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27] 싸리꽃 싸리꽃이 피면 나도 모르게 왼손을 펼친다. 아픈 일이 떠오른다. 할아버지는 들일 밭일을 하지 못했다. 두 지팡이에 몸을 기댄다. 아버지가 한 해에 두 벌 싸리나무를 벤다. 가을에 잎이 떨어질 적에 싸리나무는 굵고 단단해서 마당을 쓰는 빗자루로 묶는다. 여름에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베다 놓은 싸리나무로 지게에 얹었다 뺐다 하는 부채꼴 소쿠리를 엮는다. 아버지는 지게에 얹어 꼴을 담는다. 데레끼도 짠다. 데레끼는 어머니가 밭에 다닐 적에 어깨에 메고 다닌다. 데래끼는 단지처럼 둥글다. 싸리나무를 삶기도 하고 날나무를 길게 반 쪼개서 바닥을 틀 잡고 길쭉하게 엮어 크기를 어림잡고 싸리를 세우고 둥그렇게 하나하나 엮는다. 할아버지는 손마디가 뻣뻣한데도 꼼꼼하게 엮는다. 열두 살에 할아버지 곁에서 사리를 칼로 둘 쪼개 주었다. 그런데 사리가 잘 휘어져서 엉뚱하게 반 꺾어 보려다 손이 찔렸다. 여느 나무는 휘어지지 않고 똑하고 부러지지만 사리는 꺾어도 구부러진다. 그래도 꺾어 보려다가 왼쪽 손바닥을 푹 찔렸다. 싸리나무를 꺾어 보면 나무가 한 결이 아니다. 실처럼 가는 결이 뭉쳤는지 판판하게 꺾이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26] 부들 못을 지나다 부들을 본다. 어린 날에는 못가에서 올려다보았는데 오늘은 다리에서 내려다본다. 우리는 부들을 또뜨락방망이라고 했다. 다듬이방망이같이 생기고 흙빛이 돌고, 겨울날 털신에 붉은 깃털하고도 닮고, 얼음과자도 닮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운뎃못에서 부들을 꺾는다. 부들로 칼싸움도 하고 궁금해서 반으로 쪼개서도 논다. 대보다 부들이 굵어서 칼싸움하면 굴렁굴렁한다. 부들끼리 세게 부딪치면 터져서 가루가 펄펄 난다. 부들을 손에 들고 다니면서 동무들 뒤통수를 때리고 숨기고 목에 대고 간지럽히고 시치미를 뗀다. 부들 끝에 올라온 대를 자르고 부들을 마주보도록 둘 놓고 장난도 친다. 하나는 손잡이 대를 짧게 하고 바닥에 놓는다. 다른 하나는 대를 길게 하고 부들이 서로 맞대게 가까이 놓고 긴 대를 손으로 돌리면 바닥에 놓인 부들이 맞물려 제자리에서 내가 돌리는 쪽으로 움직인다. 아버지는 부들이 푸를 적에 낫으로 벤다. 집에 갖고 와서 돗자리를 짜고 방석을 엮는다. 부들이 푸른 풀일 적에 엮으면 풀이 누렇게 마른다. 우리가 방망이라고 하던 이름처럼 부들도 부들부들해서 붙인 이름일까. 진흙에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25 ] 살구 풋살구는 유월 볕에 노르스름하게 익어간다. 어린 날 우리 집에는 살구나무가 없었다. 장골 끝에 사는 숙이네에 살구나무가 많았다. 살구나무가 뒤쪽 울타리로 에워쌌다. 길이 좁아 발을 헛디디면 어른 키높이 도랑에 떨어진다. 도랑물은 멧산에서 내려오고 숙이네 집을 휘돌아 마을로 흐른다. 나는 살구가 먹고 싶으면 숙이네 집에 찾아간다. 다른 아이는 숙이네 집에 오지 않다가 살구가 노랗게 익으면 몰려왔다. 나는 도랑쪽 살구나무를 잘 탔다. 머스마들은 큰나무에 올라간다. 두 그루에 살구가 많이 달렸다. 장대로 나무를 퉁퉁 치면 살구가 와르르 도랑에 떨어져 물에 동동 뜬다. 살구를 주우려고 바위 틈으로 내려와 첨벙첨벙 들어가서 줍는다. 도랑 바닥이 돌층에 큰돌이 있고 나무가 위로 우거졌다. 살구가 주먹만큼 굵다. 살구를 또개면 살이 보슬보슬하고 도톰하다. 까만 얼룩이 있는 살구는 벌레가 산다. 덜 익은 살구는 두었다가 익으면 먹는다. 살구가 깨끗하게 잘 빠진다. 딱딱한 씨앗 껍데기를 돌로 내리쳐서 하얀 씨앗을 빼먹는다. 우리는 뭔들 안 먹었을까. 숙이는 살구를 우리가 따먹는데도 가면 좋아했다. 아이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24] 솔밭 어린 날에는 내 몸이 작아서 그럴까. 배움터 가는 길이 너무 멀었다. 마을을 벗어나 재 하나 넘는다. 멧길에는 온통 논밭이다. 가는 동안 앉아 쉴 나무그늘이 없다가 사이에 솥밭이 있다. 우리는 흙길로 올라가 무덤가 소나무 밑에서 쉰다. 우리는 그 자리를 솥밭무디라고 했다. 마치고 오는 길에 쉬려고 뛰어올 적도 있다. 배움터 울타리 밖에 사는 젊은 아저씨가 아침부터 우리가 마칠 때까지 처마 밑에 우두커니 있다. 우리가 그 앞을 지나가면 한마디 하고 앞발로 시늉하며 으르렁댄다. 우리는 놀라서 개나리 울타리를 넘어 들어가거나 교문까지 달린다. 아저씨는 햇볕에 그을려서 얼굴이 검붉다. 까까머리를 하고 헐렁한 옷을 입고 한 손은 늘 허리춤에 넣었다. 입을 벌린 채 있어 침이 줄줄 흘려 옷이 젖었다. 그 아저씨는 할 줄 아는 말은 짧다. “할래”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느릿느릿한 몸짓으로 우리를 쫓아오려고 뛰면 우리는 힘껏 뛰었다. 아저씨를 보면 머리뿌리가 서늘하다. 우리는 뒤를 힐끗 돌아보면서 달린다. 솔밭무디까지 와서야 마음을 놓는다. 솔밭무디까지는 멀어서 그 아저씨가 오지 못한다. 배움터 가는 길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22] 이팝나무 갓 지은 밥내음이 가득하다. 주걱으로 밥을 한쪽으로 살살 걷고 누룽지를 푼다. 다시 밥을 누룽지 걷은 자리에 물리고 남은 누룽지를 걷는다. 막 걷어낸 누룽지가 김이 날아가자 꾸덕꾸덕하다. 나는 누룽지를 먹으려고 쌀을 조금 더 안친다. 어린날 아침저녁으로 부엌창(봉창)에 서로 고개를 내민다. 어머니가 가마솥에 불을 때면 솥뚜껑 틈으로 쏴아 쎄에 하고 김이 뿜는다. 이윽고 뜸이 들면 먼저 맡은 나는 문턱에 두 팔을 얹고 손을 내민다. 뒤에 온 작은오빠와 동생이 내 등 위에 꾸부정하게 목을 빼고 손을 내민다. 엄마는 가마솥 손잡이를 행주로 잡고 솥뚜껑을 열면 김이 손 가득 빠져나온다. 보리밥 가운데에 한 줌 얹은 쌀밥을 섞는다. 어떤 날은 노란 좁쌀로 밥을 짓는다. 엄마는 도시락을 먼저 담고 밥을 퍼서 부뚜막에 둔다. 그리고 누룽지를 긁는다. 둥그런 쇠주걱으로 긁다가 부뚜막에 발을 올리고 긁는다. 누룽지가 빳빳해서 납작하게 나오는 날도 있고 질어서 엄마가 손에 얹어 꼭꼭 말면 주먹밥처럼 준다. 엄마는 먼저 손 내민 나부터 준다. 셋이 똑같이 하나씩 준다. 누룽지를 받아들면 부엌창을 닫고 아껴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23] 날나무 어릴 적에는 쓰려지거나 마른 나무는 멧골에서 보지 못했다. 나무가 자라기 무섭게 도끼나 낫으로 날나무를 남김없이 벤다. 벤 자리가 뾰족해서 다친 적이 있다. 열한 살 적에 아까시나무가 자라는 멧골을 넘다가 발이 찔렸다. 학교에서 집 사이에 있는 마을에 고모 집이 있다. 사촌하고 놀다가 고모가 일러 준 멧골을 넘었다. 빨리 가려고 폴짝폴짝 뛰며 비껴가다가 가랑잎에 덮인 밑둥을 밟았다. 나는 흰 고무신을 신었다. 뾰족한 나무가 고무신을 뚫고 발을 푹 찔렸다. 피가 멈추지 않아 피범벅이 되었다. 닦을 천도 없었다. 가방에서 두툼한 일기장을 꺼냈다. 일기장은 찢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도 어쩌지 못했다. 일기장을 뜯고 뜯어 피를 닦았다. 산에서 내려가고 논을 가로질러야 길이 나오는데 길을 바라보아도 아이들이 안 보인다. 고모 집에서 가운데쯤 왔는데 고모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겠고 나는 혼자서 엉엉 울면서 쩔쩔맨다. 너무나 아팠다. 파인 속살을 보니 더 아프다. 그러나 나는 발보다 일기장을 찢은 일이 더 아프다. 나는 일기를 날마다 썼다. 날씨를 적고 밥 먹고 학교 다녀온 일만 적었지만, 아까웠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21] 빵떡 작은딸하고 장갑을 한 짝씩 끼고 빵을 뜯는다. 먹기 알맞게 자르려다 깜빡했다. 크림이 밀리고 녹두가 들었다. 내가 중학교 갓 들어갔을 적에 먹던 빵하고 맛은 다르지만, 딸하고 함께 뜯어먹으니 그때 먹던 빵이 생각난다. 나와 나이가 같은 숙이하고 두 살 많은 숙이 언니하고 셋이서 살림(자취)를 했다. 중학교 삼학년인 작은 오빠가 아침 일찍 잠이 덜 깬 얼굴로 찾아왔다. 아침에 따르릉 소리가 울리면 골목에 나간다. 오빠는 어머니가 보낸 빵떡을 건네준다. 우리는 ‘잘 먹어’라는 말도 ‘잘 가’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뚜껑을 열면 빵이 따뜻하고 단내가 난다. 까맣게 타도 반질반질 기름이 돈다. 엄마는 나한테 보내려고 막걸리에 소다와 밀가루를 섞어 하룻밤 재운다. 아침이면 반죽이 부드럽게 부푼다. 어머니는 손으로 반죽을 뜯어 불판에 담는다. 노란 곤로를 올리고 성냥불을 붙이고 후하고 불면 심지에 빙 돌아가며 불을 이내 붙인다. 그리고 손잡이를 두 쪽 옆으로 왔다갔다 움직여 홈에 딱 맞게 끼운다. 심지를 많이 올리면 시커멓게 자꾸 올라와 불판을 다 그을린다. 심지가 기름에 촉촉하게 젖으면 파란불이 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20] 호미 댓돌에 놓은 호미 한 자루를 본다. 흙이 묻은 호미가 날카롭다. 풀을 휙 긁기만 해도 그대로 잘릴 듯하다. 어린 날 갖고 놀던 호미와 닮았다. 우리 집 호미를 보면 아버지 호미와 어머니 호미가 다르다. 아버지 호미는 크고 끝이 뾰족하고 쇠가 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쓰던 호미를 그대로 쓰기도 하지만 아버지 호미보다 작은 호미를 쓴다. 나는 어머니가 쓰던 많이 닳아 뭉텅한 호미를 쓴다. 온집안이 호미를 하나씩 맡아 마늘을 캤다. 대를 하나씩 잡고 뿌리를 콕 내리찍으면 뽑힌다. 마늘에 호미가 찍혀 반 잘리고도 하고 대만 떨어지기도 한다. 호미가 뭉텅하고 작아 깊이 파지 못하니, 돕다가 마늘만 망친다. 그래도 우리는 엎드려 마늘을 캤다. 흙을 쪼다가 흙에 들리지 않아 나무 손잡이가 빠지면서 뒤로 넘어지기도 한다. 다시 나무 손잡이에 쇠를 끼우고 돌에 탁탁 치면 잘 들어간다. 한둘 빠지면 나무 손잡이에 끼워도 흔들거린다. 호미로 감자도 캐고 고구마도 캤다. 감자를 쪼고 고구마도 부러진다. 어쩌다가 김(풀)을 매지만 어머니 아버지가 워낙 쉬지 않고 일을 하여 다른 집 아이들에 대면 밭매기는 흉내만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9] 흙 길섶 흙이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잘렸다. 흙에 스며든 물이 이 틈을 타고 흘러내리고, 푸르스름하게 이끼가 자란다. 조금 더 오르니 돌이 잘렸다. 돌 틈에 흙을 지팡이로 살짝 찔러 보았다. 겹겹 쌓인 얇은 돌이 우르르 굴러떨어진다. 흙길로 더 오르자 신발에 흙이 덕지덕지 붙어 무겁다. 갓길에는 웅덩이가 파이고 흙이 미끄럽다. 흙이 빗물에 씻기니 어떤 흙인지 드러난다. 어린 날 흙을 캐러 다녔다. 우리 마을은 내를 끼어 목골로 이어지는 끝집까지 작은다리가 일곱이나 있다. 마을 언저리에 첫 다리를 잇는 산 한쪽이 반듯하게 잘려나갔다. 길을 낸다면서 등성이를 깎았지 싶다. 내 키보다 높고 흙담이 울퉁불퉁하다. 담흙이 패여 물길이 굵직하게 흐른다. 맑은 날에는 흙이 말라 단단하고 비를 맞으면 어떤 자리는 흙이 잿빛이 돈다. 찰흙이다. 동무들하고 서로 캐려고 가파른 흙벽에 올라간다. 잿빛 물이 흐르는 자리를 맨손으로 둘레를 긁으며 흙을 후벼판다. 매끄러운 찰흙을 뜯고 깊은 자리에는 뾰족한 돌로 둘레를 긁어내고 또 캔다. 흙담에 구멍이 송송 난다. 둘씩 셋씩 뭉치를 비닐에 싸서 마르지 않게 그늘에 둔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8] 솔친다 자고산(칠곡군)에서 솎아낸 나무를 쌓아두었다. 잘린 나무가 가늘고 자잘하다. 어린나무이다. 잎이 시들하지만, 아직 푸르다. 갓 베어낸 듯하다. 클 나무만 두었을까. 어미나무로만 키우려는 셈일까. 잘린 나무는 어림잡아 열 해나 열다섯 해를 자랐을 듯하다. 이 나무라면 며칠 밥을 짓고 소죽을 끓이지 싶다. 내가 열세 살 적에 어머니는 서른여덟이었다. 엄마가 막냇동생을 배어 효선마을 산에서 나무를 한다. 여섯이나 여덟 집이 돈을 모아 멧골을 통째로 샀다. 소나무를 함부로 건들지 못하던 때라 면에서 받아들인 곳에서만 소나무 가지를 친다. 소나무 가지를 마음 놓고 자르려고 샀다. 겨울방학 무렵이다. 어머니는 배가 부른데 비스듬한 산에 쪼그리고 앉아 나무를 모은다. 방학 때라 고등학생인 큰 오빠도 거들고 중학생인 작은오빠는 무거운 나무를 밑으로 옮긴다. 수레에 싣고 소를 몰아 고개 하나 넘어 집에 부린다. 나는 나무 하기 싫었다. 그렇지만 배가 부른 어머니가 억척스럽게 하니깐 어쩌지 못하고 거든다. 나무는 겨울이 되면 집안이 모여 한 해 땔 나무를 죽기살기로 가지를 자르고 옮긴다. 밥 같은 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