밀어 넣는다. 맨살인 팔이 뜨거워 깊숙이 밀어 넣지 못해 문 앞에 두고 재빨리 문을 닫았다. 이튿날 감이 잘 삭았을까 깨물어 보면 떫다. 다시 하룻밤 더 두고 틈나면 문을 여느라 뜨거운 김만 뺐다. 어머니는 처음에 큰 그릇에 나처럼 담다가 비닐에 싸서 아랫목에 묻는다. 조금 떫어도 단맛이 돈다. 어머니는 이내 먹을 감은 연탄불에 삭히고 아랫목에 묻고 한두 달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44] 고욤 고욤나무는 나뭇가지가 높아 어린 우리는 좀처럼 손이 닿지 않는다. 고욤은 겨울이면 빼놓을 수 없는 우리 새참이다. 열매가 은행알만큼 작은데, 빛깔이 짙으면 더 달다. 작은 열매는 씨로 가득하고, 이 씨는 납작하고 굵다. 하나씩 입에 넣고 오물오물 빨아들인 다음에 휙 날린다. 말랑하고 빛깔이 검붉으면 하나씩 따먹었다. 가지를 꺾어 겨울날 빈 방에 넣어 두면 고욤도 꽁꽁 얼어 씨가 달라붙은 만해 깨물어 먹는다. 어머니는 가을에 고욤을 낫으로 베지만 단지에 담아 꼭 묶어 둔다. 한참 지나 뚜껑을 열면 쫀득하고 조청같이 달아 한 숟가락씩 떠먹는다. 우리는 겨울에 간식으로 고욤하고 김치하고 배추 뿌리와 고구마를 먹는다. 감처럼 고욤도 많이 먹으면 똥구멍이 막힌다고 했다. 우리 집은 이웃마을 불래에 고욤나무가 있었다. 고욤나무에 감나무를 꺾어서 가지를 붙이면 감이 열렸다. 접을 붙여서 감나무가 많았을까. 큰고욤나무에 작은 열매가 주렁주렁 맺으니 감나무가 되면 고욤 몇 곱이나 커다란 감을 먹겠지. 감나무 가지 하나로 어떻게 고욤나무 감이 열릴까. 한 나무 가운데 밑에는 감이 열리고 위에는 고욤이 열릴까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43] 냉이 냉이를 며칠 묵혔더니 새싹이 났다. 무르고 검은 잎과 발갛게 익은 잎을 뗀다. 어린 날에는 냉이에 새싹이 나도록 두지 않았다. 냉이를 캐면 바로 먹었다. 설 쇠고 나면 산비탈 밭에 냉이가 올라왔다. 바가지하고 호미를 들고 목골이나 도빠골 잎새밭에 간다. 우리 밭은 아니지만, 파릇파릇하면 캔다. 우리는 냉이를 ‘날새이’라 하고 달래는 ‘달새이’라고 했다. 이랑에 냉이가 흙에 납작하게 붙어 잎을 펼쳤다. 냉이하고 닮은 풀을 보면 헷갈린다. 냉이는 잎이 더 가늘고 살짝 물들었다. 내가 캔 냉이로 어머니는 된장을 끓이는데, 어머니는 ‘장 찌진다’는 말을 쓴다. 냉이는 된장에 넣고 콩가루에 묻혀 국을 끓이고 삶아서 무침으로 해 먹는다. 겨울이라 일거리가 없는 마을 사람은 떼를 지어 캐러 다닌다. 그렇지만 우리 어머니는 냉이를 일삼아 캐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집보다 고추를 많이 심는다. 봄부터 고추작대기를 다듬는다. 망치 날로 작대기 끝을 돌리면서 뾰족하게 깎는다. 고추가 쓰러지지 않게 흙바닥에 꽂아 고추가 자라면 넘어지지 않게 묶는다. 그래서 새봄에도 바빠 냉이는 오다가다 캔다. 냉이는 겨울 밭에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42] 사마귀 고개에서 사마귀를 자주 보았다. 흙빛이 도는 사마귀는 땅바닥에 떨어진 지푸라기와 섞여 우리 눈에 쉽게 띄지 않고 풀빛 사마귀는 쉽게 띈다. 나는 사마귀를 만날 적마다 무서워서 비껴갔다. 사마귀가 가만히 있는데도 싫었다. 사마귀는 느릿하게 갈 듯 말 듯 걷는다. 큰 눈이 튀어나오고 얼굴이 뱀 닮은 세모라서 무서웠다. 앞발은 톱니 칼날 같아 손을 꽉 깨물 듯하다. 학교에 가는 길이나 돌아오는 길에 고개서 한숨 돌린다. 고개에서 사마귀를 만나면 동무들은 장난을 친다. 손하고 발이나 팔꿈치에 사마귀가 난 아이는 제 살점을 손톱으로 뜯는다. 살점을 작은 돌에 얹고 그 위에 또 떼서 놓는다. 아주 작은 돌탑으로 돌부리보다 적어 눈에도 잘 띄지 않았다. 시침 떼고 앉아 있으면 막 재를 넘는 아이가 돌을 차면 손뼉치며 소리지르며 좋아했다. 제 몸에 난 사마귀가 그 동무한테 옮겨간다고 여겼다. 그리고 머스마들은 사마귀 목덜미를 잡고 몸에 난 사마귀를 뜯어 먹게 했다. 사마귀를 옮는다는 말에 사마귀 곁에 얼씬도 안 했다. 사마귀 몸이 메뚜기처럼 딱딱한데 배는 부드럽고 무겁다. 새끼를 뱄을까. 몸집 두 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