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67 자동차와 겉모습과 《천재 유교수의 생활 3》 야마시타 카즈미 신현숙 옮김 학산문화사 1997.1.25. 목이 아프더니 머리까지 아프고 몸살이 다시 난다. 꼬박 하루를 자다가 깨며 보낸다. 누운 채 《천재 유교수의 생활 3》을 집었다. 셋째 이야기에서 유교수는 자동차를 스스로 몰아 보겠다면서 배우는 모습이 나온다. 자동차를 떠올리다 보니, 길에서 부딪히는 온갖 일을 더 눈여겨본다. 멀쩡한 사람도 손잡이를 쥐면 어느새 마구마구 몰아대기에, “사람이 운전을 하면 무대포가 될 수 있는 줄 알게 되고, 차란 마약작용이 있는 위험한 탈것”이라고 여긴다. 걷는 쪽에서 알아서 살펴야 한다고 여긴다. 우리 집은 언제부터 자동차를 몰았는지 돌아본다. 짝꿍은 1990년부터 몰았다. 헌차를 그때 오십만 원에 장만했다. 짝꿍이 일할 적에 몰던 자동차인데, 나는 딱 하루를 타 보았다. 마침 그날 예천으로 놀러가는 길이었는데, 눈길에 먹통이더라. 그날 그 자동차는 숨을 다했고, 비로소 새차를 장만했다. 갓 살림을 차리던 무렵 다달이 내는 집삯이 후덜거렸는데, 차값으로 다달이 빠지는 돈도 후덜거렸다. 그래도 나는 큰딸을 낳고 바로 면허증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66 낱말겨레 《우리말의 상상력 1》 정호완 정신세계사 1991.4.15. 나는 우리말을 좋아하지만, 아직 우리말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우리말의 상상력 1》는 우리말이 어떻게 낱말겨레를 이루고 낱말날개가 어떠한 길을 지나는지 살핀다. 우리말 뿌리와 가지에 걸리는 말이 어떻한지 들려준다. 아기가 태어나면 알록달록 움직이는 그림을 천장에 달아 준다. 아기 이름을 부르고 손뼉을 치면, 아기는 소리 나는 쪽으로 본다. 젖을 먹는 동안 엄마 냄새와 엄마 살결을 촉촉하게 느낀다. 말이 아닌 웃음과 울음으로 말을 한다. 목을 가누고 뒤집고 기고 잡고 일어서고 걷는데 온 하루를 보낸다. 문득 이 모습이 우리한테 숱한 길을 가르치고 말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가 글을 모를 적으로 돌아가면 아름다이 글과 노래를 짓고 만날 수 있겠구나 싶다. 나는 ‘감사합니다’라 안 하고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쓴다. 아직 우리말을 모르던 때에는, ‘고맙다’가 아닌 ‘감사하다’가 훌륭한 말인 줄 여겼는데, 이 책을 만난 뒤 생각해 보니, ‘고맙다’는 우리말이고, ‘감사하다’는 한자말일 뿐이었다. 우리말 ‘고맙다’ 뿌리를 살피면 어마어마한 사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우리말 3 짝 ‘짝!’ 하고 부릅니다. 입꼬리가 올라가고 입술을 짝 폅니다. 웃는 얼굴입니다. 널방아에 얹은 널판처럼 입술이 나란합니다. 널을 놓는 방아는 짝이 있어야 타요. 한쪽이 하늘로 올라가면 한쪽은 땅으로 내려옵니다. 한쪽이 무거우면 내려오지 못 해요. 우리 다리를 볼까요. 한쪽이 나아가면 다른쪽은 슬쩍 밀어요. 걸으면 걷고, 뛰면 뜁니다. 두 발은 같은 쪽을 봅니다. 짝도 같은 쪽을 걸어요. 닿소리와 홀소리를 짝지으면 낱말을 낳아요. 가시와 버시는 아기를 낳아요. 짝이 있어 새롭게 얻습니다. 사랑은 함께 키워요. 짝사랑은 혼자 키워 외로워요. 신을 짝짝이로 신으면 뒤뚱거려요. 짝은 짝짝인 마음을 잘 짜맞추는 사이입니다. 발을 묶고도 어깨동무로 뛰어요. 붙음쇠는 같은쪽을 밀어내고 다른쪽을 당기지만, 사람은 끼리끼리 짝을 맺습니다. 물 한 방울은 마르기 쉽지만, 짝과 함께하면 냇물에 닿을 힘을 얻습니다. 2023.12.22.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65 한 그루 나무 《식물 동화》 폴케 테게토프 장혜경 옮김 예담 2006.11.6. 풀꽃나무를 좋아해서 한 자락 두 자락 읽고 모으다 보니 풀꽃나무를 담은 책이 시렁 몇 칸이나 차지한다. 딱딱한 이야기부터 동화까지 두루 읽는다. 지지난해 여름에 《식물 동화》를 처음 읽었다. 이 책이 나올 무렵에 글쓴이는 이미 서른 남짓에 이르는 책을 썼단다. 《식물 동화》는 풀꽃나무를 약으로 쓰는 대목을 동화로 풀어냈다. 서양 풀꽃은 잘 모르지만, 열일 곱 꼭지 가운데 몇 가지는 눈에 익다. 이를테면 바질, 민트, 라벤터, 라일락, 민들레, 로즈마리는 풀잎과 꽃잎을 떠올리며 읽었다. 신선초 이야기가 남다르다. 마지막 남은 착한 마음이 샘에서 물을 길어 마시듯 착한 빛으로 살아난다고 한다. 풀꽃한테서 얻은 밝은 빛이 머잖아 아이들 웃음빛으로 이어간다고 한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적에 늘 지나가는 골목이 있었다. 우리 학년에서 키가 가장 큰 아이 집인데, 마당에 라일락이 한 그루 있었다. 보라꽃이 피는 철이면, 마을 언저리에 들어서기만 해도 라일락 꽃내음이 마을을 뒤덮었다. 그러나, 나는 라일락 냄새가 너무 짙어 썩 마음에 들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글님 ] 작게 삶으로 64 풀씨로 떠나는 몸 《식물, 세계를 모험하다》 스테파노 만쿠소 임희연 옮김 더숲 2020.11.30. 며칠 앞서 엄마 집에서 하룻밤 잤다. 아침에 아버지 무덤에 갔다. 무덤 꼭대기에 입김처럼 눈이 새집을 짓고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볼도 손도 시렸다. 이 추운 날, 길가에 돋은 쑥부쟁이꽃을 보았다. 바람에 이리저리 어지러울 만큼 흔들렸다. 쪼그리고 앉아 꽃잎을 본다. 무릎에 덮은 담요에 도깨비바늘이 잔뜩 붙었다. 내가 더 멀리 가서 떼었으면 도깨비바늘이 신이 날까. 그러나 나로서는 도깨비바늘 꿈을 물거품으로 바꾸어 놓는다. 얘들아, 그냥 여기에서 살아라. 우리 집까지 가지 말자. 우리 집은 아파트라서 너희가 뿌리내릴 데가 없어. 《식물, 세계를 모험하다》를 읽었다. 이 책은 우리별을 누리는 여러 풀을 다룬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짐승과 풀은 서로 다르게 산다. 풀은 풀씨로 퍼져서 온누리를 덮고 모둠살이를 한다. 도깨비바늘처럼 짐승털에 붙기도 하고, 민들레처럼 바람을 타고 날아가기도 한다. 또는 도토리처럼 통째로 먹히고서 먼먼 곳에서 똥으로 나와서 싹이 트기도 한다. 화산이 터진 자리에서도 풀은 살아남는 길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우리말 2 쪼개다 쪼개면 작습니다. 바위가 부서지면 돌이 되고, 돌을 쪼개어 자갈에 조약돌이에요. 비바람에 부서져 흙입니다. 돌멩이가 깎이면서 모래알입니다. 말도 잘게 쪼개어 마음을 담을 수 있습니다. 모래알 같거나 바위 같아도 기쁩니다. 마음에는 크기가 없습니다. 그런데 말만 키우면 큰돌처럼 무겁습니다. 기쁘면 얼싸안고 손뼉을 치고 껑충껑충 뜁니다. 겉치레를 쪼개어 내면 어느새 날듯이 가볍고 그림이 또렷합니다. 겨울 기스락을 봅니다. 모래밭으로 밀려오는 물결이 쓸고 가면서 모래알은 촘촘하고 판판합니다. 출렁이며 밀려오는 물결이 바위에 부딪치니 하얗게 메밀꽃입니다. 글도 말도 삶도 쪼개어 보면, 할 말도 많고 자잘한 이야기도 많습니다. 작은 물줄기를 따라가면 모두 다른 삶결이 만나요. 한 꼭지 두 꼭지 다시 모읍니다. 조각보를 잇대어 꾸러미로 다시 태어납니다. 쪼개고 쪼개어도 알맹이는 그대로입니다. 2023.12.20.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63 곁말 《곁말, 내 곁에서 꽃으로 피는 우리말》 최종규 글 숲노래 기획 스토리닷 2022.6.18. 《곁말, 내 곁에서 꽃으로 피는 우리말》을 읽었다. 이 책은 두 갈래 글길로 이야기를 담았다. 앞쪽에는 우리말 이야기를 꼭지마다 열여섯 줄로 풀이를 한다. 뒤쪽은 넉줄꽃(사행시)을 노래한다. 넉줄꽃은 노래 같다. 가락이 흐른다. 넉 줄로 끊어서 쓴 글이지만, 줄줄이 읽으면 판소리처럼 길게 이어간다. 《곁말》을 쓴 분은 자가용을 안 몬다고 한다. 버스를 타거나 걸어다니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한다. 버스나 전철을 타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사람은 더러 보았어도, 걸어다니면서도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니 유난하다. 나는 자가용을 몬다. 내가 차를 몰면 멀미를 안 하지만, 남이 모는 차를 타면 멀미가 난다. 그래서 나는 버스나 전철을 탈 적에는 책읽기를 어림도 못 한다. 요즘도 내 차를 스스로 몰지 않고서 다른 사람이 모는 차를 얻어타고서 멀리 가야 하면 멀미약을 한 알 먹는다. 의성읍에서 살며 안동으로 일하러 다니던 스물두 살 무렵을 떠올려 본다. 벌써 서른 해가 훌쩍 지나간 옛일인데, 한창 젊던 스물두 살에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62 쪽종이에 쓰기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권진옥 한문화 2000.6.20. 다섯 해 앞서 2018년에 어느 도서관에 가서 글쓰기 강좌를 두 달 들은 적이 있다. 두 달이 다 지날 무렵에 책나눔을 하였다. 이때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챙겨 온 분이 있었고, 내가 이 책을 받았다. 이 책을 읽어 보면, 십 분 동안 멈추지 말고 그대로 쓰라는 대목이 나온다. 요즘 어느 시쓰기 강좌를 가 보았는데, 그곳에서는 ‘무의식 글쓰기’를 한다. 종이를 나누어 주고서 십 분이나 십오 분 동안 글을 쓰라고 한다. 멈추지 말고 그대로 쓰라고 한다. 쓴 글을 되읽지 말고 지우지도 말라고 한다. 그저 쭉쭉 쓰라고 한다. 시쓰기 강좌에서 딱 한 번 십 분 글쓰기를 했다. 딱 하루를 써 보았지만 나로서는 버거웠다. 요즘은 글을 종이에 쓰지 않고 글판을 두드려서 쓰는데, 종이에 무얼 쓰자니 어려웠다. 머리가 지끈거려 그저 눈을 감은 채 시간만 보내었다. 사전을 쓰는 이웃님 한 분이 대구에 올 일이 있다고 해서 만나서 글쓰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분은 십 분도 십오 분도 아닌, 오 분만 쓰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우리말 1 풀꽃 풀은 철마다 푸르게 자랍니다. 오늘은 다리를 지나면서 냇가를 바라보았습니다. 큰물에 말끔히 쓸려간 듯 자갈밭을 이루는 밭둑을 봅니다. 아직 겨울이라 풀이 돋지는 않습니다. 곧 봄을 맞이하면 푸릇푸릇 풀이 올라올 테지요. 풀은 작지만 찬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겨울이 가라앉을 무렵에 돋는 냉이를 비롯한 봄맞이풀을 보며 설렙니다. 풀이 돋는 곳에는 꼭 꽃이 있습니다. 먼저 줄기가 나오고, 잎이 퍼지면서, 꽃이 핍니다. 언제나 ‘풀’이면서 ‘풀꽃’입니다. 모든 풀은 꽃을 품은 푸른빛입니다. 나는 이 풀꽃을 좋아합니다. 나는 이 풀꽃이 퍼뜨리는 작은 풀씨를 좋아합니다. 풀꽃을 닮은 우리말을 좋아합니다. 봄볕을 머금고서 온누리를 푸르게 덮는 풀꽃처럼 우리가 쓰는 말도 푸르게 빛나기를 바랍니다. 풀 한 포기는 굳이 꾸미지 않으면서 싱그럽듯, 꾸밈없이 쓰는 우리말도 아름답습니다. 2023.12.20. 숲하루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글님 ] 작게 삶으로 061 너도 나도 가엾은 《슬픈 나막신》 권정생 우리교육 2002.8.10. 방천시장에 있는 책방에 갔다. 책방에서 아기가 잔다. 책방지기도 소곤소곤 우리도 소곤소곤. 책방 어귀에 있는 종소리가 더 크다. 책방지기는 혼자 아기를 키울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아가 신발이 너무 작아 만지작거리다가 책을 훑는다. 다시 신발을 보니 궁금하던 일이 확 풀렸다. 가족사진이 있다. 카프카를 좋아해서 책 언저리에 비슷한 모습을 보고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책방에서 엉뚱한 구경을 하다가 《슬픈 나막신》을 본다. 큰딸이 어릴 적에 권정생 님이 쓴 ‘몽실 언니’하고 ‘강아지똥’하고 ‘검정고무신’을 곁에 두고 읽었다. 권정생 님은 내가 살던 안동에서 가까운 일직에 살았다. 언젠가는 권정생 님이 쓴 ‘엄마 까투리’를 애니메이션으로 담아서 프랑스로 판다는 말이 오갔다. 《슬픈 나막신》을 읽는다. 권정생 님이 태어난 일본에서 어울린 아이들 이야기가 흐른다. “어른들은 전쟁을 일으키고 집을 부숴 버리고 죽이려 대들고 그러나 어른들이 있어야만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을 바르게 착하게 자라라고 가르치면서 어른들은 마음대로 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