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내가 안 쓰는 말. 존중 노랗게 익은 낟알처럼 노을 일렁이는 하늘처럼 놀고 노래하는 아이처럼 높인다 서글서글 나긋나긋 말씨로 선선히 이는 갈바람으로 서둘지 않으며 서로서로 섬긴다 밭둑에 자라는 들꽃을 바다에 사는 헤엄이를 받아들이는 별빛 햇볕을 받든다 알뜰히 아름답게 아껴 둥글게 동무하며 돌봐 누가 해주지 않아 위아래없이 너나없이 나란히 ㅅㄴㄹ 낱말책은 ‘존중(尊重)’을 “높이어 귀중하게 대함”으로 풀이하는데, ‘귀중(貴重)’은 “귀하고 중요함”으로 풀이하고, ‘귀하다(貴-)’는 “1. 신분, 지위 따위가 높다 2. 존중할 만하다 3. 아주 보배롭고 소중하다”로, ‘중요(重要)’는 “귀중하고 요긴함”으로 풀이합니다. 돌림풀이인데다가 겹말풀이입니다. ‘존중·귀중·귀하다·중요’는 모두 ‘높다·높이다’를 가리키는 셈입니다. 우리는 우리말을 곱게 아끼거나 살뜰히 돌보거나 반듯하게 높일 수 있을까요? 여느 삶자리에서 수수하고 흔하게 쓰는 낱말 하나부터 참답게 가다듬으면서 높일 줄 알 적에 서로서로 높이는 따사롭고 넉넉한 마음으로 나아가리라 봅니다. 함께 노을빛으로 노래하고 노늘(나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내가 안 쓰는 말 . 타협 입으로 말하지 않고 손으로 글쓰지 않는 아기를 폭 안는다면 마음으로 이야기하지 이슬 먹으며 자라고 별밤 누리며 잠들고 해바람비랑 어울리는 풀꽃나무랑 마음으로 만나 맞추려 들지 마 마음으로 마주해 마땅히 여기지 마 말을 섞고 귀기울여 허울스런 허수아비도 꽃하고 먼 꼭두각시도 나를 잊다가 잃어 나몰라라 되었어 ㅅㄴㄹ 한자말 ‘타협(妥協)’은 “서로 조금씩 물러나면서 한뜻이 됨”을 가리킨다고 여길 만한데, 사람들은 낱말뜻대로 쓰기도 하지만 “곧거나 바르거나 참되게 나아갈 길을 꺾거나 물리면서, 억지스럽게 맞추어 들어가고 길미를 조금 얻느라 첫뜻이나 참뜻을 저버리거나 등지는 짓”을 가리킬 적에도 씁니다. 참을 밝히고 거짓을 치우는 길에서는 물러날 데가 없게 마련입니다. 풀죽음물을 뿌리면 풀이 죽을 뿐 아니라 풀벌레에 벌나비도 죽고 사람한테까지 나쁜데, 풀죽음물을 조금만 치겠다고 ‘타협’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타협’을 하자고 말하는 쪽은 으레 ‘잘못을 저지른 무리’이더군요. 참빛을 바라는 목소리에 밀려 몽땅 쫓겨날 듯한 얄궂은 쪽에서 ‘타협안 제시’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하루 우리말 노래 우리말 새롭게 가꾸기 37. 흰새 오늘날 ‘해오라기’로 일컫는 새는 예전에 ‘하야로비’라 했다. 이름에 깃든 ‘해’나 ‘하야’는 ‘하얗다’를 가리킨다. 하얗게 물든 빛깔인 깃털로 날아다니는 새를 가리키는 이름인데, 막상 오늘날 우리가 가리키는 해오라기는 ‘하얀새’가 아니다. 깃털이 오롯이 하얀 빛깔인 새는 한자말로 따로 ‘백로’라 한다. 곰곰이 헤아려 볼 노릇이다. 흰빛인 새라면 ‘흰새’라 해야 어울리고 맞으리라. 한자를 써야만 새이름을 가리킬 수 있지 않다. 흰새 (희다 + ㄴ + 새) : 깃털이 흰빛인 새. 왜가리 갈래에서 ‘백로’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 하얀새 ← 백로白鷺) 38. 자맥배 물밑에서 몸을 마음껏 놀리거나 헤엄치다가 물밖으로 나오는 일을 ‘자맥질·무자맥질’이라 한다. 물밑을 마음대로 오가다가 물밖으로 나올 수 있는 배라면 ‘자맥배’라 할 만하다. ‘무자맥배’라 해도 되고, ‘자맥이·무자맥이’라 해도 어울린다. 우리말 ‘자맥질·무자맥질’을 한자말 ‘잠수(潛水)’로 가리키니, ‘자맥 + 배 = 잠수 + 함’인 얼거리하고 매한가지이다. 자맥배 (자맥 + 배) : 자맥질을 하는 배. 물밑으로 마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102] 궁둥걸상 새벽 네 시이다. 캄캄하던 밤하늘이 조금씩 밝는다. 숲은 아직 까맣고 하늘이 파랗다. 달리면서 해돋이를 보려나 기다리는 사이 풍산 읍내를 지난다. 구름이 하늘을 뒤덮는다. 들녘으로 들어오니 한뼘 자란 모가 푸릇푸릇하게 땅을 환하게 밝히고 흐린 구름은 파릇파릇 밝아온다. 한 시간 반 달리는 동안 날이 새는 가장 어두운 얼굴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시골집에 닿으니 햇살이 구름을 겨우 벌리고 눈썹만큼 나왔다. 일하기 좋은 아침이다. 앵두가 빨갛게 익었다. 자잘한 장미꽃이 나무처럼 우거졌다. 아, 매실나무를 타고 뻗어 나무가 말랐다. 한 그루 장미나무처럼 덩굴졌다. 장독대 옆 감나무 밑 꽃잎이 셋 달린 보랏빛꽃이 피었다. 담 같은 대나무 줄기가 마당으로 뻗었다. 뽑느라 애를 먹으며 꽃밭을 꾸려 놓았다. 애써 가꾼 꽃밭이 사라지는 줄 알았더니 지난해 누가 심은 꽃이 올해 다시 살아났다. 이제 뒷밭에 간다. 토마토가 열리고 노란 꽃이 피고 진다. 멧딸기 한 그루도 찔레 덩굴 같다. 바알갛게 영글어 가는 멧딸기로 가지가 축축 늘어졌다. 멧딸기꽃이 매화 닮았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언덕 터이다. 지붕을 보며 숨 크게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딸한테 24 ㅡ봄비 매화꽃 울더니 꽃내 떨어진다. 이맘이면 맡는 이름만 불러도 코앞에 달려오는 바람 불어 춥지만 비처럼 홑옷 가는 하얗게 발갛게 어우러진 봄빛. 어느새 퍼붓는다. 바람이 뒤흔든다. 한바탕 함박비 지나고 바닥에 하얗게 한바탕 꽃얼룩 진다. 2023.06.13. 숲하루 #딸한테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101] 이랑 삐대기 맨밥을 세 사람 먹을 만큼 그릇에 담아 한 김을 빼고 얼음자루에 담았다. 오늘은 집안사람 다섯이 숲을 오른다. 나는 밥을 맡았고, 같이 가지는 않는다. 같이 안 가면 홀가분해야 할 텐데,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는지 몰라 헤맨다. 혼자 가고 싶은 곳이 없었는데 문득 엄마한테 간다. 엄마가 밭매기를 한다니, 고랑 하나나 이랑 둘은 거들 듯하다. 햇볕은 바지런하다. 벼랑 그물에 장미꽃이 활짝 피었다. 길가에는 노란 금계국꽃이 한창이다. 못둑을 걸어 본다. 보랏빛 꽃이 수북하다. 칡덩굴이 휘감은 곁을 걷는데 못둑 풀더미로 뭐가 휙 지나간다. 송아지 빛깔 같은 고라니가 나를 보았는지 몸을 숨긴다. 숨어도 쫑긋한 귀가 보인다. 새싹을 먹으러 내려왔거나 도랑에 물을 먹으러 나왔을까. 밤에는 어디에서 지낼까. 아카시나무 둑 위로는 찻길이다. 고라니는 노란 털빛이라서 풀덤불에 숨어도 눈에 띈다. 얼마 앞서는 땅미에서 보고 오늘은 못둑에서 만나네. 금계국 둘레로 찔레꽃이 바람에 춤춘다. 토끼풀도 키재기하고 함박꽃도 흐드러진다. 진갓골 길가에서 숲으로 걸어간다. 두 이레 앞서 심은 파가 일어나고 들깨 싹이 올라왔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100] 밑바닥 며칠째 일꾼찾기 글을 올린다. 학생 일꾼이 나가려고 한대서 여러 곳에 띄운다. 일꾼찾기를 올리면 어느 때는 사람이 몰리기도 하는데, 요 며칠은 잘 안 모인다. 몇 사람을 살피는데, 막상 일하겠다고 오려는 사람은 집이 멀다. 밤늦게 일을 마치고 막차를 타면 된다고 하지만, 여름 지나고 겨울이 오면 힘들 텐데 싶어, 오래 일을 하지 못하고 그만둘까 싶어, 하마 시름시름 한다. “근데 학생 일꾼은 왜 벌써 그만둔대요?” “응, 군대 가서 죽을까 봐 덜덜 떨더라.” “군대? 아, 군대가 두렵구나” “그래서, ‘니 군대 가서 죽을라 해 봐라. 죽는가? 절대 안 죽는다. 니 죽을까 봐 길에는 어떻게 걸어다니노?’ 하고 말해 보는데 안 돼.”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학생은 학교도 그만 다닌다고 한다. 죽을까 봐 밖에도 잘 안 돌아다닌다고 한다. ‘지구가 곧 망하는데 일 안 해도 된다’고 믿는 아이다. 대학생이라면 꿈이 있을 텐데 하루 벌어 하루 살려고 한다. 어쩌다 꿈조차 꾸지 않는지 가만히 보니 어버이 삶이 바닥이라고 한다. 어버이가 갈라서니 학생을 둘러싸는 사랑이 없으니, 어릴 적부터 본 대로 바닥살이를 그대로…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딸한테 19 ―울릉섬 곁섬 김정화 울릉섬은 엄마섬 관음도는 아이섬 섬에서 섬으로 간다. 엄마섬은 큰섬 아이섬은 곁섬 봄맞이풀을 밟는다. 큰섬은 숲섬 곁섬은 밭섬 봄쑥 한 포기 뜯는다. 숲섬은 푸른섬 밭섬은 파란섬 들빛과 하늘빛 함께 본다. 2023. 06. 07. 숲하루 #대구문학2023년6월호 #울릉도#관음도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곁말’은 곁에 두면서 마음과 생각을 살찌우도록 징검다리가 되는 말입니다. 낱말책에는 아직 없습니다. 글을 쓰는 숲노래가 지은 낱말입니다. 곁에 어떤 낱말을 놓으면서 마음이며 생각을 빛낼 적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면서 ‘곁말’ 이야기를 단출히 적어 봅니다. 숲노래 곁말/숲노래 말빛 곁말 56 볕나물 풀꽃을 찰칵찰칵 담기 좋아하는 이웃 어르신이 있습니다. 이분은 한자말을 써야 깍듯하다(예의·예절)고 여기시곤 합니다. 어느 날 함께 숲길을 걷다가 노란꽃을 만났고, 이분은 ‘양지꽃’이란 한자말이 깃든 이름을 들려줍니다. 흙살림을 짓는 다른 분은 ‘가락지나물’이란 이름을 들려주더군요. 더 알아보니 ‘쇠스랑나물’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세 가지 이름을 나란히 놓고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쇠스랑’이나 ‘가락지’는 이 풀꽃이 사람 곁에서 어떻게 보였는가 하고 헤아리면서 붙인 이름입니다. ‘양지’라는 한자말도 매한가지인데, 참으로 볕이 잘 드는 곳에서 샛노랗게 빛나는 들나물이라는 뜻입니다. 함께 숲길을 걷다가 볕바른 곳에서 만난 노란꽃나물을 한 줄기 훑어서 혀에 얹고서 가만히 생각했어요. 볕살을 듬뿍 머금은 나물을 몸으로 받아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곁말’은 곁에 두면서 마음과 생각을 살찌우도록 징검다리가 되는 말입니다. 낱말책에는 아직 없습니다. 글을 쓰는 숲노래가 지은 낱말입니다. 곁에 어떤 낱말을 놓으면서 마음이며 생각을 빛낼 적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면서 ‘곁말’ 이야기를 단출히 적어 봅니다. 숲노래 곁말/숲노래 말빛 곁말 55 종이꽃 2007년에 곁님하고 살림을 이루기 앞서까지 ‘종이접기’를 거의 안 쳐다보았습니다. 곁님은 여러 가지를 하면서 마음을 가만히 모으곤 했는데, 이 가운데 종이접기가 있어요. 이 살림길은 일본에서 ‘오리가미(おりがみ)’라는 이름으로 일구어 퍼뜨렸다더군요. 우리나라를 뺀 온누리 여러 나라에서는 일본말 ‘오리가미’를 쓰고, 우리만 ‘종이접기’란 낱말을 새롭게 지었답니다. 웬만한 데에서는 일본말을 슬그머니 척척 베껴쓰거나 훔쳐쓰거나 데려오는 우리나라인데, 뜨개를 하는 분하고 종이접기를 하는 분은 우리말을 퍽 남달리 씁니다. 첫내기한테 일본말이 낯설거나 어렵기도 하고, 뜨개는 배움턱(학교 문턱)을 딛기 어렵던 아주머니가 흔히 했으며, 종이접기는 어린이부터 누구나 하기에, 두 갈래에서만큼은 우리말을 알뜰살뜰 여민 자취라고 느낍니다. 우리